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붕괴의 서막 (4) (68/87)



〈 68화 〉붕괴의 서막 (4)

1.

현우가 그녀에게 베푼 '융숭한 대접'은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테이블 위 온갖 진미들의 향연은 혜지의 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적셨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어우러진 현우의 사랑고백은 로맨틱한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특히나 혜지의 목덜미에는 생전 가져본 적 없던 수백 만원짜리 금붙이까지 반짝이고 있었으니, 그녀의 충성심을 고양시키기에는 차고 넘치는 한 끼 식사였다.

그리고 현우가 베푼 대접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혜지의 손에 들린 여성의류 브랜드의 쇼핑백.


내일도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흉을 볼 것이라 걱정하는 그녀에게 옷도 선물해주었다.

그녀의 자취방을 들러 옷을 챙기니 마니 하기보다 대충  벌 사주고 걱정을 잠재우는게 덜 귀찮았으니까.


그탓인지 지하철 역을 올라와서 집으로 향해가는 혜지의 발걸음이 몹시도 경쾌했다.

하루 사이에 상처가 호전되기라도 한 모양인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현우의 팔뚝에 뺨을 비벼온다.


"자기 이제... 그, 찢어진 곳은 안 아파?"

"아, 응! 낮까지는 계속 아팠는데 오빠가 준 약 먹어서 그런지 지금은 크게 아프진 않아."


"그래도 집 가면 내가 사둔  있으니까 씻고 그거 바르자."


"응? 무슨 약?"


"항문에 바르는 치질약. 그건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팔더라고. 혹시 몰라서 나오는 길에 사놓고 나왔거든. 상처 덧나면 안 되니까."

"헐, 대박. 그런 생각은 또 어떻게 했대. 고마워!"

현우는 품에 깊숙이 안겨오는 그녀를 받아주다가 허리에 두른 손을 위로 뻗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역 근처를 벗어나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는 골목길에는 사람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자기 가슴 처음 만져보는  같은데? 이대로 계속 만지면서 걸어도 되지?"

"만질거면... 옷 속에 넣어서 만져, 오빠. 사람도  보이니까."

혜지는 현우에게 더욱 몸을 붙여오며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어제도 영화를 보고 나오며 겪은 일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우가 기쁜  웃는 모습을 힐끗거리며 그녀도 배시시 웃을 뿐이다.

"좋네. 역시 내 여자가 최고야."

현우는 말캉하고 따스한 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다가 서서히 일어서는 그녀의 젖꼭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돌돌 굴렸다.

부드러운 젖가슴의 감촉과 대비되는 딱딱한 돌기는 제법 만지는 재미가 있었다.

"흐읏..."


특히 그녀가 지금처럼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흠칫거려준다면 더욱 그랬다.

원래부터 민감한 여자인데다가 그녀의 젖꼭지를 애무하는 방법이라면 손에 익을 대로 익은 현우였기에 그녀의 신음을 이끌어내기는 쉬웠다.

"하으응... 오빠, 간지러워. 찌릿찌릿해."

"좋아?"


"... 응, 좋아."


"나도 좋아. 내 여자가 길거리에서 젖꼭지 빨딱 세우고 신음소리도 내줄  아는 야한 여자라서."

현우는 어제 들렸던 편의점을 지나치며 그녀를 칭찬했다.


지난 밤의 경험 덕분인지, 아니면 오늘의 선물 덕분인지는 몰라도 손길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가 한층 더 고분고분해졌다.

어제는 화들짝 놀라며 숨소리만 내던 여자가 작게나마 신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신음소리는 현우에게 한 발 더 진도를 나가도 좋다는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음... 자기야."

"응?"

"앞으로는 내가 만지고 싶으면 자기한테 안 묻고 그냥 만져도 될까? 아, 물론 나랑 자기 둘만 있을 때만."


"아... 음... 밖에서 말이지?"

"응, 밖에서. 나는 그랬으면 싶은데, 자기가 싫다고 하면 안 그러고."

그녀를 주무르기 전에 매번 허락을 구하기는 귀찮았으니 새로운 규칙을 하나 더 주입시킬 속셈이었다.

성욕이 동할 때마다 마음껏 주물럭거려도 군소리 없이 몸을 내어주는 여자. 절대로 주인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는 암캐 같은 여자.


현우는 그녀에게 그런 여자가 되어 달라 부탁하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실컷 얻어먹은 그녀가 싫다고 말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겠지만 일단은 그녀의 선택에 맡긴다는 연출이 중요했다.

그래야 훗날 트러블이 있더라도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하고 마음껏 타박할 수 있었으니까.

"쓰으읍... 오빠가 그러고 싶으면... 음... 까짓거, 우리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둘만 있을 때 만이야!"


그리고 혜지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현우의 연출에 따랐다.

하긴, 시식 코너에서 음식  점만 주워먹더라도 빈 손으로 발길을 돌리기가 찝찝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일진대, 한 끼에 이십 만원짜리 밥을 쳐먹여 놓았으니 안그래도 우유부단한 그녀가 지금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현우는 앞으로도 그녀를 구워삶을 '이해'라는 키워드를 들먹이며 거침없이 손을 스커트 속으로 밀어넣었다.


"흐읏... 오빠!"

그녀는 갑작스레 엉덩이를  움켜쥐는 손길에 놀랐는지 조금 큰 목소리로 현우를 부른다. 그러나 손길을 만류할 생각은 없나본지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뒤돌아봤는데 뒤에도 아무도 없더라고. 우리 둘뿐이야. 괜찮지?"


현우는 그녀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커트 속에서 손을 놀리며 되물었다.

그녀를 잠식시켜나가는 메커니즘은 항상 동일했다.

적당히 동의를 얻어냈다 싶으면 일단 저지른다. 혹여 그녀가 화를 내면 사과하며 물러나고, 괜찮다고 하면 역시 내 여자라며 칭찬해준다.


이번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응, 괜찮긴 한데..."


"근데  갑자기 소리 질렀어. 사람 당황스럽게.  깜짝 놀랐잖아."

"아... 미안해. 거기도 만질 줄은 몰라서... 나도 놀라서 그랬어."

"에이, 내가 언제 가슴만 만진댔나. 그냥 만져도 되냐고 물었지. 여튼 괜찮다는거지?"


"아, 응응! 대신 치마 안 들리게 조심해줘."

현우는 그녀에게서 사과의 말까지 받아내고 나서야 환히 웃으며 말랑한 살덩이가 전해주는 촉감을 즐겼다.

물론 그녀의 기특한 복종심을 한 번 더 칭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자기가 최고라니까. 이런게 행복이지. 맛있는 밥도 먹고, 내가 사랑하는 자기도  옆에 있고."


그렇게 살랑거리는 치마 속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희롱하며 걸었더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띠띠띠띠띠띠 - 띠리릭 -

어제에 이어  다시 그녀를 삼키는 두꺼운 유리문.

결코 토해낼 수 없는 과분한 사치들이 그녀의 턱 밑까지 들어찼음은 확실했으니, 이제부턴 그녀가 부여받은 사명에 매진시키는 일만 남았다.


그녀를 임무에 복귀시킬 차례다.



2.


현우는 약국에서 사두었던 치질 연고를 깨끗이 씻고 나온 그녀의 항문에 발라주며 한 번  애정을 연기했다.


아직 상처도 아물지 않은 후장을 오늘 다시 쑤신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훨씬 유익하고 재밌는 일이 있었으니까. 가령, 성인용품 쇼핑을 한다든지 하는 일 같은.


"음... 자기는 갈라진게 좋아, 승마용이 좋아?"


"나는... 갈라진 거? 승마용은 시커먼 색이라서... 갈라진게 색깔이 더 예뻐보여."

한없이 나긋나긋한 어조로 오고가는 평온한 대화였지만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휴대폰 화면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끝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죽 채찍과 파리채처럼 끝에만 가죽 패드가 달린 승마용 채찍.

모두 그녀를 범하는 데에 사용할 끔찍한 체벌도구였지만 체벌의 당사자가  혜지는 자신을 후려칠 채찍을 고르는 일에 일조하며 옅게 웃었다.

"음... 그래? 난 승마용도 좋아보이는데. 에이, 그냥   사야겠다."


현우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장 결제버튼을 누르고 옆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

"좀 재밌지 않아? 인터넷에서  쇼핑하는거랑 비슷하지?"

"응, 그러게. 리뷰도 진짜 많고. 여기 사이트 짱 크다."


혜지는 레스토랑에 이어 자신이 새롭게 접하는 또다른 세상에 진심 어린 감탄을 토해냈다.


현우가 보여주는 기기묘묘한 기구들은 성인용품이라는 것을 말로만 들어본 그녀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물론 그녀가 그 자극들을 거부하지 않고 흠뻑 젖어들게 된 것은 현우의 사전 작업 덕분이었지만.


그는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일부러 혜지를 건드리지 않고 잠시 템포를 늦추었다.

자지를 빨아준다느니 하는 그녀의 뻔한 제안을 오늘은 그냥 쉬자라는 말로 어물쩍 얼버무리며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하는 그녀의 애를 태웠다.

어차피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밖에 없는 여자였으니,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는 일은 무척이나 쉬웠다.

그렇게 자신도 오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며 징징거리는 혜지를 부드럽게 외면하길 한참.

결국 혜지의 조바심이 무르익다 못해 불안감으로 번지는 수준이 되어서야 지나가는 말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정 그러면 성인용품을 같이 둘러보는건 어떠냐고.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들이 쓰는걸 보면서 자신도 한번쯤 써봤으면 싶었다고.


안그래도 안달이 난 그녀에게 당장  수 있는 쉬운 일을 제시하였으니, 그녀의 의욕이 불타올랐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그녀를 길들일 조교 도구를 그녀의 손으로 직접 고르게 하는 정신 나간 짓거리도 큰 마찰 없이 이뤄낼  있었다.


"몇 개 사지도 않은  같은데  만원이네. 아, 이것도 내가 사고 싶어서 사는 거니깐 자기는  낼 필요 없어."

"헐, 백 만원? 오빠 오늘... 돈 너무 많이 쓰는거 아니야?"


"괜찮아. 자기는 물건 오면 그냥 즐기기만 해주라. 그래줄거지?"


"응! 당연하지! 우리 오빠 로망이라는데 헤헤... 난 다 이해해줄 수 있어.  남친! 내 미래... 남편!"


혜지는 수줍게 남편이란 말을 입에 올리며 볼에 입을 맞춰왔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이해를 언급했지만 현우가 주문한 물건들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후장을 또 하나의 성기로 만들어줄 각종 애널 용품들.


핑크색 젤리 같은 실리콘 애널비즈도 있었고 반짝이는 큐빅 보석이 달린 애널플러그도 있었다.


일부러 아기자기하게 생긴 것들부터 보여주며 그녀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려는 현우의 의도가 반영된 탓이었다.

그렇게 귀여운 외형의 제품으로 스타트를 끊은 다음에는 SM용품으로 탭을 옮겨 점점 수위를 올려나갔다.


내 여자가 이런걸 해주면 기쁠 것 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며 마치 탕 속에서 개구리를 익혀나가듯 온도를 높였다.

처음에는 수갑과 족갑을 비롯한 각종 구속도구들을 하나둘 장바구니에 담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선 그녀의 몸에 멍자국을 새겨줄 채찍까지 그녀의 손으로 직접 고르게 했으니 나쁘지 않은 온도 조절이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역시 자기밖에 없다니까."

"...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남들이 이런거 쓰는거 보면서 부러워만 했었는데..."


현우는 말끝을 흐리며 그녀에게 베개로 내어주던 오른팔을 끌어당겼다.

의존성 인격장애를 다루는 핵심 키워드는 믿음이라고 했던가.

그녀로 하여금 성고문에 필요한 도구들을 손수 고르도록 하는 일은 비록 재밌기는 했었지만 그녀의 믿음에 미세한 금이 생겼을지도 몰랐기에 조금 달래줄 생각이었다.

"나도 내 여자에게 한  써보고 싶다고 줄곧 상상했었거든. 자기 덕분에  로망이 현실이 되네. 고마워. 자기밖에 없다, 정말."


그녀의 무의식에 남아있을 혹시 모를 불안을 씻어낼 말들이 그녀의 귓가로 흘러들어갔다. 현우는 그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시선을 돌릴 말들로 아예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버린다.

"그러고보니 자기도 레스토랑 리뷰 영상들 유튜브에서 보면서 부러웠었다며. 오늘 직접 겪어본 인생 첫 레스토랑은 어땠어? 괜찮았어?"

"아... 완전! 스테이크도 대박이었고, 음, 마지막에 아이스크림도 진짜 좋았어. 베스킨라빈스보다 훨씬 맛있더라!"


현우가 꺼내는 레스토랑 이야기에 두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는 혜지.


그녀의 채 가시지 않은 흥분과 만족이 들뜬 목소리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역시, 오늘의 융숭한 대접은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듯 보였다.


"자기가 좋았다니까 나도 좋네. 자기 첫 레스토랑 경험을 내가 함께 했다는 것도 좋고. 행복한 하루였다, 그치?"

"응. 진짜... 너무 행복한 하루였어. 이만큼 행복해도 되나 겁이 날 정도로."

혜지는 목에 매인 목걸이를 다시 만지작거리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행복감을 만끽했다.

행복이라는 것을 오감에 빗대어 표현한다면 오늘 하루 같지 않을까.


자신을 바라보던 오빠의 다정한 눈빛과 귓가에 들려오던 잔잔한 클래식 음악. 입과 코를 간질이던 화이트 와인의 달콤함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도 손가락 사이에서 달그락거리는 목걸이. 서늘한 감촉의 금속을 매만질수록 그녀의 마음은 따뜻해져만 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져보는 값진 물건이었다. 단지 비싼 명품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속에 담긴 오빠의 사랑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겁이 날 건 또 뭐야. 내가 그랬잖아. 자기만 배신 안 하면, 나도 절대 변하지 않겠다고. 자기 나 배신할 거야? 아니잖아. 그러면 겁낼게  있어.”

“맞아.  죽어도 오빠 배신 안 하지.”

“자기야. 그럼... 우리 이참에 그냥 집을 합쳐버릴까? 자기 거기 계약기간 거의 끝나간다고 그랬었지?”


내일이나 모레쯤 배송될 물건들을 떠올리다 그녀에게 아예 자신의 집에 얹혀살 것을 제안하는 현우.


그녀의 집에 갈 때마다 각종 성인용품들을 챙겨갈 순 없었으니 그녀를 이곳으로 옮기는 것이 나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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