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조교 2일차 (6)
현우는 갈갈이 찢긴 그녀의 정신을 향해 잔혹하게 포문을 열었다.
"도구가 되겠다는 년이 씨발... 발 한 번 핥는게 어려워서 그렇게 쩔쩔매? 어제도 그걸로 혼났으면서?"
어차피 죄송하다는 말만 해댈 것이 뻔했기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입 속으로 발가락을 집어넣었다.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방금 전 손가락을 핥듯 발가락과 그 사이사이를 핥아온다. 용서를 구걸하는 혀놀림에는 거침이 없었다.
"기대해도 좋다며. 약한 여자 아니라며. 근데 한 번도 아니고 왜 자꾸 삑사리를 내는거야."
막무가내로 화만 내는 것은 현우의 방식이 아니었기에 이번엔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언제나 그랬듯 극과 극을 오고 간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각을 원하는 곳으로 유도한다.
현우는 이제 혜지를 어떻게 혼내야하는지를 주제로 책을 써낼 수 있을 정도로 통달했다.
어느 정도 레퍼토리가 정해져있다보니 다음의 말을 눈감고도 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언제 너한테 직접적으로 욕한 적 있니. 없지? 하... 근데 이번에는 워낙 기대가 컸으니까, 나도 그만큼 화가 나는걸 어쩔 수가 없다."
꾸중의 큰 틀은 이전과 같았다. 모든 것은 너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며, 내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다는 억지.
"우으웁... 데송... 데송해여."
현우는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발을 빼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눈동자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이 좀 지겹지 않아? 오늘 몇 번이나 그 말을 하는거냐고... 하, 참... 네가 그럴수록 기대한 나만 병신같잖아. 네가 멈칫거릴때마다 내가 얼마나 무안해지는지 알기나 해?"
혜지는 죄송이란 말이 듣기 싫다고 하자 눈동자만 굴려대며 벌벌 떨었다. 어쩐지 어제도 본 것 같은 친숙한 광경이다.
사죄의 말을 빼앗자 할 말이 없어지는건, 머릿속에 사죄할 생각밖에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현우로서는 지금의 상황을 좀더 이어가도 좋을 긍정적인 신호였다.
"아까부터 나 혼자만 또라이 되는 기분이야. 뭐든 다 해준다고 바람 불어넣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뭐가 되냐고. 날 왜 자꾸 미친놈으로 만들어."
"진짜... 진짜 안 그럴게요. 제가... 아니 멍청한 암캐년이... 멍청해서... 실수 했어요."
"됐어. 그 진짜란 말도 이제 집어치워. 이왕이면 좋게좋게 넘어갈랬는데, 안되겠다. 잘못해도 벌 한 번 안 주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정신을 못 차리네."
혜지는 현우의 입에서 나온 벌이란 말에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정신 없이 핥아대던 혀가 일순간 동작을 멈추고 헛숨을 흡 들이켰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는 혜지. 그래, 말로만 사과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충분히 벌을 받을만 하다.
분명 잘못을 한게 맞으니, 벌을 받는게 당연했다.
혜지는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마음 속으로 그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어떤 벌을 받을지 네가 정해.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알지?"
"네, 당연히... 당연히 잘못을 했으니까... 젖탱이, 아... 아니 엉덩이..."
"어떤 잘못인지부터 똑바로 말해 봐."
현우는 체벌에 앞서 그녀의 잘못부터 분명히 인식시킬 생각이었다. 성공적인 수업의 원리가 익숙한 만큼, 성공적인 체벌의 원리도 익숙했으니까.
체벌의 시작은 피체벌자의 잘못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것이 되어야했다.
"흐윽... 주인님의, 주인님의 도구가 되기로 했는데, 뭐든 해준다고 했는데... 실망시켰어요. 발을 손가락처럼 빨라고 했는데... 못 그랬어요."
"어제도 이런걸로 혼났었지?"
"네..."
"그럼 두 번째네? 어제 젖탱이 쳐맞으면서 뭐라고 말했어?"
"명령에... 명령에만 따르겠다고 했어요."
"근데 또 그래? 어제 쳐맞은게 부족했지? 아니면 정말 멍청한건가?"
"아... 아..."
혜지는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앓는 소리만 냈다. 현우도 굳이 대답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대답을 강요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어제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그녀의 마음을 또 한 번 짓이기는건, 체벌의 정당성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실수를, 심지어 어제도 혼났으면서, 또 다시 저질렀다는 사실.
그건 특히 체벌의 강도를 높이기에도 아주 좋은 구실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후... 됐고, 엉덩이로 하자. 앞에 벽으로 가서 서.”
현우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냉랭하게 말했다. 조금의 웃음기도 들어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말투. 변명은 조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혜지는 쏜살같이 벽으로 달려가 차렷 자세로 선채 다음의 명령만을 기다린다.
"벽 짚고 상체 숙여. 뒷치기 할 때처럼 다리 벌리고 엉덩이 내밀어."
현우는 바지의 허리띠를 풀어내며 그녀에게 명령했다. 오늘의 체벌은, 손이 아닌 도구를 사용할 속셈이었다.
가죽 허리띠 정도라면 채찍의 훌륭한 대체재가 될 터. 그녀의 새하얀 엉덩이에 시뻘건 줄이 새겨질 모습을 상상하니 음습한 성욕이 튀어올랐다.
흥분으로 충혈된 현우의 눈에 혜지의 쭉 뻗은 하얀 다리와 탐스런 엉덩이가 들어왔다. 싱싱한 여체가 부드러운 살가죽을 내밀고 곧 있을 채찍질만을 기다린다.
현우는 벽 쪽으로 걸어가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손길이 와닿자 분홍색 팬티에 가려진 살덩이가 움찔거린다.
곧있을 채찍질을 생각하면 엉덩이를 감싼 이 천쪼가리부터 치울 필요가 있었다.
현우는 얇은 팬티의 밑단을 붙잡고 엉덩이 골 사이로 밀어넣었다. 둔부의 갈라진 틈 사이로 천이 말려들어가자 마치 T팬티를 입은 것처럼 속살이 그대로 노출 됐다.
현우는 그렇게 그녀를 고정시켜놓고 조금 뒤로 물러나 방금 풀어낸 허리띠를 오른손에 거머쥐었다.
휙하고 휘두르니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제법 살벌하다. 허리띠 끝으로 바닥을 내려치니 가죽이 튀기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오늘은 이걸로 때릴거야.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현우는 일부러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조금의 불만이라도 내비쳤다간 그대로 끝일 것만 같은 칼같은 어조다.
혜지는 자그마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온몸이 경직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오늘의 모든 것이 그러했다. 단지 오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랬을 뿐인데...
분명 한 송이의 장미꽃을 건네준 사람도 오빠였지만, 지금 가히 형용키 어려운 두려움을 느끼게하는 사람도 오빠다.
그치만 두려움이라니. 그녀는 현우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이를 꽉 깨물고 도리질을 쳤다.
뭐든 해줄 수 있는 사람, 평생 함께 하고픈 사람. 그리고 자신의 목숨만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 오빠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운명의 짝이어야 했다.
혜지의 부서진 마음은 어떻게든 방어기제를 찾아나섰다.
다행히 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상황을 납득할 수 있는 합리화의 틀을 짜냈다.
모든 의문과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을 그 틀에 집어넣고 단단히 봉한다.
자신은 오빠가 두려운게 아니라, 체벌이 두려울 뿐이다. 이건 오빠와는 조금도 상관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무릎을 꿇으며 동의한 일이었고, 자신이 약속한 일이었다.
단지, 내가 못 나서, 어제도 혼나놓고 또 잘못을 저질러서.
그래, 멍청한 내 잘못에 대해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일 뿐이었다.
이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불협화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녀의 끔찍한 합리화는 어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신속히, 그리고 완벽히 마무리 됐다.
현우의 손에 들린 허리띠가 몹시도 두려웠지만,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 오빠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현우를 향한 눈먼 사랑이 혜지의 이성을 완벽히 덮어버렸다.
"괜찮아요... 때려주세요, 주인님. 뭐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다행이네. 이번에도 못 하겠다고 했으면 정말 실망할 뻔 했거든. 혹시라도 그랬으면 그대로 플레이 끝낼 생각이었어."
헤지는 천천히 숨을 죽이며 애꿎은 아랫입술만 짓씹었다. 옳은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있을 채찍질에 대한 공포로 정신을 붙잡기가 힘겨웠다.
현우는 허리띠를 여러 차례 휘두르며 그녀를 후려치기 적당한 길이를 가늠했다. 공기를 휙휙 가르는 소리가 울려퍼질수록 혜지는 점점 몸이 얼어붙었다.
뒤를 돌아볼 수 없는 그녀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감각은 오직 청각. 휙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당장이라도 엉덩이를 내리칠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지만 허리띠는 빈 공기만 갈랐다.
현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허리띠를 휘두를 때마다 움찔대는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다.
마치 쌀보리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엉덩이를 내민 술래는 언제 쌀이 나올지 몰라 가녀린 몸만 바들바들 떨어댄다.
그녀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띠를 제대로 움켜쥐었다.
"오늘은 뭐라고 하면서 맞을래? 네가 지킬 수 있는 말을 스스로 정해."
"어... 아무 생각 않는... 도구가... 도구가 되겠습니다로 할게요."
혜지는 현우가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에게 꼭 필요할 법한 말을 조합해냈다.
인격이 없는 도구라는 말과 생각을 그만두고 통제권을 맡기라는 말.
그 두 가지가 합쳐지니 스스로가 인간이길 포기하고 자아를 말살하겠다는 끔찍한 맹세가 만들어졌다.
"지킬 수 있어? 난 분명히 지킬 수 있는 말을 하라고 했어."
"네! 도구...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아무 생각말고, 주인님이 명령하신 대로 다 할게요."
"흐음... 근데 아무 생각도 안 하면 안 되지. 그건 기계랑 다를 바가 없잖아."
현우는 그녀의 핀트가 조금 어긋난 것 같아 멘트를 수정해줄 필요를 느꼈다.
생각을 그만두라는 말은 어떤 명령이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이었지, 아무 자율성도 없는 인형을 원하는게 아니었으니까.
"주인님의 기쁨만을 생각하는 도구가 되겠습니다로 해."
오히려 그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자율적인 인형이었다. 비록 그 자율성이 한 사람의 기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네, 그럴게요. 그 말로 할게요."
혜지는 현우가 알려준 말을 몇 차례 중얼거리며 입에 붙이려고 노력했다. 그녀에겐 이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 외웠지? 자세 잡고 숫자 똑바로 세. 일단 얼만큼 성의를 보이는지를 보고 몇 대 때릴지 정할거니까."
체벌의 준비를 완벽히 끝마친 혜지. 아까도 든 생각이지만 이 여자는 정말이지 자신에게 괴롭힘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성이 잘 맞았다.
행동 하나, 말 하나에 놀랍도록 민감하게 반응해온다. 그것도 현우가 바라는 방향대로만.
"준비 됐냐니까?"
현우는 짜증 섞인 어투로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허리띠로 여자를 내려치는 것은 현우로서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인지라 어떤 손맛일지가 자뭇 기대 됐다.
어차피 벽에 쳐박힌 얼굴로는 바닥밖에 보이지 않을테니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네, 네! 때려주세요 주인님."
"그냥 때려달라고만 하니까 뭔가 밋밋한데. 그게 다야?"
현우는 허리띠를 휘두르기 직전까지 혜지를 집요히 괴롭혔다. 고작 그게 끝이냐고, 더 잘할 순 없냐고 쏘아붙인다.
생각할 여유가 없는 여자에게 생각을 강요하고 맨정신으로 말하기 힘겨운 말을 어떻게든 말하게 만든다.
일부러 그녀를 몰아붙여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정신마저 알뜰살뜰 고갈시킨다.
"아... 멍청한 암캐년에게... 벌을 주세요. 마음껏 때려주세요."
"때려달라는게 밋밋하다고 했는데 또 때려달라네. 장난 쳐?"
"흐윽...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멍청해서, 아니 암캐년이... 암캐년이 멍청해서 정말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
혜지는 거의 정신이 나가기 직전인지 가쁘게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체념의 심정이 중얼거림에 짙게 배어있었다.
가엾고도 애처로운 목소리. 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울음기가 섞여있는 것이 현우의 가학심을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