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4화 (31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일곱 번째 과외 - 미치게 보고싶은 2

  “오빠가 여긴 왠일?”

  진리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나를 만난 것이 신기한 건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나는 귀여운 진리의 모습에 피식, 짧게 웃어주며 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배도 출출하고, 치엔 누나가 오랜만에 요리 실력 좀 발휘한다고 해서 얻어먹으려고 왔지.”

  “히히, 나도 치엔 언니 어깨 너머로 요리 좀 배웠는데 나도 만들까?”

  “진리가 연예계에서 요리로 데뷔하는 건 좀 더 연습하고 데뷔하자.”

  “칫.”

  진리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쭈욱 내밀고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진리야, 오빠 신발 좀 벗자.”

  “아, 미안.”

  진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신고있던 신발을 벗고 숙소의 거실로 걸어갔다.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자, 선영이가 자신의 방에서 쭈삣쭈삣 걸어나왔다. 나는 선영이가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장난스레 농담을 쳤다.

  “선영아, 검정색이던데?”

  “오빠, 변태에요!?”

  선영이는 자신의 반팔티를 양 손으로 가리면서 나의 드립에 대해 격한 겨부감을 보였다. 나는 멋쩍은 웃음 대신 살가운 웃음을 선영이에게 지었다. 선영이는 오버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조심스레 거실로 걸어왔다. 

  “오빠 여기 무슨 일로 왔어?”

  “누나한테 밥 좀 얻어 먹으려고 왔다. 왜 안 돼?”

  “그럼 그 동안 나랑 게임 한 판 뜰래?”

  응, 이라고 하기도 전에 선영이는 텔레비젼 앞 게임기를 켰다. 그리고 어느샌가 내 손에 쥐어져있는 조이스틱. 나는 기분이 알싸하게 아스트랄해졌다. 

  “오빠, 화이팅! 난 치엔 언니 오면 요리 도와줄게.”

  “최진리, 너는 언니 응원은 못할 망정 외간 남자 응원을 해!?”

  “민식 오빠는 외간 남자 아니거든? 메롱.”

  진리에게 호되게 당하는 선영이의 모습에서 내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선영이랑 놀아주자. 라고 생각한 나는 선영이가 무슨 게임을 선택하는지 기다렸다.

  <피파 2011>

  “…저거 하려고?”

  “왜? 난 재밌던데.”

  후후, 선영이는 내가 <피파 2011> 도사인 것을 모르나 보다. 죽마고우들 사이에서 악명높은 게임러라고 불리는 나였다. 일명 네아일체라고 네이마르와 나는 한 몸으로 움직여서 한 게임마다 헤트트릭을 뽑아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 들어서 축구 게임으로는 누구한테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그럼 난 스페인으로.”

  “그럼 난 브라질로.”

  스페인이라니. 선영이같은 아이들은 게임에서도 애국심이 넘칠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의 대세들을 간파하는 능력이 있었다.

  “나 왔어~”

  “언니, 나랑 같이 요리 만들자.”

  “그르까? 선영이랑 민식이는 게임하느라 바쁘네.”

  “지금 저 둘은 축구선수에 닥빙했나봐. 언니, 요리나 만들자, 뭐 만들거야?”

  진리와 치엔 누나의 대화는 그저 지나가는 배경음악에 불과했다. 나에게는 하파엘이 오버래핑을 해서 네이마르에게 연결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나이스, 득점 찬스!”

  “아, 안 돼! 스페인의 수비벽이 이렇게 허망하게 뚫리다니…”

  피케를 제친 네이마르의 모습에 선영이는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딱히 흥분할 필요도 없이 침착하게 득점을 하기 위해 A버튼을 살짝 눌렀다. 게임 상에서의 네이마르는 공을 밑으로 깔듯이 찼고, 축구공은 골망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나의 선제골이 먹혀들었다.

  “아싸!”

  나이 분간 못하고 열 아홉살 여자애 앞에서 고작 한 골 넣었다고 선영이를 놀리듯이 네이마르 대신 혼신을 다해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선영이가 혀를 끌끌 차면서 통렬하게 나를 비판할까봐, 열정이 넘치는 세리머니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

  “오빠가 제일 잘하는 게 피파인데, 선영이가 그걸 고르네.”

  “아니, 그래도. 3:1이면 선전한거 아닌가.”

  “그렇게 쳐줄게.”

  “아, 억울해! 나중엔 꼭 이길거야!”

  선영이는 멀쩡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분명 에프엑스 내에서만 게임 실력이 좀 선전했다고 느꼈겠지. 하지만 내가 볼때 선영이의 실력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나에게 제대로 배운다면 뭐, 실력이 급성장 할 수도 있지만. 꼼수도 몇 개 알려주고. 그러면 여자 연예인계에서는 알아주는 피파 실력이 될지도 모른다.

  “게임 그만하고 와서 오므라이스 먹어!”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게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즐거운 브런치 타임이라니. 계란의 냄새가 내 콧구멍을 찔러댔다. 주방으로 걸어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오므라이스를 섭취할 준비를 했다. 내 건너편에는 치엔 누나가 앉았고, 그 옆에는 선영이. 은영이는 어디 갔나, 했더니 주방에서 먼저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나는 반강제(?)로 진리의 옆에 앉게 되었다. 치엔 누나는 내가 옆자리에 앉지 못해서 아쉬운 표정이었다. 다른 동생들한테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내 오므라이스는 치엔 누나가 만들어준건가?”

  “아니! 오빠 꺼는 치엔 언니가 도와주고 내가 만들었어!”

  치엔 누나의 작품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이 오므라이스의 맛은 정상적일 것이라고 보장할 수가 없었다. 오, 신이시여. 1박 2일에서만 하는 복불복을 어찌하야 내가 해야하는 것이며, 또한 벌칙이 예정되어있단 말입니까. 

  진리의 순수한 마음을 차마 거부할 수가 없는 나는 마음 속에 자리잡은 어둠의 다크니스를 뒤로 하고, 포크로 오므라이스를 집고 숟가락으로 밥과 계란을 퍼먹었다. 

  ‘오옷! 오옷!?’

  요리왕_비룡.mp3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시작하자. 단언컨대, 이건 서아시아지역에 존재하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지는 사해의 맛이다. 진리는 현명한 여자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독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능력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참고 먹어야 했다. 소금고문에서 견뎌야 더 성숙된 멘탈을 가질 수가 있으니까.

  “오빠 맛있지?”

  “그럼, 처음치곤 잘 만들었는데?”

  사실, 아무리 처녀작이라고 해도 이렇게 못 만들 수가 있는지. 분노를 1:1.618(분노가 1.618) 황금비율로 섞어서 오므라이스를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나머지 잉여 인생을 생각해서라도 참고 견뎌야겠다. 이 말도 있지 않은가. 참는 자가 더 현명한 자다. 그래, 참자!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난 단데기가 되는거야!

 음식의 맛이 대자연의 파도가 한가위에 강강수월래를 하듯이 뱅글뱅글 도는 것이 꼭 회전목마를 연상케한다. 결론은 맛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없다. 같은 나스체를 쓰고 싶을 정도로 설리가 자신있어하는 오므라이스의 맛은 똥이었다. 이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어째서 잡식성 동물인지 보여주는 기적의 사례다.

  “오빠, 맛있나보네. 거의 다 먹었네.”

  “맛있긴 맛있네.”

  정신 차려, 김민식. 어째서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하는거야. 진리가 아무리 좋아도 진리가 해주는 요리는 영 아니잖아. 이게 오므라이스인지, 오물라이스인지 분간도 못하면서. 

  지옥같은 식사 시간이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교훈을 한 가지 얻었다. 최진리에게 음식을 시키느니, 차라리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

  “내가 왜 내 차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을 태워야하는 거지?”

  볼멘소리를 해버렸다. 하지만 언행불일치였다. 내 투아렉은 이미 나의 유일한 일터인 MBC 여의도 방송국 앞에 주차되었다. 하필이면 에프엑스도 앨범 홍보 겸 라디오 프로그램 스케쥴을 뛴다고 했다. 나는 빈 라디오부스에서 라디오 녹음을 사전에 해야했다. 왜냐하면 저녁과 새벽에 걸쳐서 시상식 드라이리허설, 그리고 리허설을 준비해야했다. 피곤하기 그지 없었다. 

  “라디오 잘해~”

  “응, 님들도 잘해요.”

  나는 에프엑스 아이들을 먼저 내리게 하고, 또 다른 곳에서 주차를 하는 시늉을 했다. 사실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페로몬 억제 주사를 놓는 것을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주사기와 고무밴드를 꺼냈다. 노란 밴드로는 팔을 억죄고 주사놓을 부위를 미리 손으로 찰지게 쳤다. 바늘이 살갗을 꿰뚫자 아린 고통이 느껴졌다. 표정을 잠시 찡그렸다. 이후 한결 편안해진 감정이 들었다. 일종의 마약 같았달까. 나는 주사기를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 숨기고 나도 마찬가지로 차에서 내렸다.

  “어? 수정이네.”

  “오빠, 안녕.”

  “지금까지 뭐하다 왔어?”

  “시트콤 찍고 왔지. 오빠, 나 피곤하다. 가는 동안 안마좀 해주라.”

  나도 힘들다. 차라리 네가 대신 안마를 해주면 어떨까. 라고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에프엑스의 인기가 최근에 높아지는 바람에 스케쥴이 갑자기 많아진 것을 이해하는 나는 말없이 수정이의 어깨를 주물러주면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혀를 쭉 내밀었다. 

  “수정아, 혀 넣어라.”

  “왜애? 혀 내미니까 섹시해보여?”

  “어, 너무 섹시해 보이니까, 다른 남자들이 쳐다보잖아. 질투가 나서 죽겠거든? 얼른 집어넣자.”

  물론 100% 거짓말이다. 혀 내민게 섹시해보여? 그럴러면 진리가 말했듯이, 세상에서 제일 야릇한 시간인 새벽 세 시에 명도 25.23%의 조명 밝기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192도 방향으로 혀를 약 2cm 가량 내밀어야 섹시해보일 것이다. 지금의 수정이는 그냥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보였달까.

  “근데 니네들 하는 프로그램이 뭔데?”

  “우리? 심심타파.”

  “헐.”

  어쩐지. 선영이와 진리와 치엔 누나가 그렇게 싱글벙글 웃음을 짓더라니. 수정이도 다른 여자 멤버들과 똑같이 웃고 있었다. 아, 나만 피곤하겠구만. 불과 몇 일전에 소녀시대 아이들이 내가 진행하는 심심타파에 나와서 나의 멘탈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기억에 선명했다. 자매그룹인 에프엑스는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요.

  

 +

 “돌아온 전화연결 코너! 에프엑스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일단 연결해볼게요! 크리스탈씨가 받아주시죠.”

 “네에, 잠시만요.”

 수정이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통화용 이어폰을 귀에 꼽고 하염없이 흐르는 통화연결음을 들으면서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당사자인 수정이 말고도, 진리나 은영이나 선영이나 치엔 누나나 똑같을 것이었다. 이 코너는 미리 사전에 게시글을 올리고 추첨을 통해서 전화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게시글 올린 모두가 에프엑스와 통화를 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지루한 통화음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이내 현장감이 넘치는 주위의 소리가 들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발신자가 통화를 받은 것이었다.

  “여보세요?”

  [우와! 진짜 크리스탈 누나에요? 진짜로요? 대박! 완전 대박! 크리스탈 누나 진짜로 팬이에요!]

  앳된 남학생의 목소리였다. 수정이보고 누나라고 하는 것을 보면 95년생 미만 정도로 추정되었다. 그 때 쯤이면 한창 이쁜 여자 아이들이 좋을 때지. 문제는 죽어서까지 이쁜 여자가 좋아진다는 것이지만. 

 “…네, 감사합니다.”

  수정이는 상대방이 너무 격하게 리액션을 하면 오히려 자신이 당황해한다. 지금이 그런 경우였다. 딱히 할 말도 없고, 그저 살갑게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럴 때를 극복하라고 DJ 혹은 MC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이 내가 나설 차례.

 “…하하, 안녕하세요. 크리스탈양의 열렬한 팬이신가봐요? 자기 소개 해주시겠어요?”

 “뭐야, 넌 꺼져.”

 “…네?”

  방송생활 9개월만에 이런 직설적인 청취자는 처음인데. 갑작스러운 라디오 방송사고에도 침착했던 나인데, 갑자기 이렇게 욕을 처먹으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더 곤란한 건 다음에 펼쳐진 상황이었다. 당황해서 웃음만 짓던 수정이가 청취자가 통화를 하면서 나보고 꺼지라는 말에 정색을 빨고,

  “니가 꺼져.”

  […크리스탈 누나?…(통화 끊음)]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