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스물 네 번째 과외 - Electric shock 1
"…살려주세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람 잘못 만나셨어요."
여대생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피가 범벅이 된 야구점퍼를 입은 남자를 쳐다보며 빌었다. 남자는 여대생의 간절함이 개의치 않다는 듯이 연장들이 걸려있는 곳에서 해머를 꺼냈다. 그의 섬뜩한 걸음소리가 어둠이 가득찬 창고 안에 울려퍼졌다. 오로지 여대생, 그녀가 의지할 빛은 저 위의 꺼져가는 전구 하나였다. 여대생은 질끈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포기, 인생마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마냥 허무한 눈물 한 줄기가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피에 묻혀버리는 것은 잠시 후였다. 여대생은 어항에서 강제로 꺼내진 관상용 금붕어처럼 의미없이 팔딱거렸다. 남자는 금붕어같은 그 여자를 다시 한 번 조각상을 부시듯이 머리를 내리쳤다. 그녀의 머리가 홈이 파이며 일그러졌다. 눈 뜨고는 차마 못 볼 광경이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피가 튀었다. 그리고 웃었다. 싸이코처럼.
"…끼히히."
살인을 끝낸 그는 해머를 던져버리고, 연장도구에서 무엇을 꺼냈다. 메스, 해부용 칼 등 이것저것을 시체가 된 젊은 여대생 앞에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연기를 하는 손, 그리고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여대생의 몸에 칼을 대었다. 사각사각, 초연한 소리만이 창고에 가라앉을 뿐이었다.
[장기이식 010-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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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의 키티코트를 입은 사진이 종현의 트위터를 통해 널리 퍼지게 되고난 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안티팬은 줄어들고 나를 좋아해주는 팬들이 늘어나는 괴현상을 겪었다. 5000명이었던 팬은, 5050명이 되었다. 만세. 그것도 정식 팬클럽에서, 태연과 패키지로 만들어졌던 팬페이지는, 김민식 팬페이지로 따로 분리하겠다며 내가 키티코트를 입은 사진을 메인 타이틀로 만들어놓고는 SIG, 이라고 팬페이지를 지었다. 어떤 필력 좋은 팬들이 이걸 또 어떻게 풀어낼지가 내 요즘의 인터넷 라이프 중 초미의 관심사였다. 물론 내게 한정되어있긴 했다.
그런 웃긴 일도 1, 2주일이 지나니까 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그라드는 양상을 띄었다. 감독님에게 말씀드렸던대로 원래는 나와 태연이의 듀엣이었던 곡을, 지은이와 태연이의 듀엣곡으로 만들었다. 내 아이디어는 의외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음악이 꽤 괜찮고 깔끔하게 뽑아졌다. 그걸 다시 감독님에게 들려드리니, 한 글자로 깔쌈하게 굿, 이라고 말해주셨다. 기분은 좋았다.
감독님의 말로는 <너는 나의 봄이다>의 본격 홍보 활동이 2주 뒤부터 시작된다고 그랬다. 그렇다면 4월 초에 <너는 나의 봄이다>가 시사회 일정부터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나의 첫 주연 영화이자, 첫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태껏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차례차례 스쳐지나갔다. 고생한 적도 있고, 행복한 적도 있고, 참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추억들이었다.
오랜만에 윤아와 함께 놀 겸, 옷을 입기 시작했다. 윤아도 마침 하고 있던 드라마의 촬영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사랑비>란 드라마였나. 장근석과 함께 주연이라고 한 것 같았다. 70년대의 영화 같은 사랑과 00년대의 풋풋한 사랑이 잔잔하고 여운이 있는 영상미와 함께 표현된다고 하는데, 윤아가 꼭 보라고 하는데, 그 드라마가 방영이 시작될 쯤이라면 아마도 나는 영화 일정 때문에 바쁠게 분명했다.
그 때 발신자 임윤아, 로 전화 한 통이 내게 걸려왔다.
"여보세요?"
[오빠아~ 준비 됐지이?]
"어, 준비 됐어. 네가 파주로 올래?"
[이씨, 장난하지 말고~ 얼른 서울로 튀어 와.]
"알았어. 섬 어디라고?"
[그건 가보면 알지롱~]
그렇다. 그녀에게 오래 전에 쉼터가 되어주겠다고 선언한 뒤, 윤아가 힘들어할 때나 드라마나 영화 같은 힘들고 빡센 스케쥴을 마칠 때 한 단계 쉬어가자, 라는 의미로 그녀와 밀월여행 비슷한 느낌의 여행을 떠났다. 오늘의 1박 2일간의 여행도 그런 형식이었다. 봄바람이 가벼웠다. 가벼운 가디건을 걸친 옷차림으로 투아렉의 시동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이 선물을 조공받은 지도 어언 11개월이 다 되어갔다. 2011년 5월의 엄청난 생일 선물 조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2년의 5월이 다가오고 있다니. 아직은 3월 말 즈음이긴 했지만.
투아렉의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파주를 벗어나 서울 길목에 진입했다. 내가 알기론 요즘엔, 소녀시대도 점점 숙소생활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집에서 생활로 바뀌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중 윤아가 대표적이었다. 윤아는 자기가 말해준대로라면, 회사 근처에 집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야, 회사에서 일이 있을 때 금세 모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해서 있어봤자, 강남을 벗어나지 못했다.
윤아가 살고 있는 멘션 앞에 멈춰서 빠방, 거리는 민폐는 부리지 않고 다시 윤아에게 통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수신자 임윤아다.
[여보세요?]
"임윤아 나와라."
[히힛.]
정체 모를 괴상스런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는 금세 끊어져버렸다. 그렇다. 이것은 임윤아가 개수작을 부릴 때나 짓는 음흉한 웃음 같은 것이었다. 잇힝한 짓은 절대로 아니 되는 일이었다. 먼지가 되도록 맞는 한이 있더라도 내 몸은 내가 지켜야지. 저번에 느낀 거지만, 함부로 놀려댔다간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태연이와 있을 때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리고 이 억제주사의 좋은 점이 있다면 성욕마저 불식시켜준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성욕은 조금 통제하기 힘들지만서도. 물론 이 억제주사의 비밀에 대해서는 김태연,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임윤아가 뜸을 들이며 모습을 보이지 않자, 나는 주사의 약발이 떨어질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 운전석 옆 수납함에서 주사기를 보관하는 케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이제는 손에 익은 터라 알아서 주사자국을 찾고 그 근처에다 주사기를 꽂았다. 주사바늘이 따끔한 것은, 아무리 맞아도 나아지지 않는 것들 중 하나였다. 주사를 끝나고 아련하게 남는 고통에 표정을 찡그린 채로 멘션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사람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풀나풀한 몸집에, 수수한 차림의 임윤아였다. 윤아는 뭘 입어도 잘 어울리고, 이쁜 23살의 여자지만.
"굿 모닝~"
"어디 갈 지는 결정했어?"
"응응, 표도 이렇게 모바일로 예매했지롱."
윤아가 예매한 문자를 내게 보여주었다. 조약도? 처음 들어보는 섬이었다.
어디인지 네비게이션에 찍으려고 하는데, 윤아의 조막만한 손이 내 손길을 제지했다.
"내가 칠래."
"정 그렇다면…"
윤아가 네일케어를 받은 것을 입증하는 예쁜 손톱을 내 쪽으로 보여주며 네비게이션 화면을 꾸욱, 꾸욱 눌렀다. 수 번의 버튼 클릭이 만들어낸 단어는 간단하고 명료했고 막막했다.
[완도항]
'오, 마이 갓.'
인천항도 아니고, 부산항도 아니고, 목포항도 아니고, 여객터미널도 아니고, 완도항? 역시 임윤아는 멋진 여자라니까. 완도, 이름은 여러 번 들어보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중심에서 남쪽 끝까지 쭉 달려야하다니. 간단하게 완도항까지만 해당되는 거리만 해도 430km는 족히 넘었다. 예상시간이 6시간 가까이 되었다. 파주-전주 간의 최장거리를 갱신하는 기록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다? 아마도 돈일듯 싶었다.
"윤아야, 돈은 가져왔지?"
"응. 두둑히 챙겨왔어. 현금으로는 만 원 짜리 30장 정도? 카드는 뭐, 억 단위."
"돈 걱정은 없겠네."
"응, 응. 문제는 오빠 체력이지."
"중간에 피곤하면 네가 운전할래?"
"아니이, 나는 오늘 오빠 믿고 운전면허증 안 가지고 왔지, 헤헷."
아, 계획적인 여자같으니라고. 하지만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윤아가 재미있게 놀아줄테니까 딱히 지루함은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설마, 천하의 임윤아가 날 배신하고 폭풍수면에 빠지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별 수 없다. 어느 휴게소 같은 곳에 들어가서 오수 좀 즐기는 수 밖에. 물론, 사람 많은 휴게소는 피해야하는게 최선책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휴게소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서도. 지금의 윤아의 체력은 꽤나 팔팔한 것 같았다. 투아렉의 남아있는 연료량으로 봐선, 첫 번째 휴게소에 들릴 때 주유소도 함께 들려서 기름 좀 채워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다.
"오빠, 너나봄 촬영하면서 재밌었어?"
"응, 나름대로. 연기에 대한 매력 좀 느끼게 됐지. 여태껏 살아온 인생이랑 다른 인생을 살잖아. 막, 살인범으로 오해도 받고, 물론 영화 속에서."
"실제는 해외 토픽감이지. 아니면 2012년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의자왕이라던가."
순간 딸꾹질이 올라온 건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윤아의 말에 10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한 숨 소리로 침묵을 깼다. 교통체증 때문에 아직도 서울을 탈출하지 못했다. 꼭 윤아에게 방금 찔린 것이 있어서 답답한 내 마음 같았다.
"아, 왜 이러지. 오늘은 조금 안 되려고 그러나."
"…왜?"
"운 안 좋게, 신호란 신호는 다 걸리네."
"액땜이지, 뭐. 아침은 이러다 휴게소에서 못 때우겠다. 그냥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때우자."
"…그래야겠다. 그럼 윤아는 이제부터 레이더 가동해라. 근처에 패스트푸드점 있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윤아는 한 마리의 이구아나처럼 창문에 얼굴을 붙인 채로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내린 패스트푸드점의 정의는 이러했다. KFC라거나 맥도날드라거나 버거킹이라거나 롯데리아라거나. 아직 아침 시간도 안 끝났고 하니, 맥모닝 세트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결론은, 맥도날드군.
"아니다. 맥도날드 찾아."
"맥도날드? 방금 지났는데?"
"뭐? 패스트 푸드점 찾으라니까, 왜 말 안 했어."
"난 맥도날드보단 롯데리아라서, 힛."
잔망스러운 계집애. 나는 윤아의 말에 헐레벌떡 길가에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윤아 쪽 창문으로 고개를 뻗어서 보니까 맥도날드가 걸어서 1분 정도 걸릴 거리 쯤에 있었다. 윤아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기에 나는 그 행동을 제지했다. 윤아는 왜,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너 거기 가면, 미니 싸인회 열러서 안 돼. 그나마 인지도 덜 한 내가 가야 편할 걸. 이 밀짚모자 쓰고 있고,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어. 금방 사 가지고 올게."
"응응."
윤아를 차에다 두고, 운전석 옆문을 열어서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길가에 세워놓은터라, 내리자마자 쌩, 하고 지나가는 차소리가 귀에 퍽퍽 담겼다.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 나타나는 흔한 대도시 도로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영화 개봉 전이고, 방송 탄 건 섹션 연예 프로그램, 그거 하나가 전부라서 날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많이들 알아듣겠지. 내가 심심타파, 라는 라디오로 연예대상 3관왕까지 해봤는데 말이지. 이 목소리로.
"헴헴."
아침이라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맥도날드 체인점 안으로 들어갔다. 목소리를 가다듬는 이유는 간단했다. 갑작스러운 삑사리를 사전에 예방해두자는 것이었다. 쪽팔림을 모면하기 위한 최선책이랄까. 어차피 평일이기도 하고, 출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별 트러블 없이 바로 카운터로 직행할 수 있었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맥모닝세트 2개 주세요."
"맥모닝세트 2개 주문 받았습니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내 지갑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점원은 카드를 결제기에 긁고는 진동식인 대기번호판을 내게 주었다. 난 카운터 근처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으로 온 메세지를 확인했다. 보나마나, 방금 카드결제한 내용에 대해 기재되어있는 문자일듯 싶었다. 그래도 모르니까 핸드폰을 열어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문자 1통은 카드 결제 내역이 확실했다. 근데 카톡도 1통이 와 있었다.
"이건 뭐지?"
메세지의 수신자는 임윤아, 가 아닌 정체 모를 Joker 라는 이름의 사나이. 프로필 사진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소름끼치게 웃고 있는 삐에로였다. 나는 그 조커, 라는 놈이 보낸 메세지 내용을 확인했다.
[Game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