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열 두 번째 과외 - 너는 나의 봄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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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이는 영화 촬영 장소에 아주 살판이 났다. 영화 스토리의 배경은 전라도 전주, 태연이의 고향이자 태연이가 태어날 때부터 데뷔 전까지의 추억이 곳곳에 남아있는 도시였다. 물론, 내가 전주를 접하는 일이 없었기에 전주라는 도시는 내게 있어서, 태연이의 고향. 이라는 간략한 지식 외에는 아는 것이 전무했다.
첫 촬영장소인 전주의 모텔 중 하나인 또마하우스에서 촬영이 잘 진행되게 해달라고 작은 고사를 지냈다. 아직 촬영이 다가오지 않은 태연이도, 신혜도 모두 모텔의 작은 방에 모여 고사상이 올려진 상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서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올렸다. 감독님은 향을 피우고 막걸리잔을 돌리며 고사를 지내며 기원을 했다.
"부디 이번 영화 <너는 나의 봄이다>가 대박을 치길…"
제일 먼저 돼지머리에 돈을 꼽고 절을 올리는 건 감독님이었다. 감독님의 절인사가 끝나자, 그 다음은 주연인 나와 태연이가 앞으로 나와 준비한 돈을 돼지머리의 콧구멍에 야무지게 꼽고 각자의 기호에 맞춰서 절을 했다.
"저희 첫 영화 대박치게 해주세요."
"SM의 징크스를 깨게 해주세요…."
나에 비해 태연이는 무척이나 간절한 모습을 보였다. 저런 드립을 과감하게 치다니. 역시 태연이의 멘탈은 대단했다. 생각해보니 SM이 제작을 맡아서 성공한 드라마나 영화의 사례가 거의 전무한 것 같았다. 순간 웃음이 피식, 하고 흘러나왔고 우리의 인사가 끝나자 다음은 신혜를 비롯한 조연분들이 나와서 역시나 우리처럼 돼지머리에 돈을 꽂아넣고 한 차례 절을 했다. 각자 자신의 기원을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자, 두 달 동안 잘 해봅시다!"
감독의 구호에 힘입어 연출진과 배우진 모두 박수를 쳤다. 고사상은 금세 치워지고 카메라가 세팅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정돈되었던 방은 금세 어지러워졌다. 분장팀은 나와 나랑 같이 첫 촬영을 시작할 단역배우에게 와서 특수분장을 연출했다. 소품팀은 내게 평범한 티셔츠 대신 빨간 잉크가 묻어서 말라붙은 흰 면티를 건네주었다. 스크립트를 떠올렸을 때 아마도 씬 넘버 1의 그림인 것 같았다. 단역은 피로 철갑이 된 옷을 입고 연기를 할 준비를 했다.
"좋은 연기 부탁드려요."
"네."
"그럼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테이크 원!"
슬레이트가 쳐지는 소리와 함께, 난 아침햇살이 가득 내려온 침대에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는 연기를 했다. 그리고 반은 잠이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이불에서 빠져나와 엉기적한 걸음으로 침대 밖을 걸어갔다. 그러다가 스크립트에서 써져있던 대로 난 발을 단역의 어깨에 살짝 부딪혔다. 그리고 성인 여자의 시체를 보고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게 뭐야, 내가 한 짓인가?"
주위에 나뒹굴어진 수 많은 술병, 난장판이 되어있는 집 안을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S#2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S#3의 그림을 그려야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무엇이 기억나고 있다는 표정을 몇 초 동안 짓고 나지막히 말을 던졌다.
"좆 됐네, 씨발."
모든 스태프들은 나의 진정성 있는 연기에 숨을 죽이고 카메라와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다음으로 외웠던 대사에 감정을 실어 내뱉었다.
"정신 차리자…장민석, 이건 네가 한 게 아니야…내가 여기서 나가도 난 아무 죄가 없어…하아…내가 죽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준비되어있는 옷가지를 챙기고 급하게 방을 빠져나가는 연기를 했다. 섬세하고 자세한 연기로, 신발을 허둥지둥 신느라 대충 우겨넣는 듯한 연기까지 하고 방문을 닫는 모습까지 보였다.
"컷! 와, 신인 맞아? 연기력 대박인데."
그렇게 나의 영화의 첫 데뷔 씬은 NG없이 깔끔하게 끝났다. 스태프 뿐만이 아니라 처음 촬영을 지켜보고 있었던 노련한 연기파 배우들도, 태연이도, 신혜도 입을 쫙 벌리며 박수까지 쳤다.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칭찬에 머쓱해하며 뒷통수를 손가락으로 긁어댔다.
"연기는 다 좋은데 얼굴에 힘 들어가는 것만 조금 빼면 좋겠다."
"아아, 오케이."
신헤는 아역 때부터 배우를 했던 아이답게 곧바로 내 연기를 지적했다. 그 점이 나도 살짝 아쉬웠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독님에게 다시 말해서 찍고 싶었다.
"감독님."
"…어?"
"테이크 원이 맘에 안 들어서 그러는데, 한 번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그림 좋은데,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나는 다시 첫 번째 씬은 연기할 수 있었다. 일어나있었던 단역배우는 촬영이 다시 시작되려고 하자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방바닥에 누웠다.
"하하,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땅바닥에 엎드리는 단역배우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로 다시 세팅하고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를 끝낸 후 나온 그림은 아까보다 훨씬 더 좋은 그림이었다.
"대박, 연기 잘하는 대박 신인 탄생했다. 에스엠, 배우 하나 잘 건졌네."
"아직 첫 씬인데, 그렇게 띄워줄 필요까지는 없으세요…저 이러다 자만심 생겨요…"
첫 씬부터 계속 칭찬만 받으면,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감독님은 내 마음이 어떠한 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극찬을 해댔다. 그래도 원래 연기했던 배우들이 박수를 치면서 잘했다, 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부담없이 잘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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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의 연기를 하고 난 뒤, 다음 연기가 진행 되는 곳은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원래의 스크립트이라면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찍어야 하는 게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전주의 한 모텔에서 한 컷을 찍었다고 다음을 바로 서울로 가서 찍을 필요가 없다. 비효울적인 짓이었다. 그리고 태연이와 내가 처음 만나는 씬이기도 했다. 발군의 연기력으로 허둥지둥하며 버스에서 내리는 것부터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 빼는 연기까지 혼신을 다해서 한 컷에 찍어버렸다. 감독도 놀라워했다. 몇 번 피식, 거리면서 NG를 내기가 일쑤였는데 나는 너무나도 쉬고 싶은 나머지 연기의 신이 몸 속에 빙의한듯 생활연기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나의 잠재 능력이 여기서 발휘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여자 아이돌을 피하기 위해서 연기를 한 덕분이었다. 알고보면 그녀들이 내 연기 멘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수한 차림새의 태연이가 촬영장에 등장했다. 태연이의 미모에 스태프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들이 낼 수 있는 건 탄성 뿐이었다. 버젓이 스캔들을 인정한 남자가 바로 여기 있었으니까. 태연이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조그맣게 화이탱, 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태연이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화이탱, 이라고 대답했다.
조연출이 슬레이트를 들고 촬영장 한 가운데로 나타났다. 그리고 입을 열며 슬레이트의 뚜껑을 들었다.
"씬 넘버 17, 테이크 원!"
카메라의 불이 모두 켜지고, 나는 화장실에서 바지춤을 올리고 지퍼를 잠그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남자화장실로 들어오는 태연이의 걸음. 여기가 여자화장실인줄 착각한 채로 "꺄아악!" 거리는 태연이, 그리고 웃었다.
"NG! 태연양, 웃음 참아야죠."
"네, 죄송합니다아!"
태연이는 사글사글했다. 조연출이 다시 들어와 슬레이트를 치며 "테이크 투!"를 외쳤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오지 않은 오줌을 싸는 시늉을 하고 태연이와 마주했다. 태연이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못 본 걸 본 것처럼, 그리고 이어지는 태연이의 첫 대사.
"변태다!"
"변태라니."
나는 태연이의 귓가에 고개를 내밀었다. 스크립트대로 하는 행동이었다. 태연이가 제발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빌었다.
"지금 이 곳은 남자 화장실이에요."
"…읍읍!"
"지금, 이 곳은 남자 화장실이라ㄱ…푸훕."
잘 연기하다가 중간에 웃음이 터져서 두 번째 시도를 망쳐버렸다. 읍읍, 거리는 태연이가 너무 귀여워서였다. 자기 혼자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잘 연기하다 왜 그래?"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가주십쇼!"
"주연이 돌아가면서 NG를 내는구만."
"테이크 쓰리!"
또 다시 이어지는 바지춤을 고치는 연기,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태연이의 입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랬다. 나의 미친듯한 연기력은 여기가 끝이었다. 태연이와 연기를 같이 하면 웃음이 터져서 도저히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래서 연인 사이인 배우들이 같이 작품을 안 하는건가. 서로를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터져나오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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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일레븐!"
벌써 11번째 시도였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기로 했다. 열 번째 시도에서 실패할 때, 태연이와 나는 잠시 쉬는 동안 내기를 했다.
"탱구야."
"응?"
"이제부터 NG 내는 사람이 10000원씩 내기."
"콜."
거는 돈이 1000원 짜리 한 장도 아니고, 무려 한국은행에서 농사 지은 배춧잎 한 장이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이제는 NG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내 의지를 담은 내기였다.
"변태다!"
"변태라니, 지금 이 곳은 남자 화장실이에요."
"…읍읍!"
"지금 이 곳은 남자 화장실. 이라구요."
당황해하는 태연이의 모습, 대사를 몰라서 당황해하는게 아니라 스크립트에 그렇게 써져 있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라고 말이다. 태연이는 대본 그대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태연이는 입을 틀어막은 손을 떼어냈다. 태연이의 손에는 침이 잔뜩 묻어나왔다. 태연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을 제 바지에 비비적대며 닦아냈다. 새하얗던 얼굴이 산딸기처럼 금세 붉어졌다.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러실 수도 있죠, 뭐."
"…죄송해요."
태연이는 나에게 사과의 말을 내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대사를 뱉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잘못한 것처럼 화장실을 허둥지둥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버스 터미널 바깥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전주의 밤은 불그스레한 어두움이었다.
"컷!"
"우와, 내기 하니까 실수가 없네."
"히히, 그러게?"
돈이 걸리니까, 둘 다 실수 없이 연기가 되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늘의 촬영이 끝났는지 스탭들은 촬영용품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감독 또한 우리가 마주보고 서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 연기 잘해주셨습니다. 내일 아침 8시부터 다시 촬영 시작할테니까 그 전에 푹 쉬다 오세요."
"네에."
"네."
나와 태연이는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의미로 악수를 건넸다. 그리고 마주보며 인사를 했다. 뭐가 좋다고, 우리 둘은 싱글벙글 웃어댔다. 아무도 남지 않은 시외버스터미널에 단 둘이 앉아 가방을 열었다. 스마트패드였다. 물론 내 패드였다. 나는 만들어놓은 곡을 태연이에게 일단 들려주기 위해서 태연이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노래 리스트 중 제목과 가사까지 다 지은 <처음이었죠>를 틀어줬다.
"어때, 좋아?"
"아직 인트로거든? 처음을 저음으로 시작하네?"
"응, 여긴 미영이가 부를 거야. 소녀시대 노래 들으면서 많이 느낀건데 미영이는 저음이 잘 어울리더라."
"미영이가 낮은 보컬로는 여자 아이돌 사이에서는 알아줄거야."
태연이는 내 목소리로 가이드 레코딩이 된 노래를 들으면서 허밍으로 흥얼거렸다.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약간 떨리기도 했다. 노래가 무난하게 끝나고, 태연이는 날 쳐다보며 말했다.
"합격. 미영이하고 주현이도 좋아할거야."
"휴, 다행이네."
태연이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앉아있는 나를 향해서 팔을 뻗었다.
"이제 가자."
"그래야지. 방은 따로 쓰자."
"싫은데, 나 민식이 너랑 같이 쓸 건데?"
"네가 5년 동안 쌓은 팬 다 날아간다."
"…음, 듣고 보니 그렇네."
서로 맞잡은 두 손은 역삼각 모양을 만들어 칠흑의 밤하늘의 허공을 바이킹이 떨어지듯이 움직였다. 달빛은 유난히 은은했고, 오늘의 하루는 끝이 났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