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두 번째 과외 - 강남 스타일 3
태연이의 동공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기 스펙트럼이라고는 사자에상이 전부인 태연이에게 연기를 시키다니. 거기다가 나는 라디오에서 선보였던 꽁트 연기 빼고는 딱히 연기 경력이 없는 남자였다. 이건 어느 누가 생각해도 무리수 중 무리수였다. 이건 SES 선배님들의 활동곡이었던 달리기 무대의상보다 훨씬 더 무리수라고 생각했다.
"…자신 없어? 없으면 말고."
"하하, 일단 받아는 볼게요. 대충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야하니까. 태연아, 너도 받아야지."
"…그럴까?"
눈치를 보니, 어느새 나와 태연이의 손에는 스크립트가 쥐어져있었다. 태연이는 수만옹이 안 보는 틈에 왜 그랬냐는 무언의 행동으로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나는 허벅지로 집중되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얼굴을 달궜다.
"민식이는 얼굴이 왜 그리 빨개?"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이것 말고 미팅이 또 잡혀서, 거기도 가볼게요."
"흐음, 그럼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잘 갔다와. 누누이 말하지만, 꼭 여기가 아니어도 되니까."
자꾸 '꼭 여기가 아니어도 된다'라는 말을 마음에 걸리게 하는 건 여기로 오라는 수만옹의 이중부정 같았다. JYP에 가서도 꼭 SM을 한 번쯤을 생각나게 만드는 연상신공이라니. 역시 수만옹은 보통 내공이 아니었다.
"둘한테 할 이야기 끝났으니 가서 볼 일 해결해."
"네."
"네."
나와 태연이는 타이밍을 맞춰서 수만옹에게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태연이는 내 머리가 신기한듯 엘레베이터 안에서 머리카락 색깔만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내 머리가 그렇게 신기해?"
"응, 너 흑발은 처음이잖아. 거기다가 새치처럼 초록색깔 머리 들어가있네. 우와, 신기해. 잘 어울린다."
훗. 나는 태연이의 칭찬에 콧대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엘레베이터는 최정상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태연이는 앞으로 손을 모은 채 하이힐 구두굽 소리를 내며 또각또각 걷고 있었다.
"나 숙소에 데려다주라."
"오늘은 안 되겠는데? 너도 알다시피 나 제왑 미팅하러가야되잖아. 그리고 그 후에도 친구들이랑 약속도 잡아놨어."
"치잇, 너 나 몰래 또 누구한테 작업건거 아니지? 이제 그만 좀 늘렸으면 좋겠거든? 지금도 벅차."
"……미안."
"에휴, 내가 뭔 죄가 있다고 이런 바람둥이를 만났는지."
그 놈의 페로몬이 죄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면, 날 이렇게 낳아주신 부모님이 죄인가. 여튼 아쉽지만 태연이를 뒤로 하고 차의 시동을 걸어 JYP 사옥으로 향했다. 인터넷에 요즘 YG 신사옥하고 JYP 사옥하고 비교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던데. 실제로 보니, 진짜 YG 건물에 비하면 수위실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그래서…
[사옥 근처에 커피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작은 카페가 있어요. 죄송하지만 그 곳으로 와주시겠어요?]
라고 문자를 보낸 JYP 관계자였다. 하필이면 기막히게 JYP 사옥에 도착했을 때 장소변경문자를 보내다니. 운전석에서 내리자 바로 앞에 카페가 보였다. 근처에 카페라고는 저것 하나 밖에 없으니 관계자가 말한 장소가 저 카페라고 생각하고 매무새를 정리하며 아날로그틱한 카페로 걸어갔다.
카페문에는 조그만 종이 달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종업원이 날 쳐다보기가 무섭게 카페 구석에서 공기 반 소리 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식씨 여기에요."
박진영 사장이 쪽팔린 것을 무릅쓰고 팔을 휘저었다. 박진영 사장 대신 내가 하염없이 쪽팔려했다. 박진영 사장의 옆엔 의외로 한 소녀가 더 있었다. 뭔 놈의 기획사들이 하나같이 미팅할 때마다 대표 여자연예인을 옆에 끼고 오네. YG에선 탑님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YG하고 큐브하고 코엔을 가야하니까.
"안녕하세요. 김민식입니다."
"네, 박진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소희야 인사해. 아, 인사할 필요가 없나."
"어차피 라디오로, 티비로 보고들어서 간접적으로는 아는 사이일텐데요.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하세요."
소희를 보자, JYP 소속 가수인 그녀가 떠올랐다. 맨날 나를 무시하던 그녀 말이다. 물론 여기선 나오지도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를 무시하던 그녀가 이 곳의 소속 가수였다. 사실 가족 취급 하고 싶지도 않았었지. 근데 가족인 걸 어쩌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듣기로는 민식씨가 음악적 개성이 뚜렷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곡, 작사 실력도 보통이 아니시던데. 아이유양 Rain Drop, 캠프 파이어 둘 다 쓰셨잖아요. 특히 캠프 파이어라는 곡이 피아노하고 어쿠스틱 기타하고 하모니가 환상적이더라구요. 저희는 민식씨를 영입하게 된다면 아티스트 쪽으로 지원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원하신다면야 예능하고 연기 쪽도 지원해드리구요. 저희는 단순한 아티스트보단 개성있고 멀티엔터테이너적인 면이 돋보이는 아티스트를 좋아하거든요."
박진영 사장의 말에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 말은 대형 기획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별 메리트가 없었달까. 다만 JYP의 메리트를 뽑자면 SM보다는 음악이 개성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진영 사장 밑에서 프로듀싱과 박진영 사장의 특유의 감과 작곡 실력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랄까. 특히, 2PM의 Heartbeat는 그야말로 내 스타일.
"네, 고려해볼게요."
"여기 계약서입니다. 검토해주시고 저희랑 계약하고 싶으시다면 추후에 연락주세요. 민식씨 영입을 위해서라면 저희의 도장은 언제든지 준비 완료입니다."
박진영 사장이 씨익 웃었다. 박진영 사장을 따라 웃긴 했지만, 박진영 사장은 역시 고릴라 같았다. 티비에서 보나, 실제로 보나 똑같았달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만약 이 쪽과 계약하지 않더라도 박진영씨랑 한 번 음악 작업해볼 기회는 있는 건가요?"
"저요? 아, 물론이죠. 저야 늘 남는게 시간이니까요. 경영을 하지 않다보니 하는 일이라곤 기획하고 음악 일밖에 없으니까."
박진영 사장이 또 생긋 웃었다. 보면 볼수록 진짜 고릴라 같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소희가 여기에 온 이유가 궁금했다.
"근데요, 궁금한 게 또 있어요. 소희양은 왜 온 거에요? 막 동반 작업해야한다는 그런게 있나요?"
"하핫, 아니에요. 그냥 데리고 온 거에요. 인사겸. 소희도 오겠다고 자원했구요."
"사장님, 제가 언제요. 사장님이 제발 좀 와달라고 부탁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사장님 성의 생각해서 온 거구요."
박진영 사장은 진짜 고릴라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역시 소희는 말하는 것에 있어서 거침 없는 여자였다. 저게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
"것보다 오빠, 언니가 오빠 안부 물어보는데, 잘 지내냐는데."
"연락을 하면 되지. 꼭 다른 사람 통해서 물어보네, 신기한 가족이야."
"에이, 언니 나무라지 말고."
소희는 내 누나를 나무라는 나의 행동에 대해 핀잔을 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희는 변함 없는 여자였다.
"오늘 언니 만날래? 언니도 오빠 보고 싶어하던데."
"오늘은 바빠서 안 되겠고, 시간 봐서 나중에."
"그래? 알았어. 맨날 뭐때문에 그러는지 대충 알겠지만 적당히 해. 남매 사이에 그렇게 불편하게 지내려고 하는거 보기 안 좋아. 언니가 얼마나 노력하는데. 비록 오빠를 매번 꼬맹이같이 보긴 해도."
"아니, 그건 꼬맹이가 아니라 무시하는 정도라니까?"
"하하, 전 먼저 가봐야겠네요. 소희양이랑 대화 잘 하다 가세요."
박진영 사장이 눈치 보며 빠지고 난 소희랑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주제는 당연히 나의 누나에 대해서였다. 나는 누나가 몇 년이 지나도 나를 깔보듯이 대한다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고 있는 것이고, 소희는 그런 누나의 행동도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주장을 계속 해나가고 있었다. 서로 대립되는 의견인만큼 절충될리가 없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없고.
"하, 일단 여기까지 해야겠다. 이러다가 또 죄도 없는 너랑 싸우겠다."
"왜, 나랑 싸우면 말빨 밀릴까봐?"
소희의 도발모드에 난 하마터면 바지에 무언가를 지릴뻔했다. 그렇다고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랑 말싸움하기도 껄끄럽다. 나의 가족을 주제로 하는 싸움은 더욱이 꺼려졌다.
"아, 맞다. 것보다 원더걸스는 한국 활동 안 해?"
"11월에 하거든요? 언니가 말 안 해주나?"
"안 해줘. 너를 통해서 내 안부를 물어보려고 하는 누난데 연락을 하겠니."
"하여튼 우리 내일 밤에 다시 미국으로 가니까, 그 전에 언니랑 좀 만나."
"11월에 온다며, 어차피 그때 보게 될텐데, 뭐."
"하여간, 오빠도 고집 은근히 세다니까?"
소희는 나를 보며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 엄마도 나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는데, 소희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동안이고 성격도 내향적이면서 어떻게 친한 사람한테는 수다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수 있는지. 나도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어쨌든 소희야. 오랜만에 봐서 내심 반가웠어."
"나도. 언니한테 오빠 안부 전해줄게."
"맘대로 해. 난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야겠다."
나는 의자에 걸어두었던 정장 마이를 다시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희도 따라서 일어났고 털털한 걸음으로 나보다 먼저 앞서나가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하, 안소희 너란 여자 참 시크한 여자. 그리고 걸음속도도 빠른 걸로 봐선 씨스타 부럽지 않은 POW부스터ER라고 생각했다.
오토키를 이용해 차의 잠금장치를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원격 시동 시스템이 설치가 안 되어있다는게 아쉬울 뿐이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약속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지금 최대의 관심사는 누나와의 재회나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레이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냐는 것이었다. 분명히 멤버들이 같이 대동했으니 밴을 타고 갔을 가능성이 높긴 한데.
세 블럭 정도 되는 직선로를 지나, 우회전을 했다. 그러자 익숙한 명품가게들이 한 블럭에 쭉 이어졌다. 미용실은 이 근처. 운전하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내가 머리를 염색하고 커트를 했던 미용실이 나타났다. 갑자기 내 입가 만면에 미소가 띄어졌다. 별 것도 아닌 생각으로 웃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부비부비가 그렇게 좋았었나.
미용실 근처에 도착하긴 했는데, 레이나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전화번호도 모르기 때문에 연락해서 오라고 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내려서 찾으려고 하는데 마침 미용실에서 레이나 혼자 나왔다. 나는 혼자 나온 레이나를 발견하고 운전석에서 내려 레이나를 에스코트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나 스스로도 당최 알 도리가 없지만.
"클럽에서는 좀 거치시더니. 평소 매너는 친절하신가보네요."
"제가 언제 거칠었다고. 뭐 먹을래요? 아주 비싼 거 빼고 사줄 자신 있는데."
"그래요? 그럼 포장마차가요. 운치있게."
대놓고 술을 마시자는 소리일까. 난 라디오와 운전을 겸해야했기에 술을 먹을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고민에 빠지는 내 표정을 본 레이나는 조수석에서 내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민식씨 표정이 왜 그래요? 술 마시고 싶지 않으면 안 마셔도 돼요. 취해도 나만 취하면 되니까. 어차피 멤버들 다 숙소로 보냈거든요. 그래도 저 숙소로 데려다줄 시간은 있죠?"
"네, 그 정도야."
"어차피 숙소가 방송국 근처니까 그리 시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에요. 걱정은 마세요. 제가 자주 가는 포장마차도 그쪽에 있어요. 얼른 가요."
나는 차키를 열쇠구멍에 꽂은 다음 오른쪽으로 돌려 시동을 걸었다. 꽤나 신파적인 방법이긴 제일 많 이 퍼진 종류의 시동걸기이기도 하다.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던 레이나는 어느새 머리를 푼 채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부드러운 머릿결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창문도 살짝 열어놓은 상태라서 창문 사이로 살살 들어오는 바람에 레이나의 머릿결이 헤집어지면서 매혹적인 어필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