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침식 (1)
1.
현우는 옆자리에 누운 혜지를 바라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색색거리며 규칙적인 호흡을 내쉬는 것이 꽤 깊은 잠에 빠져든 모양.
그렇다면 화장실에 숨겨두었던 물건을 슬슬 제자리로 돌려놓을 차례다.
현우는 살금살금 화장실로 걸어가 그녀의 신분증을 챙겨나왔다.
정혜지. 98년 3월 10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출생.
오늘 촬영한 작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신분증이 다시 가방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마치 원래부터 쭉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그제야 현우의 얼굴에도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화장실을 나온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미처 치우지 못한 신분증 때문에 얼마나 찝찝했던가.
그럴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하겠지만, 갑자기 신분증이 보고 싶다고 가방을 뒤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된 가시밭길을 헤쳐나온 그녀는 현우의 사랑한다는 말과 역시 너는 내 운명이라는 말을 자장가 삼아 침대에 지친 몸을 뉘였다.
잠드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현우가 고르고 고른 세뇌의 말을 들으면서.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너밖에 없다'는 말.
현우는 오늘의 잔혹한 성고문 또한 이해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그녀의 병든 영혼이 갈구하는 인정욕구와 사랑에 대한 집착을 그릇된 방식으로 충족시켜주었다.
결국 모든 것은 언제나와 동일할 뿐이다.
남들이 혀를 내두를 끔찍한 가학성은 한낱 취향이 되었으며 반대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자친구로서의 당연한 도리가 되었다.
그녀의 정신을 부숴버렸다가 붙여주고. 그러다 더 크게 부수고.
그렇게 조금씩 강도를 올려가며 그녀의 정신을 하루씩, 한 조각씩 재조립한다. 절대 배신할 리 없고 무조건적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성노예로 재탄생하도록 말이다.
현우는 침대로 돌아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발길을 반대로 돌렸다.
서재에 들러 감추어 둔 조교일지를 꺼내든 그는 오늘의 일지를 작성해나간다.
[5월 1일. 의존성 인격장애의 사용법.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를 쌓고 착취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 함께하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녀의 의존성을 극대화시킨다.]
일주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 시간동안 혜지는 기꺼이 창녀가 되었고 좆물통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스스로를 쓰레기통이라 지칭하며 정액을 애원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 믿으며 헤실거리는 것을 보면 그녀는 이미 망가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제대로 망가진 것이 틀림 없었다. 그것도 현우가 바라는 방향으로.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마지막 글자 옆에 마침표를 찍고 펜을 내려놓는 현우의 얼굴에 포식자의 미소가 번뜩였다.
먹잇감이 지닌 약점을 확실히 깨달았으니, 이젠 영리한 사냥만이 남았다.
2.
현우는 부드러운 키스로 혜지를 깨우고는 그녀를 미리 준비해둔 목욕물로 이끌었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과 눈빛을 잠시도 쉬지 않고 퍼부어주면서.
지난 밤의 비정상적인 행위들이 꿈이었나 하는 착각이 들게끔,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미소로 그녀의 기상을 반겼다.
그렇게 그녀의 신뢰를 어느 정도 이끌어냈다는 확신이 들 때쯤.
현우는 화장실에 들어온 그녀를 대상으로 어제의 착취를 이어나갔다.
"자기, 어제 외웠던 말들 아직 기억해? 몸에 적었던거."
"아... 응! 기억하지!"
"그럼 눈 감고 위에 옷 벗어봐."
입고 있던 반팔티를 벗자 그녀의 몸에 적힌 낙서들이 검은 광택을 반짝였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외웠던 그 말들이 조금도 지워지지 않은 채 건재함을 과시했다.
쪽 -
"잠시 생각할 시간 줄게. 다시 떠올려볼래?"
그녀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는 천천히 손목을 돌리는 현우.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온화한 오빠의 모습. 그리고 뒤이어 마주할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주인의 모습.
따스하고 배려 넘치는 말투를 가교로 하여 둘을 잇는다. 남자친구의 말투에 주인의 행동을 뒤섞으며 비일상을 일상으로 녹여낸다.
마치 퀴즈쇼에 출연한 사람처럼 생글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지금의 비일상이 얼마나 깊이 그녀의 정신에 침투해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놀라운 성과였다.
제 몸에 적힌 천박한 예속의 맹세를 저토록 열중해서 되짚어보니 말이다.
"정말 외우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난 자기가 다 외우고 있었으면 좋겠어. 까먹었다고 해도 혼낼 생각은 없는데... 그냥 자기가 기억해주면 기쁠 것 같아."
"자신있어. 나 믿어봐, 오빠."
아침부터 지극정성으로 케어해준 탓인지 그녀는 여느 때의 쾌활한 미소를 되찾았다.
당연히 그녀의 정신은 그러하지 못했지만.
어젯밤의 강력한 세뇌에 사로잡힌 그녀의 정신은 아직도 생생한 여섯 문장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되돌릴 수 없는 자기암시를 자처했다.
"그럼 어떻게 확인할까? 어제처럼 때려? 아니면 그냥 말로 물어봐? 당연히 때리는건 그냥 가볍게만 때릴거야."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줘. 오빠가 세게 때리고 싶으면... 그것도 괜찮아."
"자기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할줄 알았어. 근데 좀 있으면 출근도 해야하니깐 가볍게 때려볼게."
"아, 응응!"
현우는 피식 웃으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오빠를 사랑하니까,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하면 좋다는 말을 주입시켰던가.
자고 일어난 이후에도 그 비슷한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몰아붙인 어제의 세뇌가 꽤나 짙게 남았음이 틀림 없었다.
하여간, 기특한 여자다. 장난감으로 써먹기에 딱 알맞은.
"어우, 자기야. 왜 내가 떨리지? 뭔가 내가 시험치는 기분이야. 잘 할 수 있지, 내 여친?"
"에이, 걱정말고 시작해봐. 나 진짜 다 기억난다니까."
"오케이. 그럼 간다?"
짜악 -
어디부터 때려볼까 고민하던 현우는 그녀의 뺨부터 후려쳤다.
아침부터 손찌검을 휘두르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비단 때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맞는 사람조차도.
"사랑해, 오빠!"
짜악 -
방금과는 반대로 휙 돌아가는 그녀의 고개.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앙증맞은 개 짓는 소리.
"멍! 멍멍!"
언제든 뺨을 때려도 좋다고, 그 세기에 대한 합의마저 끝낸 혜지에게 지금의 폭력은 단지 스킨십일 뿐이다. 오빠기 좋아하는, 그리고 오빠가 행복해하는 스킨십.
그렇기에 조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오빠에게 예쁜 미소를 내비칠 수 있도록 방금 얻어맞은 입가에 힘을 더했다.
짜악 -
"오빠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여자친구가 되겠습니다!"
그런 그녀의 미소는 좀처럼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테스트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매질 앞에서 당당히 정답 행진을 이어가며 뿌듯함만을 느낀 탓이다.
짜악 -
"항상 오빠를 기쁘게 하겠습니다!"
아침부터 오빠를 기쁘게 해줄 자신이 있었다. 어찌보면 이건 오빠의 인정을 받을 기회였다.
그녀는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상대의 기쁨을 위해, 또 그의 인정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다.
짜악 -
"멍청한 쓰레기년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고 일어난 말짱한 정신으로도 방금 외친 말의 부조리함을 알아채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고작 하룻밤의 수면만으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정신이었기에 말짱한 정신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짜악 -
"언제든 어디서든 구멍을 벌리겠습니다!"
"후우... 오늘 다시 보니까 적어준 말이 좀 심한가 싶기도 하고. 어젠 나도 화가 났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네, 주인님! 저는 괜찮아요!"
"풉... 갑자기 웬 주인님이야? 맞다보니까 어제 생각나서 그래?"
"아..."
혜지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주인님이라는 말에 멈칫거리다가 얼굴을 붉혔다.
왠지 지금의 상황에서는 주인님이라는 말이 더 편했다.
"그래도 자기가 알아서 그렇게 말해주니까 듣기는 좋네. 내가 안 시켜도 주인님이라고 해주고. 내가 자기 주인님 해도 돼? 평생? 자기 계속 내 여자친구 해줄거지? 내 좆물통 해줄거냐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유두를 꼬집는 현우.
예정에 없던 주인님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그녀가 먼저 주인님을 청해온다면 그에 장단을 맞춰주면 그만이었다.
어제와 그랬듯,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질문 속에 동의를 얻어내고 싶은 추악한 질문을 섞는다.
달콤한 사탕 같은 말 속에 그녀의 영혼을 오염시킬 끈적이는 악의를 숨긴다.
"흐읏... 하앙! 네, 그럴게요. 평생 주인님꺼 할게요."
"오, 신음소리! 주인님이 젖꼭지 잡아뜯어주니까 기분 좋은가봐? 응?"
"하으으응... 네, 좋아요!"
갑작스레 시작된 플레이였지만 혜지는 훌륭히 호흡을 맞췄다.
오빠가 가르쳐준 대로, 유두에서 퍼져나가는 찌릿한 고통을 신음소리로 승화시킨다.
비록 오빠의 말대로 좀 멍청하긴 했지만, 그래도 몸으로 열심히 배운 것들이었으니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가르침을 까먹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짜악 - 짜악 -
"잘못을 하면 어디든 몇 대든 맞겠습니다! 음... 아!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습니다!"
현우는 한동안 젖꼭지를 괴롭히다가 그녀의 뽀얀 허벅지를 번갈아 내려쳤다.
눈을 꼭 감은 그녀의 입 밖으로 언제 들어도 신기한 예속의 맹세가 흘러나왔다.
잠시도 찌푸려지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기가 선명했다.
모든 테스트를 실수 없이 통과해냈다는 성취감에 그녀는 곧 있을 현우의 칭찬을 기다리며 미소지었다.
"잘 했어. 진짜 다 외워줬구나. 기뻐. 정말 기뻐."
"오빠가 기뻐해줘서... 나도 기뻐."
기쁘다는 말이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트리거가 되어버린 것일까.
혜지는 현우의 기쁘다는 말에 유독 집착하며 어젯밤 새겨준 세뇌를 되뇌었다.
기쁘다는 말. 그건 지금의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일을 이해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는 그녀의 새로운 합리화 기제로 보였다.
오빠를 사랑하니까, 그런 사랑하는 오빠가 기뻐하니까 지금의 일은 옳은 것이라고 믿게끔 해주는.
쪽 -
"이제 눈 떠도 돼. 아침부터 고생했어. 바로 목욕하러 들어갈래? 난 아침 차리고 있을게."
현우는 그녀에게 키스하며 은근슬쩍 발기한 물건을 갖다댔다.
그녀의 세뇌가 또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가 기대 됐다.
"어... 오빠꺼 커졌는데..."
"자기가 아침부터 주인님이라고 해주니까 좀 흥분했나봐. 내 여자가 너무 섹시한걸 어떡해."
"헤헤... 그렇게 좋았어?"
"응. 근데 단순히 꼴린다 이런거보다는... 자기가 사랑스러워서 커졌다고 해야하나? 어제 자기가 먼저 나보고 화장실로 가자고 해주고, 오늘은 내가 별다른 말 안했는데 알아서 주인님이라고도 해주고... 진짜 이해받는 기분이잖아."
"아... 그런가?"
"그렇지. 내가 말했던 적극성이 이런거였어. 나 혼자 열내고 자기는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나도 결국 민망해져서 김샐거 아니야. 우리가 궁합이 안 맞나 하는 생각도 들거고. 대충 뭔 말인지 알겠지?"
"아, 응응!"
현우는 어떠한 강요의 말도 없이 그저 곱게 포장된 거짓 속마음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행동을 재촉했다.
얼른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의 궁합이 맞지 않는걸로 알겠다는 무언의 압박이 그녀를 두들긴다.
혹여 둔감한 그녀가 눈치 채지 못 했을까봐 재차 말을 덧붙였다. 그녀를 안아주는 척하며 팬티 위로 불룩 솟은 귀두를 허벅지에 문지르면서.
"근데 자기는 좀 실수하긴 해도 잘 해보려고 계속 노력해주니까. 난 그게 참 좋아. 힘들어도 노력해주는거.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세상에 또 어딨냐."
그녀의 복종에 적당한 보상을 지불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큰 복종을 부추긴다.
마치 개를 길들이듯, 마음에 드는 행동을 골라 칭찬하고 그 행동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도록 강화시킨다.
그녀와 개가 다른 점이라면, 단지 말귀를 알아먹는 지능이 좀더 높다는 점뿐.
심리적으로 완전히 예속된 그녀는 이미 길들여질 준비를 마친 애완동물이나 다름 없었다. 오직 주인의 심기를 살피며 꼬리치기 바쁜 애완동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기특하게도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어왔다.
"... 한 발 뺄래, 오빠? 아니다... 입보지로 봉사할까요, 주인님?"
"그래도 되겠어? 어제 힘들었으니까 오늘 아침은 그냥 패스해도 괜찮은데..."
"아니에요. 주인님 자지가... 아니, 자지님이 커졌으니까 제가 정액 빼드릴게요. 제발 좆물 받아먹게 해주세요."
혜지는 현우가 방금 한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욕조에 들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오빠의 미소와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기분 좋은 상쾌함이 그녀의 용기를 부풀렸다.
아직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오빠는, 힘들어도 노력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했으니까.
방금 전의 테스트에 이어 노력을 선보일 기회였다.
"와... 자기 진짜 아침부터 존나 꼴리게 하네. 그런 야한 말까지 해버리면 나도 참기 힘든데?"
"안 참아도 돼요, 주인님. 언제든 어디서든 구멍 벌린다고 했으니까... 주인님은 쓰고 싶은 대로 좆물통년 써주세요."
혜지는 자기비하의 언어를 주저없이 내뱉으며 활짝 웃었다.
오빠 앞에서 쭈뼛거리는 것, 혹은 망설이는 것. 말과 행동을 함에 있어 쓸데없는 생각과 걱정을 개입시키는 것.
이것들은 모두 어제를 기점으로 철저한 금기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일인데 망설인다면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으니까.
이왕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았다.
"와씨... 최고다, 진짜. 내 여자친구... 진짜 최고야."
현우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걸작에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좆물을 먹여달라 비는 좆물통년이라니.
정상적인 연인 관계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이미 둘의 관계는 연인 관계가 아닌 주종 관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지금의 행위를 연인 간의 평범한 행위라 착각하는 그녀가 우스웠다.
지극히 비일상적인 행위를 두고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 꼴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사랑해, 혜지야. 네가 한 발 빼준다고 해서 이런 말 하는게 아니야. 그냥 날 생각해주는 네 마음이, 날 사랑해주는 네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래."
"나도... 사랑해, 오빠. 나는 괜찮으니까, 오빠 하고 싶으면 목보지도 쑤셔도 돼."
어제 화장실을 나오고부터 오늘 화장실에 다시 들어오기까지.
현우가 세심히 공들여 연기한 따스한 남자친구 연기는 조금도 헛되지 않았다.
딴생각이 들 겨를은 조금도 주지 않고 애정공세를 퍼부어준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혜지는 사랑을 속삭이며 자신을 와락 끌어안는 현우의 품에서 한 점의 의문도 없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섹스를 할 때는 다소 거칠지만 평상시에는 따스하고 자상한 오빠라는 믿음.
오빠는 역시 취향이 조금 특이할 뿐 그 누구보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
현우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그녀가 믿고 싶은 측면만을 내면에 부각시키며 다시금 단단해졌다.
의존성 인격장애에 걸린 사람들은 원래가 아무리 혹독한 취급을 당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의존을 떨쳐내지 못하기 마련.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특성을 꿰뚫어본 현우가 귀신 같은 솜씨로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휘둘러댔으니 그녀를 옭아맨 신뢰의 고삐는 느슨해질 일이 없었다.
"나 근데 아직 오줌 안 쌌거든. 자기도 일어나서 안 쌌지?"
그러니 착취의 단계를 더한다.
그녀가 사랑에 취해 허덕이는 동안 태연히 팬티를 내리고 자지를 꺼낸다.
"야. 변기통 사용 준비해."
"아...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무릎 꿇고 주인님 오줌 받을 준비하라고. 굳이 마실 필요는 없어. 몸에 뿌려줄 테니까."
"아, 골든 샤워! 네, 주인님!"
혜지는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입을 벌렸다.
몸을 적시는 오줌의 맛도, 냄새도 이젠 익숙했다.
쪼르륵 -
그녀의 벌려진 입에 들어차는 황금빛 물줄기.
가늘게 눈을 뜨니 오빠가 이가 드러날 만큼 크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혜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귀두를 덥석 물었다.
꿀꺽 - 꿀꺽 -
이런게 오빠가 말하던 노력이 아닐까.
어제는 오빠가 시켜서 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아니다.
골든 샤워에서 음뇨로 플레이의 단계를 높였다. 오로지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허윽... 씨발년! 그래, 다 쳐먹어. 존나 좋아, 씨발."
현우는 그녀의 복종을 마다하지 않고 양손으로 머리통을 붙잡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몇 초 전에 들은 노력이니 뭐니 하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둥둥 떠다닐 테니까.
그러라고 실컷 말을 늘어놓고 일부러 입을 향해 발사했으니까.
서서히 멎어가는 오줌줄기와 함께 현우는 몸을 떨었다.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는 그녀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흡족했다.
"자기야... 나야 좋기는 한데... 괜찮아? 힘들지?"
"흐으... 아니에요. 어제도 했던 거라서... 잘했죠? 기분... 좋으세요?"
"완전. 아까도 그렇고 선물 하나 받은 기분이야. 명령없이 자기가 먼저 마셔줄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고마워, 나한테 맞춰줘서."
"다행이다... 주인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서... 아, 저도 오줌 싸고 와도 될까요? 싸고 와서 봉사할게요."
혜지는 오줌에 젖은 두 눈을 손으로 훔치며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의 기쁨에 따라 기뻐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순한 암캐를 닮아있었다.
"뭘 싸고 와. 여기서 싸."
"네?"
"복종 자세."
현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혜지는 의문을 뒤로 하고 바닥에 등을 가져다댔다.
바닥에 흥건한 오줌은 그다지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다리를 활짝 벌려 접어올리고 양손을 가슴 옆에 가져다댔다.
"주인님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면 넌 사람이 아닌거잖아. 근데 건방지게 변기를 쓰려고 해?"
"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말이 좀 짧네?"
"... 멍청한 쓰레기년이 실수해서... 인간도 아닌 주제에 변기를 사용하려고 해서 죄송합니다."
혜지는 현우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대자 이상하리만치 불안해졌다.
이유는 그녀도 몰랐다. 그저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자 한순간 심장 박동이 멎는 느낌이 들며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녀가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더라도 그녀의 무의식은 이미 폭력과 공포에 굴종해버린 탓이다.
"뭐, 아침에 잠 덜 깨면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럼 싸. 그 상태에서 나보고 웃으면서. 아, 싸면서 멍멍 짖기도 해봐. 어제 말한대로 애완동물 되려면 똥오줌 가리는 것도 미리미리 연습해야지."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지시다.
그러나 방금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간 공포는 그 지시를 매끄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멍멍! 멍!"
쪼르륵 -
혜지는 어떠한 망설임도 느끼지 못하고 방광에 힘을 풀었다.
오줌 싸는 모습이라면 어제도 보여주었고, 짖는 소리라면 방금도 들려주었으니까.
단지 그 둘을 합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그러했다.
"존나 꼴리네. 이러니까 너 완전 개같다. 개보지에서 오줌 나오는 것 봐."
현우는 그녀의 요도에서 뿜어진 물줄기가 바닥에 퍼지는 것을 보며 자지를 움켜쥐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배를 까뒤집고 방뇨쇼를 선보이는 암캐라니.
몹시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이 치솟았다.
"멍! 흐윽... 멍멍!"
"다 쌌냐?"
"네, 주인님."
"그럼 이제 뭐해야할 것 같아?"
"어..."
혜지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켜 바닥에 혀를 가져다댔다.
오줌을 싼 뒤, 자신의 오줌을 핥아먹는 것.
불현듯 어제 해본 그 행위가 생각나 어제처럼 고개를 쳐박는다. 어제처럼 엉덩이를 흔든다. 어제처럼 오줌을 핥으며 멍멍 짖는다.
"멍멍!"
"푸흡... 그것도 좋긴 하네. 난 그냥 자지 빨라는 말이었는데. 시작한 김에 좀더 핥아봐. 보기 좋다, 자기야."
혜지는 현우의 웃음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비록 정답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오빠를 웃게 했으니 그걸로 됐다.
불안이 초래하는 그녀의 정신병적 증세는 반복되는 현우의 담금질 속에서 단단히 형태를 갖췄다.
이제는 아주 작은 불안도 견뎌내기 힘들었다. 오빠가 싸늘히 인상을 굳히는 것이, 크게 소리치는 것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번 정신병이 촉발되면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았다. 어떻게든 오빠를 다시 웃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킥... 네 오줌 맛있냐, 개년아? 존나게 핥아대네. 혓바닥 헐겠다, 야."
그렇기에 어떠한 웃음이든 반갑기만 했다. 그것이 비웃음을 한껏 담은 조소라 할지라도.
"네, 멍멍! 맛있어요!"
"그만 핥고 입 헹구게 입 벌려. 얼른 좆물 받아먹고 목욕해야지, 우리 자기."
"아, 네!"
쏴아아 -
그녀의 입을 시작으로 온몸을 적시는 물줄기.
혜지는 따스한 물에 몸을 싣고 눈을 감았다.
방금은 어쩌다... 그렇게 된걸까?
그녀는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마음이 조금 놓이자 잠깐이지만 스스로를 되돌아볼 틈이 생겼다.
오빠의 키스로 눈을 뜨고, 달콤한 사랑의 말을 나누고, 오빠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왔는데...
"됐어. 이제 자지 빨아."
"... 입보지로 봉사하겠습니다, 주인님."
"고마워, 아침부터. 어제 싸놓고도 그새 또 쌓였나 봐. 얼른 쌀 수 있도록 할게."
"흐으읏... 하응..."
쪼오오옥 - 쭈으웁 - 쭈웁 -
혜지는 입에 확실히 붙은 인사를 올리고는 야릇한 신음소리와 함께 혀를 놀렸다.
한 손으로는 기둥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불알을 주무른다.
그러면서도 방금의 고민은 그녀의 내면 한 구석에 남아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너무 기분 좋다... 사랑해."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일까 하는 고민.
의외로 그 고민의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현우의 사랑한다는 말에 한순간 그녀에게 찾아온 고민은 자취를 감췄다.
정답은 간단했다.
오빠를 사랑하니까. 그래,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몹시도 사랑하기에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오빠의 오줌을 받아마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오줌을 개처럼 핥아먹는 것.
그 모든 것들은 오빠와 자신만의 사랑의 형태였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이 있듯, 이또한 사랑이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아주 특별한.
사랑. 짧디 짧은 두 음절의 그 말에 그녀는 21년의 인생을 내던지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몹쓸 사랑이, 그리고 사랑을 이용한 지독한 세뇌가 그녀를 좀먹고 있었다.
바야흐로 침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