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N번째 어플만남 (1)
1.
현우가 성형을 하고 깨달은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대 초반의 연애에서 절대갑은 잘 생긴 남자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 생긴 남자만 보면 다리를 벌려대는 걸레년들이 수두룩하다는 것.
지금 현우의 눈앞에 알몸으로 엎드린 여자 역시 그런 걸레년들중 하나였다.
"하으으응... 오빠 더! 더 세게 박아줘!"
여자의 이름도 나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시간 전에 어플로 처음 만난 사이에 불과했으니까.
현우가 그녀를 따먹기 위해 들인 노력이라곤 약간의 수다와 그에 동반되는 몇 만원의 술값 정도가 끝.
보통의 남녀관계라면 섹스에 이르기까지 온갖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현우의 준수한 외모는 그러한 단계를 모두 건너뛰도록 만드는 일종의 치트키였다.
짝 -
"보지 더 조여봐, 씨발년아."
엉덩이를 내리치며 욕을 뇌까려도 여자는 그저 신음을 토해내기 바쁘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퍽퍽 소리와 함께 현우의 피스톤질이 빨라졌다. 덩달아 여자의 신음소리도 점점 커진다.
"아앙, 오빠... 나 갈 것 같아! 더 빨리! 더 빨리 박아줘! 흐어엉어엉."
이젠 숫제 우는 소리까지 내가며 비명을 질러대는 여자. 아까부터 자궁경부를 두드려댄 탓에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현우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피식 미소지었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구멍을 쑤셔주면 앙앙대는 꼬락서니가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
이젠 여자라는 생물이 껍데기만 다른 오나홀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지금 따먹는 이 년도 다른 년들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순식간에 흥분이 가라앉는다.
자극이 지나치면 오히려 무뎌진다던가.
근 두 달 동안 서른이 넘는 여자를 따먹었더니 며칠 전부터 현실감각이 마비된 기분이다.
옛날에는 그렇게나 꿈꾸던 섹스였건만, 지금은 스스로가 놀랄 만큼 무덤덤했다.
"안에 싸도 되지?"
"응, 나 피임약 먹어. 안에 싸줘! 오빠 좆물 내 보지에 싸줘!"
방금 만난 남자에게 질내사정을 허락하며 피임약 운운하는걸 보니 여간 걸레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우는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마저 허리를 놀려댔다.
이윽고 여자는 방 안을 가득 울리는 뾰족한 교성과 함께 쾌락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져내렸다.
"후우..."
현우도 사정의 쾌감에 깊은 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꿈틀거리는 질육을 음미했다.
하는 짓만 봐선 일찌감치 씹창이 났을 구멍 같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그럭저럭 조임이 괜찮았다.
20살이라던가, 21살이라던가. 그 미래가 어떠할지 자못 예상되는 여자였다.
"가만히 누워있지만 말고 이거 입으로 빨아줘."
현우는 여자의 옆구리를 붙잡고 뒤집으며 입술에 물건을 디밀었다.
이런 여자라면 청소펠라쯤은 예삿일로 여길것 같아 딱히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귀두를 입에 물고 빨아댄다.
현우는 그 감촉을 음미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정후 민감해진 귀두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혀와 촉촉한 입 안 점막.
아랫도리에서 올라오는 간질간질한 쾌감과 함께... 여느 때와 같이 훅하고 공허감이 피어올랐다.
매일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지만, 한편으론 지독하게 허무하기만 했다.
성형을 하고 잘 생겨진 얼굴이 도리어 현우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렸다.
처음에는 달라진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을 뿐이다.
그래서 잘 나온 사진을 몇 장 골라 만남어플에 올렸는데... 그게 다였는데... 놀랍게도 여자들이 먼저 호감을 표시해왔다.
언제나 조롱과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자신이 호감의 대상이 되다니. 처음에는 낯선 경험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나 호감을 표시한 여자와의 첫 만남이 인생 첫 섹스로 이어졌을 때, 현우는 깨달아버렸다. 외모로 급을 나누던 세상에서 을도 병도 아닌 정이었으나, 지금부턴 자신이 갑이라는 것을.
그렇게 시작된 두 달 간의 무절제한 탐닉. 그간 외모로 겪은 서러움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매일같이 여자를 갈아치우며 책임 없는 쾌락에만 몰두했다.
이젠 자신이 쾌락을 탐하는 것인지, 쾌락이 자신을 탐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곱씹을수록 밀려드는 허망감. 그러나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오빠 좋아?"
"응, 좋아."
아무리 공허한 쾌락일지라도 이미 그것에 절여져버린 몸뚱이는 끊임없이 쾌락을 갈구했으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어플만남을 반복하는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무언가, 이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것이 필요했다. 그게 무엇인지 현우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는 갈증을 참지 못하고 메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2.
현우는 그날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던 참이었다.
띠링 -
익숙한 어플알림음이 컴컴한 방 안의 적막을 깨뜨린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본 상황이었기에 별 표정의 변화없이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혜밍밍’ 님이 ‘프프’ 님과 대화하길 원해요! ‘혜밍밍’ 님의 프로필 확인 바로가기]
휴대폰의 밝은 조명이 현우의 눈을 찔렀다. 그는 눈가를 찡그리며 여자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혜밍밍, 21살 여자, 신림역 근처 거주. 여자의 간단한 신상 정보가 눈에 스쳐 지나간다. 현우보다 3살 어리지만 사는 곳은 같다. 그 아래의 자기소개란은 텅비어있었다.
구질구질한 이상형 설명이나 건전한 만남을 원한다는 쓸데없는 말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현우는 그녀의 목적이 자신과 같으리란 사실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사진 속 여자는 마치 ‘키스해주세요’ 라고 말하듯 립스틱을 짙게 칠한 붉은 입술을 내밀고 있다.
나이에 걸맞게 아직은 살짝 앳된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그러나 옷차림은 꽤 도발적이었다. 깊게 패어 있는 얇은 블라우스 위로는 쇄골이 훤히 보인다.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제법 깊은 가슴골도.
전체적으로, 금발로 물들인 긴 머리와 하얀 얼굴이 시선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이정도면 원나잇 상대로 나쁘지 않은 편이지.'
현우는 잠시 고민하다 대화를 수락했다.
[‘혜밍밍’ 님과 매칭 되었습니다. 즐거운 대화 나누세요!]
[혜밍밍 : 앗ㅎㅎㅎ대화 받아주실지 몰랐어요ㅜㅜㅜ]
[혜밍밍 : 인기 많으셔가지구!! 안 될줄 알았는데ㅎㅎ]
[혜밍밍 : 지금 머하세요????]
얼굴만 놓고 따진다면, 현우는 상대보다 몇 단계는 높은 수준. 그리고 이런 어플에선 외모가 곧 계급이었다.
여자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눈치인지 대화를 수락한지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 지금 그냥 있어요ㅎㅎ]
[나 : 혜밍님 프사도]
[나 : 금발이 너무 예쁘세요!]
[혜밍밍 : 앗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염색했어요...!]
[혜밍밍 : 프프님도 짱 잘생기셨어용!!!]
현우는 가볍게 외모를 칭찬하는 말로 그녀의 호감에 답했다. 여자쪽의 노골적인 호감표시를 보고 있자니,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러 차례 짧게 이어지던 대화는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으로 순식간에 마무리 된다. 이쯤되면 이 여자의 목적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 : 넵! 그럼 이따 저녁에 거기서 봐요ㅎㅎ!]
현우는 마지막으로 주고 받은 메시지를 멍하니 쳐다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현우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만남 어플을 사용하는 이들의 목적은 보통 한 가지.
하룻밤의 쾌락을 탐닉하는 데에 이런 어플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이 여자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이 속삭인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신림역 근처의 술집. 여자의 집 또한 신림역 근처.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은 모텔비도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현우.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말끔한 얼굴에서 누구라도 호감을 가질 법한 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아무래도 내가 좀 아까운데.'
그냥 만나지 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자의 적극성을 떠올려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까짓 거. 착한 일 한 번 해주는 셈치면 나쁘지 않을지도.
현우는 마음을 굳히고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3.
혜지는 방금까지 남자와 주고 받은 대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될대로 되라지라는 심정으로 매칭을 시도했는데, 덜컥 약속까지 잡게 되었다.
자신의 첫 매칭 시도가 성공했다는 뿌듯함보다 혹시 이 사람도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녀가 어플로 남자를 만나는 건 이번이 세 번째. 앞서 두 남자는 자신에게 먼저 매칭을 시도해왔지만, 어쭙잖은 외모로 섹스에만 관심이 있어보이길래 술만 마시고 헤어졌다.
오늘은 어플을 지우기 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남자들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그러다 너무나 혜지의 취향인 남자를 발견한 것이었고.
프프라는 제법 귀여운 닉네임을 지닌 남자. 조그마한 얼굴에서 반짝이는 선한 눈동자가 단숨에 그녀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래, 만나보고 이상하면 그냥 집에 오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눈 딱 감고 에잇하고 찔러본건데... 홧김의 시도가 얼떨결에 저녁 약속으로 이어져버렸다.
[프프 : 저 먼저 도착했어요ㅎㅎ 천천히 오세요! 9번 테이블입니다]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메시지 알림을 확인한다. 남자가 그녀보다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다급히 걸음을 재촉하니 서늘한 밤공기가 뺨에 와닿는다. 3월 하순을 넘어섰지만 제법 찬 기운이 서려있었다.
곧 도착한 가게 앞.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화장을 고친다.
특출나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하얀 피부가 매력적이다. 특히 얼마 전 금발로 물들인 긴머리와 흰 피부가 어우러져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혜지는 꽤 그럴싸한 자신의 모습에 미약한 자신감을 느끼며 가게로 들어섰다.
남자가 테이블 번호를 알려주었기에 그를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혜지는 남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다시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사진빨이 아니라, 실제로도 잘생긴 사람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양아치들이랑은 비교조차 미안한 얼굴이다.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평범한 모습인데도, 그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아니야. 잘생겼든 말든 섹스 생각밖에 없는 놈이면 혼자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혜지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조심스레 남자에게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프프님 맞으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그... 혜밍밍님?"
무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던 얼굴이 위로 들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 미소에 또 한 번 혜지의 정신이 멍해졌다.
혜지는 광대가 씰룩이는 것을 애써 참으며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매력적인 미소를 싱긋 지어보였다.
이윽고 둘은 혜징징은 이상한거 같아 혜밍밍으로 닉네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그녀와 오래 사귄 연인처럼 다정해보였다. 안달난 남자 특유의 조급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름이 현우라던가. 혜지보다 3살 많은 이 남자는 중저음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얼굴에 진중한 목소리가 더해지니 마주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래? 재밌네."
지금도 듣기 좋은 울림으로 혜지의 이야기에 연신 맞장구를 쳐온다.
보면 볼수록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의 걱정이 바보같이 느껴질 만큼 조금도 비싼 척을 하지 않는다.
혜지는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니, 눈에 들어오는 잘생긴 얼굴을 안주삼아 연신 술을 홀짝였다.
이미 마신 술의 양이 결코 적지 않기도 했지만, 이 남자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속마음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