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0화 (32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열 한 번째 과외 - 너는 나의 봄이다 1

  2011년 12월 31일에서 2012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첫 날. 늘 그렇듯 연예계에서는 새로운 스캔들이 터진다. 2007년에서 2008년으로 넘어가는 날에는 김종민과 현영의 스캔들이,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날에는 유해진과 김해수의 스캔들이 터졌다. 격년을 두고 터지는 스캔들. 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가는 날에도 어김없이 스캔들이 터졌다. 같은 소속사, 같은 나이, 같은 직업.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파파리치가 조작해서 찍은 사진도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터 <트위터>라거나, 등의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SNS)를 통해 쓰러진 나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태연이의 모습이 그대로 찍혔다. 1인용 일반 병실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깼네?"

  "어, 네가 나 살려주는데 큰 역할 했다며. 일루 와, 선물 줄게."

  "…굳이 선물까지야."

  태연이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걸어왔다. 금발의 포니테일 머리,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이 수려해보였다. 나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남은 공간을 조금 넓히려 옆으로 밍기적거리며 움직였다. 빈 공간을 태연이의 몸이 채웠다. 

  "김태연."

  "…어?"

  "넌 진실을 알았잖아, 그치?"

  "…어."

  주치의가 비밀을 유지해주길 빌었는데, 역시나 말해버렸구나.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다, 오히려 이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너 나 사랑해?"

  "…어, 음…사랑하지 않았으면 내가 필사적으로 너 살리려고 주위 상황 신경쓰지 않고 뉴스처럼 저랬을까?"

  "…알겠어, 잠깐만."

  나는 태연이를 잠시 병실 밖으로 보냈다. 그리고 링거액을 맞고 있는 팔을 든 채로 핸드폰을 사용했다. 짤막한 수신음, 그리고 누군가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힘겨워하는 목소리였다. 

  […뉴스로 소식을 들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수만형 바쁘신데 저 부탁 하나 있어요. 당사자끼리 이야기도 나눠봤구요."

  […뭐를?]

  "저 그게…지금 터진 태연이와 제 스캔들, 그냥 인정해주세요."

  […괜찮겠냐.]

  

  수만옹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그 순간 병실의 문이 열렸다. 태연이었다. 태연이는 단조로운 걸음걸이로 내 침대 앞으로 걸어왔다. 또각또각.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녀의 거침없는 손은 병원복에 덮여진 내 손 위의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 핸드폰은 그녀의 귀 옆으로 움직였다.

  "사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짧고 굵은 한 마디였다. 정적의 공간 사이로 쌀쌀한 겨울의 햇빛이 헤엄을 치며 들어왔다. 끊어진 통화, 그 뒤에 퍼지는 태연이의 잔잔한 미소가 내 얼굴을 간질였다. 그 순간 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보이는 그녀였다.

  +

  1월 3일, 벌써 3일째 내 이름과 태연이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내 팬들은 아직 소수 정예라서 모르겠지만, 태연이의 개인 팬덤도 그렇고 소녀시대의 팬덤은 어느 때보다 패닉상태였다. 만인의 연인인 소녀시대 리더 김태연이 스캔들이라니. 나의 소녀팬덤들도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까, 라고 심각하게 우려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비밀스럽게 숨겨두었던 관계 중에서 하나가 드러났을 뿐이다' 라고.

  나는 소녀들이 이렇게나 쿨하게 대처할 줄 생각을 못했다. 병문안을 오는 소녀들마다 하나같이 태연에게 '부럽다.' 라고 말하고 있을 뿐, 나에게는 그저 '빨리 나아.' 라고 밖에 별 말을 두지 않았다. 

   

  많은 대중들도, 그리고 소녀시대의 팬들도 처음에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을 때 패닉 상태였지만 차츰 적응해나갔다. 적응할 때까지 걸렸던 기간이 내가 퇴원을 하기까지, 약 10일이었다. 여론은 어느샌가 연예면에 스포트라이트를 두지 않고 정치면에 스포트라이트를 두었다. 매번 IT나 사회면에 나와야 할 안철수 연구소장이 정치면에서 차츰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SM이라는 기획사에 들어와서, 원래부터 하고 있었던 일을 제외하고 첫 공식 스케쥴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통틀어서 데뷔는 2011년 3월, 심심타파 라디오였지만. 영상으로 데뷔하는 것은 2012년에 개봉 예정인 <너는 나의 봄이다>란 영화를 통해서였다. 고로 내가 대중들에게 제일 먼저 얼굴을 알리는 연예인의 직업이 배우라는 것이었다. 당분간, 태연이와 나는 다른 활동을 멈추고 영화 스케쥴에만 집중하기 로 했다. 회사에서도 1분기 활동은 그렇게 나아가기를 원했다. 

  2012년, 처음으로 세상 앞에서 연인으로 불려지는 태연이와 나의 첫 스케쥴은 영화, <너는 나의 봄이다>의 대본 리딩 스케쥴이었다. 왜, 있잖은가. 촬영을 하기에 앞서 모든 배우들과 스탭진들이 한 회의실에 모여서 서로 얼굴도 트고 연기 연습도 해보는 그 시간. 앞으로 한 두 달을 매일 볼 사람들과 친해지는 공식적인 스케쥴 말이다. 데뷔하는 영화가 첫 주연 영화라니.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괜히 연기력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들었다. 

  "너 요즘에 얼굴 폈다?"

  "나? 당연하지. 바람둥이 남자친구긴 하지만, 대중 앞에서는 우리 둘이 공식적인 커플이니까. 이제 뭘 해도 뭐라할 사람 없으니까. 아, 맞다. 너 그거 알아? 우리 팬페이지 생겼다?"

  "무슨 팬페이지. 네가 항상 자랑하던 Flying Fetals 같은 팬페이지."

  "응, 탱시그라고 태연+민식을 합친 말이래. 팬페이지 이름 귀엽다, 그치."

  태연이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떠날 줄을 몰랐다. 이 웃음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이면 오래 가야겠지. 

  "…으으, 춥다."

  "그러게 내가 두껍게 입으랬잖아. 고집 부리더니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차 안이 추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들고온 담요를 태연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태연이는 자신의 어깨에 담요가 덮어지자 금세 그것을 손에 꽉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했다. 밴에 태연이가 먼저 탔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밴에 올라탔다. 그나마 조금 전에 히터를 틀어서 따뜻한 차 안에서 쉴 수 있으니 좋았다. 태연이가 목베개를 건네었다. 나는 목베개로 목을 감싸고 자리에 기댔다. 소녀시대 매니저 형이 건네준는 코코아를 마셨다. 태연이는 그 와중에 내 무릎 위에 아까 건네줬던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한테만 덮은 줄 알았지만, 태연이와 내 무릎 위에 있는 담요는 내가 건네준 것. 고로 같은 담요를 두 명이서 덮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소녀시대 매니저 형은 차 안에 있는 거울로 다정한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너무 알콩달콩 지내지마라. 형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그러면 오빠도 연애하든가요."

  "그래, 얼른 예쁜 여자친구 사귀어야겠다. 태연이보다 더 이쁜 여자로."

  "없을 것 같은데. 그치, 태연아?"

  "둘이서 가지가지한다."

  태연이와 함께하는 염장질은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 지금 밴은 잠실대교 위를 바람같이 달리고 있는데 더 질렀다가는 직선주로밖에 없는 길을 우회해서 한강바닥으로 직행할 지도 몰랐으니까. 태연이에게 무언의 메세지를 날려서 조용히 시키고는 가방에서 대본을 꺼냈다. 

  결말까지 써져있는 두꺼운 스크립트(대본집)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제 막 입봉하는 감독의 데뷔작치고는 짜임새가 좋은 시나리오였다. 원래는 연기할 생각이 없었지만 스토리가 워낙 뛰어난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게 되었다. 참, 수만옹도 신기하다. 이런 숨겨진 진주는 어떻게 찾아내는지. 매의 눈이 따로 없었다.

  "태연아, 나 배우진들에 대해서 잘 아는게 없는데 넌 알아?"

  "응. 내가 그룹에서 탈퇴하기 전에 있었던 멤버가 서브 여자주인공인데, 신혜가 맡았던데?"

  "…신혜? 박신혜?"

  신혜는 왜 소식이 없었을까. <너는 나의 봄이다>를 촬영한다고 했으면 말을 해야지. 나는 신혜에게 괘씸죄를 주기 위하여 메세지를 보냈다. 밴이 잠실대교 끝자락 쯤 왔을때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쏘리]

  신혜는 쿨한 여자였구나. 아니면 답장이 귀찮았다거나. 나는 후자에 무게를 더 둔 채, 다시 스크립트 읽기에 집중했다. 스크립트에 묘사된 그대로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눈을 감으며 상상했다. 마치 스케치를 한 도면에 색이 칠해져서 흘러가는 하나의 영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난 잠이 들었다.

  +

  "민식이 짱이다. 어떻게 눈 감자마자 곯아떨어져?"

  "…고마 말해라. 쪽팔린다." 

  "아, 너 안 맞았지."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분명 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맞았느냐, 는 질문을 하다니. 뭐, 그게 주사라는 것은 깨달은 지 오래다. 주사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맞았다. 아마도 내가 안 맞았다고 말했으면, 태연이는 분명 나에게 잔소리를 몇 마디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사기 케이스에서 주사기를 꺼내서 나에게 한 방을 먹였을 것이었다. 

  "맞았어. 일어나자마자 바로. 한 아침 7시 쯤에?"

  "그럼 아직 조금 남았네. 좀 있다가 점심 먹을 때 내가 놓아줄게."

  "왜, 태연이 네가 놔. 나 어린 애도 아니고, 계속 혼자 했는데, 뭐."

  "그래도 챙겨줘야지."

  매니저 형의 뒤를 따라서 사무실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태연이는 줄곧 내 걱정을 했다. 스캔들을 인정한 후에는 더욱 심해졌다. 나에게 있어서 태연이의 존재도 많은 친구들 사이의 김태연이 아닌, 여자 김태연으로 많이 관심이 갔다. 그렇게 생각함에 따라 무언가 다른 아이들과는 멀어지는 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녀들에게 했던 약속처럼 이것 하나는 맹세할 수 있었다. 

  '그녀 앞에서는 그녀에게만 관심을 가진다.'

  라는 짧은 맹약을 말이다. 그것이 못된 바람둥이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본분이니까. 

  매니저 형은 어느 건물에 들어섰다. 작은 것도, 오래된 것도 아닌 애매한 모양새의 건물에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다행히 계단으로 가기엔 높이가 있는 층이라 엘레베이터를 탔다. 안 그래도 조금 두껍게 입었는데 계단으로 왔다갔다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어휴. 땀이 등줄기를 타고 삐질삐질 흘러서 꽤나 고생했을 것이었다. 

  [영화 <너는 나의 봄이다> 스태프-연기자 미팅]

  "들어가라. 일 있으면 연락 하고."

  "네."

  "네, 그럴게요."

  "형만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요. 다음은 내 매니저 형을 굴려야겠네. 형은 밑에서 좀 쉬세요."

  "그래, 빈 마음이라도 고맙다."

  "빈 마음이라뇨. 형을 향한 내 마음은 항상 꽉 차있는데."

  "쯧쯧, 그 마음 태연이한테나 더 줘."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매니저형한테 정곡을 찔려서 흠집난 멘탈 금세 회복한 뒤, 아쉬운 마음으로 매니저 형을 손수건 흔들며 눈물겹게 떠나보내고 닫힌 문을 밀어서 열었다. 약간의 공간을 거쳐서 미팅룸에 들어가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 만만에 콩떡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오셨네요, 조금 늦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왈도체로 말하는 신입 감독이 당황스러웠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건네는 악수에 나와 태연이는 조건반사적으로 팔을 뻗어서 악수를 했다. 감독은 손에 시네노트를 쥐고 나와 태연이를 알맞은 자리로 안내했다. 나란히 붙어있는 자리가 아닌, 마주 보는 자리로. 덕분에 장난 치기는 더 쉬워졌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태연이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싹 가셨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굴 봐, 신인 티 확 내네. 태연씨도 연기 쪽에선 신인이라 그런지 마찬가지로 긴장되어있네, 긴장 풀어요."

  

  저 분 얼굴 어디서 많이 봤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금세 누군지 깨닫고 속으로 박수를 딱 쳤다. 최근 입으로 말하기도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해를 품은 달>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김응수 선배님이 아니던가. 실제로는 무척 엄하실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충격적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김응수 선배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몇 몇 분은 오랜만이네요. 선배님들은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아~"

  나의 귀에 익숙하면서도 긴장보다는 여유가 흘러넘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나와 태연이의 귀에 속속들이 담겼다. 그래서 우리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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