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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일상이 되어가는 비일상 (6) (52/87)



〈 52화 〉일상이 되어가는 비일상 (6)

혜지가 고른 영화는 과연 재미가 없었다.

흔해빠진 로맨스코미디는 유치하기까지 해서 보는 내내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현우는 좀이 쑤시는걸 눌러참으며 무료하게 팝콘만 으적거렸다.

옆을 흘낏거리니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는 혜지가 보인다.


현우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쳐오는 혜지. 마치 오빠도 재밌지하며 눈으로 물어보는 모양새다.

살포시 미소를 지어주며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영화가 들려주는 미적지근한 사랑 이야기는 몹시도 지루했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진부한 대사들이 이젠 소음 공해로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가 예쁘다는 점 하나만큼은 마음에 든다고 할까.

하긴,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치고 못 생기고 뚱뚱한 사람은  사람도 없을 테지. 심지어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마저  생기고 예쁘다.


현우는 그러한 사실에 새삼 묘한 감정을 느꼈다.

역시 세상은,  생긴 사람들에게 철저히 무관심하다. 못 생긴 사람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조연조차 되지 못하고 철저히 배제되고 만다.

물론 지금의 자신은 그런 일과 하등 상관이 없는 주인공이 되었지만 말이다.

영화는 슬슬 클라이막스에 접어들었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며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녀 주인공들. 그러나 그 광경을 보는 현우의 얼굴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오히려 혐오하게 된다던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외면받아온 현우는 사랑이라는게 넌더리가 날 만큼 지긋지긋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랑이라는게 같잖고 웃기기만 하다.


자신이 잘생기지 않았다면, 혜지를 만나지도 못했다.

어떻게 운이 좋아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녀와 연인이  리 없었다.

아무리 좋게 쳐줘 연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녀가 지금처럼 정액받이 암캐년이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잘 생기지 않았다면, 사랑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일들이 없었다.


현우는 거친 비웃음을 지으며 혜지를 한 번  힐끗거렸다.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는 저 여자가 어젯밤 토악질을 해대며 미친듯이 자지를 빨아제낀걸 다른 사람들은 알까.


굳이 사랑이 뭔지 떠올려보면... 현우에겐 어젯밤이 사랑이었다.


남녀가 사랑에 목매고 애타는 이유도 결국 하나가 아니겠는가.

근본적으로 저 남자를 혹은 저 여자를 따먹고 싶다는 생각.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이를 꽁꽁 둘러싸더라도 결국 본질은 질척한 교미였다.


플라토닉 러브? 그것도 어느 정도 얼굴이 되는 자들에게나 허락되는 기만질이다. 사람들은 외모로 급을 나눈 뒤 그제서야 사랑의 대상을 찾아나서니까.

 과정에서 못 생긴 사람은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몸소 겪어본 산증인이었던 만큼 이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현우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떠올리며 시간을 때우는 사이.

스크린에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생각보다는 별로다... 예고편만 봤을 때는 재밌어보였는데! 오빠는 어땠어?"

"그래? 웃으면서 재밌게 보더니. 나도 그저 그렇긴 하더라."


"에이, 그게 영화가 재밌어서 웃은 거였나. 오빠랑 같이 영화보는게 좋아서 웃은 거지."


제법 귀여운 말을 하더니 다시 현우에게 안겨오는 혜지. 그러고보니 영화도 영화지만 그녀를 줄곧 품에 안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현우는 짜증으로 일그러지려는 미소를 부여잡으며 그녀를 떼어낼 말을 꺼냈다.

"나도 자기랑 영화봐서 좋았어. 이게 우리 첫 영화지? 예매표 사진 찍어놓을까?"


"와, 짱 좋은 생각이다! 내가 찍을게, 오빠 표 줘봐."


이 여자가 처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걸 어제의 첫 장미로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첫 영화를 들먹이니 그제야 품에서 떨어져 나가 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을 떤다.

내친 김에 셀카도 찍자는 그녀에게 장단을 맞춰주고 있으려니 출구의 알바생이 소리치는게 들렸다.


"나가시는 문은 이쪽입니다!"


얼른 꺼지라는 말을 공손히 외쳐대는 알바생은 많이 지쳐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둘 말고는 아무도 없다. 평일 자정을 훌쩍 넘어가는 심야 영화. 그것도 이따위의 영화에 관객이 있을 턱이 없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를 나서는 둘에게 방금의 알바생이 맥없이 중얼거린다.


"에스컬레이터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비상계단으로 10층까지 내려가셔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주세요."


아울렛의 영업시간이 지나 비상계단 외에는 모두 폐쇄된 모양. 현우는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비상구로 향했다.


비상구의 계단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만큼 좁았다. 계단을 디디는 발걸음 소리만이 심야의 아울렛에 울려퍼진다.

자신과 혜지 외에는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 현우는 그녀와 발을 맞추며 걸어가다 그녀의 상의 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어젯밤의 플레이를 떠올리며 지루함을 달랬다. 게다가 오늘의 컨셉을 지킨다고 저녁 내내 성욕을 눌러참았다.

이제서야 둘만 남게 되니 성욕에 불이 붙었다.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손을 찔러넣고 브래지어를 헤집은 뒤 가슴을 주무른다.

깜짝 놀란듯 주변을 둘러보는 혜지. 그러나 아무도 없다는걸 눈치채곤 불평없이 가슴을 맡겨온다.

몽글한 가슴을 마음껏 주무르며 계단을 내려오니 어느새 10층이다. 현우는 10층의 비상문을 열기 전에 손을 빼냈다. 무언가 아쉬웠다.

끼익 -


삐걱이는 쇳소리를 내며 열리는 철문. 그 너머에는 인기척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현우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녀의 옷 사이로 다시 손을 찔러넣었다.


"계속 만져도 되지? 아무도 없잖아."

그녀의 유두를 손끝으로 굴리며 한 박자 늦게 동의를 구한다. 혜지는 얼굴을 붉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누구 오면 바로 빼야 해."


"이 시간에 누가 있다고. 우리밖에 없어. 걱정마."


현우의 말과는 달리 8층을 지나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엘리베이터. 아마 먼저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1층까지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다시 10층으로 올라오기까진 꽤나 긴 시간이 걸릴 터. 현우는 가만히 서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자신의 다리 사이로 이끌었다.


"자기도 만져줘."

혜지는 고분고분히 현우의 바지 위를 주물럭거렸다. 불룩해진 지퍼를 타고 오빠의 진한 흥분이 손에 전해져왔다.

"자기 혹시 야노나 야플이란 말도 봤어?"

소심한 손짓으로 자지를 조물딱거리는 혜지에게 질문하는 현우.


늘상 주무르던 가슴이었지만 바깥에서 만지는 감촉은 각별했다. 당장 한 발을 뽑고 싶어질 정도로.

그렇기에 그녀를 꿰어낼 밑밥을 던진다. 말 몇 마디로 원하는 형국을 만들어낼 속셈이었다.

"음... 커뮤니티에서 말하는거지? 야플은 모르겠는데 야노는 본 것 같기도 하고..."

"야노는 야외노출이고, 야플은 야외 플레이거든. 야외에서 옷 벗거나 섹스하거나 하는건데..."

그녀는 현우가 뜬금 없이 꺼내는 말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자지를 매만진다. 현우의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리는 그녀의 손에는 멈춤이 없었다.

"야플... 지금 해볼래? 나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거였는데 지금 딱인거 같아서."


"야플이면... 여기서? 지금... 섹스... 하자고?"


뒤늦은 동요를 보이는 그녀. 오빠의 설명을 들을 때는 그런 사람들도 있나보다 싶었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 된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아니, 여기서 말고, 저기서. 섹스말고 그냥 내꺼 빨아주기만 하면 안될까?"

현우가 뻗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끝에는 아울렛의 화장실이 위치해있었다.

"... 남자 화장실?"


"응, 칸 안에 들어가서 문 잠그면 아무도 못 볼 테고 지금 사람도 없잖아. 여기 cctv도 없어보이는데... 안될까? 무리야?"

현우는 천연덕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역시 좀 이상하긴 하지? 그냥 꺼내본 말이니까 신경쓰지마.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까지 빼내는 현우.


오빠의 손길이, 멀어져간다. 오빠의 얼굴 위에, 희미한 실망이 떠오른다.

혜지는 한 걸음 물러나는 현우를 다급히 끌어안았다.

"아냐아냐, 잠깐만. 안 된다고 말하려던거 아니었어. 그냥, 당황스러워서 그래. 잠시만 기다려줘."


혜지는 난색을 표하며 현우의 품 안에서 고개를 떨궜다.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조금만 꼬드기면 넘어올 기세다.


만약 그녀가 단칼에 거절했다면 현우도 두말 않고 물러날 생각이었지만 지금처럼 망설인다면 그녀가 결심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만이다.


“다행이다. 혹시 자기도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런건 아니지? 조금 충동적으로 꺼낸 말이라 나도 말해놓고 걱정되더라고."


"안... 이상해. 나도 그거 본  같아. 야노, 야노 그러더니 그게 이런거였구나. 갑자기 오빠가 그런 말 해서 당황한거지, 이상하다고는 생각 안해"

"그럼... 자기도  사람들처럼 그런거 해줄 수 있어? 내가 자기한테 부탁해도 될까?"


넌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다른 사람들도 했으니 너도 해주겠지하며 기대를 내비친다.


강압적인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게, 강요보다는 부탁에 가깝게.  여자가 심리적으로 거리껴 하는 일에  발을 내딛게 하려면 어린아이를 달래듯 구슬려야 했다.

그리고 혜지는 그 마수를 피해갈  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공중 화장실에서 자지를 빨아주는 것이 이상한가?

... 그건 조금 이상하긴 하다.

그렇다면 오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NO였다.


오빠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오빠를 사랑한다는 증거.


게다가 오빠를 위해 커뮤니티를 더 열심히 둘러보고 더 많은걸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다시 생각해보니 해보지 않은 낯선 일일 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찾아올 순간이 오늘 찾아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혜지는 잠시 울상을 지었지만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

"괜찮아? 진짜 해줄  있어?"


"응! 오빠도 오늘 얼마나 잘해줬는데. 나도... 나도 오빠 기쁘게 해줄래."

"그럼 내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람 있나 보고 카톡할게. 카톡하면 사람 없을 때 몰래 들어와."


"... 알겠어."


현우는 화장실에 들어가 모든 칸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첫 번째 칸에 들어가 앉았다.

[현우는내운명♡ : 자기야 들어와서 젤 앞에 칸이야!!]

조마조마하며 서있는 혜지에게 현우의 카톡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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