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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화 〉붕괴 1일차 (6) (75/87)



〈 75화 〉붕괴 1일차 (6)

현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혜지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주인님이 다시 벌해주시겠다는데 기뻐하지는 못할 망정 미동도 없는 모습이 거슬렸다.


"야. 뭐해? 나 일어난거  보이냐?"


"아..."


"아는 무슨. 정신 차리고 세수나 해. 다시 시작할거니까."


"용서... 해주시는거에요?"


혜지는 감았던 눈을 뜨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뚝. 울지 마. 다시 시작한다고 했지, 용서 한다는 말은 아직 안 했어. 네 성의가 가상해서  번  기회를 준다는거야."

"흐윽...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잘할게요, 주인님."


"감사하면 울지 말고 웃어. 너도 기쁘지? 다시 내 좆물통으로 써준다고 해서?"

현우는 그녀에게 웃음을 강요하며 자신도 씨익 웃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혜지. 바라던 소원이 현실이 되었다는 기쁨에 그 소원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히죽하고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서 끝내자고, 좆물통에서 다시 사람이 되어라고 할 때는 세상을 다 잃은 듯 제발을 외쳐대던 여자가 사람이길 포기하라고 하자 행복해하다니.

지금부터  몸과 마음을 마음껏 착취하고 학대하겠노라는 선언에 오히려 은총이라도 입은 듯 감격을 금치 못한다.


그녀는, 정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깊이 추락해버렸을지도 몰랐다.

"네, 기뻐요... 진짜 기뻐요. 주인님 좆물통  수 있어서... 흑, 진짜 너무 기뻐요."

"그럼 씻고 사용 준비해.  발 뽑을 때까지 가지고 놀아줄 테니까."

"네!"

적나라한 악의가 일렁이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현우.


그녀에게는 가지고 논다는 말조차도 그저 오빠의 취향이 담긴 평범한 말로만 들릴 테니까.


이제와 의문을 느끼기에는 그녀의 정신이 너무 많이 마모되어버렸으니까.

쏴아아 -

혜지는 세면대 위 거울을 힐끔거리다 얼굴에 물을 적셨다.

몰골이 엉망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꼴사나운 눈동자와 핏기가 가셔 푸르딩딩한 입술은 자신이 보기에도 볼품없어 보였다.

오빠는 늘 시각적 자극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못난 얼굴로는 오빠를 만족시킬 수 없으리란 생각에 겁이 났다.


흘러내린 눈물자국과 부어오른 눈가를  물로 식힌 그녀는 조심스레 현우를 불렀다.

"저... 주인님."

"왜?"


"저 틴트좀 가지고 와도 될까요?"


"틴트?"

현우는 그녀가 꺼낸 뜻밖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입술에 좀 바르려고..."

"왜?"


"아... 죄송합니다."

"아니, 뭐라 그러는게 아니고, 갑자기 입술은 왜? 말끝 얼버무리지 말고 내가 알아듣게끔 얘기해."

"지금 너무... 못 생겨보여서요. 틴트 바르면 좀 나을 테니까... 그래야... 주인님도 사용할 맛이 날 테고... 어... 그래서요."

그녀에게 재차 이유를 캐묻던 현우는 그녀의 기특한 발상에 마음이 흡족해졌다.

"그러니깐 나보고  더 맛있게 따먹으라고 화장하고 싶다는거지?"

"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갑자기  바른다고 해서 뭔가 했네. 기다려, 내가 가져다줄테니까. 가방에 있지?"

현우는 그녀를 남겨두고 화장실을 나섰다.


자칫 이곳을 벗어나게 했다간 딴생각을 품을 수도 있었으니,   빼기 전까진 화장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금할 생각이었다.

다시 돌아와 그녀에게 붉은 틴트병을 건네는 현우.

그의 반대손은 그녀의 가방에서 찾아낸 또다른 물건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가 틴트를 바르는 데에  눈이 팔린 사이 재빨리 그 물건을 선반 구석에 감췄다.

"씨발년, 따먹힐 준비하는거 보니까 존나 깜찍하네. 바르니까 훨 낫다."

"감사합니다."


"야. 근데 그거 찍어바르면서 또 마음 헤이해지는건 아니야? 틴트좀 바른다고 네가 사람인 줄 착각한다거나 그러는거 아니지?"

현우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어투로 그녀에게 은근히 경고했다.


주도권을 완전히 강탈했으니 그녀의 의식이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잘근잘근 짓밟을 생각이었다.

"아니에요! 절대... 절대로 아니에요! 그냥 주인님 기쁘게 해주려고... 그러려고... 안 헤이해질게요. 믿어주세요."


화들짝 놀라며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 외쳐대는 혜지.

방금까지 헤어나올  없는 절망에 몸부림치는 것을 건져준 탓인지 잘못을 언급하는 뉘앙스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킬 듯 몸을 떨었다.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펄쩍 뛰는 꼴이  우스웠다.


"뭐라 한거 아니야. 혹시라도 그러지 말라고. 음... 그래도 창녀 정도는 좀 괜찮아보이는데? 뭐든 다 해주는 내 전속 창녀. 꼴리잖아."

"아..."

"발가벗고 입술만 빨갛게 칠한게 손님 유혹하는 창녀 같기도 하고.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최근 꽤 자주 들어본 말이었기에, 그리고 스스로를 두고 창녀라고 선언도 해보았기에 놀랄 것은 없었다.

하긴, 오빠를 위해 좆물통도 되어주고 변기통도 되어주기로 했는데 그깟 창녀가 대수인가.

진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도 아니고, 말만 그렇다는 것인데.


"네! 창녀 같아요. 주인님 전용 창녀요"

혜지는 무조건적으로 현우의 매도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처럼 오빠가 자신을 시험 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말도 괜찮아? 이런 말도 이해해 줄 수 있어?' 하는 오빠의 속마음이 귀에 웅웅 들려오는  했다.


"그럼 준비 끝나면 창녀처럼 인사도 해보자. 이름이랑 나이 말하면서 따먹으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자지에 키스하고 인사하던거 기억나지?"

혜지는 천천히 틴트병을 내려두고 몸을 돌렸다. 준비라면 오래 전에 끝나있었다.


그리고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였는지 천장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자지가 보였다.

방금의 대화로 오빠를 기쁘게 했다는 기이한 뿌듯함을 느끼며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걸음, 마지막으로 한 걸음 더.

혜지는 그녀의 주인 앞에서 무릎 꿇으며 미소지었다.


쪽 -

"주인님의 전용 창녀... 어, 21살 정혜지입니다. 개보다 못한 년을... 따먹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좋네. 죽을 것 같은 일 말고는 무엇이든 한다는거, 확실하지?"

"... 네! 시켜만 주시면... 정말 다 할게요."

"믿는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네가 믿어달래서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보는거야."


"...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실망 안 시킬게요."


현우는 잔뜩 엄포를 놓으며 그녀를 더 단단히 옭아맸다. 마치 절대로 실수하면  되는 지상 최대의 임무를 맡기 듯 그녀가 결코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방금의 말들이 그녀의 정신을 좀먹으며 한층 더 궁지로 몰아세울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이로써  한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놓는,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창녀의 완성이었다.


"먼저 좀 맞아야지? 아까 제대로  맞아서 파토난거 아니야. 인정하지?"


"... 네!"

"근데  멍청해서 그냥 맞아서는 안 되겠더라."

쟁반에 올려두었던 검은색 넥타이를 들고 일어서는 현우.


그녀의 자그마한 머리통에 둘둘 두르고  동여맨다면 당장의 안대로 사용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현우는 체벌에 앞서 그녀의 시각을 차단했다.


"보여? 안 보이지?"

"네, 하나도  보여요."

빈틈없이 눈을 가렸다는 생각이 들자 박스테이프를 길게 뜯었다.


찌지직 - 찌익 -


앞을 못 보는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손을 잡고 수건걸이에 가져다대는 현우.

수건을 걸어놓는 길다란 봉에 그녀의 양손을 결박할 생각이었다.

"아까 수갑 샀던거 기억나지? 지금은 수갑이 없으니까 대신 테이프로 묶을거야."

"네..."

혜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침을 삼키며 고분고분히 현우의 인도를 따랐다.


그녀의 가녀린 손목에  바퀴나 테이프가 감기더니 벽에 고정된 봉에 연결 된다.

현우는 절대로 풀리는 일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더해 테이프를 둘렀다.

"흔들어봐. 흔들리나 안 흔들리나 보게."

현우의 지시에 반쯤 만세한 양손을 힘껏 당겨보는 그녀. 벽에 단단히 고정된 수건걸이는 그녀의 양손과 이어진 채 꿈쩍도 않았다.


그야말로 거미줄에 걸린 나비 신세다. 시각마저 상실한 혜지는 불현듯 치과 진료를 받을 때가 떠올랐다.

입만 뚫린 천으로 얼굴을 가려놓고 위잉거리는 드릴이 닿기만을 기다리던 그 순간.


받아야만 하는 치료를 받는 것임에도 얼마나 무서웠던가.

그리고 이번에도 받아야만 하는 벌을 받는 것임에도... 얼마나 무서운가.

그녀는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넥타이 너머로 현우를 떠올리며 손가락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됐네. 지금부터  몸에 매직으로 낙서할테니까 뭐라 적는지 불러주면 듣고 외워. 이따 물어볼거야."


현우는 긴장으로 돌처럼 굳은 그녀에게 당장 몰두할 수 있는 과제를 하나 던져주며 매직을 꺼내들었다.

두 눈과 양손의 자유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당장 외워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일에 무섭도록 몰두하기 마련이다. 남겨진 자극 중에서 유의미한 것은 청각밖에 없었으니까.


쓰윽 - 쓰으윽 -

왼쪽 젖가슴을 지나 오른쪽 젖가슴으로. 그러다 배꼽 위와 보지 둔덕을 거쳐 양 허벅지까지.

현우는  여섯 군데에 그녀가 외워야하는 말을 적어넣으며 소리내 읽어주었다.


혜지는 감각의 상실이 불러오는 공포는 일단 뒷전으로 미룬 채 현우가 불러주는 말을 외우기에 바빴다.


"다 외웠어?"

"아... 죄송해요. 한번씩만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적어준 내용이 꽤 많았던 만큼 한 번 듣고 외우기는 힘들었던 모양.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량을 발휘해주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적어준 말들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었으니까. 그것도 이전의 낙서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먼저 그녀의 왼가슴에 적혀 있는 '오빠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여자친구가 되겠습니다'라는 문장. 그리고 그 반대편에 적힌 '항상 오빠를 기쁘게 하겠습니다'라는 문장.

어찌 보면 연인 간의 평범한 맹세로도 보이는 말이었지만, 당연히 그런 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낙서의 수위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수위를 높여나가더니 오른쪽 허벅지에 이르러선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습니다'로 끝맺고 있었다.


모든건 현우의 계략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구들을 교묘히 섞어 그 경계를 허물어버리려는 계략.

그리고 그 문구들을 그녀 정신의 심층부에까지 욱여넣으려는 계략.

말로는 살가죽이 터질 때까지 채찍질을 해댈 것처럼 굴었지만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만일 그녀를 공포와 폭력으로만 길들이고자 했다면, 만난 첫날 집으로 유인해 감금하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어차피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고아였으니 가둬놓고 때려대면 벌벌 기는 개새끼를 얻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보다  재미를 위해서는 섬세한 조교가 필요했다. 마치 지금의 계략처럼, 그녀의 영혼을 서서히 비가역적으로 침식해갈.

바보같을 만큼 순수하던 여자를 걸레년으로, 또 거기에서 성노예로 망가뜨리는 과정에서 폭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품위를 유지했던 만큼, 가축으로 길들여가는 과정도 일단은 최대한 우아하게 진행시키고 싶었다.

"끝. 규칙은 간단해. 내가 때리면 때리는 부위에 적어준 말을 말하는거야."

현우는 그녀에게 규칙을 이해시키기 위해 왼쪽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짝이라는 소리보다 찰싹이라는 소리가 어울리는 약한 세기로.


찰싹 -


"아... 오빠를... 이해하는? 여자친구가... 되겠습니다?"

찰싹 -

"땡. 오빠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여자친구. 지금처럼 때려주면 외웠던거 말하고, 틀리면 또 맞으면서 외우고 하는거야. 이해했지? 세기는 방금 정도로 살살 때릴 테니까."


"아... 방금... 정도로요?"


혜지는 현우의 뜻밖의 말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상상도 못  끔찍한 벌을 받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고작 이걸로 끝이라니.

느닷없이 오빠라는 말을 허락해주는 것도 그랬고, 체벌의 강도 역시 그녀가 상상했던 것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빠가 화장실을 나서기 전에 말했던 '혼내기도 지친다'는 말.


그 말이 갑자기 떠올라 다시 불안이 엄습했다. 눈과 손을 구속당하며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다른 의미로 겁을 집어먹었다.


"아니에요. 더 세게 때려주셔도 돼요. 아니, 허리띠로 채찍질 해주세요. 있는 힘껏... 제일 세게 때려주셔도 되는데... 진짜 괜찮아요."

"원래는 그럴려고 했었어. 더 심한 말도 적고  심하게 혼내려고 했었는데... 일단은  천천히 가려고. 자기가 배우는게 느린게 같아서."


"죄송해요. 몸으로 배울게요. 맞으면서 배울테니까..."

"쉿! 뭐라 하는거 아니니까 그렇게 놀라지 말고. 그냥 나도 한 발 양보하는게 어떨까 싶어서 이러는거야. 멍청해서 그렇다는데 그걸 가지고 심하게 혼내기도 그렇잖아."

"아..."

혜지는 현우의 따스한 말투와 배려에 작게 탄성을 토했다.

지금 오빠가 불러주는 자기라는 말은 좀전과 달리 달콤하기만 했다.

상황의 종료가 아닌,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기 전에 그녀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들려주는 말이었으니까.


"대신 적어준 말 열심히 외우고 진심을 다해서 말해. 아, 적진 않았는데... 뺨 때리면, 오빠 사랑해라고 말해줄래?"

"네! 그럴게요!"

"아니다. 사랑한다랑 멍멍,  번갈아가면서, 네가 말하고 싶은 걸로. 오케이?"

"네! 사랑한다랑 멍멍..."


현우는 방금 들려준 말을 되뇌이는 그녀의 뺨을 손등으로 툭 건드렸다.


"오빠... 사랑해."

"그렇지. 나도 사랑해. 그럼 시작한다?"


"네!"

혜지는 현우가 짧게나마 들려준 사랑한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힘차게 대답했다.

죽을 짓이 아니면 뭐든 시키겠다던 살떨리는 말들. 역시 그건 오빠의 시험이었다.

그래, 얼마나 착한 오빠인데 그럴 리가 없지. 오빠를 믿는 일은 역시 옳았다.

그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미소를 그려내며 웃었다.


아무런 맥락 없이 대충 던져준 먹이였지만, 공포와 긴장으로 쪼그라든 그녀에게는 마치 생기를 불어넣는 묘약이나 마찬가지.


현우는 언제나 그랬듯 그녀를 극도로 긴장시켰다가 한순간에 이완시켰다.

눈을 가리고 손을 묶으며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너를 위해 한 발 양보한다며 다정스레 굴어준다.


짝 -


"오빠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어, 여자친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는 한동안 외운 것을 검사받고 다시 외우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찰싹거리는 소리를 곁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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