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심야 조교 (2)
다음의 조교를 떠올리는 현우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서렸다.
수 시간의 데이트로 그녀의 정신을 사포질한 덕분일까. 아니면 자신이 보여준 재력 때문일까.
부탁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가 몹시도 매끄럽고 고분고분하다.
질색하던 폭력마저도 쾌락으로 받아들이겠노라 다짐하는 여자라면 더 두고볼 것도 없었다.
"개처럼 네 발로 기어서 나 따라와."
지금껏 해왔던 모든 플레이의 수준을 한 단계 더 격상시킨다. 현우는 쇼파로 걸음을 옮기며 오늘은 더 험하게 굴려봐야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털썩 쇼파에 몸을 뉘이며 고개를 돌리니 바닥을 기어오는 혜지가 보였다.
살랑이는 치맛자락이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리며 바닥에 끌린다. 하늘하늘거리는 천조각이 그녀의 긴 머리만큼이나 여성스러움을 자아낸다.
게다가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마다 출렁이는 젖가슴. 바닥을 향해 늘어진 부드러운 살덩이는 하얀 대리석만큼이나 우윳빛을 뽐내고 있었다.
혜지는 현우의 발 앞까지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말려올라간 치맛단 사이로 그녀의 뽀얀 허벅지가 숨김없이 드러났다.
"일어나서 팬티 무릎까지 내리고 치마 들어올려봐."
그녀가 쭈그러진 치마를 정리하고 다시 앉으려던 찰나. 현우의 명령이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혜지는 쏜살같이 일어나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팬티를 끄집어 내린다. 그녀의 손에 딸려 나오는 팬티가 무릎 근처에 걸렸다.
하얀 팬티와 그 위에 덧붙여진 생리대가 현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생리대를 갈아서인지 핏자국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뭐해, 치마도 들어올리라니깐. 네 보지 까보라고."
혜지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생리대를 들여다보다가 현우의 재촉에 화들짝 놀랐다.
명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팬티를 걷어내렸지만 지금은 생리 중인 상태. 타인에게 평생 보인 적 없던 혼자만의 비밀을 드러낸다는 수치심에 본능적으로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겐 당장의 수치심보다 현우의 명령이 우선이다. 혜지는 솟구치는 수치심을 찍어누르며 스커트를 배꼽까지 들어올렸다.
"와, 자기야. 지금 진짜 말도 안되게 섹시한데? 치마 돌돌 말아서 배꼽도 한 번 나오게 해봐."
현우의 지시에 따라 치맛단을 좀더 접어 손에 움켜쥐는 혜지. 하얀 치맛자락으로 배꼽과 보지 사이만 간신히 가린 채 치부를 훤히 드러냈다.
슬슬 솜털이 자라기 시작하는 매끈한 보지도 제법 볼만했지만, 새하얀 복부 중앙의 앙증맞은 배꼽이 묘하게 남심을 자극한다.
매일같이 따먹을 때는 몰랐지만 데이트로 한 번 리프레쉬한 다음 따먹으려니 잊고 있던 신선한 맛이 되살아나는 기분.
방금까지 커플티를 고르고, 영화를 보며 깔깔거리던 여자가 가슴과 보지를 내보이며 스스로 치마를 걷어올린 모습이 성욕을 돋군다.
이 여자의 일상부터 지극한 비일상까지, 남들은 보지 못하는 모든 면모를 손아귀에 넣었다는 쾌감. 현우는 기이한 정복욕을 만끽하며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가 아까부터 부탁한거 있지? 밋밋하게 굴지 말라고. 행동만 하지말고 말까지 곁들여주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은데,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되도 안한 남자친구 노릇이라면 이미 때려친지 오래였지만, 그녀를 뼛속까지 뽑아먹으려면 일단 말투만큼은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남자친구의 이미지를 고수한다. 잔인한 능욕을 이어가면서도 그녀가 반발한 여지는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여자가 자신의 미소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아는 만큼,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킬 표정으로 그녀를 기만하며 대답을 강요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맞지? 시키는 대로 치마만 들어올리고 입 꾹 닫고 있으면 내가 너무 심한 일을 시킨건가, 그래서 자기가 혹시 화가 난건가 싶어서 흥이 팍 죽어버리잖아. 지금 보지 까라고 말해서 화난건 아니지?"
"절대... 절대 아니에요. 화 안 났어요."
"그럼 꼴리는 말도 해봐. 어떻게 하면 내가 기뻐할까, 어떻게 하면 더 걸레처럼 보일까 생각해보라고. 아, 어제 자기 입으로 창녀라 그랬지?"
"… 네."
현우는 손뼉을 짝하고 치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듯 말했다.
"그럼 창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겠다. 손님을 어떻게든 만족시키려고 하는 서비스직의 마인드로 말이야. 나 완전 꼴리게 해줘. 자기 하면 잘 할 수 있잖아."
현우는 오늘 그녀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죄다 뜯어고쳐줄 생각이었다.
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이 여자에게는 적극성이 부족했으니까. 시키는 대로만 따르던 구질구질한 인생이 몸 속 깊이 밴 탓인지 수동적으로만 구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금은 음, 내가 보지 까보라고 했잖아. 그럼 하다못해 제 보지를 봐주세요나 검사해주세요 같은 말같은건 자기도 떠올릴 수 있을거 아니야? 내가 너무 큰 욕심 내는거야?"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다시 해볼게요."
혜지는 황급히 도리질을 치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길 바랐다.
이번이 세 번째 지적이던가. 자꾸만 잘못을 지적당하는 스스로가 한심할 지경이다.
물론 오빠가 꺼낸 창녀라는 말은 그다지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어제만 해도 창녀라 선언하며 발을 핥아댄 탓에 웬만한 말들에는 무뎌져버린 탓이다.
"그래, 그럼 다시 해봐. 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준다며. 말만으로도 뿅 가게 해주라. 준비 됐어?"
"아, 잠시만요! 5초, 아니 10초만요."
혜지는 고심에 찬 얼굴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오빠를 만족시킨다는 유일무이한 목표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도덕 관념 따위는 허상에 불과했다.
걸어다니는 구멍, 자지 케이스... 그녀의 머릿속에 천박한 말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느낌이 없었다. 뭣보다 아까도 입에 올린 말이었기에 다시 꺼내기에는 부족해보였다.
그러다 떠오른 한 단어. 필사적으로 기억을 뒤진 끝에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말을 끄집어냈다.
"준비됐어요!"
의욕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혜지. 현우는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푹신한 쇼파 깊숙히 몸을 묻고 그녀에게 턱짓했다.
"좋네. 그럼 팬티 올리고 처음부터 다시 해봐."
혜지는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현우의 앞에 기어온 첫 모습 그대로 가슴만 내놓고 차렷 자세로 대기했다.
"준비 끝났지? 그럼... 보지 까봐, 씨발년아."
"네, 주인님."
방금과 달리 팬티를 내리고 치마를 걷어올리는 혜지의 손길에는 조금의 버퍼링도 없었다. 심지어 다리를 마름모 꼴로 벌리더니 허리도 쑥 앞으로 내민다.
처음보다 훨씬 더 천박해진 자세를 보고 있자니 그녀가 쏟아낼 말들이 자못 기대되었다.
"…변기년의 좆물통 검사해주세요, 주인님!"
그리고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평범해보이기도 하는 단어였지만 현우에게는 그 말이 조금 남다르게 들렸다.
평소 좆물이란 말이 낯뜨겁다고 정액이란 말을 더 선호하던 여자가 아닌가. 그런 여자가 스스로의 소중한 생식기를 두고 좆물통이란 말을 갖다붙이다니.
그 말에 담긴 적나라한 천박함이 성욕을 자극했다. 찌르르한 쾌감이 현우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괜찮은데? 커뮤니티에서 본거야?"
"아, 네! 커뮤니티에서 봤어요."
혜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그녀라고 해서 방금의 말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 말을 봤을 때 무척 경악했었다.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한 장의 사진. 그리고 사진 속 여자의 배에 그려진 아래를 향한 화살표와 그 위에 적힌 좆물통이라는 말.
좆물이라는, 교양이나 고상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질 낮은 단어에 통이 붙어 만들어진 세 음절의 합성어는 그녀에게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음경이란 말보다 자지라는 말이 천박하듯, 그리고 음부라는 말보다 보지라는 말이 천박하듯, 좆물은 정액과는 비견할 수 없는 천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통이라는 말까지 붙으니 그 천박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여성기를 쓰레기통처럼 취급하는 몹쓸 말이다. 그리고 그런 몹쓸 말이었기에, 오빠를 만족시킬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흐음... 좋네. 안그래도 자기 내일만 지나면 정말 좆물통 되는거 아니야? 오늘이 약 먹은지 19일째였나, 20일째였나?"
"20일째요."
"그럼 내일이면 딱 3주네. 좆물통... 자기한테 딱 어울리는 말인데? 내일부터 자기 보지는 내가 좆물 싸주면 그거 주워담는 통인거잖아. 난 자지 케이스보다 그 말이 더 마음에 들어. 자기는 어때?"
현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대놓고 조롱했다. 물론 두 눈으로는 그녀의 표정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의 반응에 따라 다음에 내비칠 행보를 결정할 속셈이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인상을 찌푸린다면 농담이 과했노라 사과하며 다독여주면 끝이었고.
"아... 저는 다 좋아요. 근데 주인님이 하는 말 들어보니까 좆물통이 더 야한거 같기도 하고..."
반대로 지금과 같이 병신처럼 헤실거린다면 더 가지고 놀면 될 뿐이었다.
어째,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에 대한 그녀의 브레이크는 이미 망가진 것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어제의 창녀 선언이 결정적이었을까. 오랫동안 지켜온 신념마저 제 손으로 부러뜨렸으니 그녀의 추락을 멈춰세울 그물망은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그래도 현우는 그녀의 정신을 한 번 더 담금질 해댈 말을 꺼냈다.
"자기 근데 그런 말 해놓고 속상하다거나 서운해 하는건 아니지? 말은 말일 뿐이니까, 그치? 자기가 먼저 꺼낸 말이기도 하고. 괜찮은거 맞지?"
"아... 네! 저는 괜찮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리 말일 뿐이라지만 난 이런게 좋거든. 섹스에서 대사가 얼마나 중요한데! 남자는 뭐에 흥분한댔어?"
"시각, 청각, 음... 촉각이요!"
"맞아. 자긴 시각이랑 촉각은 충분한데, 청각이 너무 부족해서 하는 말이야. 내가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자기도 기분 좋은 것처럼, 난 자기가 이런 야한 말 해주는게 좋더라."
현우는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로 그녀의 정신을 섬세히 녹여냈다. 끔찍한 자기비하와 연인 간의 사랑. 결코 공존할 수 없을 두 행위를 교묘히 뒤섞었다.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며 말을 듣고 있는 혜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음의 본론으로 들어가도 상관이 없을 듯 싶었다.
"그리고... 난 내가 자기한테 야한 말 하는 것도 좋아.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도 좋은데, 내가 자기를 깎아내려도 자기가 다 받아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돼?"
자기비하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으니, 이젠 남이 건네는 비하도 당연한 것으로 만들 차례였다. 그것이 아무리 상식 밖의 비하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 네!"
"음... 내가 좀 가볍게 말했나? 섹스하다가 욕하거나 정액변기니 오나홀이니 하는 말장난 말고, 그거보다 더 심하게 해도 정말 안 서운해할 자신 있어?"
현우가 덧붙이는 말에 혜지는 잠시 입술을 오므리더니 고민에 빠져들었다.
때때로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방금 오빠가 말한 것처럼 정액변기나 오나홀이란 말도 들었었다.
하지만 오빠가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그 이상의 무언가를 시켜보고 싶은 눈치.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는 태도가 몹시도 정중하고 조심스러웠기에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주인님 말대로... 말은 말일 뿐이니까, 심하게 말해도 주인님은 어쨌든 저 사랑하는거잖아요. 그럼 제가 다 받아줄 수 있어요."
현우가 여지껏 짜놓은 설계가 치밀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이성은 사랑 앞에서 너무도 무력했다.
자신을 향한 무제한의 비하를 기꺼이 허락한다.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사랑만 있다면 견뎌낼 수 있노라 섣불리 선언한다.
"맞아. 말은 말일 뿐이니까."
현우는 씨익 웃으며 쇼파에 뉘였던 몸을 앞으로 당겼다.
이 정도면 그녀를 가지고 놀 판이 빈틈없이 갖추어졌다.
특히 이번 판을 쥐고 흔들 사랑이라는 조커 카드도 확실히 손 안에 들어왔다.
지금부턴.
그녀가 반발하거나 무너져내린다면 사랑을 들먹인다. 네가 다 받아주기로 했지 않냐고, 혹시 내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고 의심한다.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나를 사랑하는게 맞냐고 그녀를 몰아세운다.
그녀가 여기서 벗어날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옷부터 다 벗고 엎드려, 개같은 년아."
갑작스레 변한 현우의 말투에 흠칫하기도 잠시. 혜지는 치마와 팬티를 한 번에 끌어내리더니 양말도 훌러덩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어떻게 엎드려야 할지를 몰라 현우의 눈치를 살핀다.
"죄송하다고 빌 때처럼 엎드리라고."
현우는 그녀의 정강이를 툭하고 걷어차며 그녀가 취해야할 자세를 알려주었다.
혜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바닥에 이마를 쳐박는다. 봉긋한 젖가슴이 바닥에 닿도록 몸을 웅크린다.
쏙 들어가있는 허리와 그와 대비되는 벌어진 골반이 현우의 눈 아래서 꿈틀거렸다.
"그 상태로 빌어봐. 인간이 아닌 좆물통 주제에 감히 인간인 척 해서 죄송하다고. 잠깐이지만 여자친구처럼 굴어서 죄송하다고 빌어보라고."
현우는 바닥에 엎드린 그녀의 뒷통수에 발을 올리며 온종일 숨겨왔던 이빨을 드러냈다.
저녁 내내 그녀에게 맞춰주느라 번거로웠던 것을 떠올려보면 사죄의 말부터 듣는게 우선이었다.
"뭘 망설여, 자기야? 지금 이건 말일 뿐이라니까. 내가 자기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래, 또 사람 무안해지게."
아무래도 방금의 돌직구가 제법 충격이 큰 모양. 현우는 입가를 비틀어올리며 몇 초 전의 약속을 언급했다.
좆물통이라 외치라는 잔혹한 명령이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혜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그래, 이건 말 뿐인거니까.
혜지는 잠시나마 끊겼던 사고를 다시 이어붙이며 서서히 입을 뗐다.
"죄송..."
발 아래서부터 울려퍼지는 그녀의 갸날픈 목소리. 현우는 그녀를 짓밟던 발을 떼고 다음에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합니다, 주인님. 좆물통 주제에 인간인 척 해서, 여자친구인 척 해서... 제가 잘못했어요."
그녀는 현우가 말한 그대로 자신의 행위에 용서를 구해왔다.
도대체 그녀에게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랑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더니, 이젠 그 사랑을 내려놓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이또한 사랑이라 믿는다.
여자친구가 되기 위해 셀 수 없는 수모를 감내해온 여자에게서 여자친구인 척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이끌어내는 것은 기묘한 성취욕이 있었다.
"잘했어. 내가 여러번 말했었지만, 나는 자기가 인권이니 존엄이니 하는 것을 내려놓을수록 흥분하는 사람이거든. 고마워, 이런 날 이해해줘서."
현우는 겉으로는 그녀의 결단을 칭찬해주면서도 속으로는 그녀에게 조소를 날렸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동물이고, 오늘 하루 그녀가 믿을 수 있는, 그리고 믿고 싶어하는 모습을 성실히 연기해주었지만서도... 기대 이상의 답례를 받은 기분이다.
"괜찮으면 방금 그 말 계속 말해봐.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좆물통 주제에……."
용서를 비는 구슬픈 목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현우는 그 목소리를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비하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일을 순조롭게 마쳤으니, 이젠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는게 정해진 수순일 터.
아직 새벽 3시도 안 된 시간이다. 밤은 길고, 할 일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