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밤의 시작 (1)
“에이 뭐,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깨끗한데? 사람 사는게 다 똑같지.”
혜지는 현우의 목소리에 불현듯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처음으로 남자친구 외의 남자를 원룸에 들였다. 그것도 어플에서 방금 만난 사람을.
다시 생각해봐도 상황이 야릇하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누구나 다음에 이어질 일로 한 가지를 떠올릴테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상상에 얼굴을 붉히니 오빠도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서 있었다.
165 정도인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것을 보니 180이 훌쩍 넘는 키. 현관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역시나 잘 생겼다.
그래서 무척이나 야했다.
혜지는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씩 썰물처럼 밀려오는 충동이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이성을 집어삼켰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리고 이런 남자 앞에서, 이성이란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에 불과했다.
혜지는 현우를 마주본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느 누가 봐도 키스를 바라는 구애의 몸짓. 현우 역시 그 사실을 바로 눈치 챘지만, 조금도 급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지금 그가 연기하는건 혜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다정다감한 남자.
이 여자는 그런 남자와의 동화같은 하룻밤을 꿈꾸고 있는 중일테지.
현우에겐 혜지의 유치한 소꿉장난에 어울려 줄 마음이 충분했다.
여자라는 생물이 가끔 스스로의 상상에 취하고 만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얼굴이 그 가끔에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해준다는 사실까지도.
그렇다면, 혜지가 꿈꿔오던 로맨틱한 남자를 연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까부터 손짓 하나, 말 하나에 움찔거리는 것이 갖고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걸레답지 않게 순진한 구석을 간직하고 있는게 신선한 맛이 있어 마음에 든다.
현우의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계획은 간단했으니까.
오늘의 만남을, 운명이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을, 운명의 상대라 느끼게 만든다.
이 여자가 품은 강한 자기연민을, 자신을 향한 맹목적인 애정으로 돌린다.
겉으로는 로맨스를 가장하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지독한 피폐물이었다.
계획의 도입부를 성공적으로 써내려가기 위해 당장의 키스를 서두르기보다 부드럽게 품에 안고 보듬어준다.
나는 너를 결코 헤프게 보지 않아, 나는 너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를 호소하는 듯 했다.
혜지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따뜻함에 흠칫 놀라 눈을 떴지만, 자신을 껴안는 품 속에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코를 간질이는 달콤한 향수 냄새를 맡으며 미소지었다. 부드럽게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남자의 품은 너무나 편안하면서도, 바짝 맞붙은 살결이 마음에 불을 지핀다.
특히나 현우의 불쑥 튀어나온 바지춤. 그녀는 품에 안길 때 부터 배를 찌르는 단단함을 느꼈다.
지금 이 남자도 분명 욕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칠게 덤벼들기보다, 부드럽게 감싸안아준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배려심 깊은 남자였다.
그렇기에 혜지는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오빠, 나 오빠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러는거지, 정말 이런거 처음이야.”
현우가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혜지는 한번 더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오빠가 이상하게 생각할까봐서 하는 말인데, 무슨 말인지, 알지...?”
현우는 혜지가 뻔한 거짓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했지만, 혜지의 말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목을 죄여오는 우울함에 만남을 시도한 적은 있어도 집까지 데려온 건 정말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현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니 발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입을 맞춰온다.
산뜻함이 느껴지는 가벼운 키스다. 현우는 살포시 입을 떼어내고 혜지를 부드럽게 응시하다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인지 알아. 걱정하지 마. 절대로 이상하게 생각 안해.”
그래도 행여나 빈말로 받아들일까봐 머릿속을 더듬어 적당한 말을 찾는다.
그리고 듣기 좋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혼자 그러는거 아니야. 나도 너 마음에 들어서 이러는거야."
혜지의 살짝 찡그린 눈가에서 여전히 약간의 불안감이 읽혀져온다. 하여튼 간 웃기는 여자다.
걸레짓을 해오면서 걸레라고 생각하진 말아달라니.
어플에서 만난 여자들이 하나같이 내뱉던 말이라 현우는 이젠 지겨울 정도였다.
물론 이 여자가 뭐라 지껄이든 상관은 없었다. 한 번 더 그럴싸한 말을 중얼거려주면 될테니까.
현우는 지난 두 달간 이런 경험을 무수히 겪었기에 혜지를 어르고 달래는 달콤한 말쯤이야 숨쉬듯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나도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가볍게 말을 던지고 잠시 뜸을 들인다. 그리고, 혜지와 눈을 마주친다. 이 여자가 기꺼이 옷을 벗어제끼게 만들 그럴싸한 멘트를 날릴 속셈이었다.
"내가 이러면 오히려 네가 날 나쁘게 생각할까봐 걱정중이었어. 너도 그런 생각 안할거지?”
“오빠... 진짜 말을 어쩜 그렇게 예쁘게 할 수 있어……. 고마워.”
혜지는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남자의 배려 넘치는 말이 또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이 남자에게는, 오늘 밤 모든 걸 주고 싶다. 남아있던 마지막 이성의 조각마저 던져버리고 감정에 몸을 맡긴다.
혜지는 현우의 목을 두른 채 미친 듯이 입술을 탐하며 침대로 이끌었다. 현우의 손은 이미 혜지의 부드러운 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흐으음… 아… 오빠…”
혜지는 끈적한 신음을 토해내며 침대에 몸을 뉘였다. 지금껏 우울함만 가득 했던 방. 그 방 안이 둘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찼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원나잇일 뿐이지만, 혜지에게는 꿈꿔오던 로맨스일 뿐이다.
자신의 고통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따뜻한 말투. 게다가 그는 혜지가 상상하던 이상형이라 할 만큼 잘 생겼다.
그런 남자와 입을 맞추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선정적이다.
혜지는 무드에 흥분한다는게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느꼈다. 그럴수록 그녀의 아래도 서서히 젖어갔다.
"하아... 혜지야. 너 가슴 완전 부드러워."
현우는 제 아래 깔려 헐떡이는 먹잇감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간다. 다리를 벌리게 만드는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렇다면 이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진한 쾌락을 선물해줄 순간이다.
우연히 만난 꿈같은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의 꿈같은 섹스. 그것이 전해줄 황홀함은 이 여자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할 목줄이 될 것이다.
현우는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가며 왼손으로는 혜지의 귓볼을 쓸어내린다. 귓등부터 귓속을 거쳐, 귀밑까지를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애무한다.
다른 한 손은 혜지가 입고 있던 니트 아래로 은밀히 집어넣었다. 잔뜩 긴장해서 굳어진 몸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원나잇이 처음이란 혜지의 말은 꽤 사실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마치 첫경험을 앞둔 처녀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현우의 머릿속에는 잠시후 오르가즘에 헐떡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경험이 부족한 여자일수록 입맛대로 요리하기 간편한 법이니까.
옆구리를 타고 올라가던 현우의 손이 가볍게 브래지어 위를 문지른다.
"아... 오빠...."
가벼운 터치에도 혜지의 입에서 달콤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여자는 이미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상황에 취했다.
달아오른 몸뚱이를 마음대로 농락하는 일만 남았다.
현우는 브래지어 위를 더듬던 손을 등 뒤로 가져가 능숙하게 후크를 풀었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니트를 잡고 위로 조금씩 들어올린다.
그 순간에도 아찔한 키스는 멈추지 않았다. 점점 달아오르는 혜지의 성감이 눈에 보일 정도다.
현우의 눈안에 하얀색 브래지어가 들어온다. 그 안에는 얼굴만큼이나 새하얀 젖가슴이 찹쌀떡처럼 탐스럽게 싸여있었다.
제법 깊은 가슴골만큼 움켜쥐기 딱 좋은 크기.
현우는 브래지어를 걷어내기 전에 헤지와 눈을 마주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의 성욕에만 몰두하여 허겁지겁 가슴을 빨아제끼는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의 머리는 혜지를 한층 더 달아오르게 할 달콤한 말들을 순식간에 조합해냈다.
“혜지야……. 너무 예쁘다. 피부가 완전 하얘. 나 지금 너 때문에 흥분한거 보이지?”
예쁘다는 말, 너때문에 나라는 남자가 흥분하고 있다는 말.
못 생긴 남자가 중얼거리면 여지없이 성추행이라 욕을 들어 쳐먹겠지만, 현우가 말한다면 달랐다.
나만큼 잘생긴 남자가 너를 보고 흥분하고 있다는 말은, 섹스를 앞두고 떨고있는 혜지의 긴장을 녹여내리는 마력이 있었다.
혜지는 눈을 감싸고 있던 손바닥을 슬쩍 내리더니 현우의 다리 사이를 응시한다.
아직은 부끄러운지 차마 노골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흘낏 보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혜지야, 지금 이런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우는 혜지의 볼을 부드럽게 당겨 눈을 맞추었다.
"너 지금 너무 사랑스러워. 내눈에 그냥 사랑스럽게 보여."
무척이나 웃겼다. 이런 말을 하면 좋아하겠지 싶으면서도 실제로 좋아하는 모습이 눈앞에서 드러나는게.
첫 만남에 대놓고 사랑한다는 말은 그 진심부터 의심하게 되더라도,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말은 그간 현우가 만난 원나잇녀 모두를 웃게 만들던 마법의 단어였다.
현우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마치 이 여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볼을 쓰다듬고 있자니 혜지도 수줍게 웃는다.
그녀와 가볍게 입을 맞춰가며, 현우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섹시한 신음소리를 만들어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경험으로 알게 된 여자들이 좋아하는 신음소리.
모든게 혜지의 쾌락이라는 한 방향만을 향해 있었다.
이미 그의 손은 브래지어 아래로 파고 들어 단단해진 혜지의 유두를 굴리고 있었다.
혜지는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을 살짝 뻗어 현우의 바지춤을 매만졌다.
얼핏 느껴지는 단단함이 이 남자도 한껏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혜지는 남자 경험이라곤 전남친밖에 없었지만, 현우의 물건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