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조교 1일차 (9) (26/87)



〈 26화 〉조교 1일차 (9)

현우는 검사 자세를 취한 채 명령을 기다리는 혜지를 바라봤다.

그녀에게선 지금의 꾸중에 대해 반발하는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주인의 자비를 바라는 가축처럼 커다란  눈만 끔벅이고 있다.


그리고  눈을 가득 채운건 불안과 초조. 천박한 자세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없이 젖가슴과 보지를 내밀고 처분만을기다린다.

현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결심이 섰다.


처벌을 내리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 그 처벌을 무엇으로 할지가 고민이었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는 그리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남은 건 오직 혀를 놀리는 일 뿐이다.

“아까 네가 말했지?  번 더 잘못하면 몇 대든 맞겠다고.”

“...네, 주인님.”

혜지는 침을 꿀꺽삼키며 현우의 눈치를 살핀다. 과연 몇 대나 맞아야 오빠의 화가 풀릴지 벌써부터 걱정됐다.

“왜, 막상 하려니 마음에 안 들어? 못하겠으면 지금 말해. 사람 마음 가지고 놀지 말고.”

 한  안 깜빡이고 뻔뻔스런 말을 쏘아내는 현우.

정작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그였건만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아니에요 주인님. 저 할 수 있어요! 원하시는 만큼 맞을게요! 때려주세요!”

혜지는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는 오늘 더이상 오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오빠의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하늘에 맹세코 그럴 의도는 조금도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덩달아 그녀의 눈을 채운 불안감도 커져만 간다.


“후... 진짜야? 네 진심을 믿어도 돼?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되냐고."

"네. 주인님이... 주인님이 원하시는 만큼 때려주세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혜지는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대로 하겠노라 약속한 것도, 잘못을 저지르면 몇 대든 맞겠노라 약속한 것도 자신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의 체벌이 당연하다는 합리화가 똬리를 틀었다.


현우는 그런 혜지를 지켜보다 자신이 큰 자비를 베풀어준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너에게 선택지를 두  줄거야. 네가 둘중에서 골라."

혜지는 현우의 말투따윈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다음에 이어질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무시무시한 말이 날아들었다.

“엉덩이를 맞으면 열 대야.”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현우. 먼저 그녀가 좀처럼 수용하기 힘든 패부터 제시할 속셈이었다.

예상대로 혜지의 눈동자에는 파문이 인다. 앙다문 입술에서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느껴졌다.


현우의 노림수대로다.

그녀가 첫 번째 패를 버겁다고 느낄수록 비교적 간단해보이는 두 번째 패를 감사히 받아들일 터.


그것이 상대가 몰고간 막다른 골목인지도 모른채 합리적인 선택이라 스스로를 위로하겠지.


“왜, 불만이야? 네가 몇 대든 맞겠다며. 그냥 해본 소리였어?”


혜지는 머리속이 새하얘진 상태였다. 세 대만으로도 엉덩이가 욱신거렸는데 열 대를 맞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현우가 내뱉은 차가운 말이 혜지를 짓눌렀다. 그녀는 깜짝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관계가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폭력에 대한 공포를 잠재워버렸다.


“아니에요, 맞을 수 있어요. 열  맞을게요.”

결국 혜지는 당장이라도 엉덩이를 내밀 기세로 소리쳤다.

그러나 현우는 여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직 내  안 끝났어. 엉덩이를 맞으면  대라는 거였고... 젖탱이로 맞으면 세 대로 봐 줄거야.”

혜지는 그 말에 멍청히 선채로 현우를 바라봤다. 방금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현우는 혜지의 새하얀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친절히 알려주었다.


“여기, 네 젖탱이로 맞으면  대로 봐주겠다고. 이해했어?”


“아... 네, 이해했어요.”

“그럼 어디 맞을래?”

혜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가슴을 맞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엉덩이를  대 맞는 것 보다는 가슴을 세  맞는 것이 훨씬 나아보였다.


끔찍한 것과 덜 끔찍한 것. 지독한 이분법 사이에서 혜지는 차악을 골랐다.


 판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젖탱이... 젖탱이로 세 대 맞을게요, 주인님.”


현우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엉덩이를 때릴 생각은 없었다.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 그녀의 새하얀 가슴을 제손으로 맘껏 후려치는 것.

아까 혜지의 노예맹세를 들으면서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 여자의 목을 조른다면, 뺨을 때린다면, 혹은 가슴을 때린다면...


하지만 목조르기는 그 위험성때문에 거부감이 클테고, 뺨은 인격을 짓뭉갠다는 상징적 의미가 커 자칫하면 선을 넘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현우가 택한 것은 가슴. 혜지의 젖가슴에 붉은 손자국을 새기고 싶었다.

마침 이 여자가 좋은 빌미를 제공해오기도 했다. 현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덥석 움켜쥐었을 뿐이다.

그녀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인 끝에 순조로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럼 가슴으로 세 대야. 아까처럼 숫자 세. 세고 나선 ‘명령에만 따르는 암캐년이 되겠습니다’도 외치고. 외치면서 마음 속 깊이 새겨.  실수  하게.


“네, 주인님.”


혜지는 손목을 툭툭 터는 현우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에겐 지금의 폭력이 얼마나 말도  되는 것인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대가 아닌 세 대라는 것에 안도하다가, 곧 있으면 닥쳐올 미지의 고통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현우는 슥하고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첫 발은 위에서 아래로 후려칠 생각이었다.


혜지의 가슴은 아마도 긴장 탓인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두눈에 자신의 먹잇감을 가득 담는 현우. 적당히 눈대중으로 목표를 겨냥한다. 그리곤 그녀의 새하얀 가슴을 힘껏 내리쳤다.

짜악 -

엉덩이를 때릴 때와는 다른 소리가 났다. 그 흔들림도 엉덩이와는 비교할  없었다.

엉덩이가 다소 탄탄한 느낌이라면, 이건 부드러운 고무공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 정복감이 엉덩이와는 비교도  됐다.

현우는 이 여자의 모성을 유린했다는 쾌감에 자지를 껄덕거렸다.

누군가는 부드럽게 주무르기만해도 감사해할 가슴을 폭력으로 능욕했다.


그 증거로 그녀의 새하얀 가슴살이 금세 새빨갛게 부어오르며 손자국이 남았다.


“흐으으윽...  대! 명령에만 따르는 암캐년이 되겠습니다.”

그녀는 찌르르 몸을 울리는 고통을 눌러참으며 발만 동동 굴렀다.

머리 뒤로 깍지낀 손에 힘을 꽉 줬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질  같았다.


“검사 자세 제대로 유지해. 누가 발 구르래? 그게 내가 가르친 자세야? 내가 발 움직여도 좋다고 명령했어?”

혜지는 현우가 내지르는 일갈에 몸이 얼어붙었다. 또다시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함이 그녀를 뒤흔들어놨다. 오직 현우를 거슬러선 안된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선 채로 가까스로 고통을 눌러참았다. 벌어진 입가로는 침이 흘러내린다.

조용히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가 그녀가 삭이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현우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구경했다.

방금은 자신의 욕망 그대로 조금의 배려도 없이 온힘을 다해 내리쳤다.


이 여자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마음껏 욕구를 분출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더 이상 역할극이 아니라, 순수한 악의에서 피어오른 날 것 그대로의 폭력.


물론  번째부턴 조금 힘을 빼줄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체벌하지만 자신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는 연기를 곁들이면서.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그러나 겉으로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조금씩 내비쳤다.


"두 대째 때릴거야. 아까보단 살살 때릴테니까 젖탱이 앞으로 내밀어."

혜지는 허리를 꺾으며 가슴을 내어보였다. 그녀의 눈가도 그녀의 벌게진 가슴만큼이나 붉게 물들고 있었다.


현우의 손이 들리는걸 보더니 잔뜩 긴장한 채 이를  깨물었다.

쫘악 -

현우는 이번에 대각선 아래에서 위로 후려갈겼다. 힘을 제법 줄였지만 여전히 그 고통이 상당한 모양인지 으윽하는 신음성이 들려왔다.

“두, 두 대! 명령에만 따르는 암캐년이 되겠습니다.”


혜지는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또 눈물을 흘려댈 기세였다. 하여튼간 눈물이 많은 여자다.


“마지막  대야. 다 맞으면 감사인사도 붙여.”


“네, 주인님.”


그녀는 왼손을 들어올리는 현우를 보고 내심 안도했다. 다행히 반대편 가슴을 때릴 생각인가보다.

쫘악 -

마지막  대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현우는 마지막으로 어디를 때릴까 고민하다가 옆가슴을 갈겼다.


윗가슴, 아랫가슴을 때렸으니 옆가슴도 때려보고 그 감촉을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 결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것이 손맛이 제일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자세도 제일 편했다.


“세 대! 명령에만... 흐윽 따르는 암캐년이 되겠습니다!”

혜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방울의 눈물을 떨궜다. 그러면서도 감사인사를 잊지 않고 덧붙였다.

“혼내주셔서... 제 젖탱이를 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후우...  억울해?”

“아니에요 주인님. 제가 잘못한게 맞아요. 제가 허락도 없이 멋대로 굴었어요. 명령에만 따르기로 했는데...”


혜지는 끝말을 얼버무리며 열심히 현우를 변호했다.


이미 벌어진 비합리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어기제는  상황이 합리적이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일밖에 없었다.

그녀의 무의식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착실히 움직였다.

그의 분노가 정당한 것이어야 방금의 폭력도 정당한 것이기에 필사적으로 이유를 갖다붙였다

혜지는 말을 할수록 현우의 분노가 타당한 것이고, 규칙을 어긴 자신의 잘못이 크게만 느껴졌다.

“잘 아니까 다행이네. 네가 그럴수록 나도 힘들어.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는건가, 내 말을 농담으로 생각한건가 싶잖아. 진지할 땐 진지했으면 좋겠어.”


현우는 모든 책임을 혜지에게로 돌리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쏟아냈다.

너만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자신은 어쩔 수 없노라고 한탄하는 듯 했다.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되는 개소리라 화를  법한 궤변.


그러나 혜지는 조금의 반론도 펼치지 못했다. 아니, 그녀는 오래 전부터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혜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현우의  안에서 서서히 망가지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마치 탕 속에서 조금씩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그녀의 영혼과 정신은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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