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조교 2일차 (1)
1.
“이거 나 주는 거야?”
혜지는 현우가 불쑥 내미는 장미꽃을 보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고급스러운 종이로 감싸여진 보라색 장미꽃 한 송이.
누가 봐도 자신에게 건네는 선물 같긴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라 얼떨떨했다.
“보라색 장미도 있었구나. 나 보라색은 처음 봐. 예쁘다...”
“그러게. 색깔이 좀 특이하긴 하지?”
현우는 머쓱하게 웃으며 혜지의 손에 장미꽃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보니 보라색이 낯설긴 하다.
보통 장미라고 하면 붉은색 장미가 제일 흔하기도 하고 보라색은 죽음 같은 불행한 사건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현우가 보라색을 선택한 것에는 별다른 뜻이 담겨있지 않았다. 붉은 장미보다 보라색 장미가 천원 더 저렴했을 뿐이다.
색이야 어찌 됐든 결국 다 같은 장미였으니, 대충 손에 들려주고 몇 마디 덧붙여주면 그녀를 감동시키는건 비슷하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별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감동한 눈치다. 혜지는 잔뜩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응, 완전!”
혜지는 건네받은 장미꽃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다. 달콤한 장미향이 코를 간질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퇴근길에 꽃을 들고 기다리는 남자친구라니. 아침에 이어 저녁마저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네. 안 좋아하면 어쩔까 싶었는데.”
“에이, 이런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혜지는 손에 든 장미가 신기한 나머지 걸으면서도 계속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꽃잎이 몹시도 부드러웠다.
그러다 문득 의아함이 들어 입을 열었다.
"근데... 갑자기 웬 장미야?"
현우는 그녀의 물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차분히 말을 골랐다.
여기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장미 한 송이가 지니는 가치를 마음대로 뻥튀기 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고민을 끝낸 현우는 매끄럽게 혀를 움직였다.
“잔다고 연락 못한게 좀 미안하기도 했고...”
일단, 연락이 늦어진 것을 사과하며 운을 뗀다. 지금의 감동을 이용해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서운함부터 깨끗이 씻어내린다.
옅은 웃음을 지으며 쑥스럽게 꺼내는 말과는 별개로 현우의 눈은 그녀의 표정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짓는 밝은 웃음 위로 조금의 서운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과의 말을 더 꺼낼 필요없이 바로 다음의 말로 넘어가도 될 듯 싶었다.
“뭘 해주면 너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을까 한참 고민했는데... 연애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더라고. 근데 검색해보니까 여자들이 꽃 선물을 좋아한다며. 너도 좋아해줄까 싶어서... 용기내서 한번 사봤어.”
이번에 연기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순진한 남자. 조금 서툴 뿐이지, 그녀를 향한 사랑만큼은 진심이라 느끼도록 만든다.
꽃 한 송이에 은근슬쩍 한 편의 서사도 부여했다.
아무렇게나 고른 꽃이 검색과 고민 끝에 신중히 고른 선물로 둔갑해버렸다.
자고로 선물이란 이야기와 함께할 때 한층 더 빛이 나는 법이었으니까.
“대박... 그런건 또 언제 검색했대?”
“집 가는 버스에서. 이따 저녁에도 자기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거든. 말했잖아, 오늘 우리가 사귀고 첫 날이라고.”
방금의 말에서 진실은 사귀고 첫 날이라는 말뿐이다.
새카만 거짓말을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려니 조금 우습긴 하지만 이런 말랑말랑한 말들이 그녀의 마음을 얼마나 간지럽힐지를 생각하니 좀더 의욕이 샘솟았다.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해야 이 여자를 더 설레게 할까. 역시, 선물에는 그럴듯한 상징도 하나쯤 있는게 좋아보였다.
“그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꽃이야. 여자한테 꽃 선물 해보는건 혜지 네가... 처음이거든.”
현우는 이쯤 말하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진심도 담지 않은 꽃 한 송이에 순식간에 서사와 상징이 깃들었다.
이런게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일까. 현우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라 조금은 뿌듯했다.
“나도, 나도 처음이야 오빠. 남자한테서 꽃 받아보는거...”
“그럼 우리 둘다 처음인거네? 그러니까 더 기분 좋다. 자기도 처음, 나도 처음.”
이제 현우가 할 일은 더이상 없어보였다. 나머지는 이 여자의 풍부한 상상력에 맡기면 될 일이다.
안그래도 감수성이 풍부한 여자였으니 방금 늘어놓은 말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감상에 젖겠지.
연신 ‘처음’을 중얼거리며 함박웃음을 짓는게 그 속은 안 봐도 뻔했다.
현우의 생각대로 혜지는 지금 손에 들린 꽃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평생 간직하고픈, 인생에 단 한 번 뿐일 첫 장미.
마음 속 한 켠에 따스한 무언가가 쌓이는 기분이었다.
“정말 고마워 오빠. 오늘 손님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거든. 완전 힘난다.”
혜지는 지금의 마음을 옮길 적당한 말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사랑한다는 말은 터질듯한 마음을 담아내기에 너무나 부족했다.
사랑 그 너머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간절하다. 그리고 혜지는 그런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현우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내가 평생... 진짜 평생 오빠꺼 할게. 알지? 나 어제부터 오빠 소유의, 그, 암캐라는거. 나도, 나도... 오빠를 기쁘게 해주는 암캐가 될게.”
그러나 그 말로도 무언가 모자랐다. 지금의 이 감정이라면, 그를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오늘밤에 오빠가 시키는건 뭐든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오빠를 사랑해.”
혜지는 현우의 목에 두른 팔을 풀고 눈을 마주쳤다. 부디 자신의 사랑이 전달되길 바라면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진짜?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어?”
혜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의 말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도 오빠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들려준 말을 곱씹을수록 더욱 그랬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좋아할까를 끙끙거리다,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일'을 검색해보는 모습. 그러다 꽃선물을 발견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쭈뼛거리며 꽃집에 들러서는 어땠을까. 어떤 꽃을 사야하나 신중히 고르며 한참을 고민했겠지.
그렇게 골라든 장미를 손에 들고 자신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꽃송이를 건네고, 자신이 기뻐하니 덩달아 기뻐한다.
이런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운명이라 저장해놓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남자였다.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어. 나는... 나는, 오빠만의 암캐니까, 그러니까... 시키면 뭐든 다 할게요, 주인님.”
혜지는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예속의 맹세를 입에 올렸다. 뜨거운 밤이 필요한 이런 날에 하필 생리가 터졌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한 그녀였다.
“하... 자기야. 길거리에서 그러니깐 개꼴린다. 나 지금... 잘 못 걷겠어.”
혜지는 현우의 말을 듣고 그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슬랙스의 사타구니 부분이 불룩 솟아있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남자에겐, 밥보다 급한게 있어보였다.
“배 안 고프면... 바로 집으로 갈까요, 주인님?”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크게 웃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방금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둘에게 필요한건, 저녁밥 따위가 아니다.
“그럼 나 살게 있는데... 그것만 사고 바로 집으로 가자.”
현우는 혜지를 데리고 근처의 드러그스토어에 들렀다. 신림역 근처에는 그녀가 일하는 매장말고도 수많은 매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콘돔과 핑거 콘돔, 그리고 흔히 러브젤이라 불리는 아스트로글라이드를 샀다. 혜지는 콘돔을 집어드는 현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건 갑자기 왜?”
“너 생리 터졌다며. 혹시라도 넣게 되면, 콘돔 껴야지. 생리 중에 삽입하면 몸에 안 좋다니까.”
현우는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마 러브젤에 대해서는 별 말 없는걸 봐선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실 방금 구매한 콘돔은 그녀의 보지에 사용할 콘돔이 아니었다. 러브젤도 마찬가지다.
모든건 그녀의 뒷구멍을 길들이기 위한 준비물.
애널섹스를 한답시고 곧바로 자지를 쑤셔박는건 2D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현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러브젤이 필요했다.
일단은 젤을 묻힌 손가락부터 시작해 그녀의 뒷구멍을 천천히 확장시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지까지 박아넣을 수 있는 육변기가 완성될 테니까.
가게를 나온 둘은 서서히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이좋게 손깍지를 끼고 돌아가는 길. 혜지는 아침에 이어 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침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 탓이다.
현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잠시 후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의 걱정도 없어보였다.
뭐든 하겠다는 그녀의 각오가 어느 만큼의 크기인지는 몰라도.
저 얼굴이 조만간 눈물로 망가질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우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조금 진정되었던 물건이 다시 발기하는걸 느꼈다. 잠시 후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쿠퍼액이 새어나왔다.
고작 3000원짜리 장미와 몇 마디 말로 얻어낸 뭐든 하겠다는 맹세. 그 말이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혜지야, 아까 그 말 한번만 더 해주라.”
“뭐?”
혜지는 현우를 바라보다 그의 툭 튀어나온 바지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가 어떤 말을 바라는지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순진하고 귀여운 남자다. 자신이 이 남자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는게 뿌듯했다.
“오늘 주인님이 시키는건, 뭐든 다 할게요. 주인님의 기쁨이 제 기쁨이니까... 오늘 제가 꼭 기쁘게 해드릴게요.”
어젯밤 읊어대던 노예맹세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그의 마음에 들만한 말을 만들어냈다. 귓가에 후 하고 입김까지 불어넣으니 부르르 몸을 떠는게 느껴졌다.
현우는 방금의 선물이 이 여자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빚을 안겼는지 한번 더 짐작해볼 수 있었다.
받으면,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기특한 여자다.
아무 꽃집에서 대충 집어든 꽃 한 송이가 대단한 가성비를 발휘했다.
하긴, 선물은 가격이 아닌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건넨 선물에서 그 마음이라는 것을 상상해준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기대할게. 방금 그 말, 믿는다?”
혜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미소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현우는 오늘밤에도 그녀를 체벌할 생각을 떠올리며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녀를 체벌할 때 방금의 꽃을 손에 들게 하거나 아니면 입에 물려놓는 것도 퍽 괜찮은 그림 같았다.
여러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아까부터 터질 듯 부풀어오른 물건이 애타게 자유를 갈구한다.
“오빠, 나 좀 씻고 생리대부터 갈고 나올게.”
현우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혜지의 손목을 확 끌어당겼다.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뜬 그녀를 무심히 내려다봤다.
“씨발년아. 사람 꼴리게 했으면 책임부터 져야 할 거 아니야.”
그녀는 갑작스런 욕설에 잠깐 당황한 모양인지 잠시간 대답이 없었다. 현우는 그녀가 입고 있는 얇은 흰티 위로 젖가슴을 꽈악 움켜쥐며 한 번 더 말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지? 네가 뭐라고?”
나직하게 울려퍼지는 현우의 말. 혜지는 그제서야 표정을 가다듬으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는 김현우 주인님 소유의... 암캐입니다.”
“네 발로 엎드려.”
혜지도 방금의 명령으로 둘만의 역할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녀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명령에 따랐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개처럼 엎드리니 쫙 달라붙은 청바지가 그녀의 엉덩이 라인을 여실히 드러낸다. 풍성한 금발이 목덜미를 타고 보기 좋게 흐드러졌다.
현우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머리채를 그러모아 한 손에 움켜졌다. 목줄이 없으니 머리채라도 잡고 끌고 갈 생각이었다. 그녀의 머리끄댕이를 질질 잡아끌며 말했다.
“침대까지 기어서 따라와.”
혜지는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바닥을 기었다. 이 정도 거친 행동쯤이야 뭐, 오빠의 취향중 하나이니까.
씻지 못 하는게 조금 찝찝하긴 해도 오빠의 성욕에 최대한 장단을 맞춰주고 싶었다.
그러나 혜지는 현우의 마음 속에 어느 만큼의 추악한 성욕이 꿈틀거리는지 짐작하지 못 했다. 그저 내 남자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 뿐이었다.
현우는 침대에 털썩 걸터앉아 혜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순진한 눈을 반짝이는게 오늘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네가 뭐든지 한다고 했지?”
“네 주인님.”
“그럼 내가 뭐라고 하든, 절대로 안 된다느니, 싫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마. 알겠어?”
“... 네 주인님.”
“팬티만 남기고 다 벗어. 나 바라보고 웃으면서.”
혜지는 입고 있던 반팔티부터 들어올리며 벗기 시작했다. 속옷에 감싸인 탐스런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브래지어 끈을 잡아내리면서 한시도 현우를 바라보는 눈을 떼지 않는다.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야말로 손님을 접대하는 고급 창부의 모습. 사랑과 취향을 들먹이며 조금씩 타락시켰기에 이정도의 스트립쇼 정도는 눈도 꿈쩍 않는다.
“신음도 내봐. 보는 것만으로 개꼴리게. 존나 걸레년처럼 벗어보라고.”
“하으으응... 주인님. 제가... 제가 옷 벗는거 구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제가라고 하지 말고 암캐년이라고 해. 제가는 사람 같잖아.”
현우는 툭 하고 명령을 던졌다. 이젠 그녀의 언어를 하나씩 오염시켜갈 속셈이었다.
물건 혹은 동물로 취급하는 말은 사귄 지 하루 만에 익숙하게 만들었으니, 다음 단계로는 스스로의 가치를 깔아뭉개는 말을 가르쳐야 했다.
물건으로 치면 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쓰레기라고 비하한다. 혹여 그녀가 반발하면 그저 말일 뿐인데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타박한다. 적당히 선을 넘나들며 조금씩 그 선을 넓혀간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며 그녀의 자존감을 조금씩 깎아내리다보면 바람직한 노예의 언어를 그녀의 영혼 깊이 각인시킬 수 있을 터였다.
“암캐년이... 옷 벗는거 구경해주세요 주인님.”
혜지는 여전히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내며 천천히 브래지어를 끌어내린다. 양팔 사이에 가슴을 끼우고 한껏 요염함을 뽐낸다. 혀를 쭉 내밀고 가슴을 흔들어댄다.
“좋네. 바지도 섹시하게 벗어봐. 보는 것만으로 싸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혜지는 꿇었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며 좌우로 골반을 씰룩였다. 웃는 얼굴로 연신 야릇한 신음을 쏟아내며 바지의 지퍼를 끌어내린다.
“아흐읏... 주인님, 암캐년 젖탱이 흔들리는거 봐주세요.”
어깨를 좌우로 씰룩이며 허리를 빙글빙글 돌린다. 출렁이는 젖가슴 끝에 매달린 그녀의 유두가 통통해져있었다.
그야말로 한 남자의 기쁨을 위한 스트립쇼. 현우의 말 한 마디에 어떤 천박한 행동이든 거리낌이 없다.
그건 그녀의 넘쳐나는 의욕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될 일이긴 했다.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둘 사이의 규칙. 어제의 경험으로 그 규칙을 뼈 속까지 내재화한 혜지는 자신도 모르게 훌륭한 노예의 마인드를 체화했으니까.
오빠를 실망시킬까봐 NO라는 말은 쉽사리 할 수 없을테니 남은건 복종 혹은 체벌이었다. 그리고 어제의 체벌이 끔찍했던 만큼, 복종이 훨씬 더 쉽게 느껴질 것이다.
“골반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면서 바지 조금씩 내려.”
한때 유행했던 걸그룹의 댄스를 떠올리게 하는 명령.
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릎을 조금 벌린 채로 골반을 흔들었다. 그녀의 허벅지 밑으로 바지가 조금씩 흘러내리며 분홍색 팬티가 드러났다. 입가의 싱그러운 미소는 여전하다.
발목까지 내려간 바지를 옆으로 걷어내니 팬티 한 장만을 걸친 나신이 되었다.
현우는 하얗게 빛나는 여체를 눈에 담았다.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을 지나 하얀 목덜미와 가녀린 어깨를 눈으로 훑는다. 어젯밤 젖가슴에 찍은 낙인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뭘 멀뚱히 있어? 지금 어떤 자세 해야할 것 같아?”
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재빨리 양손을 뒤통수로 가져간다.
혀를 쭉 내밀고 기마자세를 취한 채 팬티에 가려진 보지를 쑥 내민다.
현우가 바라던 정답이었다.
모든 치부를 드러낸 채 검사를 기다리는 가축같은 자세. 평범한 연인 관계라면 상상도 못 할 비정상적인 광경이다.
현우는 그 광경을 흡족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밤의 가혹한 조교를 시작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