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1화 (332/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스물 세 번째 과외 - 너의 목소리가 들려 完

  "제가 작곡한 노래니까, 곡 해석해서 가수가 부를 수 있게 하는 능력은 제가 더 나을 거니까. 한 세 시간만 놀다 오세요."

  "…하하, 그럴까?"

  민수형은 나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떠났다. 그는 내 표정을 읽었던 것이었다. 물론 녹음 부스 안에 있는 지은이도 내 표정을 읽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치 내 뒤에 있는 귀신을 본 것이라도 한듯이 소름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녹음실 부스 스피커로 들릴 수 있게 하는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고 지은이에게 말했다.

  "네가 화내고 싶을 땐 내랬지."

  

  지은이는 고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타이틀감인 내 노래를 훔친 용의자가 요즘 앨범 녹음하느라 바빠죽어하는 이지은이라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지은이는 초조한 눈빛으로 하염없이 날 쳐다보며 자신의 손가락을 맞대며 어쩔 줄 몰라했다. 금방이라도 사과할 기세의 그녀랄까. 울먹거리는 건 이제 안 통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듯 싶었다.

  "일단 첫 파트부터 다시 녹음하자."

  "네."

  "왜 존댓말 해. 평소처럼 반말을 해야지. 그래야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할 거 아냐."

  "응…"

  "<작고 앙증맞은 손을 잡아주며>부터 시작해."

  지은은 내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곧바로 헤드셋을 끼고는 녹음용 마이크 앞에 다가갔다. 나는 녹음 프로그램의 녹음버튼을 눌렀다. 인트로 멜로디가 들리고, 지은이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물론 일부러 삽입한 소리였다. 그리고 지은이는 달달한 톤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컴퓨터 녹음 프로그램엔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소리의 맵시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경직된 그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재생버튼을 정지시키고 마이크의 버튼을 켰다.

  "목소리 경직됐잖아. 목 풀고, 10초 후에 다시 시작한다."

  

  지은은 울컥거리는 마음을 참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순식간에 1옥타브를 소리로 냈다. 

  "작고 앙증맞은 손을 잡아주며…같이 걷을래 라고 하는 너…"

  또 다시 재생버튼을 멈추고,

  "이건 슬픈 발라드 노래가 아니다. 목소리에 물기 있는 거 말리고 다시 불러. 준비 됐으면 말하고. 너 데뷔한지 벌써 4년째잖아. 신인가수도 아니고, 자꾸 실수하네. 이래가지고 어떡할래?"

  "…미안해."

  지은이의 목소리에서 물기는 쉽게 마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고로 오늘 녹음은 제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 나는 고분고분하게 말하는 어투로 말하는데, 지은이는 왜 저렇게 겁이 먹었나, 모르겠다. 지은은 손가락으로 촉촉한 눈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목이 타는지, 스피커 위에 있는 물을 두 모금 정도 연이어 마셔댔다. 그리고 지은이가 녹음용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이내 녹음실 부스 바깥의 스피커로 전해졌다.

  "…오빠,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잘못한 건 아나보지?"

  "…응."

  "나는 그게 싫다. 너를 비롯해서 웬만한 애들 다. 내가 다 받아주니까, 다 되는 줄 알고 내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행동하는 거. 나 그거 좀 당황스러워, 그게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신고나 고소하면 끝인데. 이지은, 너 같이 친한 애들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 지 도저히 모르겠어. 신고, 고소 그래 할 수 있으면 하면 돼. 근데 나중에 또 볼 사이인데 어색해지잖아.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공과 사는 정확히 가리자, 이지은. 니가 가져간 두 곡은 일단 이번엔 그냥 넘어가고, 내가 직접 프로듀스 해준다. 그리고 이건 잘 알아둬, 내 집에 있는 내가 만든 습작들은 당연히 원작자가 있는 곡들이야. 그리고 내가 진짜 화났을 때는 애교, 눈물 같은 거 안 통해. 오히려 가증스럽거든. 그러니까."

  지은이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안해…미안해…를 반복구간재생하듯이 읊조렸다. 그녀의 젖은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똑똑히 들려왔다. 

  "애교 부려봐, 이지은."

  그래서 이 쯤에서 그만하기로 했다. 화를 내는 것은 뭔가 내가 상대방보다 위에 있다는 권위의식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대신 사람을 점점 잃어간다는 느낌도 마찬가지로 들었다. 그것을 체감한 뒤로 나는 생각했다. 화를 낼거면, 잃어도 되는 사람에게 화를 내자고. 

  "…어?"

  "애교 부려보라고. 잘 하잖아."

  나는 장난을 치는 어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을 닦는 것을 멈추고, 눈물을 닦던 검지손가락을 손가락 틈 사이로 쏙 넣더리 야무지게 두 주먹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복숭아빛 나는 볼 옆에 대더니 앞뒤로 꼬물락거리며 꿈틀거렸다.

  "…뿌잉뿌잉."

  "세상에서 가장 슬픈 뿌잉뿌잉이네. 더 귀엽게 해봐."

  "뿌잉뿌잉?"

  "아, 오글거려. 나 여기서 나가야겠다."

  

  지은이는 두 번째엔 자신감이 붙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회심의 애교를 지었지만, 그것은 나의 노림수였다. 나는 곧바로 준비한 연기를 하면서 녹음실에서 빠져나왔다. 지은이의 아우성이 녹음실 문 사이를 두고 들려왔지만 나는 무심한 모습으로 엘레베이터로 걸어갔다. 지은이가 녹음실의 문을 열고는 내게 달려왔다. 나는 지은이가 내게 복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재봉틀 돌아가듯이 급하게 연타했다. 하지만 지은이의 접근이 엘레베이터가 내가 있는 층수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빨랐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내 몸에는 포근한 지은이의 몸이 감싸져왔다. 그것도 등이 아닌 앞쪽에서. 그거 할 때보다 더 세게 껴안는 지은이었다.

  "오빠, 고마워."

  "고마우면 꽃등심 사던가."

  "…아, 진짜! 그 때 샀짜나!"

  꽃등심 = 지은의 분노, 라는 공식은 완벽했다. 이 공식을 만든 사람은 대외적인 물리학상을 받아야 마땅했다. 이건 아마도 평생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그런 기믹이었다. 뻘쭘한 포옹도 애드리브 한 방에 끝이 났다. 나는 엘레베이터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지은이는 녹음실에나 있을 것이지, 나를 따라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기막힌 우연처럼 우리 둘은 엘레베이터 층수를 알려주는 숫자판을 쳐다보았다. 지은이는 무의미하게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릴 줄 알았건만. 

  "넌 어디 가는데."

  "나, 편의점 가는데?"

  "편의점을 왜 가, 시켜먹어."

  "지금 지갑 안에 있는 돈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시켜먹어."

  "카드로 긁어."

  "돈 많이 버는 연예인이 양심이 있지. 어떻게 소액결제로 먹어. 그럼 오빠가 사줘, 뿌잉뿌잉."

  "시기 적절하게 애교 써먹네…그럼 나랑 어디 좀 가야겠다."

  "…이잉, 어디, 모텔? 그 정도야 까짓거, 가주께!"

  타이밍도 적절했다. 애교 말고,

  "뭐라고? 모텔?"

  "아, 태연아. 안녕. 순전히 이 드립은 이 발칙한 지은양께서 하신거랍니다."

  

  모텔 드립. 

  +

  "…히잉."

  "지은아, 누가 나올 줄 알고 그런 드립을 서슴없이 치니. 그런 드립은 사람들 없을 때, 민식이랑 혼자 있을 때 실컷 쳐."

  "근데, 왜 내가 맞고 있냐."

  "미성년자 관리 못한 네 잘못."

  "쟤, 스무 살인데."

  나는 가만히 있었고, 모텔 드립을 친 용의자는 이지은이다. 하지만 태연이의 히스테리는 내가 다 받아내고 있었다. 중국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은 이지은이었고, 김태연이었고, 나는 젓가락마저 차단당한 상태였다. 이 못된 여자들. 내가 네들한테 없는 돗 써가며 비싼 한정식, 양식, 코스 요리로 다 시켜서 떠먹여줬건만. 은혜를 이렇게 똥으로 갚아버리다니, 고맙기가 짝이 없구나.

  "…아, 아직 5월 16일 안 됐으니까 미성년자."

  "그런 억지 논리가 어딨냐!"

  "여기 있습니다, 민식씨."

  이번에는 이지은의 다리가 아닌, 김태연의 아담한 다리가 거침없이 내 중요부위를 위협했다. 아, 이지은의 스킬을 숙련시킨 스승이 김태연이었다니. 끼리끼리 논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노래도 잘하고, 얼굴도 이쁘고, 키도 똑같이 몽땅연필(사실 이지은이 4cm 더 크다)인 것들이, 적어도 20cm 이상 차이 나는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다니. 어쨌든 

태연이가 내 젓가락 차단을 해제시켜줬으면 좋겠다. 이것들이, 지금 이 음식도 내 돈으로 선불 계산한 것이 아니던가. 이건 지은이가 내 곡을 몰래 훔친 것보다 더 얌체같고, 빡치는 일이었다. 정정당당하게 내 돈으로 샀는데 먹질 못하다니. 이런 상황이 세상에 어디 있나. 억울하게 죽겠다. 나는 발을 동동 굴리고, 부아가 치밀었다. 

  이제는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한 나는 그녀들이 자장면을 도도하게 흡입하는 데 정신을 팔린 찰나에 수저통을 열고 숟가락, 젓가락을 꺼내고 곧바로 옆 테이블에서 빈 접시를 챙겨 이지은과 김태연의 자장면을 스틸했다. 금세 내 접시에 자장면들이 소복히 쌓였다. 그녀들은 당황한 나머지 허공에 의미없는 젓가락질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섬뜩한 바람소리가 내 하부에서 느껴졌다. 설마, 하면서 아래를 쳐다보니 두 다리가 나의 그곳을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그냥 떨어트렸다. 시발, 그 부위만 민망하게 거뭇해졌다. 누가 보면 청바지에 고깃국물 지린 줄 알겠네. 

  이지은과 김태연은 타는 내 속도 모르고,

  "…푸후훕…"

  "끄흡…푸핫…푸흡…푸흐흡…"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물보다 열심히 나를 비웃고 있었다. 아, 이걸 어떡하지, 진짜? 

  나는 열심히 노력하며, 노래를 작곡할 때 외에는 요즘 성능이 좋지 않은 머리를 돌리며 주변의 소품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첫째, 휴지로 묻은 부위만 가린다. 그건 미친 짓이었다. 감독님한테 나에 대한 이미지의 신임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영화장에서는 재치있고 한없이 멋있었던 내가 마치 자기위로를 하고 뒷처리를 미처 하지 못한 채 들킨 중딩마냥 애매한 위치에 휴지를 올려놓는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경악스럽고 더러웠다. 곧바로 두 번째 방도를 생각해보았다. 긴 옷을 이용해서 바지까지 가린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태연이가 입고 온 핑크색 바탕의 키티 주머니가 있는 조금은 유아틱한 코트였다. 저걸 입는 순간, 오늘의 내 결말은 정해진 듯 보였다. 

  +

  "이 노래 좋은데, 그럼 마무리 잘 해봐."

  "네, 안녕히 가세요. 싱어는 제가 아까 말한 애들로 할게요."

  "뭐, 난 널 믿어. 근데 네 패션은 이해하지 못하겠다…푸훕, 여튼 가볼게."

  

  보는 사람마다 하나 둘 씩 나를 보고 씨익, 비웃고 가고 있었다. 감독님까지 합해서 총 열 번째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로 태연이의 롱코트를 입고 미팅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을 비롯해, 다른 아티스트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키 182cm의 남자다운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나란 남자가 이런 유아틱하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것에 대해 컬쳐쇼크를 느낀게 분명했다.

  "형, 그게 뭐에요…풉! 이거 트위터에 올려야겠다."

  복도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던 나를 보던 종현이가 갑자기 통화를 끄고 핸드폰을 카메라 모드로 돌려놓고 태연하게 비웃었으며,

  "…헐, 대바규. 오빠, 이런 취향이었어?"

  콘서트 연습 중이었던 거꾸로 해도 정수정인 정수정이 물을 먹으려고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으며,

  "민식아, 너 요즘 건강 안 좋다고 하더니, 진짜 안 좋은가 보구나. 집에가서 좀 쉬어라."

  보컬 연습실에서 노래를 연습하던 노래 잘하는 창민형도 나를 불쌍하다, 혹은 미쳤구나, 혹은 안쓰럽다, 라는 표정으로 나를 걱정했고,

  ○ 다정다감한 DJ였던 민식의 평소 모습.jpg

  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그 옷을 입은 사진과 함께 여러 기사가 뜨겁게 심심한 연예면을 달구어 놓았고, 이 반응들은 종합적으로 나를 멘탈붕괴시키기기에 충분했다. 곧 영화 개봉을 앞둔 신인 영화 배우의 신비로운 이미지는 이렇게 두 여자의 발길질 덕분에 쿠크다스처럼 허무하게 부서져버렸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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