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심야 조교 (3) (58/87)



〈 58화 〉심야 조교 (3)

혜지는 멍한 시선으로 바닥을 쳐다보며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녀의 입은 아까부터 똑같은 말을 앵무새마냥 되풀이하고 있었다.

"좆물통 주제에 인간인  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의 여자친구처럼 굴어서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입을 여는 데에 큰 결심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계적으로 사죄의 말을 반복했다. 아무리 꺼내기 힘든 말이라도 한두 번 말하다보면 입에 붙는 법이다.


"좆물통 주제에……."


그렇다고 자신이 내뱉는 말에 담긴 의미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점차 말이 익숙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가래가 낀 듯한 찝찝함이 목구멍을 맴돈다.

이건 단지 말일 뿐이라고, 오빠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찝찝함을 애써 무시하는 혜지.

오빠의 첫 여자친구도 자신이고, 오빠에게 처음 장미를 받은 여자도, 오빠의 집에 처음 발을 들인 여자도 자신이다.

그러니 여기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자신을 향한 오빠의 사랑을 의심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혜지는 차마 그럴 수는 없었기에 더 아무렇지 않은  힘껏 외쳐댔다.

"… 여자친구처럼 굴어서 죄송합니다."

"자기야, 이제 그만해도 돼."


쉬지 않고 계속 말하느라 그녀의 입 안이 점점 말라갈 무렵. 여느 때와 같은 따스한 목소리가 바닥에 엎드린 그녀를 감쌌다.


고개를 바닥에 묻고 있었기에 오빠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귓가에 들려온 자기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자신이 오빠의 여자친구임을 상기시켜주는  말에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무릎 꿇고 앉아볼래?"

그만하라는 명령 이후에 다른 명령이 없었기에 몸을 계속 웅크리고 있다가 앉으라는 명령이 있고나서야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몸을 일으키고 마주한 오빠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가득하다. 특히나 터질듯 솟아오른 바지 앞섶이 오빠가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여실히 전해주었다.

"고마워.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었을 텐데 시키는 대로 해줘서."


평상시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와 포근한 목소리가 몸을 일으킨 그녀를 반겼다. 뺨을 쓰다듬어주는 손길도 변함없이 따뜻했다.


좀전의 상황만 떼놓고 보면 모든 것이 데이트를 즐길 때와 별 차이가 없는 상황.

혜지의 희미했던 미소가 조금은 밝아졌다. 오빠는 여전히 오빠고, 자신은 오빠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복잡했던 심경을 진정시켜 나간다.

"아니에요. 기분... 안 나빴어요. 제가 더 잘할게요!"


"감동인걸? 이것보다 더 잘하면 얼마나 더 잘하려고 그래. 기대되는데?"

현우는 그녀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굳어있는 그녀를 이완시키려고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잔뜩 경직되어 있는 그녀의 어깨는 뻣뻣함이 풀릴 줄을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도 마찬가지. 뭔가 할 말이 있는듯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오는 것이 가까스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사랑하는 오빠의 관심을 갈구하는 눈치다.


"흐음..."

현우는 턱을 매만지며 짧게 고민했다.

하긴, 달콤한 데이트를 뒤로 하고 여자친구처럼 굴어서 죄송하다고 빌빌거리려면 마음이 찢어질 법도 하지.

아무래도, 여기서 한 번쯤 달래고 넘어가줄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녀에게 장단을 맞춰주며 누적된 짜증 탓에 조금 과격한 명령을 내린 감도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


"자기야, 나 똑바로 봐봐."

지금은 한 발짝 물러나 주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자 어떻게 행동할지가 순식간에 결정됐다.

물론 지금의 만행을 사과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괜한 사과로 약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칭찬하고 격려함으로써 빼도박도 못하게 할 속셈이다.

이제 이 정도의 일쯤이야 사과 없이도 충분히 무마시킬 수 있었고, 기껏 빼놓은 진도를 헛고생으로 만들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자기가 지금 어떤 걱정하는지 알아. 왜 그런 걱정하는지도 이해하고."

우선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너그러운 모습을 내비치며 그녀가 기대올 구석부터 내어준다.

그녀가 차마 흔들릴 엄두도 내지 못하게끔 '부드럽게' 윽박지르기 전에 지금의 긴장부터 어루만져주어야 했다.


"근데 자기니까 이런거 시킨거야. 그만큼 믿으니까. 다른 여자랑 다르게 자기는 분명 날 이해해줄 테니까. 내 생각이 틀린거야? 그런건 아니지?"


"아... 아니에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다 속내를 까발려진 아이처럼 그녀의 마음이 한순간 움츠러들었다. 혜지는 작게 침음을 흘리더니 허둥지둥 현우의 말을 부정했다.


자신을 믿기에 부탁했다는 말. 자신을 그만큼 특별히 여겨주는 오빠 앞에서 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닌 것 치고는 지금도 이렇게 굳어있잖아. 우리 자기 많이 힘들어?"

현우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마사지하듯 주물러주며 싱긋 웃어주었다.

낯선 상황에 의문을 느끼고 불안에 떤다면, 그녀가 간절히 원할 다정한 모습을 내비춰주면 될 뿐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자기가 평범한 여자들처럼 나보고 미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거나 화냈으면  진짜 엄청 마음 아팠을  같거든. 역시 자기가 최고야."


그러면서 그녀가 절대로 흔들리지 못하게끔 단단히 타일렀다. 혹시라도 자신의 지시에 반발한다면 크게 상처받을 것이란 사실을 에둘러 말했다.

갈등과 불화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녀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외통수다.

스스로를 비하하는 불안보다 오빠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큰 이상 고분고분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아, 굳이 대답은 안 해도 되니까 듣기만 해.  자기가 날 어느 만큼이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은데... 자기도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자길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믿고 있는지.”


현우는 입술을 오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그녀의 마음 속 삼각형을 둥글게 깎아나가는 기분이다.


악랄한 비하가 마음을 쿡쿡 찌를 때마다 지금처럼 다독여주다보면 뾰족한 모서리도 마모되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터.

그때까진, 삼각형이 헤집어 놓은 상처 위에 신뢰를 끼얹어준다.


너를 한없이 믿는다는 눈빛과 목소리로 그녀의 불안을 한순간에 흩어버렸다.

"이리로 와. 한 번 안아줄게. 잘 하라고 응원해주는거니까 잘 할 수 있지?"

현우는 양 팔을 넓게 벌리고 알몸의 그녀를 품에 안았다.

따끈한 체온에 더해 부드러운 젖가슴이 옷 위로 맞닿았다.


"좀 괜찮아졌어?  혼자 계속 말하려니 좀 뻘줌하기도 하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났으니까 이젠 말해도 돼."

"아... 음, 진짜진짜 괜찮아졌어요. 사실 좀 기분이 이상하긴 했었는데... 죄송해요. 그냥 말뿐이라고 해도 계속 신경이 쓰여서..."


"으이구, 딱 봐도 그런 것 같더라. 음... 이런 예가 맞을 지는 모르겠는데... 자기 할머니랑 싸운 적 있댔지? 그때 화가 나서 이말 저말 다 해도 그게 정말 자기 진심이었어?“

혜지는 현우가 불쑥 꺼내는 할머니 이야기에 기억을 되짚어나갔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떼쓰고 성내며 할머니에게 화를 냈던 날들.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지만 어린 날의 자신이 가장 많은 상처를 안겼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내뱉었던 가시 돋친 말들이 진심이었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그건 단지, 감정에 북받쳐 내지르는 철없던 투정에 지나지 않았다.

"… 진심 아니었어요."

"그렇지? 그냥 화가 나서 그랬던거지, 진심은 아니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믿고 말하는 건데, 그걸로 진심이니 아니니 의심해버리면 내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어."

현우는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면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어젯밤 할머니를 언급하며 감정에 호소한 것이 꽤 효과가 좋았던 터라 한 번  써먹어본 것이다.


어찌 됐든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잘 전달된 눈치였다.

내가 어떤 말로  매도하든 무조건 받아들여야함을, 나의 진심을 의심하면 서로가 곤란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죄송... 죄송해요. 근데 절대 의심한건 아니었고, 그냥 조금 마음에 걸리는 그런 정도였어요.”

“그럼 나랑 지금 약속해. 첫째,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나쁘게 생각 안하겠다고. 그리고 둘째, 내가 불안하지 않게끔 무슨 말을 하든 맞장구 쳐주겠다고. 내가 계속 자기 눈치 보면서 쩔쩔맬 수는 없잖아.”

현우는 그녀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시선을 맞교환했다. 흔들림 없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무언의 대답을 재촉한다. 지금의 헤프닝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다.

혜지는 눈을 몇차례 깜빡이더니 손을 내밀고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약속... 할게요!”

“뭘? 뭘 약속한다는건지 자기 입으로 다시 말해봐.”

“무슨 말을 하든 나쁘게 생각 안하고, 주인님이 하는 말에  맞장구 칠게요.”


다행히 다짜고짜 손부터 내민건 아닌 모양. 그녀는 방금 말한 약속의 내용을 훌륭히 기억하고 있었다.


육체적 폭력에도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던 여자에게  가지 족쇄가 더 생긴 셈. 그녀를 깎아내리는 말에 반발하는 것은 이제 철저히 금기가 되어버렸다.

"좋아. 그럼 다시 시작할까? 나 아까부터 흥분돼서 미칠 것 같았거든.”

"네, 주인님!"


활짝 웃으며 제법 쾌활히 대답하는 혜지. 눈동자에도 제법 생기가 돌아왔다. 그녀의 원인 모를 근심은 결국 더 큰 복종심으로 치환되고 말았다.

현우는 그녀의 마음 속 불안 요소가 완전히 사그러졌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참아왔던 욕구를 폭발시켰다.

그녀의 정신을 지켜줄 방벽을 모두 허물어버렸기에 더 이상 거리낄게 없었다.

“후우... 그럼... 엎어져서 개보지부터 까봐, 썅년아. 무릎 벌리고 보지도 손으로 활짝 잡고 벌려."

혜지는 대리석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며 무릎을 열어젖혔다. 아래로 뻗은 양손으로 소음순을 잡고 벌린다.

"흐응... 변기년의 좆물통 구경해주세요, 주인님!"


오빠의 다음 명령엔 꼭 그럴듯한 대사를 덧붙이겠노라 잔뜩 벼르고 있었기에 앙앙거리는 콧소리로 아양을 떠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발 아래 드러누운 하얀 여체를 눈에 담는 현우. 가녀린 목덜미와 어깨하며, 쏙 들어간 허리까지. 그녀의 몸이 그려내는 굴곡이 눈을 즐겁게 했다.

특히나 거실의 조명 아래서 핑크빛으로 빛나는 구멍이 무척이나 색정적이다.

“씹구멍 뻐끔뻐끔 거려봐. 똥꼬에 힘줬다 풀었다 하는거 알지?”

“하읏... 네! 이렇게... 하면 될까요, 주인님?”


혜지는 현우의 명령에 따라 괄약근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움찔거리는 항문을 따라 그녀의 질이 숨을 쉬듯 오므라들었다가 벌어진다.


“하여간 걸레년이, 중고보지라 그런지 존나게 벌렁거리네. 똑바로 더 못 다물어?”

현우는 씰룩이는 그녀의 비부를 바라보다 허벅지를 퍽하고 걷어찼다. 그녀의 조임이 쓸만하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여자의 결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흐윽, 걸레년이... 중고보지라서, 죄송합니다. 보지 더 다물게요.”

다행히 테스트는 충분히 합격점. 중고보지라는 비인간적인 매도에도 당황하지 않고 맞장구를 쳐온다.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거기에 동조하기만 해.”

“네, 주인님!”

사랑한다느니, 너를 믿는다느니, 너라면 다를 것이라느니. 입에 발린 뻔한 말들이지만 순진한 그녀를 쥐고 흔들기에는 차고 넘쳤다.


아무리 가혹하게 대하더라도 주인의 기쁨을 위해 순종하는 노예가 만들어졌다.

사랑만으로  정도의 복종심을 피워낸 여자라면 한 번  칭찬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그녀의 사랑을 부채질할수록 덩달아 복종심도 커질 테니까 말이다.


“자기야, 지금부턴 음... 더 과격해질지도 몰라. 그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말해줄게.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현우는 사랑에 사랑으로 답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가를 비틀어올렸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상황과 거리가 먼 것은 틀림 없을 테지.

그녀가 꿈꾸던 사랑은 이미 그 원형을 찾아볼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건, 그녀 본인도 다르지 않아보였다.


현우의 눈앞에는, 운명적 사랑을 꿈꾸던 소녀대신 능욕을 기다리는 비참한 성노예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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