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스물 두 번째 과외 - 너의 목소리가 들려 4
"수지가 올해 몇 살이야."
"저요…? 저요, 열 아홉 살이요."
"그럼 설리하고 수정이도 열 아홉 살인가."
"…지영이두요!"
"…아."
수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지은이는 꽃등심을 열심히 굽고 있었다. 어, 내가 구울려고 하는 건데 왜 지은이가 굽고 있는 거지. 집게를 뺏으려고 팔을 뻗어도 불판과 함께 달궈진 집게로 내 팔을 툭툭 치면서 팔 치우라고 말하는 지은이었다. 그리고는,
"누가 보면 원조교제네."
"…미쳤네, 집게 지금 뜨거울 텐데 내 맨살에 댄다. 화상 입으면 보상해라."
"뭐루? 뭐루? 이거루?"
수지가 딴 곳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지은이의 음란한 다리는 내 중앙부까지 뻗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복귀했다. 소름이 끼쳤다. 나와 지은이는 무려 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궁합도 안 보고 결혼을 하는 사이인데, 지은이가 나를 아주 갖고 놀고 있었다. 아, 잔혹동화처럼 내가 주도해야 할 날이 다가와야 할텐데. 그 날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오빠, 오빠, 오빠!"
"응?"
나보다 더 인기도 있고, 미모도 뛰어난 수지가 나의 팬인 마냥 흥분되는 목소리와 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정작 진짜 연예인인 핫 셀러브리티가 나의 말을 저렇게 귀담아 듣고 있다니. 수지는 내가 지은이가 꽃등심을 굽는 것에 시선을 돌릴 때 내 옆에 앉아 어깨를 두드리며 자꾸 말을 걸어댔다. 귀찮긴 했지만, 여자란 생물은 삐지는 것 자체가 곤란한 상황이므로 말을 받아주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청순가련하고 귀여운 여동생은 괜찮겠지. 물론 여자는 절대로 용납 못하는 일이었다. 여자로서의 아이들은 내가 지금 다리를 뻗으면 닿는 거리의 고기 굽는 여자를 비롯하여 참 많아서, 부담스러워서였다.
"…말, 말 놔…말 놔도 되여?"
"아니, 안 되는데."
"…히잉, 그렇죠? 알았어요, 말 안놓을게요…"
수지는 내가 장난스럽게 자신의 부탁을 튕겨버리자,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물잔에 담긴 냉수를 홀짝였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덜 익은 꽃등심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수지의 젓가락을 다그치는 왕집게 하나. 왕집게 하나가, 수지 젓가락에게 말을 했다.
"덜 익었거든!?"
"…히잉, 화장실 갈끄야!"
"가라."
"가라~"
오랜만에 지은이와 단합을 해서 징징거리는 여자애를 화장실로 보내버렸다. 수지는 도끼눈으로 지은이를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더니 삐진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거리고 쿵쾅, 소리가 나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씩씩대며 걸어갔다. 군인 만큼 각이 지고 합이 잡힌 걸음은 아니었지만, 절도는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걸어가는 수지에게 손인사를 해주고는 먹음직스럽게 지글지글 익어가는 꽃등심의 비쥬얼을 감상했다. 꽃등심이 몸 위로 흘려대는 기름진 땀에 혀가 입술 상하부를 반복해서 움직였다. 혀가 지나간 자리는 당연히 매끈한 흔적이 묻어났다.
"네가 사는데 왜 네가 구워, 이리줘 집게."
"…됐거든? 호의는 무슨! 이거나 먹기나 하라구, 메롱!"
지은이가 오늘 츤데레병에 걸렸나.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일본 만화에 나올 법한 도도한 여자 캐릭터의 성격을 모음집 해놓은 것 같았다. 나는 지은의 집게를 억지로 뺏으면서 지은이가 굽다 만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지은이는 집게를 뺏자마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꼭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마냥. '먹어' 라고 고기를 접시에 담아주는데, 그걸 집어먹는 지은이의 미간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전부 그렇게 보였다. 서로의 일담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음꽃을 피우는 주변의 화기애애함과는 달리 지은이의 굳은 표정은 유난히 튀어보였다.
"어디 아파?"
"아니, 안 아파. 그냥."
"기분도 안 좋은데, 내가 괜히 꽃등심 사달라고 했나. 오빠가 낼게."
"아냐, 내가 꽃등심 살 거야. 오빠가 우영오빠처럼 굴면 내 입장 또 난처해져!"
"…?"
지은은 구운 꽃등심 냄새가 피어오르는 자리를 박차고 곧바로 카운터로 달려갔다. 신발을 신지 않고, 그 위로 발을 밟아서 질질 끌듯이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귀여운 지갑을 열더니 카드를 꺼내서 금세 계산을 했다. 꽃등심 말을 할 때마다 지은은 노이로제, 같은 것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내 앞자리로 옷차림을 정리하며 앉는 지은이었다. 젓가락을 들고는 내가 담아준 꽃등심을 하나 둘 씩 빠르게 집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지은이 체할까봐, 아까 시킨 사이다를 지은이의 컵에 따라줬다. 지은이는 땡큐, 하고는 곧바로 그 사이다를 급하게 마셨다. 말없이 급하게 어느정도를 먹고 난 뒤, 지은이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응?"
"오빠는 진짜 잘 화 안내는 것 같아."
"그렇긴 하지, 그건 왜."
"오빠는 어떨때 화내나 싶어서. 나한테는 화 내는 모습 거의 안 보여줬잖아."
원체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라서. 특히 이성한테는 더 그런 것 같았다. 뭐, 동성이어도 무자비하게 폭발하는 것도 아니고, 이성적으로 해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고 화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화를 낼 때는 정해져있었다. 내가 노력한 것을 빼앗았거나,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등등.
"니가 화날만한 짓을 안 하니까."
"칭찬이지?"
"칭찬이야."
노릇노릇 익은 고기는 계속해서 지은이의 접시로 향했다. 지은이는 자기가 먹던 고기 중 일부를 수지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수지에 대한 배려였다. 남자와 남자간의 의리만큼, 나름대로 여자와 여자의 의리도 좋은 것 같았다. <써니> 라는 영화는 여자간의 의리라는 주제가 잘 드러나있는 영화이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은이는 내 말에 안심을 한듯 피식, 웃었다.
"오빠."
"응?"
"그래도 화날 때는 화 내야지. 참지마, 참으면 병되니까. 막상 당사자가 화를 내야할 분위기인데, 화 안내면 오히려 당황스럽거든."
"꼭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습 같다."
"…히히."
지은이의 웃음은 의미가 있어보였다. 정적이 우리 둘을 잡아먹을 때, 나풀한 걸음으로 수지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얼굴이 바뀐 느낌이었다. 상큼하고 풋풋한 느낌이 강해졌다. 그리고 그걸 엿먹이듯, 빨간 립스틱이 발라진 수지의 말랑한 입술은 조금은 도발적이었다. 그래도 어렸다.
"오빠, 그래도 수지한테 잘해줘. 친해지면 진짜 잘해준만큼 잘해주는게 수지야."
"…글쎄."
지은이의 말에 신발을 벗고 올라오는 수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수지는 나의 눈빛을 보고는 얼굴이 금세 빨개져서는 자리에 차분히 앉은 것이 아닌, 그저 주저앉아버렸다. 그냥 주저앉으면 좋을 걸, 주저앉으면서 미끄러진 수지의 다리가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나는 신음을 삼켜야했다.
"…으윽, 으으."
"오빠, 괜찮아?"
"…어…이, 이게 아닌데…오…오빠…괘, 괜찮아요…?…흑, 죄송해서…어떡해…"
정이 많은 걸까. 아니면 자신의 우상(혹은 이상형)에게 험한 짓을 해서 느끼게 되는 죄책감인걸까. 수지는 전자나 후자에 상관없이 그저 눈물 많은 여자였다. 소녀감성이라던가, 여리던가.
지은이도 수지의 헥토파스칼킥을 맞고 얼굴이 빨개진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으면서 걱정을 했다. 수지와 지은, 둘 사이의 표정은 재미있을 정도로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훨씬 괘씸한 쪽은 내 건너편에서 웃음을 참는 갓 20살의 이지은이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질질 짜."
"…흐극…그래두…"
"미안하면 쌈 좀 싸봐."
"…네?…네! 맛있게 싸드릴게요!"
성격도 조증이 좀 있는 것 같고, 여러모로 위험한 아이였다. 아직 수지란 소녀에게 섹시함이라는 매력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라인으로 봐서는 자칫하다가 느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수지라는 아이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더 이상 늘어나는 건…naver…
나 때문에 성격 버린 녀석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저 순진한 아이였던 지은이도, 나를 만나고 난 뒤 저렇게 괴물이 되어버렸다. 물론 외모는 천사였고, 성격도 좋지만, 밤만 되면 음란마귀가 되니. 나는 매일 소녀들을 대할 때마다 섹슈얼판타지극을 찍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건 슬펐지만. 다행히도 입원 한 번 한 뒤로는, 그런 일은 없었다. 요즘 따라 고프긴 했지만, 또 병원신세 지지 않으려면 불상사가 벌어질 것이 불보듯 뻔한 일들을 참아야했다. 참는 것이 이기는 것, 그것은 진리.
수지는 나의 말을 듣고 난 뒤에 하얀 왼손 위에 상추를 올리고, 그 위에 꽃등심, 그리고 구운 마늘, 그리고 김치와 밥 조금을 올려서 다른 손으로 그것들을 다시 상추로 돌돌 말았다.
"…오빠, 아 하세요."
"아…"
내 손으로 집어먹으려고 했지만, 수지의 손은 이미 내 입 앞까지 와서 상추쌈으로 입술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술을 벌리고 수지가 만든 상추쌈을 받아먹었다. 맛은 그냥 쌈맛이었다. 다행히 나를 고생시키려는 의도로 마늘 여러 개를 피쳐링하지는 않은 듯 했다. 입 안에서 맴돌지 않고, 다음 단계로 매끄럽게 넘어갔다. 결과는 별 탈 없음.
"맛 괜찮네."
"…진짜요! 하나 더 싸드려요? 제가 계속 먹여드릴까요?…제발 그렇게 해주세요…헤헷."
수지는 의욕이 넘쳤다. 메이드 했어도 잘 할 것 같은데. 그건 참 좋지 못한 발상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시 상추를 집어서 차곡차곡 쌈을 싸는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만약 거절이라도 했다면, 수지는 굉장히 우울한 표정을 지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조증기도 있지만, 귀엽고 청순해서 남자한테 인기도 많고, 결정적으로 내 열성팬이고 서울지부 김민식 팬클럽 회장은 자신의 것이라고 내 앞에서 수줍으면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수지의 쌈으로 배를 채워야했다.
간단하지는 않았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이제 가려고 차를 타기 전에 수지는 내 등을 툭툭 치며 쪽지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데?"
"…제 전화번호요…꼭 저장해주셨으면 좋겠어요…그러면 저도 좋을 것 같아요…"
"알았어."
"…진짜죠! 히히, 그럼 안녕히 가세요! 운전 잘 하시구요, 뛰뛰빵빵! 헤헷…"
수지는 끝까지 청순했고 귀여웠고 가련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성격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착한데 뭔가 괴랄할 뿐이었다. 그런 여자나 남자들은 내 친구 중에 극히 다분하니까, 뭐. 나는 시동을 걸고 나서 그 전화번호로 핸드폰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댔다. 수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수지도 조심해서 가."
[…당연하죠! 오빠, 다음에 볼 땐 말 놔요!]
"풋, 그래 그래. 지은이도 집에 조심해서 가라고 전해줘."
[당빠로요!]
+
"네, 감독님. 조금 늦으신다구요. 괜찮아요, 기다리는 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그 동안 딴 것 좀 하고 있으면 되죠. 도착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마중 나갈게요."
[그래, 미안하긴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나는 감독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먼지가 되어>의 MR이 담긴 씨디를 들고서 미팅룸을 나왔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 문득 지은이가 다음 앨범 준비를 위해 녹음 중인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작업실도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은 층이니까 그 곳으로 내려가서 그냥 관객처럼 지켜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엘레베이터를 잡고, 지은이가 있을 층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았다. 붕, 뜨는 느낌도 잠시 엘레베이터는 다시 멈춰서 드르륵 문을 열었다. 나는 내 집에서 자주 작업하긴 했지만, 이 곳에서도 여러 번 작업을 한터라 익숙하게 내 시야에 잡히는 곳이었다. 천천히 걸으면 걸을 수록 유일하게 녹음을 하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내 귀에 선명하게 담겼다.
딴, 따라라, 따라라라라, 기타 스트링을 경쾌하게 치는 멜로디가 마치 귀에 익은 마냥 저절로 허밍이 되었다. 음? 저절로라니, 잘 만들긴 했네. 라고 느꼈지만 점점 익숙한 멜로디가 느껴졌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 노래는 그 노래라는 걸. 나는 화를 낼까도 했지만, 제일 좋은 건.
"어디서 5.mp3 냄새가 나나 했더니, 여기서 나는데요?"
"…오빠!?"
이지은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