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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붕괴의 서막 (5) (69/87)



〈 69화 〉붕괴의 서막 (5)

내일이나 모레쯤 배송될 물건들을 떠올리다 그녀에게 아예 자신의 집에 얹혀살 것을 제안하는 현우.

그녀의 집에  때마다 각종 성인용품들을 챙겨갈 순 없었으니 그녀를 이곳으로 옮기는 것이 나아보였다.

“아... 그래도... 돼? 계약기간이 아마 이번 달까지일걸. 슬슬 재계약 해야 하나 고민 중이긴 했는데 오빠만 괜찮다면 그렇게 할까?”

“당연히 괜찮지. 월세 주고 거기 살 바에야 여기 와서 나랑 같이 살자.  월세도  받을게.”


현우는 너스레를 떨며 당장 집 주인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재촉했다. 가능하다면 내일 중으로 이사를 끝내고 물건이 배송되기 전에 그녀를 집에 들이고 싶었다.

혜지는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막 열 시를 넘겼으니 전화를 하기에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고, 같이 살자는 오빠의 말에 없던 용기가 샘솟았기 때문이다.

꿈만 같은 집에서 펼쳐지는 오빠와의 동거라니. 마치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것만 같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뚜르르르 – 뚜르르르 – 딸칵 -


[여보세요~]


다행히 신호음이  번 울리지 않아 통화가 연결되었다.

"아! 아주머니, 저 107호 사는 사람인데요. 지금 전화 가능하신가요?"


[107호? 왜, 방에 문제 있어서 그래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제가 이제 방을 빼려고 전화 드렸어요. 계약이 곧 끝나잖아요.”

[아아... 계약. 잠시만 기다려 봐요~]

집 주인은 잠시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여기 있네. 계약서 찾는다고 그랬어요. 107호면... 혜지 학생?]

“네네! 맞아요! 정혜지!”


[어디 보자... 보증금 오백에... 계약이 이번 달까지였네?]

“네! 이제  빼려구요. 짐 미리  테니까 보증금도 미리 돌려받을  있을까요?”

[학생, 그건 안 되지. 계약이 이미 연장 됐는데.]

“네?”


[학생이 잘 모르나보네. 계약이 이미 연장 됐다고. 방 빼려면  달 전에는 미리 말해줘야하는데, 이렇게 늦게 말해주고 갑자기 보증금 돌려달라고 하면 어떡해요.]


혜지는 조금도 예상치 못한 집 주인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계약이 연장됐다니,  무슨 억지 논리란 말인가.


현우도 스피커폰을 통해 대화를 듣고 있었기에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계약 연장하기 싫은데요.”


[아유, 원래 나간다고 미리 말 안하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는거에요.]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요? 제가 그, 동의를  했는데 멋대로 계약 연장한다고 하면 안 되죠. 저 계약 연장  할거니까 보증금 돌려주세요.”


혜지는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급히 할 말을 쏟아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그런 억지에 놀아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을 빼앗길 순 없었다.

[글쎄, 법이 그래요, 법이. 학생이 한 번 찾아봐요. 정 지금 바로 계약 해지 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보증금에서 3개월치 월세는 빼고 돌려줄게요.]


“아니, 그걸 왜 빼요? 아주머니... 자꾸 이러시면  신고할거에요. 제 돈 돌려주세요.”

[신고를 하든 말든 그건 학생 마음이고 난 법대로 하는 거에요. 어쨌든 난 보증금  돌려주니까 알아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줘요.]

뚜 – 뚜 – 뚜 -


단호한 목소리로 혀를 끌끌 차더니 전화를 끊어버리는 집 주인. 혜지는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현우만 쳐다봤다.

“오빠... 아줌마가 보증금 안 돌려준다는데... 어쩌지? 이거 신고해야 해?”

현우도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묘하게 당당함이 넘쳤던 집주인의 말투가 신경쓰여 섣불리 그러지 못했다.


“기다려 봐. 그 사람이 계속 법이 어쩌니 그랬잖아. 내가   찾아볼게.”

현우는 일단 혜지를 진정시키고 휴대폰으로 ‘부동산 계약 연장’, ‘임대 계약 연장’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집 주인의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는 법적 근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기 두  전까지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아니하면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제1항.


그리고 이미 연장된 계약의 해지는 해지 의사를 통지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제6조의2 제2항.

집주인이 말하는 법은 이 두 조항을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3개월  월세를 보증금에서 제하고 돌려준다는 말도 계약 해지가 3개월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조항에 근거한 것으로 보였다.

“오빠... 이러면 그 사람 말이 맞는거 아니야?”

“하... 그러게. 나도 이런 법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냥 개소리라 생각했는데...”

“어떡해... 어떡하지... 보증금 다 돌려받아야 하는데...”


현우는 초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혜지를 구경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건 없는 사회 초년생의 보증금을 합법적으로 갈취할 수 있다니, 집 주인의 놀라운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기다렸다는 듯 법을 들먹이는걸 보면 이런 짓이 처음도 아닌 듯 했다.


"오빠... 나 어떡해... 내가 그 돈 어떻게 모았는데..."


그런 법이 있을 리가 없다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던 혜지는 떡하니 존재하는 법조항을 보고 평정을 잃었다.


순식간에 치솟는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백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고시원을 전전하다 간신히 계약한 첫 원룸. 500만원의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몇 달간 먹지도, 입지도 않았다.

그런 고생 끝에 마련한  같은 보증금을 계약 연장이라는 이상한 법에 걸려 떼먹히게 생겼으니 스스로의 무지함에 분통이 터졌다.


집 주인이 보증금에서 가져가겠다는 삼 개월의 월세를 합치면 할머니가 남겨주신 돈보다도 많다. 무엇보다 그 돈이면... 오빠에게 근사한 선물을 사주고도 남을 돈이다.


그런 소중한 돈을 보증금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집주인에게 고스란히 바치게 생겼으니 속이 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거기 일 년  살면서 월세 계속 내는 것보다 지금  빼는게 낫지 않을까. 여기로 옮기면 앞으로 월세는  나갈 테니까.”

“그래도... 흑... 그 아줌마가 보증금 돌려받고 싶으면 살지도 않는 집에 월세를 내라잖아.”

“법이 그렇다는데 줘야지, 어쩌겠어.”

“어떻게 그래.  진짜 그 돈 모은다고 죽도록 고생했단 말이야... 그 돈이면 흑, 오빠랑 얼마나 많은걸  수 있는데...  진짜 바보 똥멍청이다. 미리미리 알아볼 걸...”

현우는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는 혜지를 토닥여주다가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씨익하고 웃었다.

예정에 없던 이벤트라 해도 어쨌든 간에 그녀를 위로해주고 마음의 빚을 더할 기회가 하나 더 생겼으니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미 매달아놓은 빚만 해도 그녀의 영혼이 휘청일 정도의 무게이긴 했지만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녀의 침몰이 가속화 될테니 말이다.

“자기가 슬퍼하니까 나까지 마음이 아프잖아. 울지마, 자기야. 내가 도와줄게. 난 자기가 이런 일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흑... 안 울려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나. 집 주인 아줌마, 흑... 진짜 못 됐어... 나 월세도 흐윽... 한 번도 안 밀렸는데... 집도 진짜 깨끗하게 썼는데...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지?  혼자만 너무 바보 같아서 속상하고... 너무 슬퍼. 


“그러게. 왜 이렇게 자기를 울리는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 후우... 휴대폰 나한테 줘볼래? 내가 해결해줄게.   번 믿어봐.”

울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건네받은 현우는 최근 통화기록을 뒤져 곧바로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방금 전화한 107호 정혜지 남자친구 되는 사람인데요.”


[아니, 보증금  돌려주는건 안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이 왜 자꾸 전화한대.]

“나참. 자꾸는 뭐가 자꾸에요. 이제 겨우  번째거든요? 그리고 그 말 하려고 전화 드린거 아니니까 일단 듣기나 하세요.”


[허이구, 아까 여학생도 그렇고 학생도 그렇고 어쩜 말하는게 하나 같이... 학생은 부모님도 없어요?]


“다행히 그쪽처럼 순진한 학생 털어먹고도 큰소리 치는 뻔뻔한 부모는 없네요. 잡소리는 그만 하시고 계좌 번호나 불러봐요.”


[... 계좌? 계좌는 뭣하러?]

“3개월 월세에 관리비에 청소비까지 넉넉히 보내주면 보증금 오백 지금 바로 돌려줄 수 있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짐은 이번  중으로 바로 뺄게요.”


“오빠!”

“쉿. 내가 네  한 푼도 남김 없이 다 찾아줄게. 그러니까 울지 마.”


현우는 자신을 말리는 그녀를 떼어내며 방금의 연기를 마저 이어갔다.

지금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은 여자친구의 눈물을 보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사랑에 빠진 남자.


네가 우는 모습을 볼 바에야 대신 돈을 내겠노라 하는 남자의 모습은 비합리적이면서도 그만큼 낭만적이었으니, 이또한 그녀의 종속을 부추길 대접 중 하나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현우는 집 주인이 순순히 불러주는 계좌에  달치 월세와 세 달치 관리비, 그리고 청소비를 합쳐 이백 만원을 보내고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돈은 넉넉히 보냈으니까 확인해보고 혜지 계좌로 바로 보증금 보내주세요. 이제 와서 딴소리 하지 말고 깔끔하게 끝내죠, 얼른.”

[학생 근데, 짐은 이번 주 중으로 빼는거 확실해요?]

“하... 혹시라도 짐 안 빼면 보내준 청소비로 업체 불러서  정리하시면 되잖아요. 짐은 알아서 빼줄 테니까 보증금부터 보내달라고요.”


[흐음...]


“일 복잡하게 만들지말고 좋게 좋게 갑시다, 예? 그러기로 해서 방금 이백 만원이나 보내드린거 아닙니까. 돈 받아놓고 이러시면 곤란하죠.”


현우는 간신히 화를 눌러 참는다는 느낌으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백 만원으로 즐기는 정의의 사도 놀이에 심취한 나머지 그도 조금은 신이 났다.

자신의 잔고에서 이백 만원은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낸 것에 지나지 않는 금액. 게다가 우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를 테니 결국 퍼낸 티도 남지 않았다.


분명 그런 하찮은 돈일진대.


크게 감동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 덕택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연기에 몰입했다.


혜지는 눈물로 촉촉이 젖은 눈을 작게 깜빡이며 현우의 품에 꼬옥 안겨 있었다.

[알겠어요. 지금  보낼 테니까, 대신 짐은 꼭 빼요. 안 그러면 다음 주에 다 버릴 거에요.]

현우는 대답 대신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들었지? 집 주인이  보낸대.”

“아니, 오빠. 왜 그랬어... 오늘 나 하나 때문에... 돈을 대체 얼마나 쓰는거야.”

“네가 울잖아.”

현우는 혜지의 눈가에 번져 있는 눈물 자국을 쓰윽 닦아주며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렸다.


순식간에 이백을 태웠으니 그래도 본전은 뽑아야 할 것 아닌가. 이왕 컨셉을 잡은 김에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이걸로 자기가 다시 웃으면 그걸로 됐어. 돈 이백보다 자기가 훨씬 더 소중하니까. 혼자 슬퍼하고 혼자 괴로워하고 그러지 말아주라. 이젠 내가 옆에 있잖아. 내가 도울 수 있는건 도울게. 내 여자한테 쓰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깝다는 말, 진짜 진심이야.”


“흑... 오빠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거야. 나는... 오빠한테 해주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맨날 받기만 하고... 그런데도 오빠는... 오빠는...”

혜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며 몸을 떨었다.


생애 처음 받아보는 커다란 호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우면서도 두려웠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는 결국 상대를 지치게 할 테고, 그러한 비정상적인 관계는 언제 끝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오빠가 결국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무엇이든 주어야 했다.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모두 오빠에게 바쳐야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매달린 빚의 추가 그녀의 영혼을 무섭도록 짓뭉갰다.


“왜긴 왜야. 혜지 네가 내 운명의 짝이라고 믿으니까 그러지. 자기는  절대 배신 안 한다며. 나 안 버리고 평생  옆에 있어주겠다며. 난 그걸로 됐어. 그게 내가 자기한테 바라는 전부야.”

“그거는... 사랑하면 당연히 그래야하는 거잖아.”


“음...  살면서 그 당연한 것을  번도 받아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큰  안 바라. 날 이해해줄 수 있는, 날 사랑해줄 수 있는 내 사람  명만 있으면 돼.”


현우는 말이 이어질수록 조금씩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노예를 쳐다봤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강박증적인 부채 의식에 이만큼의 장작을 쏟아붓고 불을 붙이면 그 불꽃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비록 장작값으로 하룻밤 사이에 수백 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지금부턴 한 번 붙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녀의 인생이 잿더미로 화해가는 불놀이를 즐기면 된다.

“그러니까... 그만 울고 다시 예쁘게 웃어줘, 여보. 내가 정말 사랑해.”


“흐윽... 오빠... 나도 사랑해. 절대로 흑, 오빠 배신 안 할거야. 내가... 평생 오빠꺼 할게. 흐읍. 진짜 오빠가 원하는건 뭐든 다 들어줄  있어. 뭐가 됐든 간에, 아무리 아프고 힘든거라도 다 해줄 수 있어.”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제대로 불이 붙은 장작은 벌써부터 거센 불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현우는 흐느낌을 눌러참으며 맹세의 말을 쏟아내는 혜지를 쓰다듬었다.


가진  없는 여자를 농락하기는 이렇게나 쉬운 일이다.


천 만원도 안 되는 돈에 감읍해서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길 자처하는 여자라니, 돈이 참 야속했다. 아니, 빈곤한 그녀가 세상의 전부라 믿는 사랑이 참 야속했다.

“그래, 그거면 됐어. 나 배신 안 하고, 나 이해해주고.”


현우는 그녀를 토닥여주며 입가의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고작 오백 남짓한 돈을 쓰고 쓸만한 성노예를 장만하였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해달라고, 지금 설마 나를 배신하는거냐고 몰아붙이면 앞으로 그녀를 어디까지 길들일 수 있을까.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천박하게 스스로를 가꾸고 온갖 아양을 떨어대는 자신만의 창녀.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지 입히고, 원하는 서비스라면 뭐든지 교육시키며, 내킬 때마다 마음대로 쑤셔박고 채찍질한다.


그게 질리면 목에는 목줄을 채우고 후장에는 꼬리를 박아넣은 뒤 정액만 받아먹는 애완동물로 길러보는 것도 괜찮아보였다.

머지 않을 미래를 떠올려보는 현우의 물건이 터질  부풀어올랐다. 그것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조만간 이루어질 현실임을 직감하고 있었기에 흥분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사회가 맞닿은 연결 고리를 방금도 하나 지워냈지 않은가. 이제 그녀의 직장마저 지워내면 혜지가 사회에 머무르며 남겼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

게다가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직장에서의 따돌림도 점점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니 그또한 시간 문제일 터.

아무런 찾아주는 이 없는 여자를 사실상 자신의 집에 감금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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