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8화 (31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일곱 번째 외전 - 나 혼자 上

  "그럼 수고해."

  "수고하긴요, 세 시간 뒤에 와야죠."

  "에이…나 좀 쉬자."

  "내가 스케쥴 없어서 맨날 놀면서 무슨. 이거라도 해야, 합당하게 돈 받는다, 라고 느끼는거지."

  내가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매니저 형은 차갑게 도로 위를 달렸다. 점점 멀어지는 밴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야간할증이 붙은 택시요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면서도 나를 떠나보내다니. 수만옹에게 약간 언질을 좀 해줘야겠다. 누가 보면 고자질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정당한 저항방식이었다.  차려입고 오라는 말이 없어서 무난한 티셔츠에 스키니한 바지를 입고 클럽 문을 들어갔다. 

  "오셨군요."

  "네."

  

  클럽 관계자는 내가 오자 웃으면서 대기실로 안내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으로 봐선 어깨형님 중 젊은 쪽에 속하는 편 같았다. 조폭님들과 싸움이 안 나도록 조심해야겠다. 관계자가 건네주는 일정표를 확인했다. 종이엔 나를 비롯한 출연자 리스트, 정해진 시간의 할당량 등이 적혀있었다. MC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스트의 퀄리티였다. 편하게 남자 게스트였으면 좋겠는데. 물론 석천형님같은 부류들은 피하고 싶었다. 선배님들에게는 죄송한 소리지만. 

  '출연가수 : 씨스타'

  "걸그룹이네."

  유일한 MC, 김민식. 유일한 출연가수, 씨스타. 그 외에 기재된 출연 내용은 없었다. 일단 내뱉어지는 건 한숨이었다. 요즘 페로몬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서 많이 힘든 편이었다. 페로몬 억제 주사가 없으면 어쩌나 싶다.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간단했다. 클럽에서 할만한 것들만 있었다. 커플 댄스, 솔로 댄스, 커플 게임 등 다양한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건 다 필요없다. 왜, 씨스타가 나온걸까. 솔까말 나는,

  "이제 여자아이돌이 지겹다! 우어어어!"

  "…죄송합니다."

  "엥?"

  혼자 쌩라이브로 즐기는 쇼인데 어느새 관객 네 명이 앉아있었다니. 그것도 여자아이돌이 말이다. 보라는 가슴골이 파인 의상을 손으로 가리고 허리를 숙여 사과를 했다. 소유와 다솜은 '언니, 왜 그래.' 하면서 보라의 등을 손바닥으로 찰지게 두드렸다. 보라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일어났다. 연기라는 건 이미 알았다. 다섯 남녀 사이에 맴돌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해보려 한 회심의 애드리브일테니까.

  

  씨스타의 의상은 대체로 짧았다. 하기야, 최근에 활동하는 노래가 자신들의 발랄함을 어필하는 것보단 섹시함을 어필하는 노래니까. 하나같이 몸매가 도드라져 보이는 옷들만 입었다. 와이셔츠에 진한 색깔의 핫팬츠라. 바깥은 쌀쌀한데 감기는 안 걸렸으려나. 보라와 효린은 진짜로 까무잡잡하면서도 색기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소유와 다솜은 함박눈이 내려앉은 것 같은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 중에서는 보라와 다솜이 참으로 이뻤다. 다른 애들도 만만치 않았다. 

  "농담이에요, 오늘 잘 해봐요."

  "네!"

  "근데, 아까 그것도 농담이죠?"

  "라디오 정말 좋았는데, 왜 하차했어요?"

  "아자아자!"

  오디오 다섯 개가 동시에 겹쳤다. 나름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없앤다고 면식도 없는 소녀들의 손을 위에 얹히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당황했을텐데도 나의 말에 곧이 곧대로 잘 따라준 씨스타의 멘탈도 대단했다. 잘 호응해준건 보라였고, 농담이냐고 묻는 건 소유, 라디오에 대해 질문했던건 효린, 혼자서 어느 드라마의 여자주인공처럼 아자아자를 외치고 있는 건 다솜이었다. 나는 단합을 끝내고 손목시계를 흘깃 쳐다보았다. 

  "올 때가 됐네."

  "뭐가요?"

  "민식씨, 진행 나와주세요."

  "저거요."

  나는 보라의 질문에 문을 열고 들어온 관계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라는 아하,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나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겠다는 제스처였다. 대기실 밖으로는 바로 계단이 있었다. 클럽 구조가 스탠딩식이라서 그런지, 무대에 오르자마자 사방에서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환호에 나 또한 흥겨워졌다. 아, 될 때로 되라지. 나도 날 잘 몰라.

  +

  행사가 끝나고 난 뒤, 관계자는 나와 씨스타를 클럽 VIP 룸으로 데리고 갔다. 가라오케 시설 하나는 기막히게 잘 되어있는 룸이었다. 고급 향수가 뿌려진 흔적이 곳곳에서 맡아졌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관계자는 웃으면서 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관계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관계자가 내미는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저희 엔젤투핫 행사 성황리에 끝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한 번쯤은 여기 와보고 싶었는데."

  형식적인 인사인 것을 알면서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관계자는 나와 씨스타 멤버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선 나에게는 양주병 하나를 선물로 줬다. 

  "이게 뭔데요?"

  "저희 클럽에서 딱 다섯 병 밖에 없는 귀중한 양주입니다. 오도그 92년산이라고, 제일 오래 숙성된 겁니다. 맛이 기막히죠."

  

  병의 모양이 특이했다. 보통 보던 양주병의 모습보단 유럽에서 많이 본 석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 자세하게 파고들자면, 아프로디테 여신상 같았달까. 이런 병이 있다는 것도 신선한데, 이 안에 20년동안 숙성되어있는 고급 양주가 들어가있다니. 마시진 않았어도 입 안에 침이 절로 고였다. 

  "그럼 놀다 가세요~" 

  "미성년자 있는데요?"

  "놀아요, 놀아! 신난다!"

  미성년자 걱정을 했지만, 룸 내부의 유일한 미성년자는 벌써부터 리모콘을 들고있는 채, 신나는 마인드로 제일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이러면 할 말 없네. 안주나 야무지게 씹어먹어야겠다. 마른 오징어가 역시 안주로는 딱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선물로 받은 양주병을 흘깃 쳐다보았다.

  '한 잔만 마셔볼까.'

  짧게 고민을 한 뒤, 한 번 먹어보자. 라고 생각한 나는 양주병의 병마개를 땄다. 뒤에 날개를 잡고 땡겨서 뚜껑의 위치가 되는 머리를 따는 형식이라서 좀 섬뜩하긴 했지만 향은 좋았다. 

  "음, 굿 스멜."

  "오빠, 저도 한 잔 주시면 안 돼요?"

  "그럴까? 그럼 보라도 한 잔 마셔."

  언제 말을 놨는지 모르겠지만 보라가 나쁜 의도로 말을 놨을리가 없으니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내 잔에 향이 좋은 오도그를 따르고, 바로 보라의 빈 잔에 양주를 따랐다. 보라는 마시기에 앞서 잔을 흔들어서 올라오는 향을 맡았다. 술을 좀 마실 줄 아는 모습이었다. 

  "술 좀 마셔봤나보네, 특히 양주?"

  "그냥 드라마 따라한거에요. 소주하고 맥주밖에 안 마셔봤어요. 양주는 처음이에요."

  "나도 양주 별로 안 마셔봤어. 마실 기회가 없었으니까. 근데 얘들 잘 논다."

  "원래 우리 애들 잘 놀아요, 우리는 건배나 해요."

  특히 자기 노래로 잘 놀고 있었다. 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활동하고 있는 노래인 까지 지친 기색도 없이 춤을 함께 겸하며 부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룸에서 씨스타 미니 콘서트라도 할 기세였다. 물론 보라는 그들의 무리에 끼지 않은 채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보라를 따라서 한 잔을 들이켰다. 도수가 높아서 그런지, 뜨거운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쭈욱 흘러내렸다. 탄성이 저절로 자아졌다. 

  "크으, 좀 독하다."

  "켁켁, 따가워요."

  "원래 도수 높으면 그래. 양주는 쟁여놓아야지. 가방에 넣어둬야겠다."

  가지고 온 작은 가방에 오도그를 집어넣었다. 목에서 아직도 여운이 남는 것이 꽤나 부드럽고도 강한 술인듯 싶었다. 역시 고급 양주다웠다. 워낙 술에 강해서 벌써부터 취한 느낌은 안 든다. 보라는 어떠할 지 잘 모르겠다. 얘들이 흥을 돋구어주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달굴 차례였다. 보컬 트레이닝을 6개월 받은 실력을 보여주마. 이제 웬만한 고음은 충분히 올라간다. 큐리 누나급을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다. 나의 노래 실력은 지금 태민이 정도. 이제 내 노래에 나 스스로가 애드리브를 넣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2012년 봄을 목표로 솔로앨범을 낼 준비를 하고 있어서 몇 개의 곡을 만들어놓았다.  근데, 수만옹이 그걸 어떻게 알고 나보고 2012년에 프로젝트 그룹으로 나올 태연과 미영이와 서현이의 앨범에 담길 수록곡을 하나만 써달라고 부탁한지라 최대한 정성을 다해 곡을 쓰는 중이었다. 여태까지의 경험을 살려 곡을 쓰고 있긴 한데 제대로 제목을 정하진 않았지만 대충 <처음>으로 정해놓았다. 곡을 마저 쓰고 제목을 태연과 파니와 서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제대로 정할 생각이었다.

  "오빠, 무슨 생각해요?"

  "아니야, 얘들 목청 터지도록 노래 불렀으니까 이번엔 우리가 불러줄까?"

  "좋아요. 아, 맞다. 효린아."

  "왜?"

  "다솜이 술 못 마시게 해. 아직 19살이니까."

  "왜애애애애!"

  다솜이의 애교 섞인 앙탈이 곧바로 이어졌지만 효린이의 터치에 다솜이는 금세 순한 양이 되었다. 소유와 보라는 상황극 같은 코믹스러운 다솜과 효린이의 모습을 보고는 꺄르르 웃어댔다. 낙엽만 굴러가도 배를 잡고 웃을 나이는 지났겠지만 아직도 웃음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보라가 실컷 웃고 있을 동안에 나는 리모컨을 들고 무슨 노래를 선곡을 할지 고민했다. 일단은 요즘 맘에 든 가수인 십센치의 노래 하나를 선곡해볼까 했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노래를 검색했다.

  "나, 이 노래 좋아하는데. 오빠 나랑 취향 비슷비슷하네요?"

  "그냥 노래 고른건데 뭐."

  보라는 공감을 환기시키려고 했지만 나는 일부러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계속 친근하게 대해줬다가 내 스스로를 망치게 될 것 같아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행동이었지만 금세 실패할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의 전주와 반주가 흘러나오자 마이크 밖에서 세 소녀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합창을 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죄고 있었던 내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말이다. 그 성량에는 효린이 한 건 했다. 

  

  "사랑은 은하수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흥겨운 멜로디에 맞춰서 세 소녀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고속버스에서 춤을 추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신명나는 춤선이었다. 당장 휴게소에 들려서 단체로 관광버스 댄스 플래시몹이라 할 기세의 소녀들이었다. 보라도 밝은 톤의 목소리로 나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화음이 나긴 했지만 듣기 좋은 화음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유와 효린이는 양주병을 따서 양주를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헐, 내 양주.'

  "크으, 독하다."

  "으으, 더는 못 먹겠다."

  "그럼 내가 스틸!"

  소유는 더는 못 마시겠는지 손을 저으며 남은 양주가 담긴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또 호기심이 많은 미성년자인 다솜이 언니들이 손 쓸 새도 없이 재빠르게 집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솜이도 양주를 마시고선 표정을 찡그렸다.  

  슬프게도 불안한 마음이 내 몸에 엄습해왔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보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덥다고 손부채질을 하면서 소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블라인드가 내려가는 소리와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네 소녀는 뒤에 있었고, 나는 불안감을 마음에 둔 채 다음 노래를 불렀다. <소주 한 잔>을 선곡한 채로 그녀들의 눈치를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빠, 목 탈텐데 마셔요."

  "…어, 그래."

  보라는 액체가 담긴 잔을 내게 내밀었다. 익숙한 향이 나는 것으로 봐서 아까 그 양주인듯 했다. 슬쩍 양주병에 양주가 남아있는지 쳐다보았지만 남아있을리가 없었다. 씨스타 네 소녀가 힘을 내서 다 마신게 분명했다. 그들의 얼굴엔 벌써부터 술기운이 벌겋게 올라와있었다. 

  "오빠."

  "…어?"

  효린이가 나를 불렀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사실 겁에 지린 게 맞는 표현이었다.

  "오빠는 안 더워요? 우린 더워죽겠는데."

  지금부터 속으로 썰렁개그를 미친 셈 치고 생각해야할듯 싶다. 구하라를 구하라! 구혜선을 구혜선 안 돼! 구준표가 영화보라구준표! 우린 사이다를 마신 사이다! 너 샤이니와 아는 샤이니? 바비킴이 밥익힘! 등의 개그를 속으로 미친듯이 떠올렸지만 뒤에서 뿜어지는 씨스타가 생성한 열기를 막을 정도의 냉기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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