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97
이 글은 백퍼 픽션입니다
호텔에서 잔 후 금요일 날 늦게 마트 출근을 한다
지금은 금요일 14시
오늘은 15시 출근을 하는 날인데 약간 일찍 길을 나서는 중이다
"관통아"
"응? 수희누나?"
수희누나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얼굴이 많이 야윈 것 같다
딱히 살이 빠질 필요가 없는 수희누나인데
긴 머리를 푸니 허리 근처까지 내려온다
"잘...지냈니?"
"응 누나 누나 학교는?"
"오늘 난 일찍 마쳤어"
누나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다
엄청 아파도 잘 내색을 안하는 수희누나인데
이러면..약해지는데...
난 딱히 강자로 살아온 적은 없지만, 어디가 안 좋거나 약한 사람들에겐 약하다
찐따이긴 했어도, 특별히 강자들에게 비비면서 살지도 않았다
힘도 없는 놈이 강자의 눈치를 특별히 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누나들 덕분이겠지
은혜를 모르는 자가 어찌 사내라 할 수 있겠는가
학창시절 누나들에게 받은 은혜를 이제 마구 쑤심으로써 보답하려 하는데
그 보답으로 가는 과정에서 누나와 반목하게 되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떤 측면에서는 나를 엄마보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수희누나
내 성향을 잘 알고 이렇게 나타난 것일까
내 앞에 나타난다면 기세등등하게 나타나 나를 야단치려 할 줄 알았는데
병약한 소오녀같은 이미지로 나타나다니
아니다
나는 지능으로 눈치로 판단하는 자가 아니다
CPU와 램이 후달리는 나는 눈 코 귀의 정보만을 믿어야 한다
수희누나가 컨디션이 확실히 안 좋아보이는 것은 사실이잖아
"아파보여 수희누나, 집에 가서 쉬지 왜.."
"왜인지 너두 알잖아, 쉬어서 괜찮아지는 게 아닌 거 알잖아"
"나 다 라희랑 놀면 되잖아..."
말해놓고도 머쓱하다
"다정이랑 재미 좋니? 다정이만 자빠뜨린 거 아니지?"
싸우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대답이 없어? 이젠 내 말이 우스워?"
수희누나를 우습게 볼 생각은 없다
비단 수희누나 뿐이 아니라 누구도 우습게 대할 생각이 없다
"수희누나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가장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절대 누나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아"
퍽 퍽 퍽
내 어깨와 가슴을 때리는 수희누나
별로 아프지 않다
누나도 아프라고 때리는 것 같지는 않고
"그런데! 그런데 왜? 왜 날 슬프게 해? 왜 내 곁에 안 있는 거야?"
그래 말하자
지금 맘이 약해져서 그냥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또 터질 문제다
그렇다고 그냥 수희누나를 씹고 출근해버리면
느낌이 안 좋다
누나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수희누나가 못 받아들인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관통이 너 지금 여기서 딱 말해, 니가 생각하는 게 뭐야?"
가출한 이유는 날 집에 묶어두려하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는 것을 수희누나도 아는 것 같다
우리 집 사람들은, 나만 빼고 다 머리가 좋으니까
그 머리좋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실질적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수희누나니까
마음만 먹었으면 고등학교 교사보다 훨씬 좋은 직장에 갈 수도 있었는데
엄마랑 대판 싸우면서까지 교사로 남았었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수희누나, 내가 주는 것 딱 하나만 받아들여, 그러면 나도 누나도 우리 집 모두도 다 해옥해질 수 있어"
"니가 주는 것? 니가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그건 이미 여러 번 받았잖니?"
"아 진짜, 그거 말고"
"그럼 뭔데?"
사실 그거랑 아주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한데
"누나가 중전이 아니 황후가 되어 줘, 내게 황후자리만 받으면 다 해결돼"
"황후? 황제 마누라 황후?"
"응 수희누나가 그걸 받아줬으면 해"
가만히 생각하는 수희누나
장난치는 게 아니란 걸 수희누나는 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누나니까
내가 꼬마 때 수희누나가 좋다고 '누나 내 색시 돼줄 거지' 이런 말과 비슷한 의미도 있지만
황후의 일은 내명부 관리
명석한 수희누나가 그걸 모를리 없다
"니가 잠깐 여자들 후리고 다니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구나, 나이 많은 여자까지 배 밑에 누르고 맛보니 세상이 다 니꺼 같지?"
"잠깐으로 끝나면 내 말은 헛소리가 되겠지, 누나가 판단해"
나이 많은 여자?
엄마? 나영이모?
아마 엄마겠지
나와 같이 나가 외박을 한 것을 수희누나도 알고, 엄마도 이후로 수희누나를 많이 압박했을 테니
내가 변했다는 것
내가 운 좋게 여자 한두 번 먹은 게 아니라는 것을 수희누나도 속으로는 알 것이다
엄마 다희누나 다정누나
누나가 확실히 아는 여자들만 해도, 만만한 사람 하나도 없다
돈이나 멋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잡혀서 못 헤어나올 여자들이었으면
벌써 어디를 가도 갔다
힘?
힘으로 굴복당하고 가만히 있을 여자들이 아니다
억지로 당하고 나서 밝게 웃으며 상대를 계속 보는 여자도 없다
내가 비겁한 수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수희누나도 잘 안다
수희누나는 차라리 내가 비겁한 수를 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얄팍한 수라면 오래 못가서 밑천이 드러나니까
밑천이 드러나버리면 갈 데가 없는 나는 수희누나밖에 갈 곳이 없으니까
송곳님은 신이시다
신이 하시는 일은 비겁하지도 얄팍하지도 유한하지도 않다
신은 명분에 맞춰서 걷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명분인데 누가 누구에게 맞춘단 말인가
신이 가는 길이, 신이 생각하는 것이 곧 대의가 되고 정의가 된다
"후우우..관통이 니가, 니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어"
"웹소설 너무 본 거 아니야? 판타지나 대체역사물 말고 로맨스를 봐"
"맞을래?"
"수희누나, 누나가 좋아하던, 아니 누나랑 서로 좋아하는 좋아할 관통이가 맞아,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것 뿐이야, 방구석에서 딸딸이만 치며 사는 관통이로만 살 수는 없잖아"
한 집 살림이 되면, 나는 다시 방구석으로 돌아갈 것이다
딸딸이가 아닌 다른 것을 하겠지만
"관통아 니 헛소리가 헛소리면 넌 죽을 때까지 나한테 쥐어짜이면서 살 거야, 농담 아니야, 내가 보약도 많이 먹고 운동도 많이 해서 실버타운에서 너 관짝 들어가는 거까지 보고 죽을거야"
갑자기 몸에 오한이 든다
수희누나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섹스 할 때 외에는
"헛소리가 아니면?"
"지금부터 생각하려구, 니가 내게 하는 소리가, 좋게 말해서 황후지 사실상 첩년들 관리하라는 소리잖아, 너 진짜 내 남동생만 아니었으면 패 죽였을 거야"
"나도 수희누나가 맏이라서 이런 영광을 주는 거야"
톡톡톡
수희누나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응원해준다
"건드리지 마 얘, 길가는 사람들 쳐다보잖아"
"뭐 어때 내 ㄲ"
"식상한 소리 하면 뒤진다, 나 아직 마음 안 정했거든 쳇쳇쳇"
끝났네, 쳇쳇이면
드디어 장자방을 얻은 것인가
아니야 장자방보다 훨씬 나아
장량 소하 한신 순욱 다 합친 것보다, 내게는 수희누나가 크다 좋다
젖가슴이랑 엉덩이는 다른 누나들이 더 큰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헛소리일 경우에도, 수희누나는 날 떠난다고 말 안했어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는 소리는,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을 돌려 말한 건데
그 경우는 바람은 꿈도 못 꾸겠지만, 그것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역시 누나는 진리다
누나 중에서도 최고는 큰누나다
"근데 관통아, 나 맘 정한 건 아닌데...혹시.."
"응? 왜? 누나"
"그 집 다 풍비박산 낼 거야? 수정이는 좀 빼주면 안 돼?"
"최근에 뺏어.. 잘 안 빠지던데.."
퍼어억
마트에 다다르며 수희누나와 얘기를 한다
"저기서 알바하는구나.."
"알고 있지 않았어?"
"알바한다는 얘기는 대충 들었는데, 여기인 줄은 몰랐어"
나희누나가 말 안했던 건가
"관통아, 경험삼아 일 해보는 것도 좋은데, 길게 하진 마"
"뭐 생활비는 좀 벌어놔야 하니까"
"그 집에서 너보고 생활비 내래? 은근히 압박줘?"
도끼눈을 뜨며 달려드는 수희누나
"아냐 그냥, 그냥 내가 주머니에 돈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나 들어가 볼게, 주말에 보자"
오늘 금요일인데 주말에 보자고 하면...
마트에서 일을 한다
여전히 근무의 일환으로 CCTV로 아줌마들 뒤태도 보고
재수 좋으면 물건 고르느라 앉은 아줌마들 팬티도 보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메라는 손님들도 다 알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나는 직원의 당연한 의무로서 카메라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아줌마들의 팬티나 가슴골, 뒤태를 보는 것이다
자지가 서는 건 자동발동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어서오세요 아 수연씨"
"말 편하게 하자니까 관통아 히히"
여경인 수연이
나와 동갑이며, 내게 순경시험을 준비하라 권하고 있다
"관통아 월요일날 뭐해?"
"일해야지 마트에서"
"조금 일찍 마치고 나랑 밥 한 끼 먹자, 내가 사줄게"
사주는 건 됐고 주는 건 안 되나
"응 사장님한테 말해볼게"
"그래 전화조"
금요일 밤 23시 50분
마트일을 끝마치고 다정누나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다정누나는 외할머니를 보러 다정누나 엄마(박혜정)와 함께 외할머니 댁에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