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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심야 조교 (1) (56/87)



〈 56화 〉심야 조교 (1)

현우는 멍청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혜지를 쳐다봤다.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다 자신이 웃으니 따라웃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물론 모진 손찌검을 견디지 못한 두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맞으면서 기분 좋다는 말... 뭔가 꼴릿한데?   더 말해주라. 너무 듣기 좋다, 자기야."


"아... 음, 혜지는 뺨 맞으면서 흥분하는 마조년이에요. 방금 주인님이 때려주셔서 발정났어요!"


현우의 칭찬에 뿌듯함이라도 느끼는 모양인지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덩달아 커진 목소리로 스스로를 거침없이 깎아내린다.

그러나 말로만 마조년이라 외쳐대니 무언가 밋밋한 것도 사실. 현우는 그녀의 말에 어울릴 법한 행동을 추가로 주문했다.

"자기야, 이왕이면 젖탱이도 주물럭거리면서 말해봐. 박아달라고 애원할 때처럼 앙앙거리면서.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더 꼴릴 것 같아."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던지는 말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한 여자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요구.

정작  요구를 듣는 혜지는 딱히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두고 창녀라 선언하던 자존감이 고작 이 정도로 튀어오를 리 만무했다.

"하아앙... 주인님... 암캐년, 흣... 젖꼭지 빨딱 섰어요. 주인님한테 뺨 맞고 기분 좋아서... 보지도 젖었어요. 발정난 암캐년 따먹어주세요!"


혜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맨투맨 위로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그러다 한 손을 가랑이 사이로 뻗어 치마 위도 더듬거린다.

잔주름이 들어간 하얀색 테니스 스커트가 그녀의 손을 따라 하늘하늘거렸다.

흡사 자위 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손놀림. 헐떡이는 숨소리와 야릇한 신음소리까지 더해지니 발정났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현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그녀의 한쪽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방금 산 커플티가 쭈그러지며 말캉한 감촉이 손 안을 채운다.

"존나 꼴리네. 진짜 보지 젖었어? 맞으면서 기분 좋다는 말 진심은 아니지? 그냥 내가 시키니까 하는 말인거지?"


"아..."

혜지는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내놓지 못 했다.

방금의 말이 빈말이라는 것은 당연히 현우도 알고 있었다. 퍽하면 눈물을 질질 짜내는 여린 여자가 진심으로 폭력을 즐길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한 질문을 던진건 노리는 바가 있어서였다.


"하긴, 그건 아니겠지. 뭐라고 하는건 아니고, 아쉬워서 그래. 내가 S니까 자기가 진짜 M이었으면 완전 찰떡궁합인거 아니야."

아쉽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가슴을 마저 주물럭거렸다. 실망한 티를 애써 숨기는 척하며 괜찮다고 미소지어준다.

"뺨 맞으면서 보지 젖었다고 하니까 너무 사랑스러워서 물어본거였어.  자기 뺨 때리면서 이렇게 발기했는데, 자기는 맞으면서 적셨다고 하면 나랑 천생연분인거잖아."


찰떡궁합이니, 천생연분이니. 그녀를 속여넘길 달콤한 말 뒤에 추잡한 본심을 숨겼다.

맞으면서 흥분하는 여자가 좋다는, 그러니 그런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명령.

직접적인 명령의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으나 힘없이 중얼거리는 말들로 그녀를 압박한다.


어서 미끼를 물라고, 내가 기다리는 말을 토해내라고 소리 없이 다그친다.

"조금... 조금 기분 좋았어요. 옛날에도 엉덩이 맞으면서 기분 좋다고 했었잖아요. 근데... 뺨은 아직 안 익숙해서 잘 모르겠긴 한데... 그래도 기분 나쁜건 하나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그리고 무력한 사냥감은  미끼를 덥썩 물어버렸다.


혜지는 현우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변명의 말부터 주워섬기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방금 뺨을 맞으며 기분이 좋았던가.

조금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오빠가 좋아하는 일이라니 뿌듯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것이 성적 쾌감과 맞닿아 있냐고 묻는다면 애매했다.


"그래?  좋으라고 괜히 하는 말은 아니고?"


"네, 절대 아니에요. 진짜로, 하나도 기분 안 나빴어요."


혜지는 눈을 내리깔고 현우의 불룩한 바지춤을 바라보다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마한 갈등도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기분이 나빴다고 하더라도 그걸 솔직히 말할 리는 없었겠지만, 정말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이건 오빠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오빠의 취향이었으니까. 갑자기 뺨을 얻어맞은 것은 조금 당황스럽긴 했어도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은 조금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럼 보지가 젖었다는건? 물이 조금이라도 나온거 같긴 해?"

"아, 그건..."


"괜찮으니까 말해봐. 혼내는거 아니니까. 그냥 자기 감상이 궁금해서 그래."

"… 그건 주인님 기쁘게 해주려고 그냥 한 말이었어요."


잘못을 고백하는 아이처럼 우물쭈물하더니 사실대로 말하는 혜지. 혹시라도 현우의 기분을 거스를까 걱정하는 티가 역력하다.


맞으며 보지를 적시지  했다고 자책하는 여자친구라. 현우는 그녀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쿠퍼액이 찔끔 흘러나왔다.


"왜 목소리를 떨어, 괜찮다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젖꼭지는? 서긴 했어?"

"아! 그건 진짜에요. 저 젖꼭지 진짜 섰어요."

"까봐."

"네?"

"옷 벗고 젖탱이 까보라고."


혜지는 현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맨투맨의 밑단을 잡고 끌어올렸다. 옷이 말려올라가더니 하얀색의 브레지어가 드러났다.

그녀는 브레지어 끈을 풀어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으면서 흥분했다기보다는, 방금 가슴을 주무르며 나타난 생리적 반응이었지만 딱딱해진 유두 끝이 브레지어 패드에 쓸리는 것을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할 길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맨투맨과 속옷을 한쪽 켠에 내려놓고는 젖가슴을  내밀었다. 생리가 찾아와 한층 더 부풀어오른 가슴이 보기 좋은 자태를 드러냈다.


그 끝에 매달려있는 분홍빛 꼭지는 통통히 살이 오른채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서긴 섰네. 근데 이건 방금 가슴 주물러서 선거 아니야?"


현우가 꼭지 끝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꺼내는 말에 혜지는 속내를 들킨듯 찔끔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력한 노예는 주인에게 젖꼭지를 내어주고 잠자코 처분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도 기분  나빴다는건 진짜인가봐? 기분 나빴으면 잠시 주물렀다고 이렇게 서진 않았을거 아니야. 그건  마음에 드는데?"

"네, 그거 정말이에요!"

혜지는 자신이 하려는 말이 바로 그 말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 맞고나서 기분  나쁘다는 것 자체가 일단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는거니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무슨 가능성인지, 어떤 생각을 묻는건지 따지지도 않고 넙죽 대답하는 혜지.


왠지  풀려가는 듯한 지금의 흐름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았다. 현우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그녀의 소극성을 부추겼다.

"그러면 앞으로도 부탁해도 돼? 맞을 때마다 신음소리 내면서 기분 좋다고 해줄 수 있어? 더 때려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난 자기가 나랑 서서히 궁합을 맞춰나갔으면 좋겠어."


현우는 태연한 말투 속에 끔찍한 욕망을 담아냈다. 작금의 학대를 궁합  하나로 치부하며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아무리 큰 일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 듣는 사람도 어느 정도 동조되기 마련. 그녀처럼 줏대없고 심약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궁합... 네, 그럴게요!"


혜지는 현우의 부탁을 거부할 엄두는 조금도 내지  했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오빠의 부탁과 궁합이라는 말. 그 말은 그녀의 모든 의문을 잠재우기에 충분했으니까.

둘 사이를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에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지금 해봐.  때려달라고 졸라보라고."

그런 혜지의 귓가에 현우의 무심한 명령이 내리꽂혔다. 일순간 그녀의 웃음이 굳어지더니 흠칫거린다.

아무리 당연한 일이라 하더라도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별개이기 마련.


아직도 얼얼한 뺨을 한 번 더 샌드백으로 내어주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혜지는 어색한 웃음을 잠시 짓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더 때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말만 해보라고. 솔직히 마지막 한 대도 난 때릴 생각 없었는데 자기가  잘 해보고 싶다고 해서 때린거였잖아. 맞지?"


현우는 고뇌하는 그녀를 차분히 다독이며 첫 발을 내딛도록 격려했다.


작은 것에서 점점 큰 것으로. 그녀를 길들이는 일관된 원칙 중 하나였다. 일단 말문부터 틔어놓으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는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현우의 말에 마음이 놓인 모양인지 그녀의 굳어있던 얼굴이 다소 풀어졌다.

"네, 맞아요! 그... 감사합니다, 주인님"

심지어 현우가 베푼 자비 아닌 자비에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만다. 현우는 그 말을 듣자 속으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녀를 때릴 권리가 당연히 현우에게 있다는 듯,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해주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구는 그녀가 우스웠다.


현우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주며 턱짓으로 그녀의 행동을 재촉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달라붙어 있던 그녀의 입술이 제법 매끄럽게 움직였다.

"… 뺨  때려주세요, 주인님."

하지만 그녀가 가까스로 내뱉은 말은 조금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현우는 서슴없이 그녀의 잘못을 지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 자기야, 일부러 그러는거 아니지? 아까도 그러더니 또 대충대충 시키는 말만 하네. 자꾸 왜 그래?"

"아,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해요. 다시... 다시 할게요. 급하게 말한다고 그랬어요."


혜지는 현우의 지적에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서둘러 대사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방금도 비슷한 일로 혼나놓고 바보같이  실수를 저지르다니. 이를 만회할 말들이 필요했다.


"정혜지는 맞으면서 좋아하는 발정난 암캐년이에요! 주인님이 때리고 싶은 만큼 마음껏 때려주세요!"

"더 야하게는 못해? 좋아하니 이런 밍숭맹숭한 말 말고,  꼴리는 말들도 많잖아."


"음, 아! 정혜지는 맞으면서 씹물 줄줄 흘리는 개년이에요! 발정난 개보지 축축해질 때까지 때려주세요!"

혜지는 한  더 이어지는 현우의 지적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천박한 말들을 쥐어짜냈다.


노력이 통한 것일까. 방금의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씨익하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오빠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잘했어. 앞으로는 그렇게 하는거야. 천천히라도 괜찮으니까, 계속 노력해줄 수 있지?"


"네! 노력할게요!"

  점 없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대답하는 혜지. 조금 삐걱거리긴 했어도 오빠의 지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응, 믿을게. 혜지 너라면 분명 잘해줄거라고 믿어."

현우는 그녀의 다짐을 적당히 부채질하며 속으로 키득거렸다.

젖가슴을 내밀고 예쁜 보조개를 지어대는 여자. 그녀의 뺨은 아직도 붉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와 강압적인 전남자친구를 욕하며 열불을 토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랬던 여자가 지금은 더 때리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이면서도 폭력을 거부하거나 화를 낼 생각은 조금도 품지 못한다. 심지어 뺨을 맞으며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말까지 꺼낸다.


 달 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반응. 뺨을 맞으며 기분이 좋은가를 고민해보는 것조차 그녀의 상식 밖이었겠지.

역시,  여자의 근본부터 하나둘 망가뜨려 나가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폭력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행위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 밤은 이제 막 시작하지 않았는가. 오늘 하루 착실히 쌓아놓은 남자친구의 이미지에 비하면 뺨을 갈겨댄건 가벼운 워밍업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의 조교를 떠올리는 현우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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