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조교 1일차 (11) (28/87)



〈 28화 〉조교 1일차 (11)

혜지는 현우의 손이 가슴을 쓰다듬자 흠칫하고 놀랐지만 이윽고 몸을 내맡긴  긴장을 풀었다.


아까의 난폭함과는 정반대로 오직 따스함만이 전해져왔다.

현우는 안타깝다는듯 쓰다듬으며 어쩔 수 없는 처벌이었음을 어필했다. 그러면서도 단호한 어투로 주인의 권위를 내비쳤다.

"많이 아팠겠네. 그래도 잘 참았어. 그만큼 너도 진지한 마음이라는 뜻이겠지?"

혜지는 아까까지의 상황이 힘겨웠던 만큼 지금의 따뜻함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할  밖에 없었다.


바로 그게 그녀를 보호하는 무의식의 역할이었고, 갈등을 몸서리 칠 만큼 싫어하는 그녀의 본성이었으니까.

"저 진짜... 흑... 주인님 진심으로 사랑해요. 전 주인님꺼에요. 제 가슴, 아니... 제 젖탱이도 주인님꺼에요."

혜지는 그 따스함을 조금이라도 더 쬐고자 사랑의 말을 읊었다.

현우가 가르쳐준 대로 지저분한 예속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정신을 현우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것에 집중하며 그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소녀의 순진함과 사랑에 대한 열망이 그 모순적인 행태를 부추겼다.


그래, 지금은 오빠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일 뿐이며,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되풀이했다.


현우는 혜지가 질끈 깨물고 있는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혜지의 쇄골을 핥아내려간다.


새하얀 몸에 축축한 타액과 입술 자국을 조금씩 남겼다.


이 여자가 간절히 원하던 부드러움을 한껏 담아 그녀를 어루만졌다.


그렇게 한동안 정성껏 핥아주니 혜지의 넋이 나간 얼굴에도 약간의 활기가 돌아오는게 보였다.

현우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애무를 시작했다.


그녀의 유두를 입술 사이에 물고 잘근거린다. 혀로는 유두의 끝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래로 뻗은 손은 그녀의 민감한 곳만 골라 희롱했다.


혜지는 몸을 감싸는 쾌락에 서서히 이전의 고통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부터 폭주하던 아드레날린이 온몸의  한 올까지 곤두세운 탓에 오히려 평소보다 진한 쾌락이 찾아왔다.


혜지는 가슴과 아래에서 올라오는 찌릿함에 눈을 잘게 떨었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 몸은 노곤하게 늘어져 지금의 애무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 했다.


점점 그녀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흐으으응... 주... 주인님..."

"편하게 불러도 돼. 자기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니까."


세상만사는 기브  테이크였다. 그리고 현우는  것을 받았으니 작은 것 하나 정돈 내어줄 용의가 있었다 .


그녀가 좋아하는 평범한 연인 간의 섹스라면 방금의 폭력과 얼추 균형이 맞을듯 했다.


"흑... 오빠... 현우 오빠..."


그녀는 작게 흐느끼며 연신 오빠를 중얼거렸다. 자신도  수 없는 서러움이 치솟아 칭얼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잘못이었고, 합당한 체벌이었다고 그녀 스스로가 인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마음 속  켠에 지독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혜지는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현우에게  매달렸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우리.


그것만이 지금의 공허함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의 가엾은 영혼은 거짓사랑에 조금씩 잡아먹혔다.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스스로를 내밀었다.

현우는 그런 그녀의 전신을 정성껏 애무해주며 그녀의 영혼을 농락해갔다.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말과 꿀이 떨어질 듯한 눈빛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뱀의 혀도 숨겼다.

"지금부턴 내가 자길 기분 좋게 해줄게. 자기도 나한테 맞춰주려고 최선을 다 했으니까."


비인간적인 가혹한 착취와 지금의 가벼운 애무를 교묘히 퉁쳤다.


그녀는 그런 몰염치한 말을 듣고도 들뜬 숨을 헐떡이며 몸을 비틀어대기 바빴다.


조금이라도 더 몸을 바짝 붙이기 위해 격렬히 껴안아온다.

"첫날인데 잘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지. 내일부터 더 잘하면 되고. 그래줄거지?


"아으읏... 응, 그럴게. 내일부터 더 잘할게... 이해해줘서... 이해해줘서 고마워 오빠."

혜지는 드디어 완전히 용서받았다는 안도감과 부드러운 말투에 취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광소를 터뜨렸다.


이미 병든 마음을 제뜻대로 주물럭대는 일은 이토록이나 쉬운 일이었다.

현우는 애무를 계속 이어간다. 한차례 격정이 휩쓸고 지나간 몸은 갑작스런 자극에 전기가 통한  반응했다.

그녀를 흥분시키는 방법이라면 그녀 본인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자극점을 찾아 한참을 지근거렸다.

그럴수록 혜지는 밀려오는 쾌락의 파도에 몸을 내맡긴채 휩쓸렸다.


아까부터 망치질하듯 쿵쾅거리던 심장이 다시금 펄떡인다.

지금의 흥분이 방금의 폭력이 남긴 잔상인지 아니면 에로틱한 성감인지 그녀 자신도 분간할  없을 만큼 모호해졌다.

그렇게 불안과 공포, 흥분과 희열이 뒤섞일수록 그녀의 정신이 흐릿해진다. 남아있던 원인 모를 서러움도 모두 털어버렸다.


민감한 곳만 톡톡 건드려오는 손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신음을 토해내는 일에만 집중했다.


더이상의 고민을 포기하고 자극에만 반응하는 한 마리 짐승같이 굴었다.


어느새 축축히 아랫도리를 적신 애액이 침대까지 퍼져나가 시트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제 넣을게. 어떤 자세로 하고싶어?"

"나 끌어안고, 정상위로... 정상위로 넣어줘 오빠."


정상위는 혜지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였다. 넓은 품에 안겨 온몸으로 체온을 교환하다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따스함이 생생히 느껴졌으니까.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두를 입구에 맞췄다.

이윽고 아랫배를 쿵쿵하고 두드리는 현우의 분신이 그녀의 몸 전체를 울렸다.


그건 아까의 폭력만큼이나 항거할 수 없는 쾌락이었다.


혜지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쾌락에 전율을 느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에 비명만을 질러댄다.

"아으으으윽 오빠! 너무 좋아! 오빠 자지 너무 좋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더운 숨을 헐떡인다. 손과 발로 현우의 단단한 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조금 더 깊이 그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현우는 능숙한 솜씨로 혜지를 절정의 문턱에 데려갔다. 익히 여러 번 경험했던 신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허리가 조금씩 침대에서 떠올르더니 점점 활처럼 휘어진다. 양 손으로 침대자락을 꽈악 움켜쥐고 입술을 깨문다.

"혜지야 좋아? 사랑해! 너도 사랑한다고 말해줘! 허윽..."


"오빠... 흐읏, 사랑해. 난 오빠꺼야. 흐어엉 나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혜지는 아까의 상황이 빚어낸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격한 신음소리에 섞어 날려버렸다.


쾌락이 그녀의 이성을 가렸다. 불안함을 극도로 경계하는 그녀의 무의식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쾌락과 손을 잡았다.


아까의 폭력은 현실이 아니었노라 외면해버린다. 잠시의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여넘긴다.


심지어 방금의 상황은 자신이 원하던 상황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이 동의한 규칙이었고, 자신이 선택한 처벌이었다.

이미 걸레짝이  그녀의 이성은 과거의 선택을 의심하기보다 더욱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었다.


'맞아, 난 오빠의 여자친구고, 오빠의 모든 걸 이해해줄 수 있는 운명의 상대야. 내가 아니면 누가 오빠를 이해해줘.'


더군다나 한 줌의 가치도 없을 책임감이 그녀의 정신을 꽁꽁 옭아맸다. 그것은 상처받은 영혼이 기댈  있는 그럴싸한 명분이기도 했다.

도덕적으로도 옳아보였고,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자신이 대단해보이기도 했으니까.

비로소 방금까지의 공포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안도감에 완전히 젖어든다.


아까부터 흐릿해지던 정신이 완전히 암전하고 시간관념이 흐려진다.

그녀는 이제 생각하길 완전히 내려놓았다.

현우의 몸 아래 깔려 절정에 다다르고 싶다는 욕구 뿐이었다.


그러면서 그와 영원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단꿈에 젖었다. 그와 함께 하는 미래를 떠올리며 충족감을 느꼈다.

"오빠,   것 같아!  빨리! 오빠  빨리 박아줘! 나 쌀 것 같아! 하으으으으으응!"


그녀는 마침내 걷잡을  없는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떨었다.

자신을 유린한 가해자의 품에 안겨 극상의 희열에 몸부림쳤다.

극과 극을 오간 그녀의 정신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덩달아 그녀의 영혼도 한 점씩, 한 점씩 바스라지고 있었다.

혜지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녀도 지금의 눈물이 무엇때문인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눈앞의 따뜻한 품에 기대고 싶었다.


어미를 파고드는 새끼강아지처럼 현우의 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오빠, 내가 더 잘할게... 내가 진짜 잘할게..."


그런 그녀의 입에서는 누구를 향한 다짐인지 모를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우는 깊고 그윽한 시선으로 혜지를 내려다봤다.

"나도 더 잘할게. 우리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주고, 사랑하자."

현우는 울고 있는 그녀의 눈부터 시작해 그녀의 코에, 그녀의 입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몹시도 소중한 것을 조심히 다루는 모습이었다.

혜지는 하얗게 치아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모습이 현실이며 오빠도 나를 사랑한다. 아까의 상황은 규칙을 어긴 자신 탓이다.'

혜지는 방금의 모든 상황을 그 두 문장으로 정리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현우도 혜지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다 안다는 듯한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왜 웃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입가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인간성은 한 꺼풀 더 벗겨지고 있었다.

현우는 울고 웃는 혜지의 기이한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킥킥거렸다.

사귄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정신적 학대를 넘어, 육체적 학대를 일삼았다.

정상적인 연인 사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를 사랑의 탈을 씌운  뻔뻔히 디밀었다.

그렇게 이 여자를 순수한 폭력에 굴종시켰다. 심지어 뒤끝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이 여자를 보면서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는 첫 조교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트라우마를 뛰어넘어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에 업적 하나를 달성한 기분이다.

그건 그녀를 노예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고비를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처음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 세 번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이제 현우는 조금씩 단계를 조정해가며 그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었다.


음란한 말과 행동을 가르친 것처럼, 시간만 충분하다면  여자를 마음껏 채찍질할 날도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오직 자신의 가학성을 채워주기 위한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그 모습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현우의 조교 첫째날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들이 연인이 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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