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4화 (32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열 다섯 번째 과외 - 너는 나의 봄이다 5

  "우어어어어어!!"

  "아, 깜짝이야!"

  수연이의 샤우팅을 압도하는 군중들의 목소리에, 천막텐트 안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나와 태연이는 분장을 하다가 깜짝 놀라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저 소녀시대의 등장으로 이런 환호성이 튀어나온 것일까. 그건 아닌듯 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고민이 싹 날라갔다!"

  등의 의견이 내 귀에 수렴되었으니까 말이었다. 내가 볼 수 있는 텐트 바깥의 세상은 소녀시대 여섯 명이 아름답게 막아놓아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촬영장에는 조명 장치가 즐비해서 그런지 검은 실루엣을 통해 스태프들이 기뻐하는 이유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냄새도 솔솔 나기 시작했다. 밥차였다. 아, 하필이면 태연이네 집에서 끼니를 때우고 난 뒤에 이런 서포트가 들어오다니. 그래도 먹어야지.

  "밥차에서 밥 먹을 거야? 오늘 밤샘 촬영이라던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태연이, 너는 먹을 건가봐?"

  "어…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분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론 내 분장이 끝나지 않았다. 태연이는 자기 분장이 다 끝났다고 일찌감치 일어설 채비를 했다. 부럽다. 오늘따라 태연이의 단발 웨이브 머리처럼 간단히 고데기로 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고데기 머리 안 되나?"

  "영화에서 무슨 머리 해야하는지 고정인거 알면서 그래?"

  "젠장…나도 밥차 먹고 싶다."

  "네 머리 마는 나도 그러고 싶다."

  

  동병상련의 처지. 연예인이나, 연예인 머리 마는 소속 스타일리스트나 밥 냄새 맡으며 위가 꼴리는 것은 똑같았다. 나랑 같이 밥 먹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소녀시대는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 머리 세팅하는 게 더 길어.' 라고 말하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게, 태연이는 머리 끝부분만 살짝 말면 되는데 나는 거의 고데기를 퍼머수준으로 말고 있었다. 

  "근데 저것도 태연이 팬클럽에서?"

  "아니, 수연이 사비야."

  

  수연이의 사비라니. 순규의 말에 곧장 수연이를 향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수연이가 미소를 지으며 브이표시를 내게 보냈다. 웹상에서나 연예인들이 자신이 촬영하는 곳에서 밥차를 쏘는 것을 보았지, 현장에서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특히 그 현장과 전혀 관계없는 연예인이 쏜 것으로는 수연이가 처음일 것이었다. 스태프들이 밥차에서 밥을 받기 시작하는 듯 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콧구멍을 간질이는 음식 냄새가 천막 안으로까지 새들어왔다.

  "…누나, 뜨거워요!"

  "…아, 미안. 냄새에 정신이 팔려서."

  하마터면 수연이가 쏜 밥차로 인해 내 머리카락이 열에 탈 뻔 했다. 스타일리스트 누나는 머리를 태울 뻔한 것이 미안하다면서 패딩 주머니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서 주었다. 먹을 것으로 나의 환심을 사려고 들다니. 내가 어린 아이도 아니지만, 내심 고맙네. 스타일리스트의 누나의 마음이 변심하기 전에 재빨리 누나가 건넨 요깃거리를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몇 분이 더 지났을까, 소녀들의 배꼽시계가 소녀들을 화나게 만드려고 하고 있을 때쯤,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야매 속도로 머리를 다 말고서, 고데기가 식기도 전에 밥을 먹으러 천막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우리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우와, 민식이 그 머리 하니까 귀엽다!"

  "너나봄 촬영하면서 맨날 이 머리였어."

  "히히, 영화 시사회 초대권 끊어줄거지이?"

  "내가 줄거다, 이 년아!"

  태연이는 나에게 애교를 부리며 들러붙는 수연이가 보기 싫었는지, 수연이의 팔에 팔짱을 끼고 먼저 천막을 빠져나갔다. 수연이는 내게 팔을 뻗으며 신체의 일부를 잡으려고 발악을 했지만, 태연이가 더 빨랐다. 결국 내 옆에서 천천히 걷는 건 미영이의 차지가 되었다.

  "미영아, 넌 안 추워?"

  "추워…"

  "바보냐, 이 날씨에 털 스웨터하고 스키니만으로 버티고 있네."

    나는 입으려고 했던 트렌치코트를 직접 미영이에게 입혀주었다. 그리고 미영이의 등을 손으로 밀며 미영이를 천막 밖으로 걸어가게 했다. 미영이는 뒤를 돌아보며 내 걱정을 했다.

  "…너는?"

  "태연이 외투 입으면 돼, 태연이 먼저 촬영해야돼서 협찬받은 두꺼운 옷 입고 있거든."

  "아, 알았어."

  미영이는 내가 하는 말에 걱정을 떨쳐버린 채로 밥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태연이가 앉았던 의자에 걸쳐진 흰 패딩 점퍼를 상의 위에 걸쳤다. 그냥 패딩이라고 생각하면 섭하다. 한국 인터넷 공식 지정 등골브레이커라고 불리는 그 패딩이니까. 그 기업에서 소녀시대에게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 컬러로 선물해준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태연이는 흰색, 미영이는 분홍색, 수연이는 노란색인 걸로 아는데 다른 얘들은 무슨 색이었더라. 아, 진짜 추위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막네. 브랜드 로고 밑에 이라고 자수가 박힌 것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일단 이 옷을 입고 나가면, 태연이는 매우 흐뭇하겠지만 수연이가 그 모습을 보는 걸 참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어쨌든 남자는 직진이라는 신념하에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밥차가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아, 맞다 그 전에 페로몬 억제 주사를 맞아야하지. 가방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내서 스웨터를 위로 올려 주사바늘을 팔 위로 찔렀다. 주사를 맞고 난 뒤, 조그만 밴드를 주사부위에 붙이고, 다시 원상복구했다. 그리고 밥차로 돌진했다.

  '아싸, 백숙!'

  몸보신 용으로는 딱인 백숙이 오늘 저녁이라니. 얼마만에 먹어보는 백숙인지. 작년 삼복 이후에는 구경도 못했던 백숙이었다. 소녀들이랑 밥을 먹을 때도, 언제 백숙 한 번 먹자고 그렇게 간절히 빌었는데도 소녀들은 하나같이 다 서양입맛이라서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을 가기 일쑤였다. 올해부터는 데이트 때마다, 그녀들이 자신의 조국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식당만 골라서 갈 생각이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뚝배기에 백숙을 받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 자리는 정해져 있는듯 싶지만. 

  마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듯, 딱 붙어있었던 태연이와 수연이가 내가 근처에 다다르자 자동문이 되어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수연이와 이 곳에 끼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재림뿐이다, 라는 눈빛으로 나를 협박하는 태연이를 보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물론 내 마음을 공포로 설레게 한 쪽은 후자였다. 

  "벌써들 먹고 있네?"

  "여기 아줌마, 백숙 무지 잘한다. 딥따 마시쪙."

  이 사운드는 순규가 닭을 두 손으로 뜯어먹으면서 내는 소리. 누가 보면 아이돌 아닌 줄 알겠다.

  "오, 김민식이~ 내 옷 입고 있네?"

  "내 옷은 미영이한테 기부했거든. 쟤가 칠칠맞게 스웨터만 입고 있었거든. 어차피 너는 협찬 받은 옷 지금 입고 있잖아? 그래서 미영이한테 옷 기부한 내가 니꺼 스틸해서 입고 있지."

  "잘했어~ 이렇게 입어야 커플티 나는거지이~"

  태연이는 나보다 키는 20cm 이상 작은 주제에 앉은 키로는 20cm 이하로 차이 난다고 손을 올려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와 보통 친구 이상의 사이인 소녀시대 멤버들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안 보이는 곳에서 태연이의 다리를 매섭게 공격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태연이, 아니 고통을 참고 있는 표정이 더 명확한 표현이려나.

  "근데, 왜 내 백숙의 양이 점점 불어나는 것 같지. 미역국도 아니고."

  

  태연이의 슬픈 표정을 뒤로 하고, 내 배때기를 채우기 위해 백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분명히 그대로여야 할 백숙의 양이 어째서 점점 불어나는 기미였다. 설마, 하면서 백숙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하얀 손등이 내 백숙이 있는 뚝배기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양은 더 늘어나있었다. 마치 젓가락으로 살코기를 찢은 듯한 모양새의 고기덩어리였다. 수연이의 백숙탕을 쳐다보니, 고기가 별로 없었다. 

  "수연아, 너 먹어. 왜 나한테 다 몰빵해…"

  "아냐, 아냐, 너 먹어~ 나 백숙 별로 안 좋아해."

  

  마치 엄마의 마음에 빙의한듯 나에게 무한정으로 백숙을 퍼주는 수연이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나랑 친한 소녀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나와 태연이만 연인 사이인 줄 알기 때문에 수연이에게도 이렇다 할 애정표현을 해줄 수 없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해야되는게 연예인의 삶이랄까. 나는 감사의 표시로 주머니에 꼬옥 쥐고 있던 손난로를 수연이에게 건네주었다. 수연이는 그 손난로를 웃으면서 받았다. 그리고 실수인 척을 하면서 손난로와 함께 내 손도 잡았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짠하게 웃는 수연이를 보면 그저 슬프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삐쩍 마른 정수연보단 덜 마른 정수연이 좋은데."

  라고 말하면서 수연이가 건네준 닭고기 말고, 원래 내가 먹는 백숙의 일부를 뜯어서 수연이의 뚝배기에 퐁당 빠트렸다. 수연이는 볼을 부풀리며 이 많은 것을 먹을 수 없다고 칭얼거렸지만 발연기일게 뻔했다. 전에, 숙소에서 통닭 반 마리를 잘만 먹던 그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이렇게 수연이와 닭 살점을 가지고 투닥거리고 있을 때, 태연이가 내 팔을 주먹으로 툭 쳤다. 

  "왜?"

  "오랜만에 수연이 봐서 투닥거리는 건 좋은데, 사람들이 니네들 본다. 그리고 오늘 기자도 왔어, 조심해. 진짜로. 보니까 디스패치 기자들도 있더라."

  "…아, 맞다. 연예인이었지, 나."

  태연이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나는 수연이와 닭 살점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멈추고 수연이에게 눈치를 주며, 이제는 진짜로 백숙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수연이는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옆에 내가 있어서 좋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백숙을 폭풍흡입하면서 천국의 맛을 느끼던 찰나, 누가 내 무릎을 발로 툭툭 쳤다. 내 앞에서 백숙을 먹고 있는 소녀는 미영인데.

  "미영아, 왜?"

  "아…아냐. 먹다가 실수로 찼나봐, 미안…"

  

  이런 미영이의 모습을 보면 몇 달 전에 빗속에서 나를 꼴리게 했던 그 미영이의 이미지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동네 미영이가 그 때는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 미영이의 화려한 과거를 기억 속에서 회상하고 있을 찰나에 소녀시대 매니저 형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쪽으로 와서는 태연이와 나에게 말을 했다.

  "이거 먹고, 저 천막 쪽으로 가 있어."

  "왜요?"

  "왜요?"

  백숙을 먹고, 아까 그 대기실 천막으로 다시 가라니. 매니저 형의 속셈이 궁금했다. 더욱 추궁하고 싶었지만, 먼저 실토하는 건 매니저형이었다. 

  "이것들이 커플이라고 이구동성하나. 여튼, 섹션에서 인터뷰 촬영 한다나봐. 지금 촬영장으로 오고 있다고 하니까 얼른 먹고 저기 가서 미리 준비하고 있자."

  "알겠습니다아."

  "알겠습니다아."

  "…외롭다, 외로워."

  매니저 형은 커플 타도를 외치며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와 태연이는 매니저 형을 엿먹인 것에 대해서 통쾌해하며 뚝배기에 남아있는 백숙 찌끄레기들을 깔끔히 처리했다. 

  "수연아, 잘 먹었어. 다음은 내가 살게."

  "오키, 콜!"

  "수연아, 잘 먹었다. 다음은 민식이가 살거야."

  "오키, 그때 너 오지마?"

  "그건 모르겠는데, 히히. 메롱."

  태연이가 분홍빛 혀를 수연이 앞에 쑤욱 내밀자 수연이는 그 혀를 찌를 기세로 젓가락을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연이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수연이의 살기에 내 뒤에 숨었다. 꽁트를 치는 듯한 태연이와 수연이의 모습에 내가 먼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고, 서로 대치하던 태연이와 수연이도 뒤따라 웃음을 터트렸다. 촬영장 일대가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역시, 김태연과 정수연 콤비는 천상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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