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조교 1일차 (5)
현우는 품에 안은 혜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나 말도 못할 만큼 좋았어. 많이 어색하고 힘들었지?"
혜지도 역할극이 끝났다는걸 알아차렸다. 활짝 웃으며 쾌할하게 답했다.
"벌써 끝이야? 더 하고 싶은거 있는데 말 못하는건 아니고?"
"그런거 아니야. 그리고 오늘은 첫날이니까. 아까 하려던 일도 남았잖아."
"헤에... 나 오늘 잘했어? 사랑스러워? 오빠 여자친구 좀 쩔어?"
"좀이 아니라 엄청!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 날 위해서 이렇게 최선을 다해줬는데. 너 아니면 누가 날 이렇게 이해해주냐."
현우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댔다.
새로운 원칙대로 이 여자의 동정심과 책임감을 마음껏 자극해댈 생각이었다.
"나 자기한테 명령하면서도 많이 떨렸다? 중간에 그만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분위기 이상해질텐데 하면서. 자긴 어땠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든 적 없어?"
"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냥 조금 마음이 싱숭생숭한 정도? 근데 중간에 오빠가 위로해줬잖아. 그때부턴 완전 파이팅 들어가서 뭔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역시나 도중에 부렸던 위선이 꽤나 효과적이었나보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아까 자기 보지 쫌 젖은건 왜 그런거야? 맞으면서 흥분한건 아니지?"
"에이... 그건 아니고... 오빠가 위로 한번 해주고나니까 긴장이 확 풀려서 그랬나봐. 내가 아는 오빠는 그대로고 이건 그냥 역할극이구나 생각하니까 평상시처럼 흥분한거지."
현우는 혜지의 반응을 꼼꼼이 모니터링했다.
이건 다 혜지를 섬세히 망가뜨리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총 감상평은 뭐야? 내가 이상한 자세 시키고, 이상한 말 시키고. 따라하면서 어땠어?"
현우는 일부러 눈치를 살피는 척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여자의 솔직한 감상이 궁금했다.
"오빠 또 걱정하는거지? 내가 흔들릴까봐. 안 그래도 된다니깐 왜 자꾸 그래. 나 오빠말 다 듣고, 다 이해하고 결정한거야. 오빠가 얼마나 자세히 설명해줬는데 그걸 못 알아들을까봐."
"그럼 말해줘. 어떻게 이해했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내 귀로 직접 들어보고 싶어."
혜지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아무래도 이 오빠의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평범한 말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자신이 실망할까봐 자꾸만 불안해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오빠의 취향은 그냥 여러 취향중에 하나인거고, 절대로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잊었어? 내가 먼저 오빠 애완동물 되겠다고 했잖아. 그럼 한 번쯤 사람을 믿어보란 말이야, 자꾸 흔들리지말고."
혜지의 목소리는 말이 끝나갈수록 커졌다.
그러나 화를 낸다기보다 단지 힘차게 말하려는 느낌이었다.
"말로만 듣는거랑 직접 겪어보는건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러지. 널 못 믿겠다는건 아니었어. 직접 해보니까 어땠는지를 묻고 싶은거야."
"생각보다 더 할 만 했어. 내가 한게 뭐 있다고. 그냥 오빠 명령에 절대복종하다가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며?"
"간단히 말하면 그렇긴 한데... 막상 막 대하는게 서운할 수도 있잖아."
"어떤거? 물건이나 동물처럼 다루는거 말하는거야? 에휴... 이 오빠 계속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드네."
혜지는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현우의 볼을 쭈욱 잡아늘렸다.
"내가 괜.찮.다.고.요."
현우는 그런 혜지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혜지의 말처럼 조금의 부정적인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놀라운 충성심이고, 놀라운 복종심이었다. 아니 놀라운 사랑이었다.
"오빠가 그런다고 내가 물건이고 동물인가? 그냥 섹스중에 하나라며. 어차피 끝나고나면 이렇게 또 꽁냥거릴건데 뭐가 문제야."
혜지는 투덜대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깐 내 눈치 그만 보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라고요. 남자가, 응? 하면 하는거지. 내가 괜찮다는데 계속 그러면 나 화낼거야?"
현우는 혜지의 머리를 헝클이며 피식 미소지었다. 피드백은 이정도면 충분했다.
이 여자의 정신세뇌는 자신이 놀랄만큼 정교한 수준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아무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곳이 존재했다. 바로 아까의 커뮤니티다.
"알겠어. 그럼 나도 점점 더 용기내서 솔직해질거야. 안 숨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말할거야. 나 이해한다는 그 말, 진짜진짜 믿어볼게. 이젠 절대 의심 안해."
현우는 일단 앞으로 수위를 점점 높여갈 것이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했다.
그리곤 달콤한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우리 앞으로도 쭉 같이 행복하자 혜지야. 나는 너 아니면 안될 것 같아 이젠. 고마워. 내가 더 많이 사랑할게."
그렇게 둘은 진하게 입을 맞췄다.
현우는 약간은 비릿한 정액맛이 느껴져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눌러참았다.
서로의 입을 오고가던 혀가 잠시후 제자리를 찾았다.
"당연하지. 나도 오빠 더 많이 사랑할게. 정액변기? 육변기? 더 말만 해, 쓸데없는 걱정하지말고. 오빠가 내 주인님이잖아. 내가 먼저 오빠 떠나가는 일은 절대로, 진짜 절대로 없어."
"나도 절대 너 버릴 일 없어. 자기는...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내꺼니까."
현우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우웩하는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딴 유치찬란한 말을 해대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혜지의 반응을 보니 그래도 오글거림을 참은 보람은 있었다.
"맞아. 난 오빠꺼야... 난 오빠꺼...."
혜지는 오빠꺼를 중얼거리며 현우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오빠를 만난건 우연이었지만 그마저도 운명의 한 조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와 자신은 이 세상에서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관계였다.
그것은 단순히 이해했다를 넘어서 영혼으로 교감하는 초월적인 무언가였다.
혜지는 그렇게 믿었다.
현우는 그런 혜지를 지켜보다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미뤄왔던 인증 절차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커뮤니티는 혜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혜지는 그곳을 꾸준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각종 변태적인 행위들에 자연스레 노출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것이 일상으로 느껴지고 익숙해지겠지. 현우를 기쁘게 할 여러 잡지식을 주워담는건 덤이었다.
"인증사진은 이걸로 하고... 인증받고 올릴 사진은 이거 세 개 정도면 충분하겠지?"
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진을 골랐다. 혜지도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인증게시판에 올릴 사진으로는 침대에 누워있는 평범한 사진을 골랐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낙서가 가득했지만.
인증 후에 올릴 사진은 세 개였다.
벽에 기대 앉아 양손으로 보지를 잡고벌린 포즈, 복종포즈, 접시에 담긴 정액을 핥아먹는 포즈.
이 사진들이 불러올 반향이 몹시 기대됐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이것들로 올릴까?"
혜지는 얼굴이 나오는지, 신분을 특정할 만한 물건이 찍혔는지를 신중하게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인증은 오래 걸려?"
"아니. 거의 바로 돼. 되면 알려줄게. 쉬고 있어."
그후 둘은 각자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떼웠다.
현우는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며 인증 여부를 계속 확인했다. 그러기를 잠시.
"어, 인증됐다. 여기 마크 보이지? 이 아이디는 커플아이디라는거야."
혜지는 신기한듯 휴대폰을 바라봤다.
프밍이란 닉네임 옆에는 나란히 선 남자와 여자 그림이 보였다.
그게 오빠와 자기라고 생각하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인증사진도 바로 올릴거지?"
"응, 그래야지. 내용을 뭘로 적지?"
현우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혜지도 오빠의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신났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좋아? 으이구... 아주 애야 애."
"당연히 좋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내 여자친구가 얼마나 끝내주는 여자인지 자랑하는건데. 다들 존나 부러워할걸?"
뻔히 보이는 사탕발림이었지만 혜지는 기분 좋게 웃었다.
어찌 됐든 오빠가 기분이 좋아보이니 자신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런게 사랑인건가, 하는 생각에 풉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현우는 자신이 손에 넣은 암컷을 다른 남자들에게 뽐내보이고 싶었다.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우월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작품에 진심으로 감탄해줄 관객들이 필요했다.
현우는 게시판을 고민하다가 능욕/욕플 게시판을 골랐다.
이참에 온갖 음란한 말들에 혜지를 노출시켜볼 속셈이었다.
"제목 뭘로 하지? 내가 그냥 막 지어?"
"흐으으음... 원래 글 쓸 땐 제목 어그로가 중요한데... 이런건 나보다 오빠가 잘할거 아니야. 난 잘 몰라."
현우는 혜지의 말을 듣고 머리를 굴렸다. 몇 번인가 제목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니 그럴듯한 제목이 나왔다.
[고수위 사진有) 21살 절대복종 암캐노예년이 첫 인사 올려요♡]
이정도 어그로면 눌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우는 골라놓은 세 장의 사진을 업로드한 후 본문에 쓸 내용을 혜지와 상의했다.
"먼저 커플이라는 것부터 밝혀야 해."
"인증했는데 굳이? 마크 생겼잖아."
혜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드러냈다.
"그런거 있어도 한 번 만나자고 꼬셔대는 놈들이 많아. 얼마를 주겠다느니 그러면서."
혜지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어딜 가나 미친놈은 있구나. 그럼 오빠 말대로 하자."
그후로도 한참을 글에 적을 내용을 고민했다. 제목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번엔 혜지도 관심이 생겼는지 현우의 말을 참고하며 내용을 직접 작성하기 시작했다.
[보지벌리는거랑 암캐복종포즈랑 남친좆물 접시에받아서 먹는 사진이에요ㅎㅎㅎ
남자친구를 넘넘사랑해서 해달라는대로다해줬어용♡
가입도 남친이시켜서 합니당ㅋㅋㅋㅋ
쪽지, 댓글로 개인적인 연락하면 칼차단이구여...
남자친구랑 아이디 같이쓰니깐 매너지켜주세요!!!
인신공격 X / 심한욕 X / 야한말 O
아무한테나 뜬금없는 쌍욕듣고싶은건 아니니깐 선은 넘지말아주세여ㅜㅜ
대신 야한말은 수위 상관없이 가능입니다♡
마음에드는 말 잇으면 몸에 더 적어서 사진으로 올릴지도몰라요ㅎㅎㅎㅎ
댓글 많이많이 달아주세욬ㅋㅋㅋㅋ
댓글추천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혜지에게 맡겼더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이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생생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대로 올렸다.
둘은 게시물을 새로고침하며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했다. 그 재미가 쏠쏠했다.
"와... 추천 찍히는거보이지?"
"아 오빠! 첫댓글 달렸다."
[씨발년개꼴리네ㅋㅋㅋㅋ 존나따먹고싶다 옆모습보니깐 피부도 개씹 ㅅㅌㅊ에 핑두핑보 개꼴림]
그 밑으로도 혜지의 하얀 피부를 칭찬하는 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역시 하얀 피부는 남자를 달아오르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보다.
현우는 폰을 내려놓고 혜지를 바라봤다. 혜지는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 깊이 집중하고 있었다.
"재밌어? 어때, 해보니깐."
"개신기해... 나 뭔가 셀럽된 기분이야... 좋아요도 이만큼 받아본 적 없는데 벌써 추천수 50 넘었어."
이젠 오히려 혜지가 신나서 소리쳤다.
쏟아지는 관심과 댓글이 그녀에겐 색다른 자극인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