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3화 (314/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여섯 번째 과외 - 미치게 보고 싶은 1

  “상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어요.”

  주치의가 건넨 말이었다. 두통이 더욱 심각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참을만 했을텐데 늦가을도 낙엽을 따라서 지는 초겨울의 날씨에 머리를 싸매기 일 쑤 였다. 어제는 두통 때문에 라디오에서 방송사고도 냈다. 콩트 연기를 하던 중간에 머리를 찌르는 두통과 귀를 어지럽히는 이명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생방송이었기에 비명 소리는 편집없이 그대로 누군가의 이어폰, 어떤 이의 스피커로 뿜어졌다. 그 뒤로  많은 뉴스와 함께 연예인의 건강상태가 재조명되었다. 언론의 관심은 항상 생각 그 이상이었다.

  “제가 규칙적인 템포로 생활을 하라고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잘 하고 있나요?”

  “죄송합니다. 원하는 대로 안 되네요. 대학 생활도 기말 때문에 바쁘고 연예 활동은 라디오 밖에 하진 않지만 끝나고 집에 오면 거리 때문에 서너 시가 돼서요.”

  “그렇다면 민식씨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라디오는 그만 두셔야합니다. 지금 방송이 문제가 아니에요. 방송은 상태가 나아지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어요.”

  “그럴 정도로 심각한가요?”

  “네.”

  나는 주치의가 하는 말에 9개월 간 했었던 라디오를 그만 둬야 한다는 생각에 금세 우울해졌다. 다른 디제이들이 라디오를 했던 기간에 비하면 나의 경력은 짧은 편이지만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스태프들과 이별을 고할 생각이 하니 울컥했던 것이다. 태연이가 라디오를 그만 두게 되었을 때 울컥했던 심정을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라디오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치의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해일같이 몰려왔다. 주치의는 책상 밑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조금 무게가 있는 상자였다.

  “뭔가요.”

  “일종의 처방입니다. 페로몬을 다 억제할 수는 없고, 고통을 주지 않을 정도로 수치를 내려주는 페로몬 억제 주사랄까요. 하루에 세 번 하셔야합니다. 일단 두 달 분으로 60개를 처방했습니다. 제가 말하시는 시간을 되도록이면 지켜주세요. 오전 9시, 오후 4시, 오후 9시.”

  “오후 9시하고 오전 9시하고 갭이 큰데요.”

  “네. 오후 9시에 놓는 주사는 일부러 심야라고 써놓았습니다. 주사의 양이 10ml 더 많거든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의사로써 당연히 할 일 인걸요. 주사를 맞으셔도 상태가 심각해지신다면 병원에 오세요.”

  신경외과 과장실의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주치의가 준 것은 주사 외에도 주사할 때 필요할 두꺼운 고무밴드와 반창고 몇 개를 주었다. 나는 팔에 그것들을 든 채 주차장으로 향했다. 

  투아렉에 탑승했다. 그리고 상자를 조수석에 놓고 개봉했다. 나는 상자 안에 있는 고무줄을 집어들어 내 팔에 매듭을 지어 묶었다. 그리고 페로몬 억제 주사기 하나를 꺼내서 주치의가 말한 정맥 부분에 찌른 뒤 지그시 눌렀다. 바늘의 크기가 좀 큰 지, 꽤나 따끔했다. 

  “아,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혹시 마약성분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머리가 싹 비워지는 것 같은 개운한 느낌을 받으며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소속사였다. 하선대학병원에서 거리를 재면 5분 내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나의 스케쥴을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치프 매니저인 다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피곤한 말투였다. 

  “누나, 저 라디오 건강 상 문제 때문에 이번주가 마지막인데 좀 전해주시면 안 돼요?”

  [귀찮네. 고정 스케쥴은 언론에 까지 띄워야 하는데. 갑자기 하차한다고 하면 듣는 사람들한테 예의가 아니잖아. 알았어. 피디님하고 이야기 해볼게.]  

  “귀찮으실텐데, 감사해요.”

  [내가 이걸로 먹고 사는데 감사하다고 하면 어떡하냐. 정 감사하면 고기라도 쏘든가…하암…너 오늘 라디오 가기 전에 회사에서 중국어 강의 듣고 가라. 중국어는 필수인거 알지?]

  “네, 알겠어요.”

  귀에 연결된 블루투스 마이크 겸 이어폰의 전원을 껐다. 다은 누나와 통화가 끝날 때 즈음에 정확하게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주치의가 준 케이스에 주사기 세 개와 두꺼운 고무줄을 가방에 챙기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 이에요.”

  “네, 즐거워보이시네요.”

  두통이 없어서 개운했으니까 그렇게 보이나보다. 영어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세상에서 중국어까지 해야할 이유가 딱히 없어보이지만, 중국이 미국을 뒤잇는 거대국가가 된 이상 중국어도 나름대로 필수인듯 싶었다.

  엘레베이터가 목표한 층에 도달해 멈췄다. 문이 열리고 간이 휴게실이 보였다. 다은 누나가 중국어 강의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소속 아티스트 중 중국 출신 아티스트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두 달째니까 어느 정도 성조에 맞춰서 발음을 할 줄 알았다. 

  “니하오─”

  “니하오, 송 치엔 시엔셩.”

  나의 중국어 선생님은 스케쥴 없이 놀고 있는 치엔 누나 되시겠다. 가끔 잡힌 행사 외에는 연중유휴인 치엔누나의 유일한 스케쥴은 일주일에 1회씩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치엔누나가 내 수준을 아니까 중국어 어휘도 딱 내 수준에 맞게 가르쳐준다. 그래서인지, 아는 건 별로 없다. 간단한 회화를 빼면 중국어로 회화가 불가능하니까.

  “민식아, 오늘은 식당에서 주문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중국어 회화를 가르쳐줄게.”

  “마음대로.”

  “칫, 시크한 척 하긴. 자, 따라 해봐.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 이렇게 말할 거야. 닌 야오 덴 차이 마(주문하시겠어요)?”

  “뭔 뜻인데.”

  “식당 들어가서 테이블에 앉으면 종업원이 뭐 묻겠어.”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하겠지.”

  “응, 그거야.”

  치엔 누나는 손가락을 딱, 치며 나의 추측이 맞다고 말해줬다. 어휘 암기를 할 때 기억하기를 덴 차이의 뜻이 주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긍정적 표현을 해야하니까. 하오를 붙이고 덴 차이를 하면 되겠지, 하면서 바로 실행에 옮겼다.

  “하오, 덴 차이.”

  “어? 안 가르쳐줬는데. 역시 민식이는 기대 이상이야.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어, 누나가 그런 어휘도 알아?”

  “나 한국에 온 지 벌써 6년이거든?”

  아, 맞다. 하면서 난 주먹으로 손바닥을 야무지게 쳤다. 치엔 누나가 짓궂다는 듯이 날 노려보는 표정이 귀여웠다. 주변의 눈치가 보여서 치엔 누나나 나는 애정의 스킨쉽을 쉽사리 할 수 없었다. 치엔누나는 매서운 눈빛을 거두고 순한 눈빛으로 금세 돌아와 회화를 이어나갔다.

  “이제 어떤 것을 드시겠습니까, 라고 종업원이 물어보겠지. 종업원은 대개 닌 라이 덴 선머? 라고 말 할거야.”

  “그럼 난 앞에 라이 붙이고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면 되겠네.”

  “그렇지, 잘 아네. 먹고 싶은 메뉴 말해봐.”

  “그르까?”

  갑자기 장난기가 돌았다.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나의 메뉴는 둘 사이에 정적이 충분히 일게 만들 수 있었다.

  “라이, 송 치엔."

  “……젠즈엉?(정말로?)”

  “뚜이 부 치…(죄송합니다.)”

  나의 급사과에 야한 농담에도 해맑게 웃어주는 치엔 누나의 관용에 무한감사를 해야겠다. 사실 최근의 두통 크리로 나와 관계를 맺던 전 멤버들에게 당분간 하지 않겠다고 공지사항(?)을 날렸었기에 이런 드립을 쳤다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는 일이라서.     

  “워 아이 니.”

  “민식이, 이렇게 애교 많을 줄 몰랐는데 의외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외에도 오늘 중국어 회화를 더 배웠다. 사실상 주문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계산하는 것까지 2시간 동안 스트레이트로 나갔다. 치엔 누나의 열정 넘치는 강의 때문에 나는 폭풍을 맞이하는 것처럼 중국어를 대해야했다. 

  “워먼 취 츠 판바(밥 먹으러 가자). 뚜 쯔 워러(배고파).”

  “아주 중국어로 살 맛 났네. 누나가 해줄까?”

  “그러면 좋긴 한데, 해 먹을 곳이 없잖아.”

  “왜 없어, 에프엑스 숙소 가서 먹으면 되지. 가자, 너 차 있지?”

  내 의사를 끝까지 듣지 않는 그녀였다. 무작정 그녀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식 강제집행인 것인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LTE WARP 돋는 그녀의 집행력에 나는 어느샌가 회사 사무실이 아닌 내 차에 타있었다. 

  “누나, 내 선택이 맞는걸까.”

  “당연하지. 출발, 출발!”

  방금 저 드립은 정준하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런 드립이었는데 역시 컬쳐쇼크다. 치엔 누나는 자신이 드립을 치는 것에 있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여자였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 속에 심어진 에프엑스 숙소의 위치가 나를 그 곳으로 인도했다. 나름대로 무의식적으로 네비게이션을 안 치고도 숙소의 위치를 기억한 것으로 봐선 내 욕망도 치엔 누나의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숙소에 누구 있어?”

  “음, 수정이는 시트콤 찍느라 없고. 진리 있고, 은영이 있고, 선영이 있고.”

  결국 정수정 빼고 다 있다는 소리 되겠다. 최진리가 아주 난리를 치겠구만. 다행히 공포의 정수정, 최진리가 결성되지 않았다는 게 유일한 안심이었다. 하지만 최진리가 혼자 있다고 난 방심하면 안 될 것이다. 그녀의 포스는 마치 2012년에 새로 나오는 수능특강 표지같았으니까. 즉,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발산하는 존재였다.

  

  “뭐 먹을래?”

  “흠, 브런치로 먹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오므라이스 먹지 뭐.”

  마음 같아선 몬테크리스토, 베이글, 와플 같은 현란한 메뉴를 열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원한다고 외치면 홈메이드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식은 빵들을 입 안에 넣게 될 것 같은 예감에 따뜻하게 먹을 수 있고 홈메이드가 가능한 오므라이스를 택했다. 이미 지겹도록 많이 먹어 본 요리 중 하나긴 하지만.

  “재료는 다 있고?”

  “아니, 요 앞 슈퍼에서 사야지.”

  말 끝나기가 무섭게 내 투아렉은 에프엑스의 숙소 앞까지 다다랐다. 치엔 누나는 나에게 자기 가방을 주고 그 속에서 지갑을 꺼낸 뒤 조수석에서 바로 나갔다.

  “먼저 들어가있어. 재료 사 가지고 올게.”

  “어…어.”

  내가 치엔 누나의 핸드백을 들고 있는 채로 에프엑스 숙소를 가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치엔 누나가 아내같고 내가 남편같을 것이고, 집에 있는 진리와 선영이와 은영이는 금쪽같은 세 자매에 비유할 수 있었다. 이거, 뭐, 느낌이 아리까리한데?

  기업형 마트로 뛰어가는 치엔 누나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는 투아렉의 시동을 끄고 바깥으로 나왔다. 쌀쌀한 바람이 온 몸에 파고들어 전율했다. 어서 빨리 숙소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아파트 안은 따뜻했다. 쌀쌀한 밖과는 달리 안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치엔 누나랑 같이 갈까, 하다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기로 했다.

  에프엑스 숙소가 있는 층수에 도착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분명 진리와 선영이가 격하게 노는 소리같았다. 나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어린 아이들처럼 놀고 있는 진리와 선영이를 생각하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도 한 번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아빠 왔다.”

  “…아빠?…에이 오빠잖ㅇ…꺄악!”

  선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선영이는 아빠, 라는 말에 반응했고 나는 선영이의 옷 차림새에 반응했다. 진리가 얼마나 격하게 잡아댕겼으면 속옷 노출을 서슴치 않아할까. 선영이는 몇 초가 지난 후 자신의 옷 모양새가 어떤지 깨닫고 자기 방 안으로 도망쳤다.

  “어? 오빠아아앙…!”

  아무렇지 않은 진리가 나에게 애교를 부리며 안겨왔다. 그 와중에도 선영이가 자신의 브래지어를 노출한 모습이 머릿 속에 아른 거렸다. 

  그 때, 찰나의 1초가 나에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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