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조교 2일차 (13) (45/87)



〈 45화 〉조교 2일차 (13)

1.

인간의 기억체계는 생각보다 조잡하다.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행복한 결론만 뒤따르면 쉽게 잊혀지거나 미화되고 만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대부분 경험하는 훈련소에서의 기억들. 고된 훈련 끝에 주어지는 자그마한 행복은 육체적 자유를 넘어 고통을 기억할 자유까지 빼앗아버린다.

행군을 마치고 쥐여 주는 몽쉘  개에 바보처럼 히죽거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국가와 군대를 욕하며 열불을 토하던 이들이 고작 몇 백원짜리 과자를 입에 물고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건 현우 또한 마찬가지. 자신이 왜 이딴 짓거리를 해야 하나 머리 끝까지 불만이 차올랐음에도, 목울대로 넘어가는 몽쉘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현우는 그때 자신 또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음을, 육체적 한계에 달한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나약할  있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리고 이는 혜지도 예외가 아닐 터. 그녀가 겪은 고통과 그녀가 지닌 결핍은 결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기억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일 방법을 고민한다. 그녀에게 내어줄 ‘몽쉘’을 신중히 고른다.

“지금 내가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말로 다 못할 정도야. 이해해줘서 고맙고... 많이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일단 시작은 사과와 감사를 전하는 말로 가볍게 운을 뗀다. 마치 긴 산통 끝에 첫 아이를 출산한 아내를 대하듯 그녀를 따뜻이 위로해준다.

그러나 품에 안긴 혜지는 여전히 작은 미동도 보이지 않고 훌쩍거리기만 할 뿐이다.

하기야, 그토록 심하게 굴려놓고 꼴랑 몇 마디 말로 활력을 되찾길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나 다름 없겠지.


현우는 혜지의 긴 머리를 쓸어내려주며 고민했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여자에게 땡을 외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순간 그녀의 마음을 두고 오락을 하는 기분이 들어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별 효과가 없다면, 다음으로 꺼낼 말은 당연히 사랑한다는 말.

이젠 그녀의 마음을 녹일 대사 쯤이야 숨쉬듯 자연스레 뱉어낼 수 있었기에 사랑을 연기하는건 쉬운 죽 먹기다.


현우는 혜지가 결코 거부  수 없을 달콤한 말을 던지며 그녀가 수렁에 빠지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완전히 확신이 들었어. 난 아마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여태 그렇게 힘들었나 봐. 남들은 나보고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자기는 날 이해해줄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우리 평생 함께 하자.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

현우의 구구절절한 말에는 혜지를 향한 사랑이 역력하다. 그녀를 바싹 말려버린 화장실에서, 그녀의 황폐해진 마음속에 다시 사랑을 부어줄 속셈이었다.


그래, 어찌 보면 지금의 연인놀이 또한 조교의 일환이다. 그녀의 마음에 사랑이 찰랑거릴수록 더  힘과 통제력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모든 건 나중의 즐거움을 위한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다.

현우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평소라면 마다했을 낯간지러운 말들을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선한 눈매를 부드럽게 휘어가며 그녀를 속여넘길 미소를 만들어낸다. 그녀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반짝이는 사랑을 담는다.

겉만 보아선  추악한 속내를 쉬이 떠올릴  없는 잘 생긴 얼굴. 그리고 그런 얼굴로 연기해내는 선명한 사랑은 혜지의 영혼까지 취하게 할 만큼 달디 달았다. 사랑을 애원하던 가엾은 영혼이 이를 마다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현우는 그녀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키득거렸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응급처치로는 차고 넘친다.

다만 그녀가 좀더 진정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자신이  들려줄 말에 귀를 기울일  있도록 한동안 더 토닥여준다.

이윽고 떨림이 완전히 멎자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코앞까지 다가서는 현우.


마주친 눈동자를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찢겨진 마음을 도로 붙여주었으니 이젠 세뇌를 주입할 시간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만큼 행복했던 건 처음이야. 자길 만난 덕분에... 내 인생 최고의 날이 찾아왔어. 그동안 욕구를 꽁꽁 숨기고 혼자서 눌러 참기만 했는데, 이제서야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아.”

그녀의 노력으로 자신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하고 짜릿했는지를 심어주는 것이 이번 세뇌의 핵심. 이를 위해 혜지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노고를 치하하는 말부터 건넨다.


“다 자기가 그만큼 힘을 내줘서겠지. 오늘처럼만... 계속 사랑해줄래? 자기만 변하지 않으면, 나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게. 평생... 정말 평생 자기만 바라볼게.”

그리고 그녀가 치른 희생의 ‘보상’으로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그녀의 고통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응당 고통에는 보상이 뒤따라야 기억이 쉽게 미화되는 법이다.

“흐윽... 흑...”


불규칙적인 미약한 숨만 쉬어내던 그녀에게 점점 제대로 된 호흡이 돌아왔다. 굳이 그 속내를 살피지 않아도 자신의 말이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우는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기 같은 여자라면, 정말이지 내 평생을 다 줘도 아깝지 않아. 이렇게나 착하고, 날 위해 이렇게나 노력해주는 여자는...  세상에 자기밖에 없을 테니까. 자기야. 아니, 혜지야. 오늘 정말... 최고였어.”


이번에는 명령을 들어준 그녀를 잔뜩 칭찬해줌으로써 인정받는 여자친구의 기쁨을 여과 없이 맛보여준다. 원래부터 그런 것에 굶주려 있던 여자였으니 던지는 대로 다 받아먹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단순한 칭찬은 아니다.

지금의 칭찬은 향후 그녀의 숨통을 옥죌 양날의 검이다. 명령을 잘 따랐을 때 한껏 추켜세워주는 만큼, 명령을 거절할 시의 낙폭이 두려워질 테니까. 그럴수록 명령을 거절할 엄두도 못 낼 테니까.

그야말로 위로를 가장한 끔찍한 세뇌다. 그러나 아무리 위로 같지 않은 위로라 하더라도 혜지의 눈에 생기를 되찾아주기는 충분했다.


혜지는 따뜻한 현우의 모습이 사무치게 낯설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은 그가 베푸는 온정에 기대고 말았다.

“오...빠... 흐윽... 오빠... 진짜,  평생 사랑해줄거지? 정말이지?”

간단한 말조차 뚝뚝 끊기는게 무언가 부자연스럽지만,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제대로 된 문장이 만들어졌다.

사랑을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인 21살. 혜지는 사랑 하나가 세상의 전부가 될  있을 만큼 순수했고, 또 그만큼 영혼이 가난했다.

그런 그녀에게 현우의 거짓 사랑은 놀랍도록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방금까지의 학대가 간밤의 꿈결처럼 느껴지더니 마음  응어리가 내뿜은 연기마냥 흩어진다.


“당연하지.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만의 연애를 하자. 너도 나도... 남들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잖아. 그런 만큼 남들보다 삐걱거릴지 몰라. 아마 더 힘들지도 모르고.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면서, 우리 둘만의 사랑을 써내려가보자.”


현우는 그녀에게 대답하며 구태여 긴 말을 덧붙였다. 방금까지의 난폭함에 은근히 트라우마를 덮어씌우고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끼워넣는다. 잔혹한 가해자와 사랑스러운 남자친구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분리해낸다.


“그럴게 흑... 나도... 나도 노력할게. 사랑해.”

“나도 사랑해. 오늘 고생했어. 자긴 정말... 최고의 여자친구야. 내가 더 잘할게.”

그녀와의 진한 키스로 상황을 일단락하는 현우.


어느 정도 상처를 봉합하고 위로의 종지부를 찍은 듯 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2.

몸을 씻고 나온 둘은 침대에 누워 서로를 끌어안았다. 혜지는 물론이거니와 현우도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기에 화장실에서의 스킨십은 키스로 끝이 났다.


무엇보다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버린 탓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자기야, 먹고 싶은거 있으면 말만 해. 내가 다 시켜줄게. 피자? 족발? 아, 파스타 맛집도 있던데.”


현우는 눈꼬리를 순하게 늘어뜨리고 온화하게 웃었다.

정녕 방금의 가해자와 동일인인지가 헷갈리는 행동. 무엇이든 다해줄 기세로 큰소리를 치며 일부러 더 살갑게 굴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에서 나온 혜지가 조금 이상했으니까. 언제나 응석받이 같이 굴던 여자가 좀처럼 시선을 마주치지 않더니 침묵만 지킨다.


현우는 대답이 없는 그녀에게 한 번 더 되물었다.


“뭐 끌리는거 없어?”

“아... 피... 자?”


혜지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작게 대답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몸은 반송장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노곤했다.


“하긴, 자기 피자 제일 좋아하니까. 그럼 피자로 시킨다?”

“아... 응.”


현우는 어플로 주문을 완료하며 여전히 입을 닫고 있는 그녀를 곁눈질 했다.


자신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 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뭔가가 이상하다. 피로나 배고픔으로 설명할  없는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끼어있었다.


곧 도착할 피자를 받기 위해 주섬주섬 옷을 갖춰 입는 동안에도 그녀의 얼굴에선 그늘이 가실 줄을 모른다.

그 모습이 신경쓰이기 짝이 없다. 이대로 묻고 넘어가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크흠... 우리 자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을까?”


말을 꺼내기 전, 가벼운 헛기침으로 그녀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녀가 바라볼걸 대비해 얼굴에는 쓴웃음을 띄운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의 이상 상태를 완곡한 표현으로 돌려물었다.


“그냥... 많이 피곤해서 그런가봐.”


기진맥진한 것인지, 혹은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는 것인지 약간은 시큰둥하게도 들리는 대답. 그녀는 지금껏 유례 없는 행보를 보였다. 섹스 후에는 먼저 치대지 못해 안달이 나던 여자였는데 지금은 축 늘어져있기만 한다.

아니, 돌이켜보면 이런 적이 딱  번 있긴 했다. 바로 사귀기 얼마  가장 처음으로 다투었을 때.

육변기를 대하듯 꽤나 험하게 굴렸더니,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게 맞느냐 되물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때 얼핏 보았던  죽은 모습이 데자뷰처럼 떠오른다.

혜지는 토라지기 전에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지곤 했었으니까. 만일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면, 지금의 침묵은 결코 반가운 신호가 아니다.

일전의 다툼은 휴대폰에 저장된 여자의 연락처를 모두 삭제하며 찍어눌렀는데 지금은  어찌 해야할까.


분명 화장실에서 실컷 위로를 해주고 나왔는데... 미처 꺼뜨리지 못한 잔불이 남은 모양이다. 현우는 그녀의 변덕스러움이 성가셨다.

“혹시 또 오해하는거 아니지? 오빠가 날 사랑하는게 맞을까 하면서. 저번에도 그래놓고 또 이러기야?”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넘겨주며 단호히 말했다. 여전히 별 반응이 없자 스스로를 변호하는 말을 한 번 더 주워섬긴다.

“자기야... 자기가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고  안 했으면, 내가 그렇게까지 흥분할 일은 털끝만큼도 없었어.”

하지만 변명도 그리 잘 먹혀들지는 않는 모양. 힘겹게 눈만 깜빡이는 혜지를 지켜보며 노선을 변경하기로 마음먹는다. 현우의 안색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자기가 아무 말도 없으니까 불안해서 미칠  같잖아. 나한테 실망한거 아니지? 제발 이러지 말아주라. 방금까지만 해도 나 사랑한다며.  노력하겠다며.”

이번에는 잔뜩 전전긍긍하는 기색을 내비친다. 방금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주인의 탈 대신 사랑 앞에서 소심해지는 순수한 청년의 탈을 뒤집어쓴다.


이런 상태의 그녀라면 굳이 맞대응을 하기보다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마치 죽을 죄를 저지른 것 마냥 크게 사과를 해버리면, 착한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곤 했으니까. 당연히 잘못은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고.

“아냐! 실망 안했어! 미안... 미안해.”

아니나 다를까, 혜지는 침울해하는 현우를 바라보다 다급히 소리를 지른다. 현우는 그녀가 반대로 사과해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더 바짝 엎드렸다.

“그럼 왜 그러는지 솔직히 말해주면 안돼? 우리 사이에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대화가 중요하다고 그랬잖아.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거야?”


그녀에게 신뢰와 대화를 들먹이며 대답을 종용한다. 얼핏 보기엔 부탁같지만, 기실 강요나 다름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이제와 주워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감정적 동요를 이대로 방치  수도 없는 노릇. 차라리 동정심에 호소하며 그녀가 품고 있는 생각들을 파헤쳐볼 생각이었다.

혜지가 대답을 망설이는  하자 재빨리 말을  덧붙인다.

“자기... 혹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거 아니지? 분명 나 이해해줄 수 있다고 말했었잖아. 응?”


혜지는 현우가 넘겨짚듯 묻는 말에 속이 뜨끔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정곡을 찔린 기분이다.

오빠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아니다. 오빠는... 결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 오빠를 두고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 다만, 오늘의 상황이 낯설고 이상할 뿐이다.

사실 그녀 스스로도 지금의 마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거렸지만 그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아냐, 절대로... 절대로 오빠 이상하다고 생각 안해.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어떤 생각?”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아까 전 일이 실감이  나기도 하고...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지 싶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혜지.


지금도 두서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로 혼란스럽다. 한 번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그녀의 혼란이 여실히 얼굴에 드러났다.

현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을 넘은 줄로 알고 염려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


그녀의 모습은 화를 내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가 통제할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새다.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니 그제서야 자조적인 미소가 흘러나왔다. 완전히 맛탱이가 갔다는 확신이 들어 저지른 일이었건만, 조금 휴식을 취하자마자 방금의 일을 회상하고 혼란스러워  정도의 여유를 보이다니.

사랑에 눈이 먼 그녀가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의 정신이란게 자신의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람이 망가지기에는 하루나 이틀의 시간이 짧았던 탓일까, 아니면 아직 젊어서 그런걸까. 엿가락처럼 늘려버린 정신줄이 제법 본모습을 되찾아가는 탄력성을 보인다.

그렇기에 더 재미있다. 아마 그녀를 목표 수준까지 망가뜨리는건 원래의 계획보다 좀더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난이도가 상승하는건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녀의 정신이 제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면, 그러지 못할 만큼 배배 꼬아버리면 그만이다.

사랑마저 의심하는 단계라면 골치 아프겠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그냥 지독한 혼란에 빠진 정도.


그의 혀는 순식간에 레퍼토리를 떠올려냈다. 갈 길을 잃은 그녀를 농락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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