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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일상이 되어가는 비일상 (9) (55/87)



〈 55화 〉일상이 되어가는 비일상 (9)

현우는 좀처럼 감탄을 금치 못하는 혜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그녀와 할머니가 살던 곳은 서울 변두리의 반지하 단칸방.

지금의 자취방을 두고도 살기 좋은 곳이라 만족하는 혜지였으니 그 단칸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살면서 접해온 주거 환경이라곤 곰팡내 가득한 반지하와 코딱지만한 자취방이 전부인 여자. 그런 여자에게 자신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는 어느 만큼의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미지의 경험에 대한 그녀의 소감이 궁금해졌다.

"자기야, 자꾸 감탄만 하지말고 어떤지도 좀 들려줘.  둘러보니까 감상이 어때?"

"진짜 최고야. 유튜브에서나 보던건데 이런건... 바닥에 깔린 이거, 대리석이지? 완전 백화점 바닥 같아. 진짜 반딱반딱해!"

"어, 맞아. 그거 대리석이야. 인조말고,   천연."

"인조랑 천연이랑 달라?"

"나도 잘 몰라. 그냥 그게 제일 좋은거래서 그걸로 했어."


제일 좋은 것. 혜지는  말에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며 와 - 하는 감탄을 토해냈다.


언제나 가장 싼 것만을 찾아 헤매던 그녀에게는 낯설기만 한 말이었다.


"내가  신기한거 보여줄까? 짜자잔!"


작은 효과음과 함께 거실에 설치된 간접조명을 전부 켜는 현우.

인테리어 시공 당시 업자의 추천을 받고 설치했지만 막상 쓸 일이 없던 조명들이다.


볼 때마다 괜한 돈지랄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적잖이 속이 쓰렸는데 비로소 써먹을 기회가 생겼다.


"와, 나 이건 알아! 우물조명 아니야? 예전에 유튜브에서 보고 진짜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움푹 들어간 천장의 사방에서 영롱한 불빛이 반짝였다. 혜지는 쏟아져내리는 빛무리에 폭죽놀이를 구경하는 아이처럼 탄성을 지른다.

"예쁘지? 자세히 보면 벽지도 반짝반짝거린다? 이거 다 실크벽지거든."


현우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벽지를 만지러가는 혜지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씰룩거리는 입가에선 미처 숨기지 못한 조롱기가 묻어나온다.


고작 유튜브가 세상을 보고 배울 유일한 창구라니. 그녀의 일천한 경험이, 눈물겹도록 궁핍한 인생이 고마웠다.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인생만 살아왔어도 이렇게나 감탄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덕분에 가칭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조롭게 진행됐다.

"대박... 오빠 얼마만큼 부자인거야? 나 이런거 TV에서나 봤어. 연예인 집이라고 해도 믿겠다."


"음... 근데 막상 그렇게 부자는 아니야. 물려받은 집만 있지, 아직 직업도 없으니까. 그냥 월세 조금 받는 정도지, 뭐."


"에이, 난 집도 없는데, 이래서 가진 사람들이  하다니까. 서울 역세권에 이런 건물 하나 있으면 어디가서 금수저라고 떵떵거려도 되겠다."


혜지는 연신 호들갑을 떨며 환해진 거실을 둘러봤다.

당장 눈에 보이는 방문만 해도 네다섯 개. 그녀의 상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크기였기에 몇 평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다만 넓은 거실에 놓여진 가구가 달랑 쇼파 하나와 탁자 하나라는 사실은 조금 의아스러럽긴 했다.

"근데 여기 오빠 어머니가 사셨던 집이라고 했지 않아?"

"아... 맞아. 그런것 치고는 거실이 좀 휑하지? TV도 없고, 쇼파도 일인용 하나고."

"응, 나도 그래서 물어본 거였어."

현우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질문에 잠깐 당황했지만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하긴, 엄마가 살던 집이라 해놓고 엄마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니까.

다행히 그녀의 의문을 종식시킬 레퍼토리쯤이야 이젠 즉석에서 만들어낼  있었다.


혜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집안을 다시 둘러보고 있던 찰나 현우의 씁쓸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음... 엄마 돌아가시고나서 여기서 혼자 살려니 미치겠더라고. 둘러보면 온통 엄마 생각나게 하는 것들 뿐이지, 그렇다고 여기말곤 딱히 지낼 곳도 없지. 그땐 숨만 쉬어도 눈물이 줄줄 나오더라."

"아, 오빠..."


"그래서 엄마 생각나게 하는 것들 다 팔거나 기부했어. 집도 싹 뜯어고치고. 안그럼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휑한거야."

현우는 언제나 그랬듯 태연히 거짓말을 쏟아냈다. 세 치 혀를 놀려 방금의 의혹 위에 감정을 덮씌운다.


그녀가 납득할만한 적당한 감성팔이에 약간의 구라를 섞어주니 안타깝다는 듯 오빠를 중얼거리는 혜지.

그녀의 여린 감정선을 건드리면 지금처럼 시선을 돌려놓는 일은 너무도 간단했다.

"근데 내 인생에 자기가 뿅하고 나타난거 있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대로 그냥 죽어버릴까 했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지금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야기에 좀더 살을 붙이는 것도 썩 괜찮아보였다.


의도치 않게 시작한 해명이었지만 방금 만들어 낸 이야기가 꽤나 그럴싸 했으니까.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가 그녀의 감정을 고조시킨게 분명했다.


괜한 질문을 했다는 미안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와 안쓰러움이 가득한 눈빛.  달간 그녀를 관찰해온 직감이 어서 혀를 더 놀리라고 소리쳤다.

상황을 재차 곱씹어봐도 직감의 판단이 옳아보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언급하며 가엾고 불쌍한 남주인공을 연기해냈으니,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다.

상처 받은 남주인공을 감싸안으며 이를 자신의 역할이라 믿는 얼빠진 여주인공 말이다.


"나 농담 아니고 정말 죽어버릴까 했었어. 이런 집 아무리 있으면 뭐해, 암만 크고 예뻐도 혼자 있으면 외로운건 똑같은데. 자기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아... 잘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막 집 들어가면 쓸쓸하고,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눈물 나오고. 아침에 눈뜨면 서럽기도 하고. 나도 오빠 만나기 전에 맨날 그랬어."


혜지는 현우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주절주절 여러 말을 늘어놓았다. 현우야 그러한 마음을  턱이 없었지만 대충 의미는 통하는  같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적당히 공감대도 쌓은  했으니 이제 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지필 한 방이 필요했다.

쾅 - 하고 폭발하는 감정으로 그녀의 정신을 산산조각낼 한 방이.


"근데 자기랑 사귀고나서부턴  그렇더라. 정말... 매일매일이 특별했고, 매일매일이 행복했어. 이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던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혜지야. 이런 집이고 뭐고... 지금 나한텐 자기가 전부야."


현우는 말을 마치고 그녀에게 터벅터벅 걸어가 진하게 입술을 겹쳤다.


지금의 사랑고백에 덧대어진 키스가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필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 그것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불꽃인지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몸을 던지겠지.

"흐읍... 오빠..."


혜지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행복에 겨워 갈라지는 목소리로 현우를 불렀다.

오빠의 집을 처음 찾아왔다는 설렘으로 안그래도 둥실둥실 떠오르던 마음이었다.

거기에 오빠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아련한 새벽감성마저 더해지니 순식간에 꿈 속을 걷는 기분이다.

따스한 조명이 비치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연인이 털어놓는 진솔한 세레나데.

그녀의 마음을 녹여내리기엔 너무도 완벽한 무대였고 분위기였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눈물이 차오른다던가. 혜지의 두 눈에 금세 눈물방울이 맺혔다.


"나도... 나도 그래, 오빠. 아씨, 나  눈물이 나오지, 바보같이. 여튼 내가 오빠처럼 말은 잘  해도... 나도 오빠 많이 사랑해. 나한테도 오빠는 인생에서 제일 큰 선물이야.  같아선 하루종일 사랑한다는 말만 해주고 싶을 만큼."

혜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활짝 미소지었다. 오빠의 고백을 처음 들었던 날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고백을 받는 장소가 처음 찾아온 오빠의 집이라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그때의 고백보다 지금의 고백에서 더  진심이 느껴졌으니까.


뭔가 이제야 제대로  여자친구로서 자리매김하는 기분이다. 오빠와 자신을 묶어주는 운명의 끈이 더 두터워졌다는 생각에  전체로 희열이 퍼져나간다.

그녀는 턱을 치켜들고 심호흡하며 지금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다 팔을 넓게 벌려 현우를 끌어안았다.


"그러니깐... 죽는다느니 하는 무서운  하지마. 내가 이제 오빠 행복하게 해줄거야. 돈 벌어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오빠가 하고 싶다는거 다 하게 해줄거야. 내가... 흑, 오빠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친구로 만들어줄게!"


혜지는 말을 마치고 마치 지금의 행복을 간직하겠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말을 이어갈수록 콧등이 시큰해지더니 목이 메어온 탓이다.

오빠의 품에 안겨있으니 가슴에도 온기가 번졌다. 지금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이 남자와 평생 함께하리라는 숙명의 예감.

혜지는 그 느낌을 평생토록 간직하고 싶어 현우의 품에 고개를 묻으며 눈을 감았다.

"나도 지금은 자기   믿어. 세상 사람 다 못 믿어도 자기만큼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날 제일 행복한 남자친구로 만들어준다는 말, 진짜인거지?"


"당연하지! 아까도 말했지만 난 한다면 하는 여자니까. 절대... 오빠 실망 안 시킬거야. 정말!"

잔뜩 상기된 낯빛으로 다짐의 말을 읊어대는 혜지.

 여자는 학습능력이 부족한걸까, 아니면 기억력이  좋은걸까. 어제도 뭐든지 다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가 잔뜩 곤욕을 치러놓고 또 다시 경솔한 약속을 꺼낸다.

현우의 심장박동이 점차 빨라졌다. 물론 그녀의 사랑이 충만한 목소리때문은 아니었다.

그 속에 담긴 무자비한 능욕의 허락, 그리고 절대적인 복종이 탐스러웠다.


"하... 오늘 실컷 데이트 해놓고 이런 부탁하려면 조금 미안하기도 한데..."


"뭐? 부탁할거 있어? 나한테 말만  오빠!"


"너 내일 출근도 해야해서 피곤할  같기도 하고... 자기 지금 컨디션 어때?"

"에이, 이제 두 시밖에 안 됐는데! 나 아직 젊잖아. 여차하면  새고 출근하면 되지!"

혜지는 활짝 핀 표정과 발그레해진 양볼로 바보 같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할  있다는 열망 덕에 있던 피로도 가셨다.

"그럼 우리... 한 판 할까? 어제처럼."


"어제처럼? 어떻게?"

"내 스타일대로. 주인과 노예같이."

현우는 툭하고 말을 내뱉고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짤막한 말로도 충분히 의사가 전달되었을테니 굳이 긴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 오늘은 내가 어떻게 해주면 돼? 다 명령해줘. 아니, 다 명령해주세요, 주인님."

혜지는 순진한 눈망울을 껌뻑이며 순식간에 인격을 내려놓는다. 사랑의 증명이 복종이라는 사실 또한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당연한 상식  하나였다.

"그럼 아까 길에서 했던 말부터 다시 해봐. 개꼴렸거든. 기억나지?"


아마 자지 케이스 어쩌고 하는 말을 가리키는 모양. 혜지는 걸어다니는 구멍이라는 말을 기억해두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거침없이 천박한 말을 읊조렸다.

"정혜지는 김현우 주인님의 자지에 봉사하는... 그, 자지 케이스고, 걸어다니는 구멍이에요! 그러니깐 주인님이 원하는 구멍은 다 쑤셔주세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에서 한순간에 주인과 노예가 되었지만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다.


이것이 오빠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이고, 로맨틱하게 사랑을 속삭인 다음 나누는 격렬한 섹스는 연인 사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오빠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후... 다시 들어도 꼴리네. 좋다, 내가 자기의 주인이 된 것 같아서. 자기가 내 소유라면 자긴 절대  먼저  떠날 테니까. 그렇지?"

"네, 정혜지는 평생 주인님꺼에요. 절대... 절대 주인님 안 떠날게요. 그러니깐 계속 사용해주세요, 주인님."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말이지?"


"네,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해주세요!"


현우는 확고한 예속의 맹세를 입에 담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일단은 어제의 조교에 대한 가벼운 복습부터 시작하는게 좋지 않을까. 워낙 이것저것 가르친 탓에 무엇부터 복습할지가 고민됐지만...


 -


다짜고짜 그녀의 뺨부터 후려쳤다. 최고조에 이른 지금의 감정을 이용해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말끔히 지워낼 속셈이었다.

"혹시 아프면 언제든 말하고. 많이 아프진 않지?"

물론 몹시도 부드럽고 따뜻한 말투를 곁들여서.


마치 엉덩이를 내려치고 세기를 물어볼 때처럼 방금의 손찌검이 어떠했는지 물어본다.

엉덩이 스팽킹이야 이제 익숙할테니 지금부턴 귀싸대기를 쳐맞는 일에 익숙하게 만들 차례였다.

"아... 괜찮아요, 주인님."


"그래?"

다행히 그럭저럭 학습능력은 있는 모양인지 붉어진 뺨에 보조개를 만들어내며 배시시 웃는다.

뺨을 맞아도, 침을 뱉어도 미소 지으라는 어제의 가르침이 뇌리에 깊숙히 박힌 듯 했다.


 -

현우는 한 대로 그치지 않고 반대쪽 뺨도 후려갈겼다. 아까보다 더 큰 힘으로, 그녀의 고개가  돌아갈 만큼.

그녀의 입에 걸린 미소가 한순간 주춤한다. 눈동자에는 미약한 동요가 내비쳤다.

"미안해. 방금은 아팠지? 솔직히 말해도 괜찮으니깐 알려주라. 어땠어?"

"아... 조금 아프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도 된다니깐. 괜찮아, 안 괜찮아?"

"음,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조금 아팠어요."

"그래, 그러면 첫 번째 정도는 괜찮았고? 그 정도로는 때려도 되지?"

현우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그녀가 내놓을 답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애초에 그녀가 고를 선택지로 하나밖에 던져주지 않았으니까.

적당한 세기의, 하지만 현우의 가학욕구를 채우기에는 충분한 세기의  번째 싸대기와 순수한 폭력에 가까운 두 번째 싸대기.


사실 후자는 처음부터 버리는 패였다. 이 강도로 때리고 싶지만 네가 힘들다면 기꺼이 참고 양보하겠다는, 껍데기 뿐인 자비심과 사랑을 보여줄 패.

때리지 말라는 말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할 여자였으니 견딜 수 없는 것과 견딜만 한 것 중 무엇을 고를지는 뻔했다.


"아... 네, 첫 번째는... 괜찮아요."


게다가 최악과 차악을 맛보여주면 차악에도 감사한 마음을 품기 마련.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란 책임감과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라는 자기위로가 폭력을 그녀의 일상으로 끌어들일 것임을 짐작할  있었다.

짝 -

지금처럼 말이다.


"이 정도 말하는거지? 괜찮으면 웃어봐. 이렇게 하면 될까, 자기야?"

혜지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얼얼한 뺨을 실룩이며 웃어보였다.

갑작스럽긴 해도 어제도 맞아본 뺨이었고,  번째보다 분명 참을만 했으니까. 오빠도  발 물러난 만큼 자신도 고집만 부릴 순 없었다.


"네, 주인님! 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감사하다는 말도 할 줄 알고... 자기 진짜 발전했다. 이젠 척하면 척인데?"


현우는 방금 후려친 뺨을 매만지며 빙긋 웃어주었다. 은은한 열기가 손바닥에 전해지는게 제법 고통을 느낄 것이 분명한데도 오히려 감사를 전해온다.

그녀가 폭력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폭력을 즐기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언제든 원할 때마다 후려칠  있을 테니까.


"자기야,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때릴 테니까, 이번에는 맞고나서 좋다고 해봐. 마조히스트가 뭔지 알지? 고통을 느끼면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 흉내  번만 내줄 수 있어?"

"… 네, 해볼게요. 때려주세요."


예상치 못한 명령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다지는 혜지. 뺨을 맞는 일에 말  마디를 곁들이면 된다는 생각에 그리 어렵지도 않아보였다.


짝 -

"조, 좋아요."

현우의 손길이 스쳐지나가자 소심하게 좋아요를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딴 허접한 리액션이 현우의 마음에  리 만무했다.


"에이, 그렇게 심심하게 말고. 꼴릿한 신음소리로 흐윽흐윽 거리면서는  해? 진짜 느낄 때처럼 말이야. 너무 성의없어 보이잖아."

"아, 그러면... 한 대 더... 한 대 더 때려주세요. 다시 해볼게요."


"어? 진짜? 그래도 돼? 방금께 마지막이었는데."

혜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도 그렇고, 하면 잘 할 수 있는데 밋밋하게 군다는 지적을  여러번 받았기에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찝찝했다.


"그럼 살살 때릴 테니까, 개꼴리는 신음 준비하고 있어 봐. 멘트도 좀더 적극적으로 바꿔보고. 알려준 대로만 하면 뭔가 좀 그렇잖아."

현우는 그녀가 준비할 시간을 잠시간 베풀었다가 다시 뺨을 올려붙였다.


짝 -


"흐으으윽... 너무 좋아요, 주인님. 혜지는 뺨 맞으면서 흥분하는 마조년이에요!"


그녀는 흡사 자지에 박힐 때처럼 미간을 찡그리며 마조년이라 외쳤다. 잔뜩 느낄 때의 음란한 표정 그대로다.


"와, 진짜 잘했어. 자긴 조금만 노력하면 훨씬 잘 할 수 있다니까."

현우는 그런 그녀를 칭찬해주며 씨익 웃었다. 혜지도 선생님의 인정을 받은 유치원생처럼 따라웃는다.

시계를 흘끗 보니 이미 새벽 두 시를 넘어선 시간.


슬슬 짙어지는 피로를 눈부신 사랑으로 이겨내는 듯 했지만 그녀의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는 짐작이 들었다.

그리고 고갈되는 몸과 마음은, 조교에 세뇌를 곁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태.

그녀를 위한 세 번째 조교를 시작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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