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조교 1일차 (6)
현우는 혜지가 그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추악한 욕정에 불과했지만 이만큼의 관심을 받아보는 것도 처음일 테니까.
'커뮤니티도 잘만 이용하면 큰 도움이 되겠어.'
현우는 마음속으로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실제로 그녀는 처음의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는 온데간데 없이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커뮤니티는 혜지를 타락시킬 훌륭한 촉매제가 되어줄 느낌이다.
"우리 자기 이러다 네임드되는거 아니야?"
현우는 우선 그녀의 인정욕구부터 건드려볼 속셈이었다.
그녀가 커뮤니티의 관심을 일종의 보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더 큰 관심을 받기 위해 더 자극적인 사진을 올리도록 한다.
그렇게 그녀를 서서히 중독시키면 조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임드? 안그래도 사람들이 댓글에서 네임드 어쩌고 하더라."
현우도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고 댓글들을 천천히 살폈다.
[새로운 네임드 탄생의 순간인가요ㅎㅎㅎㅎㅎㅎ 잘보구 갑니다!!]
ㄴ [이정도면 네임드 ㅇㅈ이죠ㅋㅋㅋ 앞으로 활동 자주해주세요]
ㄴ [ㅇㅇㅇㅇㅇ 첫인증에 이 수위면;;; 낙서개꼴리넹ㅋ]
혜지가 말한 댓글이 바로 눈에 띄었다.
사진 세 장에 네임드 이야기까지 나오는걸보니 사람들도 그의 작품성을 알아봤나보다.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사람을 네임드라 불러. 개쩌는 사진 올리는 사람들."
"헐, 그럼 우리가 올린게 대박친거네? 나 이제 여기 셀럽된거야?"
"그런거지. 우리 자기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대박 맞아."
현우는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고 새하얀 몸을 직관했다. 저들이 열광하는 사진 속 여자가 바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어느 미친년이 제몸에 정액변기니 오나홀이니 하는 말을 적고 정액을 개처럼 핥아먹을까.
사람들이 네임드라 떠들어대는 것도 호들갑은 아니었다.
게다가 혜지가 지닌 흥행 요소가 한둘이 아니긴 했다.
21살의 어린 나이, 하얀 피부, 핑크빛 꼭지, 말끔히 제모된 핑보까지.
여기에 남자친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그의 변태성마저 이해해주는 착한 마인드가 더해지면 남자들의 판타지나 마찬가지였다.
현우는 지금의 반응이 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고 극찬받는 일은 그에게도 몹시 흡족한 일이었다.
"헤헤... 다행이다. 이제 여기 사람들이 오빠 개부러워하겠는데?"
"안그래도 부럽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네. 넌 어때?"
"응? 뭐가?"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사람이 된 기분이."
"아...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생각보다 재밌긴 해. 오빠는? 이런거 해보고 싶었을거 아니야."
"개좋지. 나도 맨날 부러워만 했었는데 부러움 받으니깐 얼떨떨해. 그리고 음..."
현우는 말을 줄이다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얼른 말해보라는듯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사이만큼이나 이 프밍이란 아이디도 더 특별해지면 좋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면 되는거지, 여보?"
현우는 은근슬쩍 혜지의 마음을 떠본다. 굳이 말 안해도 그 대답을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당연하지, 나만 믿어. 내가 우리 오빠 짱 네임드로 만들어줄거야."
현우는 밝게 웃으며 혜지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녀를 구슬릴 좋은 카드가 생겼다.
그 카드는 바로 '커뮤니티에 올리고 싶은데 한 번만 해주면 안돼? 네임드로 만들어준다며' 카드.
이름은 우스꽝스럽지만 언젠가 조교 과정에서 한 번은 써먹게 될 치트키였다.
"자기야, 이제 낙서한거 지울까? 그 상태로 이불 덮으면 묻을 수도 있으니까. 물티슈로 닦아줘?"
"아, 맞다. 그럼 화장실에 클렌징워터 있거든? 화장솜이랑 같이. 그거 가져와서 닦아줘."
현우는 그녀가 말한 물건을 가지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오늘은 첫날이니만큼 직접 닦아줄 생각이었다.
"닦을테니까 폰 이제 그만 내려놓고 누우세요~"
혜지는 클렌징워터를 적신 화장솜이 와닿자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천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근데... 이거 지금 지울 필요가 있나? 사람들이 댓글에서 말해준거 더 적어서 올려준다고 하지 않았어?"
"됐어, 뭘 그런걸 신경써. 그냥 말해보라고 한거지 올려준다고는 안 했잖아."
"음... 그래도 기대하는 사람 있을거 아니야. 쌩까면 좀 그렇지 않을까?"
혜지는 흐으음거리며 작은 침음소리를 냈다. 착한건지 바보같은건지 모를 일이었다.
현우는 그 속내를 알 것도 같아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그럼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 딱 한 명만 골라서 해줄까? 솔직히 자기 지금 네임드 소리 듣고 신나서 그러는거지."
혜지는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응, 헤헤... 그런 것도 좀 있고. 사람들 반응이 너무 재밌잖아."
"으이그...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그럼 딱 한 명만이야. 원래 말하는거 다 들어주면 신비감이 없어. 네임드 될려면 비싼 척도 할 줄 알아야 된다?"
"맞아맞아.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딱 한 명만 이벤트 당첨된 것처럼 뽑아야지. 그럼 내가 골라도 돼?"
눈을 반짝이며 묻는 혜지. 현우는 마저 낙서를 닦아내고 그녀의 허벅지를 짝하고 두드렸다.
"맘대로 하세요~ 처음엔 쫄아서 말도 못하더니 지금은 아주 신났구만?"
혜지는 아이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현우를 끌어안았다.
"응. 막상 해보니깐 재밌네. 역시 오빠 말이 다 맞아. 색안경 끼고 편견부터 가지는건 멍청한 짓인거 같아."
얼핏 들으니 현우가 한 달 전 생각나는대로 내뱉었던 말과 흡사했다.
"자기 그거 혹시 내가 이상형 설명하면서 해줬던 말 기억하고 있는거야?"
"응! 나 그때부터 오빠가 천재 같았다니까? 진짜 말 개잘해. 내 남친 짱 멋져."
"자기가 그걸 기억해주는게 더 대단한거지. 그때도 나 많이 사랑했었나보네?"
현우는 그녀를 품에 안고 누우며 빙그레 웃었다. 혜지도 미소로 화답했다.
"나 사실 오빠 처음본 날부터 한눈에 뿅갔잖아. 진짜 이 남자 뭐지 싶었는데. 당연히 지금은 그때보다 훨훨 사랑하구."
혜지는 사랑을 속삭이는 것에 점점 거리낌이 없어졌다. 처음의 수줍은 사랑고백과 달리 지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현우는 문득 사랑한다와 맞물릴 새로운 세뇌 하나를 주입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야, 사랑한다는 말도 좋은데... 난 자기가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혜지는 작게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의 방식이란 말이 호기심을 끌어올렸다.
"예를 들면? 난 그런거 잘 모른단 말야. 오빠가 알려주면 그대로 할게."
"음... 몸도 마음도 전부 오빠꺼야라든지... 오빠 없이는 못 산다라든지.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겠지?"
혜지는 말없이 침묵만 지켰다. 그래도 불쾌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 단순히 아리송해하는 모양이었다. 현우는 말을 더 이었다.
"사랑한다를 넘어서 나한테 구속되겠다는 말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말이 자길 더 내 것처럼 느껴지게 해. 내가 더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줘. 그래서 날 안심시켜 줘."
현우는 예속의 맹세를 일상적인 사랑표현과 동의어로 만들어버릴 속셈이었다.
누군가 들으면 그 끔찍함에 몸서리를 칠 일이었으나, 이미 뼈속까지 길들여진 혜지는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아... 오케이, 입력했어. 내 남친 스타일대로 사랑한다고 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
혜지는 이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 분별력마저 잃은듯 했다. 현우의 추악한 욕망을 단순히 스타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내 몸과 마음은, 영~원히 오빠꺼야. 난 오빠 소유니까, 오빠가 시키는건 다 할게. 난 이제 오빠없이 못 살아. 그만큼 많이 사랑해."
혜지는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인지 말끝에 끼워넣었다.
현우도 그정도는 애교로 눈감고 넘어가줄 수 있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사람은 자신이 내뱉는 말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예컨대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일수록 사랑이 커진다.
그렇다면 그녀 스스로 복종을 고백하도록 만든다. 그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녀는 일종의 자기암시를 거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녀의 정신을 오염시킬 것이다. 그것이 중요했다.
"잘했어. 앞으로는 사랑한다는 말도 좋지만 내 스타일인 말도 꼭 해줘야 해?"
혜지는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만의 특별한 약속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라 웃음만 나왔다.
"그럼 이제 행운의 남자가 누가 될지 같이 한 명 골라볼까?"
"헤에... 벌써 댓글 100개 넘었다 오빠. 이거 언제 다 읽지."
댓글은 그 사이에 세 자리수를 돌파했다.
"칭찬하는 댓글들은 다 건너뛰고 멘트 적은 것들 위주로 봐보자."
혜지는 흐음하는 소리를 내며 댓글의 1페이지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픽하고 웃음이 새어나오는 댓글도 여럿 있었다.
[형님 그리고 형수님ㅜㅜㅜㅜ 낙서플 너무너무 부럽습니다ㅜㅜ 저도 여친이랑 넘해보고시픈데 말도못꺼내겠네요ㅋㅋㅋㅋ.... 제평생 로망입니다]
"오빠, 얘 쫌 귀엽다. 평생 로망이래. 근데 멘트를 안 적은게 아쉽네. 멘트만 있었으면 바로 얘로 골랐을텐데. 대댓글로 알려달라고 해볼까?"
"에이 그러면 없어보여서 안 돼. 지가 안 적었는데 지 잘못이지. 넘기고 다른 사람 골라."
헤지는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리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행히 본문에서 미리 언급을 한 탓인지, 눈쌀이 찌푸려지는 쌍욕은 없었다. 그러나 시선을 잡아끄는 멘트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혜지의 눈에 긴 장문의 댓글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