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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뱀의 혀 (5) (14/87)



〈 14화 〉뱀의 혀 (5)

현우는 자신의 짙은 악의를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나가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나를 기쁘게 해주는 여자가 좋아."

현우의 말에 혜지는 인상을 찡그렸다.

얼핏 들어서는 무언가 야한 말 같기도 해서 그 의미를 캐치하기 어려웠다.


"어떤 의미야 그건?"


"반대로 넌 어떤 남자가 좋아?"

혜지의 질문에 오히려 질문으로 답하는 현우.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이 그려온 이상형을 쏟아냈다.

"난 일단 무조건 착해야 해. 소리도 안 지르고 화도 잘 안내고. 그리곤 음... 잘생길수록 좋겠지? 말도 잘 들어주고, 대화도 잘 통하고."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해보라는듯 턱짓으로 재촉했다.

"성격은 부드럽고 음...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아, 오늘 오빠랑 섹스해보고 느낀건데 섹스도 잘하면 좋겠다. 속궁합이 왜 중요한지 몰랐는데 오늘 제대로 느꼈잖아."

현우는 피식 웃으며 혜지에게 농담을 건넸다.

"너 말하는거 보니깐 그냥 난데? 착하지, 잘생겼지, 말 잘 통하지, 섹스 잘하지. 같이 있으면 편안하기도 한 것 같고."


혜지는 아무런 대답없이 현우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며 미소만 지었다.


"여튼 네가 좋아하는 남자를  요약해보면 너를 기쁘게 하는 남자 아니야?"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지. 네가 말한걸 다 뭉뚱그린게  이상형이고 한마디로 퉁치면 그건 널 기쁘게 하는 남자잖아?"

혜지는 현우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다가 현우가 아직 자신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빠를 기쁘게 하는 여자가 어떤 여잔데?"

현우는 그제서야 씨익 웃으며 숨겨온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남자의 성욕을 이해할줄 알아야해."

현우는 우선 '오빠의 성욕은 당연해'와 '오빠의 성욕을 처리해주는건 당연해'부터 주입시킬 생각이었다.


부드럽게 부탁하고 달래는 것도 한두번이지, 현우는 그저 언제든 좆물을 빼낼 육변기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기왕이면 험하게 다뤄도 오빠라면 괜찮다며 웃어줄.

혜지는 처음엔 현우의 말이 이해가 안된다는듯 미간을 찡그렸으나 현우의 말이 계속될수록 어느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남자가 늑대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남자는 불알에 정액이 가득 차면 본능적으로 빼내고 싶어진다. 이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꽉 찼으니 빼고 싶다는 본능이다. 물론 그걸 못참고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네 전남친처럼 욕하고 소리지르는건 개새끼인게 맞다.'

현우의 말은 언뜻 들어보면 그럴싸해보였으나 뜯어보면 궤변에 불과했다.

그러나 혜지가 이를 눈치  수 있을리 만무했다.

자신은 모르는 남자의 본능이겠거니하다가 전남친을 욕하는 말이 나오자 공감대를 표하며 맞장구 칠 뿐이었다.

"그래서 난 내 여자가 남자의 성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더럽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말고. 발정난 짐승처럼 쳐다보면 그게  얼마나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지 여자는 잘 모르지?"

혜지는 현우의 말에 뜨끔했다. 자신이 전남친에게 자주 하던 짓이 아닌가.

"나 혼자만 안달난 것 같고, 나 혼자만 밝히는 것 같으면 내가 초라해보이잖아. 혜지 네가 막 박아달라는데 내가 다음에 하자고 그러면 상처받겠지? 스스로가 매력이 없나 하고 말이야. 똑같은거야."

현우는 아까부터 써먹던 역지사지를 또 꺼내들었다.

혜지같은 성격의 여자에겐 죄책감을 들먹이는게 잘 먹혀든다는걸 깨닫고 있었다.

반대로 생각해봐도 상처가 되지 않느냐, 그러니 그건 잘못된 거라는.


물론 적당히 MSG를 치면서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지금의 작업은 앞으로 좆물을 빼낼 때마다 유용히 써먹을 기반을 쌓는 일이었다.

 요구를 무시하면 상처가 될거라는 밑밥을 적절히 깔았다.


이를 구실삼아 혜지의 죄책감을 살살 건드린다면 언제든 물을 빼낼 수 있을 터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듣고보니 다 맞는 말인거 같기도 하다."

"그렇지? 남자는 시시때때로 발정나기도 하거든. 말했다시피 그건 그냥 본능이야. 물론 참으면 참을 수야 있지만 여자친구가 잘 이해해주고 케어해주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지."

혜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오빠의 모습이 발정이  모습이었구나 싶었다.

"오케이 접수완료!  뭔가 남자에 대해서   것 같기도 한데? 또 말해봐 오빠. 두번째는 뭐야?"


현우는 결의를 다지는듯한 혜지를 바라보며 속으로 조소를 날렸다.

원할 때마다 물을 빼주는 년은 변기통일뿐이지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이 여자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남자친구의 정액을 잘 처리해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쌍심지를 켜고 화를 냈을테다.


모든건 지금껏 쌓아올린 이미지와 현우의 얼굴 덕분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나지막한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지금의 분위기가 더해지자 개소리에 논리가 생겼다.

사실 그건 논리도 아니었다. 혜지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설득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혜지는 현우의 여자친구가 되고싶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음... 나도 속궁합? 아까 나랑 섹스한거 좋았다고 했지?"

"응, 완전. 계속 말했잖아. 그런 경험 처음이라고."


"나도 그런 경험 해주게끔 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 부끄럽다고 쭈뼛거리거나 가만히 누워서 몸만 내밀고 있는 여자말고."


혜지는 또 고개를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이건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었으니까.

"내가 기분 좋게 해주는만큼,  기분 좋게 해주려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워? 이것저것 배워오기도 하고, 야한 이벤트도 해주고. 그래서 아까 너보고 마음이 예쁘다는거야."


"내가? 아까 뭣때문에 오빠가 그런 말 했지?"

"받기만 한게 미안하다고 너도 나 기분 좋게 해주고 싶다며. 내가 가르쳐준 것도 짜증 안내고 잘 따라했고."

"아, 그건 맞지. 나 사실 아까 많이 부끄러웠다? 근데 오빠만 고생시킨게 미안해서 티 안냈던거야."

"알고 있어. 그런 마음이 예쁘다는거야."


현우는 배시시 미소 짓는 혜지가 귀엽다는 듯이 볼을 잡아늘렸다.

잠시 한 템포 쉬면서 지금까지 한 말과 뒤이어 해야할 말을 차분히 정리할 속셈이었다.

"아으 어빠... 볼 놔죠"


혜지가 더듬거리는 발음으로 칭얼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왜? 말랑말랑해서 만지기 좋은데."

혜지는 그 말을 듣더니 현우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가슴으로 이끌었다.


보드라운 가슴살이 손안 가득 잡혔다.

"... 그럼 볼보다 여기가  말랑하니깐 여기 만져."

혜지의 말에 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도 그렇고, 의외의 돌발성을 지닌 여자였다.


물론  튀어나가는 방향이 몹시 현우의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헤헤... 오빠 웃었다.  지금 오빠 기쁘게 한거 맞지?"

현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하는 김에 꼭지도 손가락 안에 끼우고 돌돌 돌렸다.


"아앙... 오빠 거기는말구... 우리 이야기 계속 해야하니까..."

혜지가 달뜬 신음을 흘려댄 탓에 현우도 손장난을 멈췄다.


하긴,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기본적인 정신교육부터 마무리하고 언제든 주물러대도 될 가슴이었다.

"여튼 나도 적극적인 여자가 좋아. 방금 너처럼."


"음... 그건 노력하면 되는 일이니까. 오케이 그것도 접수! 대신 기술같은건 오빠가 가르쳐주는게 더 빠르겠다. 나 완전 잘 배울 수 있어."

학습동기가 넘치는 기특한 학생이었다. 혜지는 얼른 세번째도 말해보라는듯 눈을 깜빡였다.

현우는 고민하다가 방금 막 떠오른 생각을 꺼냈다.

"이상형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말하려니깐 당황스럽다... 일단 세번째가 마지막일거 같은데?"

"그래서 그게 뭔데?"


"이해심이 깊었으면 좋겠어. 색안경 끼고 보거나 편견 가지지말고."

혜지는 이번 말도 다소 두리뭉실하게 들렸다.

어차피 여태껏 그랬듯 오빠가 자세히 설명해줄거라는 생각이 들어 현우의 손길에 가만히 가슴만 맡기고 있었다.

"만일 네가 나 처음 봤을 때 저 사람은 어플에서 만난 사람이니깐 보나마나 양아치일거야 그랬으면 오늘 이렇게 이야기도 못했겠지?"


"응, 아까 술집에서도 그 말 했잖아."


"그것처럼 해보기도 전에 딱 잘라 말하거나 선긋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막상 해보면 좋을 수도 있잖아?"


혜지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오빠의 말대로였다. 그리고 이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어보였다.

"오빠,  그런거  잘해. 내 성격 어떤지 오빠도 들어서 알잖아.  엄청 둥글둥글해.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 일 절~대로 없어."


"까탈스럽다의 문제도 맞는데, 음... 더 넓게는 보수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어. 둥글둥글한 사람도 어떤 부분에선 엄청 보수적일 수 있잖아.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하면서 말이야. 그 되고 안 되고의 경계가 아주아주 넓었으면 좋겠어. 이왕이면 없으면 제일 좋고."


현우는 자기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나 공을 들여 말할 일인가 싶었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라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현우가 여지껏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뻔했다.


무해함을 어필하고 모텔에 데려간다. 몇 번 박다가 질리면 목에도 찔러넣었다가 엉덩이를 후려치기도 했다.

어차피 얼굴에 눈이 먼 걸레년들 투성이어서 그녀들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더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버렸다.


하지만 오늘의 이 여자는 조금 달랐다. 어딘가 맹한 구석, 순진한 구석이 있다.

아무리 봐도 닳고 닳은 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만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망가뜨려보고 싶었다.

 여자가 구렁텅이로 나자빠지는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지켜보고 싶었다.

그게 지금 현우가되도 안한 이상형을 나불거리며 혜지를 꾀어내는 이유였다.


생각하고보니 순진한 사람을 세뇌시키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닮아있기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은밀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세뇌.

그리고 그 세뇌의 첫 단계는 동조였다.

일단 마음의 벽을 허물어뜨린다. 이전까지 개소리라 치부하던 사이비 종교의 교리를 그럴듯한 말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를 만든다.

그렇게  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교리의 신봉자가 되게 만드는 일은 시간 문제였다.


현우가 지금  일이 그와 비슷했다. 혜지를 자신의 사상에 동조시킨다.


지금까지의 일로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음은 이미 충분히 확인했다.


그렇다면 동조는 쉬운죽 먹기였다.


게다가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이 여자의 호구같은 성격.


갈등을 만들 바에 내키지 않더라도 내어주고 만다.


만약 그것이 커다란 호감을 지닌 상대라면,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어주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일테다.


그리고 그녀의 외로움과 욕망이  행위를 더 부추길 것이다.

혜지는 현우가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는 눈치였다.


오빠는 보수적인 것이 싫다고 했는데, 아까 콘돔을 요구한 것이나 입싸를 꺼림칙해한 것도 보수적인 것일까?


생각을 이어가려니 복잡했다. 역시 골치 아픈건 그녀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단은 오빠가 말하는 대로 따르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사실 아직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천천히 또 알려줘 오빠. 내가 노력해볼게."


헤지는 그 말과 함께 현우를  끌어안았다.

오빠도  외모가 마음에 들어 오늘의 만남에 응한 것일테니, 좀더 오빠를 기쁘게 하는 여자가 된다면 진짜로 사귀게  수도 있다는 단꿈에 젖었다.

혜지는 현우의 품안에서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포근하고 단단한 이 품이 너무나 좋았다. 오빠를 기쁘게 하는 여자 정도야 얼마든지 되어줄  있었다.


현우는 혜지를 다독여주며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두 눈에서 번뜩이는 탐욕이 줄줄 흘러나왔다.

과정이 꽤나 수고스럽긴 했지만, 일단은 장난감을 완전히 거머쥐었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자신을 위한 여자가 되겠다는 맹세 비슷한 것도 얻어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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