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5화 (32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열 여섯 번째 과외 - 너는 나의 봄이다 6

  우리는 분장실에 들어가기 전,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건네준 구강청정제 스프레이를 각자의 입에 뿌렸다. 혹시라도 닭 냄새를 풍기면 안 되니까. 그리고 천막의 가림막을 걷어 인터뷰 장소에 앉았다. 감독 의자 같은 배우 의자에 앉아 촬영을 기다렸다. 촬영 스태프들 사이에서 리포터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신인 리포터 남필립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필립? 새로운 이름처럼 처음 보는 리포터였다. 내가 아는 전문리포터라곤, 김생민 선배님, 조영구 선배님 등 밖에 없는데. 마스크도 꽤나 젊은 마스크였다. 우리보다 더 어려보일 정도.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근데 올해 몇 년생이에요?"

  "저요? 93년생이니까 올해 스무 살이에요."

  "어머, 선영이랑 동갑이네."

  태연이는 필립이 자신의 나이를 밝히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신인 리포터는 자신의 로망이었던 인기 여자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자신과 악수를 하자 당황하면서 기분이 좋은 듯 표정을 지었다.

  "촬영 갈게요."

  현장 감독의 말에 이제 막 리포터로 데뷔하는 필립이나, 섹션 연예TV 같은 연예방송에 처음 나오는 나나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여유로운 연기자는 오로지 태연이 밖에 없는 듯 했다. ENG 카메라의 빨간 램프가 켜지고 촬영은 시작되었다.

  "네! 3사 방송 최초로 <너는 나의 봄이다>의 주연배우들을 만나보네요.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한 번씩만 해주세요~"

  "네, 너나봄에서 장민석 역할을 맡은 김민식입니다. 반갑습니다."

  "너나봄에서 김태연 역할을 맡은 김태연입니다~"

  우리가 첫 질문에 대답

하는 동안 리포터는 짤막하게 질문용 큐시트를 쳐다보며 다음 질문을 준비했다. 

  "태연씨는 <너는 나의 봄이다> 배역명이랑 이름이랑 똑같으신데 기분이 어떠세요."

  "그저 그래요.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길게길게 촬영하는 곳에서 배역명하고 이름이 다르면 저를 부르는 것 같은데도 헷갈리기도 한데, 이번에는 통일되어있으니까?"

  

  역시 경력의 위엄인가. 나같으면 몇 마디 하고 끝날 말을 어떻게든 길게 늘려서 분량을 뽑아내는 태연이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저희가 알기론 두 분 다 첫 주연이신데 기분이 어떠셨나요?"

  "음, 태연씨는 몇 번 시트콤 같은 장르에서 연기하는 것 같았는데, 저는 이번에 <너는 나의 봄이다> 자체가 제 연기의 첫 걸음마였거든요. 다른 배우 분들 같았으면 단역부터 시작하시는데, 저는 주연 먼저 시작해서 어색한 감도 있구요. 하지만 스태프 분들과 배우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 첫 주연이고 첫 연기의 시작인만큼 실수하지 않으려고 연습 또 연습 중입니다."

  "어, 가수 생활 계속 하다가 배우로 한 번 전향해보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느낌이 들어요. 가수로는 5년차지만, 연기로는 이제 막 갓 태여난 신인이나 다름 없잖아요. 그리고 저도 민식씨처럼 첫 영화 첫 주연인데.

자격지심 들지 않도록 열심히 연기 연습 중에 있습니다. 모든지 쉬운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필립은 우리의 말에 경청했다. 하지만 너무 경청하느라 다음 질문을 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 보였다. 우리가 "다음 질문 안 하세요?" 라고 물으니까 그제서야 "아, 죄송합니다." 하면서 다음 질문지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웃겨서 살짝 그를 향해 웃었다. 

  "그러고보니, 연초에 공식 연애 선언을 하셨잖아요."

  "네, 무슨 질문을 하시려고…그런 전제를 꺼내세요…"

  "연인끼리 나란히 주연을 맡게 되었는데, 장단점이 있다면 뭐가 있나요?"

  "음…"

  질문을 받자마자 잠깐의 고민에 빠졌다. 내가 대답을 해야하나, 이건 인터뷰 경력이 좀 되는 태연이가 하는게 더 낫겠다 싶어서 태연이에게 눈빛을 보냈다. 태연은 피식, 하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리포터는 '솔로 앞에서 애정행각이라뇨…'하면서 스스로 멘탈붕괴에 들어갔다. 침묵이 잠깐 지나가는 것을 붙잡은 건 태연이었다.

  "장점이 있다면 스케쥴 걱정 없이 계속 본다는 거? 단점은 그래서 질린다는 거."

  "…푸하핫!"

  역시 태연이의 예능감은 뛰어났다. 리포터는 질문을 진행할 생각을 하지 않고 태연이의 드립에 웃기를 바빴다. 나는 태연이의 드립에 질 수 없어서 웃다 쓰러져가는 리포터의 질문지를 받으며 태연이에게 물었다.

  "좀 그렇네. 여튼, 필립씨를 대신해서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이번 영화에 대해 간단한 설명 좀 해주시죠."

  "그르까요? 저는 인기 그룹 <소녀시대>에서 탈퇴하게 된 리더 김태연이고, 이쪽은 전주로 내려온 서울 출신 살인범? 자세한 건 나중에 영화 나오면 그 때 보세요~"

  "이 와중에 홍보라뇨! 굿입니다. 자, 여기 질문지요."

  역시 경력 있는 연예인은 달랐다. 이 와중에 홍보라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태연이의 센스를 넘으려면 강 몇 개는 더 건너야 할 것 같았다. 태연이는 이미 드립으로 범접할 수 없는 위치까지 다다라보였다. 갑자기 태연이가 성인으로 보인다. 어덜트 말고 세인트.

  "대신 질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연씨한테 질문이 두 개나 갔으니, 이번에는 민식씨한테 해드릴게요. 준비된 질문이 딱 민식씨 질문 두 개네요. 첫 번째부터 갑니다."

  "네, 오세요."

  "저희가 알기로는 민식씨가 SM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태연씨가 캐스팅 후보로 선택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솔직히 캐스팅을 수락하는데 있어서 사심이 들어가셨나요?"

  "…음, 그건 아무래도 잘못된 질문 같습니다. 캐스팅은 동시에 당했거든요. 태연씨가 이번 영화를 하게 되는데 도움을 준게 20퍼센트. 나머지는 스토리가 맘에 들어서요."

  "음, 그래요. 민식씨에게 제 비중이 20퍼센트 밖에 안 되었다니…"

  "어, 태연씨 그건 와전된 이야기에요. 태연씨, 우리 이러지 맙시다. 안티팬 또 늘어나요."

  태연은 나에게 말장난을 치며 나를 놀려댔다. 차마 태연이의 말에 하나하나마다 반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은 내 팬덤보다 태연이 개인 팬덤이 몇 십배는 더 컸으니까. 자칫하다 내가 작은 까마귀되서 작은 탱구의 팬덤에 의해 X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처음 인터뷰라 긴장 되었는데, 두 배우 분들께서 인터뷰를 재밌게 해주시네요. 민식씨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네, 하세요. 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연씨만 팀킬 안 했으면 좋겠어요." 

  "팀킬은 라디오스타에서 잘하는데, 라디오스타에서 함 가보고 싶네."

  "흐흠…민식씨가 태연씨와의 열애사실을 인정하면서 대한민국의 공적이 되셨는데요. 과연 이 영화가 잘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10만명 이상은 나오겠죠? 태연이 팬이 10만명 이상이니까. 제 팬까지 포함하면 한 10만 5천명 되겠군요. 그 이상은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들으시면 내가 X될 대답이겠지만, 예능이랍시고 나름대로 노력해서 말한 대답이었다. 촬영장 분위기가 웃음이 많은 것이 화기애애해서 참 좋았다.

  "너는 나의 봄이다의 목표 관객수와 그에 따른 공약은 없으신가요?"

  "음…이거 원래 시사회 때 하던 질문 아니던가."

  "에이, 그래도 대답해주셔야죠~"

  "네, 알겠습니다. 태연씨는 뭘 하실지 모르겠지만, 손익분기점이 얼마였지…여튼간에 150만이 넘으면 태연씨와 듀엣곡 하나 디지털싱글로, 그것도! 무료로 내겠습니다."

  "오오, 태연씨 보컬 때문이라도 반드시 넘겨야겠는걸요. 태연씨도 찬성이세요?"

  "뭐, 찬성하죠, 뺄 수도 없는 일이니까."

  "대국민 약속하신겁니다~"

  그렇다. 나나 태연이나 '150만을 넘기기나 하겠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SM의 저주라고, SM이 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제대로 성공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뭐, 성공한 케이스라고는 <백만장자의 사랑> 밖에 없으려나. 여태까지 SM이 자신만만하게 낸 드라마들의 흥행성적을 생각하면, 하아…한숨이 나오는 구나.

  "이제 마지막 질문이네요, 참 아쉽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겠죠? 두 분의 앞으로의 각오는?"

  "저부터 할까요…저는 배우든 가수든…길게 길게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앞으로의 방송에 임할 겁니다. 물론 인기도 얻고 싶구요. 너나봄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배우로의 다짐 전에 가수로 말하면 몇 십년이 지나도 '태연'이라는 말이 나오면, '아…그 가수?'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고 싶어요. 배우로는, 아직 신인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쭈욱쭈욱 노력할거에요."

  "컷!"

  "수고하셨습니다~"

  ENG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지고, 촬영 속의 촬영 하나가 끝이 났다. 태연이와 나는 분장실 내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90도 인사를 하고 빠졌다. 내가 가기 전에 필립이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민식씨, 저희가 촬영 현장 몇 컷만 더 찍을 거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필립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감사했습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편한 분위기에서 인터뷰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이만."

  나는 벗어놓았던 태연이의 하얀 패딩을 다시 입고서 촬영장으로 걸어갔다. 아직 내 촬영이 아니니 여유가 있었다. 태연이는 이제 막 촬영을 하러 가야했고, 나는 아직 촬영이 아니고, 룰루랄라, 아, 신난다!

  "민식아!" 

  는 보기 좋게 실패. 수연이가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촬영장에 마련된 태연이 의자에 지가 앉았다. 무엇을 하려는 속셈인지 <너는 나의 봄이다>의 스크립트(대본집)를 가져왔다.

  "왜?"

  "너 대본 연습 도와주려구. 다음 촬영이 태연이랑 촬영하는 게 아니라, 신혜랑 촬영하는 거라며."

  "그렇긴 하지?"

  "내가 신혜 역할 맡을테니까, 네가 니 역할 맡아. 대본 연습 도와줄게."

  "…그럴까?" 

  "어차피 나도 모레에 다시 촬영 들어가서 그 드라마 대본 좀 봐야 하지만, 뭐 이 씬이 긴 것도 아니니ㄲ…흐잉, 길다아…"

  "…풉."

  나의 웃음의 원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뭐, 원인을 가르켜주자면 바로 내 옆에서 칭얼거리는 이 갈색머리의 아리따운 처자 때문이랄까. 

  "근데, 다른 애들은?"

  "내일 또 오겠다고, 다들 근처 숙박할 수 있는데로 가버렸어. 나는 모레에 스케쥴이 있으니까, 오늘 밤에 밴 타고 가야되고."

  "으으…그러면 우리 투룸에 갈 게 뻔하겠네."

  뭐, 수연이를 제외한 나머지 놀러온 애들은 내 방이나 태연이 방에 야무지게 자리를 잡고 잘 게 뻔했다. 나는 슬프게도 혼자서 외롭게 거실에 누워서 자야되겠구나. 요즘 동장군이 다시 기승을 부리던데, 그 놈의 겨울바람은 언제 물러가나 모르겠다. 아, 아직 1월이었지, 참. 물러나갈려면 멀긴 멀었네. 머릿 속으로 온갖 잡생각에 빠져서 도태되고 있던 찰나에 수연이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내 정신을 원래의 모습으로 리셋시켰다.

  "어…왜?"

  "민식아."

  "어?"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다음 말은."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웠던 수연이의 표정은 어디가고, 진지함으로 무장을 한 수연이의 표정만 있었다. 얼핏 보면 차가운 분위기가 묻어나오는 차가운 그녀의 얼굴이었다. 수연이는 조막만한 연분홍색 입술을 열어 달달한 톤의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달달하면서도 가라앉는 그 목소리가 표정만큼이나 진지하게 들려왔다.

  "태연이랑…"

  "태연이랑, 뭐?"

  "…헤어져줬으면 좋겠어."

  이건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지. 수연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금세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수연이를 쳐다보다가 딸꾹질을 해버렸다.

  그녀는 그 말만 하고 입을 꾹 다문채 나지막한 눈빛으로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부탁하는 표정? 그 이상이었다. 간절한 표정처럼 느껴졌다. 나는 멘탈이 붕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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