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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걸레에서 노예로 (2) (16/87)



〈 16화 〉걸레에서 노예로 (2)

"하아..."


현우는 답답함에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묵묵히 자지를 청소하던 혜지는 그런 현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참아온 말이 있었지만 현우가 뿜어내는 무거운 분위기를 보고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간이 꽤 지났건만... 이 오빠는 도무지 고백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관계가 단순히 섹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얼마전에 그런 의심을 했더니 오빠는 모든 연락처를 지우며 지금은 너밖에 없다고 화를 냈으니까.

그렇다면 왜 고백을 안하는걸까.


혜지는 자지를 입에 물고 고민했다. 아직 오빠가 말한 '오빠를 기쁘게 하는 여자'로는 부족한걸까


오빠가 원하던 야한 행동도, 야한 말도, 그리고 오빠를 만족시킬 기술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는데...


무언가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현우는 청소를 이어가던 혜지가 갑자기 숨죽은듯 가만히 있자 그녀의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혜지의 눈가에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혜지야 왜 울어? 아까 그렇게 아팠어?"


"아니, 오빠. 그건 진짜 괜찮은데... 그런게 아니라..."

혜지는 현우가 자신을 바라보자  서러워져 훌쩍였다.

"그런게 아니면? 갑자기 울면 내가 당황스럽잖아. 내가 또  잘못한거야?"

"아냐, 오빠 잘못... 아니야. 흐윽... 그냥 뭔가... 우리 사이가... 뭔가 싶기도 하고... 흑."


현우는 대충 혜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안그래도 얼마전 의심을 찍어 눌렀기에 당분간은 잠잠해질줄 알았는데...

의심의 주기가 짧아진걸 보니 생각만큼 호구년은 아니었나보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또 징징대는 모습이 성가셨다.

이번에는 딱히 피해갈 방법도 마땅히 없었다.


마침 질려가던 참이라 그럴 마음도 크게 들지 않았다.

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그냥 지금 내다버릴까.


질싸는 강력히 거절하던 터라 한 번도 못해봤지만 다른건 맛볼 만큼 맛봤다.


물론 현우도 자신의 취향대로 길들인 장난감을 버리기 아깝긴 했다.

그래도 징징거리는 저 꼴은 보기 싫었다.


현우는 마음을 굳혔다.


혜지를 내다버리기 전에, 한 번 쿡 찔러라도 볼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정상을 훌쩍 뛰어넘는 변태성욕을 들이밀어보고 싶었다.

이정도 공을 들였으면 그런 단계를 욕심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했다.

물론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라는 심정에 가까웠지만.

"사실 나도 그걸로 고민중이었어. 근데 그때 말한 것처럼 지금은 너밖에 없다는거 알지?"


"... 응. 매일 붙어있다시피 하는데 어떻게 몰라."

"넌 정말 좋은 여자라 생각해. 나는 단지 내가 너무 별로인 사람 같아서 조심스러웠던거야."


혜지는 현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게 자신이 부족해서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본인을 탓하니 당황스러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가 별로라니. 오빠 같은 사람이 어딨다고."


"나 솔직히 말할게.  이야기 듣고도 괜찮으면... 그럼 우리 진짜 사귀자."

혜지는 그 말을 듣더니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눈물을 슥슥 닦고 현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떤 말이든 괜찮으니 어서 해보라는 무언의 재촉이 느껴졌다.


현우는 속으로 킥킥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니깐 용기내서 솔직히 말하는거야. 네가 듣고 놀랄 수도 있긴 한데..."

현우는 말을 하기 앞서 한번 더 뜸을 들였다.


미리 이렇게 약을 치면 그녀는 어떤 말을 듣든 간에 싫은 티를 대놓고 내지 못했다.

아마 오빠가 용기내서 말한건데 상처를   없다는 여린 성격 탓이겠지.

혜지는 현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한 번도 남한테 이런 이야기는 한 적 없었는데... 내 생각보다 내가 더 변태인거 같아."


툭 하고 튀어나온 말은 혜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거친 섹스 정도면 만족할줄 알았거든. 근데 부족해. 너도 S니 M이니 하는 이야기는 들어봐서 알지?"

"... 응. 알지. 오빠가 쫌 S인가보다 생각하기도 했어."


"나 쫌이 아니라 완전 S인가봐."

현우는 숨을 가다듬고 계속 말했다.


"널 소유하고 싶어. 단순히 연인 사이가 아니라, 주인과 노예처럼. 네가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이 보고싶어. 그게 아무리 심한 명령이라고 해도."


혜지는 당황한건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현우는 어차피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었기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두런두런 할말을 늘어놓았다.


"근데 내 욕망을 드러내면 네가 상처 받을까봐 무섭더라. 네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게 두렵기도 했고."

여전히 혜지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현우는 이만큼 말했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나가리인가 싶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을 했으니 이야기를 끝맺긴 해야했다.

"하지만 점점 참기가 어려워져서 힘들었어.  너한테  심한 일도 시키고 싶어. 내 욕망대로, 내 마음대로 명령하고 싶어. 그리고 그걸 기꺼이 따르는 널 보고 싶어."

현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계속 고개를 떨구고 있는 혜지.

슬슬 현우도 조바심이 났다. 무어라 말이라도 해주던가, 적어도 고개라도 들고 있으면 그녀의 표정이나마 살필텐데...


현우는 이 여자가 좋아하는 사랑이란 말을 꺼내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원하는 나만의 사랑 방식이야. 더 험하게, 더 거칠게 다뤄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 어떤 명령이든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느끼고 싶고."

현우는 혜지의 눈치를 살살 살피다 그녀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달콤한 말로 부족하다면 언제나 그랬듯 부드러운 스킨십을 곁들여볼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순순히 품에 안겨왔다.


"네가 나보고 운명의 짝을 만난것 같다며. 나도 그런 운명의 짝을 기다려왔거든. 내 말에 절대복종하는 여자. 내 변태같은 욕망을 손가락질 하지 않고 다 끌어안아주는 여자. 그런 여자를 만나면 맘껏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생각했어."

혜지는 아직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현우의 품에 안겨 애꿎은 손만 꼼지락거렸다.

"음... 말하고 나니까  정말 구제불능의 변태같긴 하다. 그래도 어떤 의미인지 알겠지?"


혜지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고민 끝에 꺼낸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을 순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지만,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일단은 오빠가 불안해하지 않게끔 달래주고 싶었다.

"오빠, 난 무슨 말인지 다 알아. 오빠가 그랬잖아.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고, 그건 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며. 그냥 취향이라며. 오빠가 말한 것도 오빠의 취향이라고 생각해."


현우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던가 싶었다. 그러고보니  것 같기도 했다.


현우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끄집어내며 말했다.


"맞아. 취향을 강요하면 개새끼지만 취향 자체로는 뭐가 문제냐고 했었지?"

혜지는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가 일전에 해준 이야기는 제법 감명 깊어서 그녀의 뇌리에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남자는 가끔 현명해보이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응. 변태적인 취향인지 아닌지는 세상이 정해놓은게 아니라며.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취향이면 그걸로 된거고 남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했잖아. 오빠가 지금 나한테 강요를 하는것도 아니니깐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돼.  오빠 이해할  있어."

현우는 자신이 흘려말한 이야기를 용케도 기억하고 있는 혜지가 기특했다.

잘 기억은 안 나도 아마 십중팔구 혜지를 더 나락으로 쳐박기 위해 지껄여댄 말일테다.

그 말이 돌고돌아 이렇게  도움이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맞아. 난 너한테 내 취향을 강요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그래서 계속 고민했던거야. 네가  취향을 어디까지 이해해줄 수 있을까 말이야. 괜히 말꺼냈다가 서먹해지면 어떡해."


헤지는 어느 정도 마음의 결심이 섰는지 현우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오빠가 말한 사랑의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떤건데? 위험한건 아니지?"

"당연하지. 그런건 시킬 생각도 없어."

"... 그럼?"

"가볍게 말하면 내 말을 잘 듣는 여자? 그게 아무리 상식에 반하더라도 말이야. 남들이 보기엔 미친 변태짓거리 같아도 내 여자라면 웃으면서 이해해주는거지."

혜지는 머리를 쓸어내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건 그녀가 고민에 빠졌을 때 나오는 버릇이란걸 알기에 현우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쉬울건 없었다. 안되면 적당히 더 가지고 놀다가 연락을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오빠... 내가 만약, 만약에 말이야. 오빠가 말한 그런 여자가 되면 오빠는 나를 사랑해줄 수 있어? 정말정말 나만 사랑해줄거야?"

현우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거의 넘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인 사살만 남아있었다.


"물론이지. 그런 여자가 세상에  어딨다고. 평생, 사랑해줄 수 있어."

"그럼 오빠가 말한거, 그거... 내가 해볼게. 오빠가 말한 이상형이 대충은 뭔지 알  같으니까..."

현우는 우물쭈물 말을 이어가는 혜지를 바라보며 속으로 광소를 터뜨렸다. 아무렇게나 던져본건데 이렇게 홀라당 넘어올 줄은 몰랐다.

자신이 보기엔 어설프기만 한 개소리였는데 그녀의 애정이 생각보다 깊었나보다.


현우는 사랑이 한 여자를 어디까지 타락시킬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혜지야, 그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잖아. 적어도 며칠은 고민해보고 결정해야지."

"아니야, 나 이미 맘먹었어. 오빠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오빠 취향도 내가 맞춰가면 되지. 우린 운명의 짝이잖아. 그치?"

혜지는 씩씩한 말과는 달리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 하나로 짊어지기에는 엄청나게 비정상적인 관계였으니까.

그 탓인지 혜지는 운명같은 사랑을 주절거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눈치였다.


"물론이지. 나도 네가... 내 운명의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젠."


현우는 그녀의 소꿉놀음에 적절히 어울려줬다. 운명이니 뭐니...

유치하긴 해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말장난이었으니까.

이왕 하는거 화끈하게 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네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내가 더 잘할게. 늦게 말해서 미안해."


현우는 혜지의 얼굴을 감싸안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리곤 이 여자가 한  내내 기다려왔던 고백의 말을 읊조렸다.

"나랑 사귀어줄래 혜지야?"


곧이어 혜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 눈물은 아까와 달리 기쁨과 환희의 눈물이었다.

"응 오빠! 나도... 나도, 노력할게. 오빠를 다... 이해해줄 수 있는 여자가 될게."


현우는 자신에게 새로운 퀘스트가 날아왔음을 느꼈다.


이번 퀘스트는, 혜지를 걸레년에서 비참한 성노예로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다시금 현우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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