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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화 〉침식 (2) (81/87)



〈 81화 〉침식 (2)

혜지가 출근하고 집에 홀로 남은 현우는 어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노트북을 켰다.

느긋이 부팅을 기다리는 그의 눈에는 여유가 가득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뢰를 이용하여 그녀를 착취한다는 계획이 너무도 완벽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그녀를 쥐었다 폈다하며 마음대로 농락하던 조교는 얼마나 성공적이었던가. 또 오늘 아침의 봉사는 얼마나 만족스러웠고.


정신없이 자지를 빠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자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복종의 맹세를 외치고 오줌을 받아먹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후우..."


 광경을 되짚어보는 현우의 얼굴에 다시금 추잡한 성욕이 인다.


... 좆물통년에게 정액을 먹여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던가?


입에 싸질러준 정액을 삼킨 혜지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인사를 올렸다.


마치 그것이 그녀의 의무인 것처럼, 그러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비록 그러한 행동 양식을 세뇌시킨게 자신이긴 하지만서도...

예상을 한참이나 웃도는 그녀의 반응은 놀라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했다.

어떻게 사람이 단 며칠 만에 이토록이나 망가졌을까.


그리고 과연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 것일까.

현우는 인간 심리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부팅이 끝난 노트북에 휴대폰을 연결했다.

그녀가 퇴근하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저는 주인님 전용의 창녀고... 아, 21살 정혜지입니다. 개보다 못한 년을 따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어제 찍은 작품을 확인하는 일.

노트북 화면에는 혜지의 새하얀 젖가슴과 함께 그녀의 주민등록증이 비쳤다.


[보지랑 후장으로 주인님 정액 다 받아주는 좆물통도 해줄 수 있고요! 오줌도 받아주는 변기통도 해줄  있어요! 아, 목줄 차고 주인님이 기르는 개도 될게요!]


 영상 위에 그녀의 밝고 청아한 목소리가 나레이션처럼 덧대어진다.


영상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신이 찍은 작품을 감상하는 현우.

천박한 자기소개 후에 일말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구타하는 장면부터.


그녀가 몸에 적힌 글자들을 외치며 복종을 맹세하는 장면과 자지에 꿰뚫리며 토하는 장면까지.

넥타이로 가린 그녀의  눈을 제외하고는 수위와 연출 모두 흠잡을 곳이 없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그녀의 예쁜 눈망울을 영상에 담을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카메라를 응시하며 복종의 맹세를 내뱉는 그녀를 상상하자 현우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명령 한 마디에 스스로의 사회적 인격을 파멸시킬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하며 기뻐하는 여자라.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가축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주인을 위해 언제든 인간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길들여졌다는 뜻이니까.

영상확인을 마친 현우는 이를 클라우드에 백업하고 어제의 책을 찾았다.

그녀를 원하는 수준까지 길들이기 위해서는 좀더 공부가 필요했다.


그녀의 심리를 굴종시키고 예속시켜 기꺼이 인생을 내려놓도록 만드는 공부가.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현우의 눈에는 뒤틀린 욕망이 불타올랐다.

*



[현우는내운명♡ : 자기야 나 자기 집이야! 퇴근하면 여기로 와요! 같이 짐 정리하자! 쓰레기 봉투랑 우체국 박스들 내가 미리 다 사놨어♡]

곧 있을 퇴근을 기다리던 혜지는 현우의 메시지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안그래도 어떻게 짐을 정리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빠도 비슷한 고민을 했나보다.


오빠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메시지를 보자 오빠가 아침에 차려준 토스트가 떠오른다.  앞까지 나와 배웅해주던 다정한 모습도 떠오른다.


그럴수록 혜지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현우가 보고 싶어졌다.


"혜지씨, 아직 퇴근하려면 시간좀 남은거 아니에요?  휴대폰 봐요?"

"아... 죄송합니다. 잠깐 연락이 와서요."

하지만 매니저는 그 잠시의 여유조차 두고볼 수 없는 것인지 그녀를 나무랐다.

"나참... 또 남자친구에요? 연애하는건 좋은데 선은 지켜야할 것 아니에요."


매니저가 쏘아붙이는 말에 당황하기도 잠시. 당황이 물러난 빈 자리를 억울함이 채웠다.

지금은 손님도 없고, 퇴근도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심지어 오늘 처음 휴대폰을 꺼내보는 것이었는데 또라니.


다른 이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유독 자신에게만 엄격히 원칙을 들이대는 것이 속상했다.


말로는 편하게 대하라 하면서,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인지.

평상시라면 한 번 더 죄송하다고 하고 조용히 넘길 일이었지만, 오늘은 그러기가 싫었다.


"매니저님... 근데 그... 또 본 건... 아니거든요. 오늘 처음으로 본 건데요."

"그래서 지금 잘못은 아니다? 그런 말이에요?"


"아뇨, 어... 잘못은 맞는데, 음... 그래도 오늘 처음 휴대폰 꺼낸건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나요?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면서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혜지는 말을 하면서 조금씩 분이 차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쌓여왔던 서러움이 아차 하는 순간에 터져나왔다.

나쁜 사람들.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아는 척을  해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할 때는 언제고 조금 잘못 했다 싶으니 득달같이 달려와 꼬투리를 잡는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대체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고 이토록 대놓고 못 살게 구는 것일까.

현우에게 억압 당하고 학대 당하던 그녀의 무의식은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를 매니저에게 쏟아내며 몸부림 쳤다.

"하... 혜지씨, 이런 사람이었어요?"


"... 제가 틀린 말 한건 아니잖아요."


"뭐가요?"

"다른 사람한테는  그러시는데... 저한테만 자꾸..."

그러나 그 몸부림조차 결국 기지개에 그치고 만다.

말을 이어갈수록 처음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위축되기만 한다.


치솟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지르긴 했지만 그건 분명 그녀의 천성에 맞지 않는 행동.

매니저 언니가 팔짱을 끼고 노려보자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소란스러움을 눈치챈 다른 알바생들이 쑥덕거리자 고개가 바닥을 향해 기울었다.

속상해도 참을걸. 한 번만  참을걸.

혜지는 바닥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경솔함을 탓했다.


"왜 말을 하다 말아요? 괜찮으니까 더 말해봐요."


"... 아닙니다. 죄송해요."

"그럼 내가 말할게요. 다른 사람들이랑 혜지씨랑 같아요? 혜지씨 이제 일한지 며칠 됐어요?"

매니저는 꼬리를 말고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순순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신입이다.

이렇게 된 것, 그녀가 그만두든 말든 할 말은 해야했다. 차라리 그만두는 편이 나을지도.


"보름... 정도요."

"그쵸? 아직 한 달도 안 됐죠?"

"... 네."


"근데 혜지씨 하는거 보면 한 일 년은  것 같아요. 알아요? 보름 정도된 막내가 뭐 하나 더 배울 생각도 없이 시키는 일만 하지, 평상시에 말도 별로 없지. 밥이라도 같이 먹을까 싶으면 혼자  가버리고, 뭐라 한 마디하면 토라지고."

매니저는 평소 그녀의 행실을 거론하며 불만을 하나씩 토로했다.

신입 주제에 살갑게 구는 맛이 없는건 둘째치고 선배들과 친해지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않는다.


그러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싶으면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쏜살같이 내빼기 바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온종일 입을 꾹 다물고 답답하게 구는 혜지는 예쁘게 봐줄래야 예쁘게 봐줄 수가 없는 신입이었다.


"죄송해요. 일부러 말 안 하고 그런건 아니었는데... 제가 성격이 조금 소심하기도 하고... 다들 친해보이셔서 끼어들기도 어렵고... 근데  정말 토라진 적은 없어요."


그러나 혜지에게는 그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오빠를 만나고 삼 주쯤 되던 때. 그나마 어느 정도 적응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지금의 아르바이트로 갈아타면서 그녀의 정신은 온통 현우를 향해 있었다.

애초에 일자리를 옮긴 것도 오빠와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현우 외에 모든 것이 관심 밖이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완벽한 남자를 붙잡기 위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보름이 흘렀다.

처음부터 말을 붙이지 못 하다보니 그것이 쭉 이어졌고 먼저 다가서야하나 망설이는 사이 망설임이 무색해질 만큼 사이가 틀어졌다.

절대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나참, 기가 막혀서. 들어오자마자 남들  쌩까고   길만 가는걸 보고 지금 소심하다고 하는거에요?"


애석하게도 혜지 나름의 변명은 궁색한 핑계가 되어 매니저의 화만 돋궜다.


이전 직장에서 일 년간 사회생활을 해봤다는 사람이 기껏 대는 핑계가 소심한 성격 때문이라니.


매니저의 눈에는 그녀의 문제가 성격의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로 보일 뿐이다. 처음부터가 탐탁치 않던 사람인지라 더 그럴지도 몰랐다.

"아... 정말로 쌩까려고 했다거나 그런거 아닌데..."


혜지는 변명을 더 길게 늘어놓으려다 스스로가 못나지는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넓은 매장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보니 동료들과 말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뿐인데... 정말로 무시할 의도는 없었는데...

낯선 환경 속에서 주눅들고, 무리를 겉돌며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무시로 비쳤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아니면요? 아닌데 왜 그러는거에요?"

"그... 제가 사회생활이 많이 서툴러서요. 그래서 그랬나봐요."

결코 변명이 아니었다.

전에 일했던 곳은 지금의 매장과는 비교도  되는 작은 매장이었고, 그조차 전 남자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적응하지  했을 만큼 미숙한 그녀였으니까.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에게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보고 배울 수 없었고, 생활비를 전전긍긍하는 열악한 환경에서는 평범히 친구를 사귀는 일조차 큰 사치였다.


그렇기에 늘 구석에 틀어박혀 집단 속의 외톨이가 되길 자처했다. 세상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언제나 웅크리고만 있었다.

이제는 그 편이 편했기에 그게 이렇게 불화를 일으킬 줄은 꿈에도 생각  했다.

여지껏 사람들은 그녀에게 무관심하기만 했지 지금의 매니저처럼 화를 낸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 됐어요. 퇴근시간 넘었으니까 그만 들어가봐요. 남자친구 만나러 가야죠? 고생했어요."


그러나 매니저는 그녀의 말은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을 끝내고는 등을 돌렸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야속한 뒷모습.


지금이라도 붙잡고 다시 사과드려야하나 망설이는 사이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멀어져버렸다.


풀리지 않은 오해 위에  다른 오해가 겹겹이 쌓여 결국 풀리지 않는 증오가 되었다.

곯을 대로 곯은 그녀의 인간관계가 마침내 파국을 맞았다.


*




혜지는 터덜터덜 집으로 걸음을 옮기며 쓰린 가슴을 추스렸다.


매니저 앞에서는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울음이 터져나왔다.

자신은  이 모양인걸까.


"멍청한 년..."

아무 짝에도 못 쓰는 쓰레기 같은 년 같으니라고.

어디선가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했다.

그래, 이런 여자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었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 하나조차 제대로  하고.

오빠의 말대로 멍청하고 쓸모없는 년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런 쓰임새도 없는.

어젯밤 수없이 외웠던 자기비하의 말이 그녀의 마음 속을 헤집는다. 그에 비례하여 현우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오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과분한 사람이었다.


잘 생기고, 착하고, 심지어 부자인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뭐든 해주는 남자친구.

혜지는 현우를 떠올리며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매만졌다. 오늘 입고 출근한, 오빠가 사준 예쁜 블라우스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오빠가 보고싶었다. 오빠의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오빠에게 안겨 마음이 아프다고,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아 힘들다고 펑펑 울고 싶었다.


오빠라면 지금의 슬픔을 이해해줄 테니까. 오빠도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니까.

지금 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빠가 유일했다. 아니, 마음을 들어줄 이가 이젠 오빠밖에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존재. 가진 것 없는 자신에게  하나 남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혜지는 입술을 꽈악 깨물며 다급히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흐윽..."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비집고 흘러나오더니 손이 덜덜 떨린다.

모르겠다. 이젠 아무 것도 모르겠다.


이제는, 오빠말고는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알아줄, 그리고 따스한 위로를 들려줄 오빠만 있다면.


그렇다면, 아니 오직 그래야만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


삑삑삑삑 - 띠리릭 -

오빠와 자신을 가로막은 문이 열린다.


 너머의 오빠가 보인다.


좁은 원룸  구석. 그녀의 세상이 그녀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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