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조교 2일차 (3) (35/87)



〈 35화 〉조교 2일차 (3)

인간 이하의 장난감이 되겠노라 다짐하며 무릎 꿇은 여자에게는 과연 무엇부터 시켜야 할까.


현우는 혜지의 매끄러운 뺨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잠깐의 말장난으로 그녀를 마음대로 다뤄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심지어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이어도 괜찮다는 동의까지 얻어냈으니 거리낄건 없었다.

다만 현우가 지금 고민하는 이유는, 그녀를 가지고  방법이 너무나 많아서다.

수십 개의 반찬을 앞에 두고 뭐부터 젓가락을 놀릴지를 모르겠는 것처럼, 어떠한 욕구든 모두 받아주겠다고 하니 어느 것부터 풀어놓을지가 고민 됐다.

그렇게 그녀의 뺨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찰나, 현우는 그녀가 아까부터 짓고 있는 미소가 문득 눈에 거슬렸다.


앳된 얼굴에 걸린 싱그러운 웃음, 특히나 순진한 눈망울을 반달로 휘어가며 만들어내는 눈웃음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기특한 남자친구에게 상을 내리고 흐뭇해하는 꼴이지 않은가.


 건방진 웃음부터 일그러뜨리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곱게 휘어진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보고 싶어졌다.

현우는 혜지의 입술을 비집고 조금의 예고도 없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하으응... 하아아..."


혜지는 입에 손가락이 들어오자 옅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아마 입보지를 쑤셔주면 신음소리를 내라는 어제의 명령이 떠오른 모양. 그 모습이 주인의 손길에 헥헥거리는 암캐를 떠올리게 했다.

"오늘 하루는... 계속 그렇게 생글생글 웃어 봐. 내가 뭔 짓을 하든 간에. 알겠지?"


"흐응... 네, 주인님."

현우는  있을 능욕에 앞서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여자가 과연 언제까지 건방지게 웃어댈  있을지 시험해볼 요량이었다.


아무리 가혹하게 다뤄도 지금처럼 헤실거리며 웃는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볼만한 구경거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명령에 따르는 혜지의 눈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지만 현우는 시종일관 무심한 얼굴로 그녀의 입속을 헤집었다.


혀를 비틀었다가 잡아당기고, 입천장을 꾸욱 눌러 뭉개기도 하고. 마치 보지를 손가락으로 후벼파듯 여린 속살을 마음대로 농락한다.


아마 이 입으로 하루종일 고객님을 종알거렸겠지. 그 고객들 중 누군가는 혜지의 탐스런 입술을 보면서 잠시 시선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방금까지 그런 일상의 영역에 속해 있던 이 여자의 입이, 지금은  안의 장난감 신세로 전락했다.


이리저리 비틀고 잡아당기는대로 고개가 홱하고 딸려온다.

현우는 그런 사실에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한층  가학심을 고조시켰다.


놀고 있던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고개를 확 꺾었다. 그리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목구멍 너머로 손가락을 쑤셔넣었다.

목젖을 지나 거의 손목까지 작은 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현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입에 넣은 오른손을 난폭하게 흔들어댔다.


“우웁.... 우붑... 웁읏....”

굴욕적인 자세로 토해내는 끅끅거리는 소리. 턱을 타고 질질 흘러내리는 침. 시간이 지나면서 옅은 비명마저 흘러나왔지만 결코 고개를 뒤로 빼지 않는다.

현우는 조금씩 바스라지는 그녀의 웃음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지의 얼굴에서는 비록 연한 웃음일지언정 그 웃음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이정도면 현우도 조금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이 얼마나 순진한 영혼이란 말인가.


한낱 폭력에 불과한 행위를 사랑의 증명이라 착각하고, 어떻게든 웃어보려 용을 쓴다.

아무리 무자비하게 목구멍을 유린해도 꽉 쥔 주먹만 애처롭게 버둥대며 묵묵히 몸을 맡긴다.


현우는 뒤틀린 조소를 날리며 그녀의 머리채를 한층  우악스럽게 휘어잡았다.

거의 천장을 바라볼 만큼 확 꺾인 입 속에 손을 아까보다 더 거칠게 쑤셔넣는다.


이젠 거의 토를 해댈 기세로 꺽꺽대며 몸을 떨지만 현우의 손길을 피하려는 시늉은 조금도 하지 않는 혜지.


"꺼으으읍... 끄윽... 끄으으억..."

그런 혜지의 비참한 몰골을 감상하며 한참동안 손을 놀렸다. 현우는 그녀의 붉어진 눈가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러내리는걸 보고서야 손을 빼냈다.


"허으윽... 하아... 하아..."


혜지는 현우의 손이 빠져나가자 그동안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잘게 떨었다. 흘러내린 침으로 엉망이 된 얼굴이지만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조금의 불만도 내비치지 않는다.


"암캐년의 목보지는... 기분 좋으셨나요 주인님?"

오히려 적당히 숨을 고르자마자 공손한 어투로 사용감을 물어왔다. 보지의 조임을 물어보는 법을 가르쳤더니 제법 응용도 할 줄 아는 기특한 여자였다.


"후... 씨발년이 존나 꼴리게 하네?"


현우는 그녀의 볼을 툭툭 때리며 말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자국하며,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따라 바들대는 어깨가 아까보다 훨씬 더 보기 좋았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미소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이 여자는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바르르 떨어대는게 제일  어울린다.

"넌  물건이지?"


"네... 저는, 아니 암캐년은... 주인님 소유의 물건이에요."

툭하고 던진 말에 재깍 대답해온다. 그런데 듣고보니 암캐년이란 말이 물건이란 말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물건과 어울리는 말은 오나홀이나 변기 같은 말이니까. 현우는 그녀의 언어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를 느꼈다.

"아까 내가 너 스스로를 말할 때 뭐라고 하라고 했어?"

"암캐년... 암캐년이요 주인님."

"그거말고 어제 낙서했던 말들 또 있지? 널 사람이 아닌 도구로 취급하는 말들. 기억나?"


"오나홀이랑... 음, 정액변기랑, 걸레년이랑... 아, 걸레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말을 이어가다 걸레년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급히 말을 고쳤다.

자신이 뱉어낸 천박한 말에는 조금의 의문도 품지 못한   것 아닌 말실수로 허둥댄다.


현우는 그 모습이 우스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자그마한 입술로 오나홀과 정액변기를 나불거리는 모습도 그랬지만 그 말을 저렇게 순진하게 웃으면서 내뱉다니.


이쯤되면 이 여자에게는 이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새로운 경계는 오빠의 취향과 취향 아닌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뭐, 어찌 됐든 좋은 일이다. 현우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할 말을 골랐다.

"지금부턴 너를 가리킬 땐 그런 말들을 쓰는거야. 암캐년, 오나홀, 정액변기 같은 말들. 내 앞에선... 널 인간이 아닌 존재로 낮춰서 부르란 말이야. 알겠지?"


현우는 태연한 말투로 그녀가 스스로를 사람으로 지칭할 권리를 영구히 박탈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지 혹은  반대인지에 대해 의견은 분분하지만, 스스로가 내뱉는 말이 어느 정도 정신에 영향을 끼치리란건 분명했다.


암캐년이란 말도 나쁘지 않았지만, 자기비하의 언어는 다양할수록 효과가 더 좋을 터.

그렇기에 스스로를 오나홀로 부르도록 만든다. 사람이 아닌 정액변기라 말하도록 한다.

고작 말뿐이었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내릴수록 그녀의 정신은 조금씩 그것에 물들어갈 것이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과 예속의 맹세를 동의어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하나둘 앗아감으로써 그녀의 정신을 조각낼 계획이었다.

"네... 이해했어요 주인님."


"한번 해봐, 지금 바로. 내가 알려준 자기소개에 섞어서 해보면 되겠네."

혜지는 방금의 말을 되새겨보는  잠시간 조용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 저 정혜지는 인간이 아니라... 주인님의 오나홀이에요. 주인님이 원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자위도구에요. 그리고... 주인님 정액은  받아마시는 정액변기년이에요."

어제 립스틱으로 몸에 적어보았던 말이기에 벌써 익숙해져버렸는지, 그녀는 현우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매끄럽게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제법 현우의 취향에 맞는 말들을 만들어내 청아한 목소리로 지저귄다.


그러나 조금 단조로운 맛도 없지 않아 있었다.


오나홀, 정액변기... 하나같이 자신이 가르친 식상한 표현들이다. 조금  창의성을 발휘했으면 싶었다.


"내가 가르친 말들 말고... 음, 네가 생각해둔 다른 말도 있지? 내가 말했잖아, 적극성을 보이라고. 그럼 하나 정도 떠올려놓은게 있을거 아니야."


그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질문이 혜지를 얼마나 괴롭힐지 짐작이 갔기에 웃음이 나왔다.


이전부터 자기주장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낼지보다 어느 만큼 끙끙거릴지가 더 기대 됐다.

이왕이면 더 크게,  많이 당황할수록 좋았다.  당황을 물고 늘어지면 시작부터 그녀를 몰아세우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혜지는 할 말을 잊어버린 채 고민에 빠졌다. 미소를 지으라는 명령만 아니었으면 미간이 찌푸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간신히 옅은 미소만 머금은 채로 현우가 좋아할 법한 말들을 쥐어짜낸다.

그녀가 기껏 떠올린 말이라곤 창녀 정도.

어제 커뮤니티를 둘러볼  좀더 꼼꼼히 둘러볼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뇌리를 스쳤다. 아니, 적어도 오늘 낮에라도 한번쯤 더 둘러볼걸.

"음.... 창녀? 개같은 년? 아...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를 창녀로 비하하면서도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말을 끝냈지만 현우가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하니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오빠가 부탁까지 한 일인데 소홀했다는 생각, 미리 적절한 정답을 떠올려놓지 못했다는 생각.


순식간에 온갖 생각이 솟구치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다행히도 그 생각중에는 지금의 초조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도 섞여있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아니, 암캐년이... 생각해둔 말이... 없어요."


혜지는 쏜살같이 고개를 쳐박고 머리를 조아렸다. 공손히 양손을 모으고 이마를 차가운 바닥에 댔다.

넙죽 엎드려 주인의 자비를 바라는 노예의 자세. 그녀의 마음은 작은 불안조차 이기지 못하고 또 한 번 굴복했다.

현우가 무자비하게 목구멍을 쑤셔댄 탓에 처음의 여유를 상실하기도 했지만 불길한 침묵이 그녀의 불안 증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흐으음..."

현우는 탐탁치 않다는  침음을 흘리며 그녀의 조아린 뒷통수에 천천히 발을 올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선명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아마 혜지는 창녀도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현우의 성에 차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모양이지만 그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생계가 곤궁해도 결코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겠다며 근근이 알바로만 연명하던 그녀다.

그런 여자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를 창녀라 비하한다는건, 본인의 신념이나 가치관보다 현우를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


현우는 혜지의 정신이 한 달의 시간동안 얼마나 마모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닳아 없어지다보면, 그 결말이 어떨지 몹시도 궁금했다.

"혜지야."

"네, 주인님."

"후... 이건 주인이 아니라 남자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그러니 그냥 듣기만 해."


지극히 따스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그녀의 뒷통수를 조금씩 짓누르기 시작하는 현우의 발은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혜지는 바닥과 맞닿은 얼굴이 뭉개지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의 신음도 내지 않고 숨을 죽였다.

"난 오늘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자기가 기뻐할까하는 생각 뿐이었어. 그건 자기도 잘 알거야."

현우는 일단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입을 놀렸다. 이 순간을 이용해 그녀의 죄의식을 부추겨볼 속셈이었다.


그녀가 잘못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신이 병든  여자가 잠시를  참고 먼저 몸을 엎드려왔으니 꾸중의 당위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현우는 차려진 밥상을 거절할 바보가 아니었다. 남은건 지금 상황에 대한 아전인수격인 해석 뿐.

아무리 억지논리라 하더라도 그녀 스스로가 잘못이라 인지한 이상 그걸 나무라는건 쉬운죽 먹기였다.

"근데 자기는 아니었나 봐. 무언가 큰걸 바라는 것도 아니야. 작은 말  마디 정도면 되는데... 생각해놓은게 정말 하나도 없는거야?"

"아... 주인님, 제가 오늘... 바빠서... 일을 한다고... 아..."


혜지는 뭐라 둘러댈 변명을 찾지 못하고 가녀린 몸만 좀더 웅크렸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어젯밤부터 저항의지를 상실해버렸기에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특히 지금 같이 잘못을 질책받는 경우라면 더욱더. 지금의 상황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 어제의 상황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현우는 그녀가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고 직감했다. 그녀를 몰아세울 물꼬가 트였다.


"하... 바빠서? 그럼 난 뭐야.  하나도 안 피곤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난건가? 왜 그런 변명을 하는거야? 진짜 조금도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어?"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변명해서 죄송해요..."


혜지는 쓸데없는 변명으로 현우의 화를 부채질 했다는 생각에 갸날픈 목소리로 용서만을 빌었다.


괜히 함부로 입을 놀렸다는 생각, 지금의 갈등을 모면하고 싶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합쳐져 맹목적인 사죄의 말만을 늘어놓았다.


PTSD가 불러일으키는 순간적인 공황 증세는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을 떠올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이 산산조각난게 불과 하루 전이다. 채 24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은 무너진 방벽을 다시 세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빌다보니 모든게 자신의 잘못이라는 합리화가 어김없이 작동했다.


지금의 상황에 저항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차라리 자비를 구걸하는게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


그녀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그런 생각이 그릇된 합리화에 박차를 가했다.


"어제 그랬지. 시키는 것만 할 생각말고 적극적이면 좋겠다고, 그렇게 부탁까지 했어. 맞아 아니야?"


"맞아요..."


"근데 오늘 하루종일 한번도 생각 안해본건 조금 그렇잖아. 내가  출근하든 말든 잠만 퍼질러 자거나 퇴근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면 너도 서운하지?"

"네..."

현우는 혜지가 제정신을 차릴  없도록 말끝마다 대답을 요구했다. 더  갈등을 회피하려는 혜지의 성격상 무조건적인 동의를 표해올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녀는 그런 동의가 더 깊은 수렁에 몸을 던지는 바보짓이라는걸 모르는지 꼬박꼬박 대답해왔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해준걸로 유세를 떠는건 아니야. 그건 진짜 해주고 싶어서 해준거고, 원래 뭘 요구할 생각도 없었어. 알지?"


일단 그녀의 잘못을 적당히 납득시켰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스스로의 결백함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을 그녀의 책임으로 돌릴 생각이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어제처럼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어렵지 않아보였다.

"대답해. 지금 억울해서 그러는건 아니지?  꾹 닫고 있지말고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서운해하는 내가 이상한거야?"

"아니, 절대 아니에요. 하나도 안 억울해요. 다 맞는 말이라서, 그래서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물론 어떻게 보면 내가 예민할걸 수도 있지만... 나 좋으라고 이것저것 해주면 기쁜게 사람 마음이고,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해주면 서운해지는게 또 사람 마음이잖아?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보라고."

혹시 모를 불만을 잠재울 그럴듯한 구실 하나는 필요했기에 역지사지를 들먹이며 그녀의 감정에 호소한다.


언제나 그랬듯 너도 나였으면 서운했을 것이란 말이면 충분했다. 지나치게 여리고 섬세한 이 여자는 그 말을 곱씹으며 부족한 논리의 공백을 알아서 메꿀 테니까.


결국 요지는 하나다. 모든건 너의 잘못이며 네가 모자란 탓이다. 작은 꼬투리를 하나 잡아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크게 부풀린다.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쉴새없이 쏘아붙인다.


안그래도 병적인 불안 증세를 보여오는 참이었는데 조금씩 기름을 끼얹어주니 알아서 활활 타오르는 꼴이 볼만했다.


"맞아요... 당연한건데, 변명을... 변명을 해서... 잘못했어요."

"진짜 시간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긴 하지. 나도 그건 이해해. 근데 생각해볼 시간이 아주 조금도 없었다는건 네가 생각해도 변명 같지?  그런 뻔한 변명이 오히려  서운한거야."


"죄송해요..."


현우의 교활한 혀가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며 잔뜩 활개를 쳤다. 그럴수록 혜지에게는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남지 않았다.


현우는 그녀가 중얼거리는 사죄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뒷통수를 발로 즈려밟았다.


그는 지금의 이런 상황이 좋았다. 자신의 손과 입 안에서 한 영혼을 쥐락펴락하는 기분.

육체적으로 학대하고 천박한 말을 내뱉도록 하는 것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재밌는 일은 그녀의 근본부터 비가역적으로 망가뜨리는 이런 행위였다.


불안해하는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불안해하는게 사랑스럽다.

그 불안을 유발시킨 것도 자신이고,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자신이라는게 현우의 정복욕을 한껏 채워주었다.


"일어나."

현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혜지는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짓눌렸던 볼이 조금 붉어져있었다.

조금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까스로 미소를 만들어내는게 애처롭다.


"뭘 잘못 했는지 말해봐."


"거짓말을, 아니... 변명을 해서, 떠올릴 시간이 있었는데... 시간이 없었다고..."

그녀는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얼빠진 모습으로 횡설수설했다.

무엇이 잘못인지, 그것이 잘못이 맞긴 한건지는 생각지 않고 그저 잘못만을 빌어온다.


현우는 혜지의 중얼거림을 적당히 들어주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신이 저지른 일이긴 했지만 말 몇 마디에 이토록 넋이 나가는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하긴, 원래 정신병에 걸린 사람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비논리적이기 마련이니까.

현우는 정상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비논리를 그럭저럭 수긍하는 아량을 발휘하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정도로 몰아세웠으면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으니 혼란에 빠진 그녀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참이었다.

"오늘 잘못한건 봐줄 수 있어. 대신 앞으로는 내가 알려준 커뮤니티라도 한 번씩 들어가봐. 잠시만 둘러봐도 많은걸 배울  있을 테니까. 그 정도의 성의는 보일 수 있지?"

"아... 네... 꼭, 꼭 그럴게요 주인님."


혜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드시 그러겠다는 말을 연거푸 입에 올렸다.


아마 내일부턴 현우가 말하는 '성의'를 보이기 위해 커뮤니티를 뒤지며 온갖 음란한 말들을 공부하겠지.

현우가 할 일은 날마다 새롭게 쌓이는 그녀의 천박한 지식을 관람하는 일뿐이다.


무척이나 훌륭한 선순환이 하나  자리잡았다는 생각에 제법 마음이 흡족해졌다.

어제의 노력 덕분인지, 두 번째 조교는 시작부터 예감이 좋았다.


현우는 불안하게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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