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2화 (31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다섯 번째 과외 - 강남 스타일 完

오늘의 심심타파는 심심을 타파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폭파시킬 수도 있는 폭풍전야의 방송이라 생각했다.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태극기를 힐끗 쳐다보고 헤드셋을 장착했다. 나에게 있는 무기라곤 오직 마이크 하나 뿐. 소녀시대 앞에서 내가 말빨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 질문 들어갈게요. 장지훈님이 보내주셨네요. 태연양은 어째서 천사인가요? 라고 보내주셨는데 답변해주시죠."

"…푸훕…천사래."

벌써부터 소녀 너댓 명이 태연이 천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폭소를 하고 있었다. 태연이는 보이는 라디오를 고려했는지, 진지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가소로운 행동이었다. 나의 희생은 원치 않았다. 그저 소녀들이 서로 치고 박고 하다가 팀킬하는 꼴이 되길 빌었다. 뭐, 어느 그룹처럼 의지 타령하다 팀킬하는 꼴 말고. 

"아마도 부모님의 가르침이 저를 천사로 만든 것 같아요, 히힛."

"우우, 변태 주제에."

"…야! 여러분 이거 다 농담인 거 아시죠?"

"아, 그럼 태연씨 부모님의 가르침도 농담? 첫 질문은 이렇게 넘어가구요."

소녀들과 나의 연합공격에 태연이는 무참하게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금방 회복될 것을 알기에 작가 누나가 띄워놓은 다음 질문으로 들어갔다. 

"아, 맞다. 민식씨. 저 민식씨한테 궁금한 거 있는데!"

"윤아양이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는 모르겠는데 물어보세요. 소녀시대에게 질문하는 코너인데, 정작 당사자가 저한테 질문하네요. 뭔가 바뀐 기분이 드네요."

"히힛."

윤아는 배시시 웃었다. 더구나 윤아의 외모 리즈시절이었을 때 2:8 머리를 오랜만에 한터라 사랑스러움이 넘쳐보였다. 

"아까 라디오 시작하기 전에 중대발표 한다고 했잖아요."

"네, 그랬죠."

"지금 해주세요, 박수!"

"우아아아아, 짝짝!!"

박수소리를 입으로 내는 경우는 처음 본다.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같네.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아자아자!' '길다란, 할 수 있어!' 같은 것 많이 하던데. 쪽팔리지도 않나. 나는 못하겠던데.

"아, 3부 때 하려고 그랬는데."

"2부나, 3부나. 코너는 똑같잖아요, 남자라면 지금 질러요!"

"그럴까요? 저 소속사 생겼어요!"

"…진짜요? 어디어디?"

나의 출생 이래 이런 관심은 처음 받아본다, 하면 거짓말이겠고 여튼 많은 청취자들과 소녀들이 숨을 죽이고 나의 둥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기러기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기자들도 관심을 가지긴 마찬가지겠다.

"제가 샤이니하고 에프엑스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네, 그래서요?"

"오, 설마 SM?"

효연이 떠본다는 식으로 대충 나의 거취에 대해 추측을 해보았다. 근데 그게 맞았다. 나는 바로 맞추는 김초딩을 보고 당황해하며 미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올라이브로 눈을 휘둥그레 뜨는 아홉 소녀들. 

"진짜요?!"

"오, 우리 식구 늘었다!"

"축하드려요!"

소녀들의 요란스러운 박수축하가 계속 되었다. 가식적으로 축하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축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살짝 감동이 들었다. 특히 수연이가 물개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었다. 축하나팔 같은 게 있었더라면 당장 집어서 수 년간의 가수 생활로 다져진 폐활량으로 내 귀를 능욕했을게 분명했다.

"그럼 내일쯤에 축하 파티 같은 거 하겠다!"

"축하 파티요?"

"네, SM은 그래요."

"난 주목 받는 거 싫어하는데."

그냥 SM에서 시킨대로 따라라, 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18개의 눈을 보니까 튕겨야겠다는 생각이 눈 녹듯이 싹 사라졌다. 

"농담이구요, 한 번 더 소녀시대분들이 원하지 않는 드립을 치면 골로 갈 것 같아요. 원주에 사시는 박정피씨의 질문이네요. 지금은 화목하시잖아요. 만약 그럴 일은 없겠지만 소녀시대가 해체한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라고 소녀시대 여러분께 질문해주셨네요."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느 누가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질문인 것일까. 그 와중에 수영이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저희가 언젠가 한 번 숙소에서 약속을 한 적 있거든요. 소녀시대가 갈라진다고 하더라도 1년에 몇 번은 만나고, 문자나 통화로는 서스럼없이 연락하고 지내자구요. 다른 멤버들도 콜, 했구요. 그리고 소녀시대가 해체한다면 각기 개인 활동을 하면서 소녀시대 시절을 많이 떠올릴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저희는 해체하지 않을 겁니다! 신화 선배님들 처럼 쭉쭉 장수할거에요."

"맞아요, 저희는 군대도 안 가잖아요."

"맞아, 맞아."

수영이가 진지하게 말한 뒤, 효연이가 엉뚱하게 우리는 군대와 상관없으니 더 장수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태연이가 아줌마처럼 맞장구를 쳐주었고 다른 소녀들도 이내 효연이의 엉뚱한 말에 호응했다.

"다음은 무주에 사시는 비바람님의 질문이에요. 언젠가, 아니면 지금 남자친구를 사귀고 계실텐데 미래의 남자친구에게 한 마디를 해준다면? 되도록이면 멤버 모두 들어보고 싶어요. 라고 써주셨네요. 그럼 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볼까요. 태연씨부터."

나는 정중하게 태연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태연이는 나를 쳐다보며 피식, 웃다가 카메라를 향해 쳐다보았다. 역시 노련한 여자야.

"음, 저는요. 미래의 남자친구에게 바람 피지 말고 나만 쳐다봐줬으면 좋겠어요. 남자친구 생기면 전 아마도 유럽도 가고, 우리나라 방방곡곡 돌아다니고, 그리고 같이 노래도 만들고, 같이 돈도 쓰고 그러고 싶네요. 막 커플티같이 티나는 거 단 둘이 입고 싶기도 하고…여튼 하고 싶은게 많네요. 제시카 씨는요?"

"네, 저요? 음, 저는 미래의 남자친구가 만약 바람을 핀다면 가만 안 둘 거에요. 철저히 응징해버릴거에요. 이렇게, 확! 그리고 남자친구 생겨서 하고 싶은 건 태연이랑 비슷해요. 그대신 여행대신 쇼핑같은 거 많이 해보고 싶어요. 내가 남자친구 옷 사주고, 남자친구가 내 옷 사주고. 써니씨는요?"

"저는 미래의 남자친구가 제 애교 잘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다들 알다시피 애교 빼면 시체인 여자잖아요? 그리고 같이 놀이공원가서 개장 때부터 폐장 때까지 쭉 놀고 싶어요. 뭐, 하고 싶은 거 말하면 심심타파 약속한 시간 넘어서 이쯤에서 끊을게요. 티파니씨도 말씀해주셔야죠."

문제는 다들 카메라와 나를 번갈아쳐다본다는 것에 대해 있다. 많은 청취자들은 그저 DJ를 쳐다보다가 나를 쳐다본다고 느끼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저건 나한테 하는 말이다. 태연이와 수연이의 입에서 바람 피지마, 라는 말이 연달아 나온 것으로 봐선. 

"저도 태연이랑 비슷해요. 같이 노래 부를 수 있고, 마음도 통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점점 남자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에서 원하는 스타일로 바뀌는 것 같네요. 그럼 다음 질문을 다른 멤버분들에게 해봐야겠네요. 오, 이거 괜찮은데요. SM 신인이 된 김민식씨에게 SM 선배로써 해주고 싶은 말은? 효연씨부터 먼저 가볼까요."

효연은 뭘 생각하더니,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아홉 명의 소녀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SM 가족 된 기념으로 김민식씨가 소녀시대랑 회식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우와! 그럼 회식비용은 민식씨가 내는걸로."

"언니들, 전 찬성이에요!"

아, 망할 소녀들. 이럴 때만 단합심 쩌네. 이게 소녀시대의 현상입니다, 여러분.

+

"…오빠, 계속 연락할거지?"

바깥은 요란했다. 하라는 이사 가기 전에 손으로 전화기 제스처를 하면서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여러분이 보기엔 한 번밖에 안 해서 의외로 하라가 징징거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오빠 계속 연락할거지? 나 연락 기다릴거다? 라는 식으로 계속 징징댄 그녀였다. 하라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하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손을 잡으며 방실방실 웃는건 니콜이었다.

"오빠, 내가 조금 있다가 숙소 위치 문자로 띄워줄게. 집들이 할 때 와?"

"글쎄, 생각해보고."

"…히힛, 안 오기만 해봐. 가만 안 둘테니깐."

니콜이는 의외로 무서운 여자였다. 내가 만약 안 온다고 가정했을 때에 니콜이 할 행동을 스스로 말해주는데 그것이 참 요상한게 자기의 손가락을 길게 뻗고 주먹을 만들어서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그걸 웃는 표정으로 말해? 섬뜩한 걸.

"뭐, 오빠는 부르면 나올 거라 믿어."

"나도 이제 공인이거든? 뉴스 못 봤냐? SM 간거."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지로옹."

메롱, 하면서 나를 약올리는 지영이를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지네들 숙소 이전하면서도 끝까지 슬퍼하지 않고 장난치는 지영이의 등을 툭 밀면서 지영이 먼저 엘레베이터 타고 가라고 재촉했다. 지영이는 두고 봐, 하면서 엘레베이터의 문을 먼저 닫고 내려갔다. 역시 반도의 쿨한 여자야.

젊은 세대(나보다 어린 것들, 즉 나보고 오빠라고 부르는 것들)들에 비해 기성 세대는 말보단 행동을 택했다. 두 누나는 말을 하기보다는 동시에 날 포옹했다. 나는 어쩌다보니 두 여자를 안은 채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보고 싶어서 어떡해?"

"에이, 이제 간다고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그룹 보면 ㅇ…아니다. 어차피 나 이제 방송하니까 자주 보겠네."

"너 아까 다른 그룹 이야기하려고 했었지? 다 했었으면 나한테 죽었어."

"나한테도, 오빠."

민식은…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 는 구하라가 답이다. 기성세대와의 뜨거운 이별 와중에서도 죽음을 인질로 한 협박이라니. 더구나 하라구의 헥토파스칼킥을 야무지게 맞아본 나로서는 그녀의 경고가 농담이 아니고 진실이라는 것을 안다. 

"가는 곳까지 데려다줄까?"

"됐어. 라디오 하느라 피곤했을텐데 편히 쉬어. 새벽에 일어난 것만으로도 대단한거지."

"잘 가."

나는 뒤늦게나마 이사를 가는 카라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지영이는 먼저 갔으니 상관없는 일이고, 엘레베이터를 탄 하라와 니콜과 승연누나와 규리누나는 문이 닫히고 있는 동안에도 손을 흔들며 잠시간의 이별을 고했다. 그래봤자, 몇 일 뒤에 자기들이 연락해서 또 보겠지만 말이다. 라디오를 하게 되니까, 밤에 만나는 일이 줄어들어서 그건 그나마 내 체력 관리하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신 낮에 죽어나는거지.

"그럼 걱정거리도 사라졌고, 시작해볼까."

나는 핸드폰을 켜서 미리 저장해둔 번호를 눌러서 전화를 걸었다. 걸쭉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저께 연락 드렸던 사람입니다. 오늘 오전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예, 알겠습니다."

-

오후가 되자 짐싸기는 끝났고 노을과 함께 나도 이 집을 떠났다. 나는 파주로 가는 동안 이삿짐 차를 뒤따랐다. 미영이가 차 타고 어디 운전할 때 틀고 다니라고 케샤 전집이랑 인셉션 오에스티를 선물로 줬다. 오늘은 케샤의 블라블라 앨범을 들으면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가 신호에 걸려 정차하고 있을 동안 씨디를 꺼내 케샤의 얼굴이 있는 CD를 디스크에 집어넣고 돌렸다. 

케샤의 으아아…하는 목소리와 함께 폭풍의 스톰에 가까운 케샤의 래핑이 이어졌다. 나는 핸들에 손가락을 틱틱, 대며 박자를 맞췄다. 나름대로 신나는 노래였다. 이제 돈을 집 사는데에 썼으니, 나의 돈벌이는 다시 시작될 것 같았다. 라디오도 언젠가 그만둘 것 같으니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속도로 위에서 거북이 주행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얼마 전 수만옹이 건네준 영화의 대본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너는 나의 봄이다>

"…제목 괜찮은데? 제작 취지도 좋고, 대강으로 나온 스토리도 좋다. 할까. 연기 안 해봐서 두렵긴 하네. 수만형이 내가 연기 쪽으로 재능이 있나 한 번 테스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도전해보자."

그 순간 말도 안 되게 막혔던 도로가 뻥 뚫렸다. 뒤에서는 차들이 클락션을 울리며 내 투아렉보고 빨리 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알았다, 알았어. 나는 스크립트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순조롭게 앞으로 전진했다.

- 강남 스타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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