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8화 (32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이십 번째 과외 - 너의 목소리가 들려 2

  진심으로 화가 났다. 성지고 파괴신처럼 녹음실 안에 있는 것들 중 아무거나 집어서 파괴하고 싶었지만, 기계 하나하나가 내 몸값보다 비싼 놈들이라서 함부로 부술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또, 가난에 허덕이게 되어서 2년 전과 비슷한 꼴로 흘러가고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집하고 내 나이, 그리고 주변 인맥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CCTV라도 설치해놔야 하는 건데, 이런 거지같은 집을 누가 털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무려 타이틀감 두 곡이나 날아가다니. 손해가 막심했다. 내 기억엔 하나는 만드는 데 4시간 정도 걸렸었고, 16.mp3라는 놈은 2시간 정도 걸렸었던 것 같았다. 16.mp3는 기본적인 기타 멜로디에 어떤 멜로디를 덧댈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걸 스틸해가다니. 

  혼자서 화를 삭여봤자 무슨 소용 있을까. 그냥 작업실의 불을 끄고, 컴퓨터는 켜놓고 나왔다. 왜냐고 묻는다면, 바이러스 검사 때문에 켜놨다. 물론 바이러스 검사 후 종료 설정은 해놓았다. 아날로그가 좋다. 보면 몇 장과 필기도구를 가져와서 거실로 올라갔다. 황량하면서도 아늑한 모래 정원을 보면서 소파에 앉았다. 곡이 잘 생각나야 할텐데. 영화가 영화인만큼, 기타 위에 클래식한 세션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 노래의 모든 기본적 토대는 기타 멜로디였다. 일단 기타줄은 만지면서 튜닝을 했다. 소리는 제대로 나와야하니까. 

  '꼬르륵…'

  "아…나 미친…"

  작곡 좀 하려고 했더니, 굶주리는 소리를 몸에서 먼저 작곡해버렸다. 기타를 소파 위에 올려놓고 먹이를 찾아 킬리만자로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표범처럼 냉장고로 걸어갔다. 시원한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왔다. 그래봤자 냉장고에서 부는 냉풍이지만. 오픈 더 도어! 그리고 남은 건 그저 시원한 공기뿐.

  "냉장고도 배고파보인다. 아오…씨!"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배는 굶주려오는데 먹을 건 없고, 그렇다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와 해먹기에는 시간이 어느정도 걸린다. 방법은 하나.

  '편의점을 가자!'

  기세는 좋았다. 의도도 훌륭했다. 다만 하늘에는 하얀 똥가루들이 뿌려지고 있었다. 아, 상쾌하고 기분 좋은 저녁! 함박눈이 쏟아지는 것으로 봐서, 내일 즈음엔 힘세고 강하게 군대 복무했을 때의 능력을 발휘해 빗자루로 눈을 치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지금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나의 예술 소울을 방해하는 배고픈 악마들을 잠재우기 위해 편의점으로 달려가 먹이를 공급해야했다. 

  가을 때나 입을 트렌치코트를 스웨터와 바지를 걸친 몸 위에 대충 입고 편의점을 향해 걸어갔다. 소중한 나의 느낌을 위해서 알 없는 안경도 오랜만에 쓰고 걸어갔다. 나름 연예인이랍시고 일반인 코스프레를 했지만 , 편의점까지의 인도를 걸어보니 인적이 없어서 괜히 가리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 놈의 일반인 코스프레 때문에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모발로 겨우 눈을 막는 중이었다. 이럴 때는 앞머리가 조금이라도 세워진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머리가 우산 대용이라니. 김무스 선생님은 모든 자연재해를 앞머리로 다 막으시겠네, 부럽다. 부럽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부러울 줄이야.

  눈똥밭을 헤치고 옷과 머리카락 사이엔 똥가루의 흔적을 남겨둔 채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절로 한숨이 밖으로 나왔다. '어휴'하고 말이다. 이제 고통의 시간이 끝났으니, 이제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컵라면이냐 삼각김밥이냐. 우유냐, 탄산음료냐. 으으, 행복한 고민이로세. 집까지 싸가지고 갈 근성은 없으니 구석 끄트머리에 있는 편의점 녹색 테이블에 앉아서 열심히 섭취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맛은 그리 라면을 즐기는 혓바닥은 아니었지만, 음식의 맛을 탐하기 보다는 음식의 존재가 중요한 지금은 라면이든 주먹밥이든 내 입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오늘은 참깨라면으로 정했다.'

  같이 곁들일 음식은 설리가 몰래몰래 많이 마시고 있었던 딸기 우유 옆 커피 우유. 연예인이랍시고 커피 우유 중에서도 제일 비싼 카페모카 어쩌구저쩌구 씨부렁같은 것을 집었다. 그리고 계산대로 직행, 바코드 리더기가 붉은 레이저를 맹렬히 바코드에 쏘아댔다. 삑, 삑, 거리는 레이저의 박동음이 바코드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알바의 입에선 그것에 대한 가격이 기계적으로 나왔다. 나도 기계적으로 돈을 냈다. 그리고 미리 자리 잡아두었던 초록색 테이블로 걸어갔다. 바로 옆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었다. 

  참깨라면의 포장용지를 뜯어보니 라면 사리와 신기하게 생긴 계란 블럭이 있었다. 오일은 일단 꺼내두고 분말가루와 계란 블럭을 넣은 채 뜨거운 물을 담았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의 지루하고도 설레이는 시간을 해결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요즘 대유행중인 애니팡이라는 게임을 켰다. 1, 2, 3위는 김태연, 김효연, 강지영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아무래도 연습을 하지 않고 애니팡만 죽어라 해대나 보다. 어떻게 저 순위는 매번 바뀔 줄을 모르니. 

  게임을 켰다. 스타트, 라는 로고가 사라지기 전에 따로 떨어진 동물들을 눈알굴림으로 찾기 시작했다. 하나 발견, 손가락으로 획을 긋자 순서가 뒤바뀌며 동물 얼굴 그림이 터졌다. 그렇게 5콤보. 화면이 반짝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것만 뜨면 손에 수전증 걸려…'

  결국 아무 것도 못 누르고 콤보 보너스 타임을 낭비하며 보내야했다. 덕분에 콤보도 깨졌다. 시간은 점점 가고 있고, 15초를 남기고 짓궂은 표정의 폭탄 이미지가 나타났다. 

  '이건 클릭해야 한다!'

  사실, 폭탄 아이템은 타임 오버, 라는 소리가 들리고 난 뒤 자동으로 터뜨리는 것을 구경해야 점수를 더 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점수에 더 점수를 추가하는 것에 눈이 멀어 그만 폭탄 아이템을 누르고 말았다. 불사조의 무브먼트처럼 불꽃대쉬를 하며 폭탄은 'ㅗ'자를 그리며 야무지게 터졌다. 획득 점수는 콤보가 깨졌었기에 기본 점수 5000점 남짓. 에잇, 괜히 눌렀다. 

  [이융! 이융! 이융! 타임 오버~]

  "아, 60023점이라니. 나름대로 선방했다."

  베스트 스코어였다. 물론 내 기록 중에 베스트 스코어. 새로 갱신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순위가 올라가는 이미지를 보았다. 이순규가 아래로 내려가고, 내가 위로 올라갔다. 아싸, 만세. 염장이나 질러야지. 

  [[애니팡](메롱)'김민식'님이 60023점을 기록하여 당신을 이겼습니다!]

  "낄낄."

  사악한 마음으로 'O' 버튼을 누른 뒤 다시 참깨라면에 집중했다. 계란 블럭은 온수로 반신욕을 하더니 평소의 계란으로 돌아왔다. 이 때, 오일을 투척하는거지. 오일을 흔든 뒤, 위를 찢어서 참깨라면 국물에 아낌없이 뿌려댔다. 입맛이 절로 다셔졌다. 물론 알바의 시점에서는 참깨라면과 애니팡에 정신이 나간 한 미친 놈, 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얼른 먹고 편의점에서 사라져야지. 잘 익은 면을 나무젓가락으로 휘젓고 한가닥 젓가락으로 움켜쥐었다. 그 때였다.  

  [카카오토그~]

  "아, 중요할 때에…"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이순규가 [ㅗ]라고 답장을 보냈다. 앙칼진 년.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우겨넣고 이제 제대로 한 젓가락을 먹으려고 입을 벌리는데 또다시 카카오톡 메세지 알림음이 들려왔다. 오, 신이시여. 제발 제가 참깨라면을 맛있게 처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오빠, 급한 일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이지은의 메세지였다. 뭐가 급한 일이라는 거지. 존댓말까지 하면서,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

  "언니, 나 오늘 민식 오빠 트위터 봤단 말이야. 오늘 영화 촬영 끝났다고 셀카 올린 거 봤다구!"

  "그래서…?"

  "그래서라니!"

  오늘의 수지는 참 이상했다. 분명히 둘이 만나자고 했는데, 청순가련한 옷들을 입고 왔다. 그리고 화장도 이쁨이쁨 돋게 했고, 머리도 스타일링 좀 한 것 같았다. 저 토끼 머리띠는 자신의 캐릭터를 살리려고 일부러 쓴 걸까. 오늘은 무언가 속셈이 있는데, 알 것 같기도 했다. 알쏭달쏭했다.

  "오빠 불러달라고?"

  "…어…음…으으…으으…"

  "아니면 나한테 고백하려고? 수지, 레즈였네."

  레즈비언이면 반갑긴 하다. 지연이 말고 새로운 파트너가 생길 수도 있는 좋은 기회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수지는 강한 부정으로 목이 나갈 것 처럼 양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쳇, 아쉽네.

  "그럼 뭐, 뭐 어쩌라고."

  난 도끼눈을 하면서 주스를 마셨다. 그리고 수지를 쳐다보면서 동시에 그녀를 떠보았다. 

  "음…어…음…음음…"

  수지는 막상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면 이렇게 당황해하면서 시선을 회피한다. 참 4차원적인 아이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탈 거면서 뭐하러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떨었는지.

  "에이, 싱겁네. 됐어."

  "아…아니야!"

  "그럼 뭐?"

  내가 또 떠보자, 수지는 얼굴이 수줍게 붉어졌다. 하얀 종이 위에 붉은 물감을 붓으로 펴바른듯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놀려먹기도 재밌네. 좀 아쉽긴 하지만, 민식이 오빠를 일단 불러는 볼까. 미리 수지한테 이야기를 해서 수지가 기다리는 동안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들어 볼까. 아니면 서프라이즈 식으로 수지를 놀려볼까. 내 생각엔 후자보다 전자가 더 재밌는 반응을 보일듯 싶었다. 나는 수지가 한 눈을 파는 동안 민식 오빠에게 급한 일이 생긴 듯한 문자를 보냈다. 수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시선처리를 한 다음, 테이블 아래에서 열심히 핸드폰 자판을 눌러댔다. 엄지타법은 이럴 떄 쓰라고 있는 것이다. 

  [오빠, 급한 일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표정은 여유로웠으나, 문자에서는 그 떄의 스토커 사건이 일어난 것만큼 엄청난 긴박함이 민식 오빠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세지를 보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굼세 진동이 느껴졌다.

  [무슨 일 있어?]

  [와서 설명할게.. 빨리.. 빨리 와줘!]

  [급해?]

  [아.. 진짜!]

  [ㅇㅋ 감..]

  한 번에 'ㅇㅋ'를 하고 간다는 소리를 할 줄을 알았지만, 이렇게 뜸을 들이다니. 오빠도 예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 오빠가 아닌 듯 싶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부를 떄는 자주 와줬으면서, 요즘은 자기 스케쥴 바쁘다고 계속 만남에 대해 뜸을 들이고 있었다. 특히 스캔들 이후로 더욱이. 그 복수로 음원 몇 개를 가져가긴 했지만. 오빠는 모르겠지. 음원이 사라진 건 알아도, 내가 가져간 건 절대로 모를 것이었다. 깔깔.

  "언니, 나 화장실 좀…"

  "갔다와~"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초조해하는 수지였다. 수지는 초조함이 생리현상으로 바뀌었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화장실을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갔다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테이블 밑에 감춰둔 핸드폰을 위로 꺼냈다.

  [오빠 어디야?]

  [나, 아직 파주인데.]

  [얼른 와~]

  [이거 이거 말투 바뀐 거 보니까 그리 급한 것도 아니구만?]

  

  헐, 어떻게 알았지. 그래도 태연한 척을 해야했다.

  [아니거든, 급하거든. 얼른 와.]

  [말투가 야리꾸리한데? 그럼 안 간다.]

  [변태야? 그런 거 아니거든 -_-+ 오빠 팬이 오빠 좀 보고 싶다고 하네, 몇 달동안 계속 징징거려서.. 오빠가 한 번만 여기로 와주라~ 웅?]

  [마지못해 가준다. 주소 불러. 오빠 차 탔어.]

  [ㅇㅋㅇ]

  오빠도 어지간히 심심하긴 했나보다. 별 의심 안하고 이렇게 오겠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인터넷을 켜서 내 카페인 유애나로 들어갔다. 유애나는 SM으로 들어가자마자 나의 공식 팬클럽에서 팬덤이 되었다. SM에서 유애나를 정기적으로 소원이나 카시오페아나 샤이니월드처럼 1, 2기 식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간부님들의 말에 나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건 여태까지 날 좋아해준 팬들에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랄까. 돈 냈고, 안 냈고에 따라 차별을 두는게 싫었다.  

    

  "아, 시원하다."

  "수지야, 볼륨 줄여. 여자아이돌 답지 않게 왜 이래?"

  "히잇, 뭐가 어때서?…어?…어…히끅!"

  여자로서의 모습은 커녕 선머슴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지에게 피식, 웃으면서 카카오톡 대화 화면을 보여주었다. 수지는 잠시 방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와 대화를 나눴던 상대방의 이름을 보고는 곧바로 표정이 굳으며 깜짝 놀란듯이 토끼눈을 하고 딸꾹질을 했다. 나는 거기에 끝나지 않고, 수지에게 말을 걸었다.

  "수지야, 언니 배고프다."

  "말만 해, 언니."

  수지는 나의 말에 복종하겠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나는 말없이 도넛을 가리켰다. 수지는 웃으면서 '알겠쏘!'라고 말하며 카운터로 달려갔다. 

  아, 열 아홉 살 먹은 고딩 토끼 조련 참 쉽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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