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7화 (318/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열 번째 과외 - 미치게 보고싶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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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연아, 내가 나중에 도움되는 거 가르쳐줄까?"

  "뭔데?"

  

  민식이는 나를 컴퓨터 앞에서 침대로 이끌었다. 침대로 데리고 가는 것이 요상한 짓을 하려는 수작 같았다. 나는 민식이의 손아귀에 잡혀 힘없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늘 그랬듯 눈을 감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내 입술 위로 무언가가 닿았다. 맨질맨질한 입술의 감촉이 아니었다. 꺼칠한 손의 감촉이었다. 나는 바로 눈을 떴다. 민식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태연아, 그런 거는 나중에 하고. 도움되는 거 가르쳐준다니깐?"

  "그니까 그게 뭐냐고."

  "음, 심폐소생술. 응급상황 때 꼭 해야할 것 중에 하나지."

  심폐소생술이라, 민식이가 유리하고 수연이를 물에서 구했을 때 썼던 소생 방법이잖아. 심폐소생술 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는데 이 참에 민식이한테 제대로 배워야겠다. 나는 장난스레 잡았던 자세를 정자세로 고쳤다. 민식이는 피식,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 숨을 못 쉬니까, 숨을 쉬게 해주려는 거야. 일단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 뒤에 기도를 이렇게 확보하는거야. 그리고 흉부압박을 하는거지. "

  민식이는 내 턱을 손으로 밀어서 살짝 올렸다. 턱이 땡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가슴을 덮는 손바닥의 느낌이 들었다. 심폐소생술이 아니었다면, 벌써 '어머! 민식아!' 하면서 장난을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민식이도 마찬가지구. 여하튼 민식이는 자신의 손에 힘을 쥐고 내 가슴을 눌렀다. 가슴이 조금 아팠다. 

  "…아파."

  "미안, 살살 누른다고 누른건데. 여하튼 응급상황 때는 이것보다 조금 더 세게 눌러야 돼. 알았지?"  "알았어, 다음은?"

  "다음은, 호흡할 수 있게 숨을 불어넣는거지." 

  민식이는 내 입술을 손으로 조금 벌렸다. 그리고 그 손을 오므린 뒤 얼굴을 가까이 댔다. 나는 무심결에 눈을 감았다. 이것도 버릇이었다. 나의 벌려진 입술 틈 사이로 민식이의 따뜻한 숨결이 비집고 들어왔다. 묘한 느낌이었다. 엄마의 온기만큼 따뜻한 숨결은 나의 기도 아래로 매끄럽게 타고 내려갔다. 

  "다시 처음부터. 첫째,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조 요청하기. 둘째, 상대방의 호흡 여부 확인하기. 셋째, 호흡이 없을 시 우선 기도 확보하기. 넷째, 흉부 압박 10번. 다섯째, 숨 불어넣기. 구조요원이 올 때까지 반복해주는게 좋아."

  "이제 알았어. 나 한 번 해볼게."

  "그럼 이번에는 내가 누울게."

  민식이는 내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가 침대 위로 퍼질러 누웠다. 나는 허리를 일으켜 민식이 옆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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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 때는 모의상황이었다면 이번에는 응급상황에다 실제상황을 더한 것이랄까. 민식이가 시킨대로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니까 이제 민식이가 호흡을 하는 지에 대한 여부를 알 필요가 있었다. 민식이가 가르쳐 준 대로 나는 민식이의 입술에 귀를 댔다. 새근새근, 잠자는 것처럼 들려야 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덜컹하긴 했지만, 민식이를 살리기 위해선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숨 고르기. 들이 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민식이가 가르쳐 준 그대로, 민식이의 가슴팍에 손을 올려놓고 다른 쪽 손을 포개었다. 그리고 서로 손가락을 얽힌 다음에 있는 힘껏 민식이의 가슴을 압박했다. 내 입에서 힘겨운 신음이 터지도록, 그의 가슴을 꾸욱, 꾸욱 짓눌렀다. 

  "…하아, 흐읍, 후우…후우…"

  내 손가락으로 민식이의 입술 양 끝을 잡아서 조금 벌렸다. 공기가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졌다. 주위는 시끌벅적했지만 나는 차분했다. 벌려진 입술 틈 사이로 내 숨을 불어넣었다. 소용돌이치듯 민식이의 입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위에는 탄성, 비스무리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사람을 살려야하는데 스킨십이 중요하나. 짜증나는 족속들.

  "하나, 둘, 셋…넷…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심폐소생술 과정을 반복한 지 열 번째. 내 앞머리는 모공에서 삐질삐질 새어나오는 땀에 의해 축축하게 적셔졌다. 하얀 이마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한 손으로 가방을 뒤적거려서 작은 머리끈을 꺼냈다. 그리고 앞머리를 뒤로 넘겨서 묶었다. 나의 얼굴은 어느새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짭조름하게 소금간이 되어있었다. 주위의 사람은 도와줄 생각도 안 한다. 그저 핸드폰으로 찍어대고, 떠들어대고, 심지어 어떤 새끼는 DSLR을 꺼내서 이 광경을 찍고 있었다. 이거를 직캠이랍시고 찍는 거야?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감정에 일일히 연연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미치게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람을 살려야했다. 

  "구조요청 누가 하셨습니까!"

  "…여, 여기요!"

  심폐소생술을 시도한지 열 세 번째, 민식이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나는 이미 탈진상태였다. 이대로 널 보낼 순 없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지랄발광을 떨어보던 그 찰나에 다행히도 구조요원들이 극장으로 뛰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죠?"

  "…하아…"

  "남자 분께서 머리를 아파하시다가 갑자기 호흡곤란 상태로 기절하고, 여자 분께서 여태까지 심폐소생술을 하셨어요."

  "알겠습니다. 보호자 분께서는 저희를 따라오세요."

  숨이 벅찬 나 대신 상황을 설명해준 남자에게 속으로 고마워했다. 나는 구조요원의 말을 듣고난 뒤, 힘이 부치긴 했지만 겨우 일어나서 들것에 실려가는 민식이를 뒤따라 걸어갔다. 몇 무리의 사람들은 우리를 뒤따라왔다. 나는 그 걸음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양심은 있었는지 쭈삣쭈빗 느리게 걸었다. 타임스퀘어의 밖을 빠져나오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잠자고 있는 민식이를 깨워주기 위해서 소리를 크게 틀어놓은 듯 했다.

  "일어나야지. 모닝콜 울리잖아…제발, 흐흑…"

  "보호자 분 진정하세요."

  나는 민식이를 따라서 응급차 뒷칸에 올라탔다. 구조요원 한 명은 엠부(ambu, 호흡정지시에 사용되는 구급소생백)를 민식이의 입에 대고 손으로 움켜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항상 드라마로만 보던 상황을 실제로 보게 되니까 감회가 새롭기는 커녕, SM에 오기 전 오디션을 수도 없이 떨어질 때에 느꼈던 감정처럼 엿같기만 했다. 

  "얼굴 창백한데, 바이탈(vital sign, 인간이 살아있다는 의학적 징후)은 어때?"

  "조금 위험한데.  산소 포화 수치가 낮아졌어. 여기서 더 심각해지면 뇌에 타격 오겠는데?"

  "그럼 근처 병원으로 빨리 옮기자. 근처에 병원이 2군인가?"

  "아니, 1군이야. 하선대병원. 내가 연락할게."

  엠부를 짜는 구조요원은 다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구조요원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핸드폰으로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창백한 민식이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보통은 따뜻했었는데. 완전히 달라진 민식이의 손을 매만지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차마 소리를 내며 울 수는 없었다. 민식이가 내 얼굴을 보고 걱정을 할지도 모르니까. 속으로 흐느낄 뿐이었다.

  "여기 신경학적 문제 때문에 호흡곤란이 온 환자를 본 병원에 이송하고 있습니다. 네, 바이탈은 90에 50이구요, 위급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산소포화수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아, 응급실에 남은 자리가 있나요? 네, 있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그 쪽으로 이송하겠습니다."

  "뭐래?"

  "하선대병원으로 가는거지."

  빠르게 달리는 엠뷸런스. 엠뷸런스 지붕에서 하염없이 소음을 내며 울리는 싸이렌, 구조요원이 엠부를 짜서 나는 쉬익쉬익, 거리는 소리. 위급상황은 위급상황이었다. 

  "근데 태연씨네요? 태연씨가 어쩌다가 그 곳에…"

  "야, 이 멍청아. 태연한테 한 눈 팔지 말고 환자에 집중해."

  구조요원의 타박과 함께 차는 싸이렌 소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시동소리도 꺼졌다. 차가 멈춘 듯 보였다. 이내 뒷칸의 문 안으로 눈부신 빛이 쳐들어왔다. 밝은 아우라가 내부를 채웠다. 열려진 문 틈 사이로 의사 가운을 입은 의사 두 명이 이동침대 위에 민식이를 눕히고 급하게 응급실 안으로 

뛰어갔다. 나는 힘이 빠져 그들을 뒤쫓아 갈 수 없었다. 구조요원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응급실 내부로 들어왔다. 안은 싸이렌 소리보다 더 소란했다. 골골 앓는 소리가 병원 내부를 가득 메웠다.

  "이 여자분도 안 좋아보이시는데. 인턴, 여자분 포도당 정맥주사 해드려. 600ml정도로."

  "네, 따라오세요."

  팔을 뿌리치고 그의 곁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여자 의사에게 손목과 어깨를 잡힌 채로 침대로 이끌려갔다. 예전의 침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잠시만 가만히 계세요."

    

  팔뚝의 얇은 살결 위로 날카로운 쇠촉이 꿰뚫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표정을 찡그렸다. 오묘한 느낌이 팔에 아릴듯이 몰렸다. 초조하게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꽉 찬 링거액이 튜브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갔다. 나는 누우는 것도 잠시, 링거액이 걸린 이동식 걸이를 한 손에 의지하고서 응급실 안을 돌아다녔다. 민식이가 어디 있는 지 모르겠다. 그 때, 응급실 프론트가 보였다. 저기라면, 민식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 거야.

  "저기요, 김민식 환자 어디에 있어요?"

   "김민식 환자분요? 잠시만요. CT실에 있어요."

  

  그 소리를 들은 즉시, 나는 CT실로 뭔가에 이끌린 듯 걸어갔다. 잠시 후, CT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동침대 위에서 눈을 감은 채 자고 있는 민식이가 보였다. 이내 조금 경력이 있어보이는 의사가 CT실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의학 드라마의 대사처럼 똑같이 그 의사에게 민식이의 상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환자 상태가 어떤 거에요? 괜찮은 거에요?"

  "장시간 동안 호흡 정지 상태였기 때문에 뇌에는 미세한 타격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조금 있다 곧 신경외과 과장님께서 내려오시니까 그 때 제대로 된 소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살 수는 있는 거죠?"

  

  "네, 생명에는 무리한 지장이 없으니까요. 아마도 몇 시간 뒤면 깨어날 겁니다."

  생명에는 무리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눈물이 얼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짧은 시간동안 풀어질 수 없을 만큼 엉켜진 감정의 실뭉치가 가위로 싹뚝 잘려 풀려지는 느낌이었다.

  +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누워있는 민식이의 얼굴을 나지막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신경외과 과장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을 민식이의 얼굴을 쳐다본 채로 떠올렸다.

  '김민식 씨는 저에게 비밀스레 몇 번 오신 적이 있습니다. 모두 같은 사유로 오셨구요. 다른 분들한테 알리는 것을 반대하셨는데, 상태가 이 정도로 심각해진 이상 태연씨에게도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민식씨는 페로몬이라는 호르몬이 심각할 정도로 분비되고 계십니다. 페로몬에 대해서 모르실까봐 설명드리는 건데요. 페로몬 호르몬이 일정량 이상으로 분비가 되면 주변 사람들의 감정 변화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사랑과 관련된 감정 쪽으로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더 쉽게 빠지게 되는 것과 같은 상태죠. 여하튼, 민식씨 같은 경우에는 아까 말했다시피 분비가 너무 과다해서 자신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증상을 사전에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이 주사를 하루에 세 번씩 주기적으로 맞아야하는데요. 이렇게 쓰러지신 것으로 봐서는 주사를 맞는 것을 잊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태연씨한테도 몇 개만 챙겨드릴테니까 혹시 아까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체크해주시면서, 민식씨가 주사를 아직 맞지 않은 상태라면 태연씨가 놓아주세요.'

  바보같은 김민식. 몸이 아프면 말해줬어야지. 그걸 속으로만 앓은 채 참아내면 어떡해. 계속 앓으면 결국 아픈 고름이 터지고 말잖아. 지금처럼.

  민식이의 바보스러움에 눈물이 또 나려고 할 때, 민식이의 눈이 서서히 떠지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감추고 민식이를 쳐다보았다. 조용하게. 민식이가 깨어나자마자 나에게 딱 한 마디를 건네고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다시 잠에 들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의사한테 들었을 지는 모르겠지만…페로몬 때문이 아니야, 진짜 너를 사랑해."

  "…등신같은 김민식."

  나 또한 민식이에게 가벼운 농담(?)을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따뜻해진 민식이의 손을 잡은 채로 보조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은 이상하게 스케쥴이 꽉 찼던 날보다도 잠이 더 솔솔오는 날이었다.

- 미치게 보고싶은 完

- 시즌 4.5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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