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7화 (308/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삼백 번째 과외 - 강남 스타일 1

여름은 뜨거웠었다. 2011년의 여름은 태풍과 함께 인사를 고했고 하늘은 몇 개월만에 서늘해졌다. 여름 내내 감각이 무뎌져있었다. 힘들었다, 라고 해야 되나. 아님 보람차다, 라고 해야 되나. 시계바늘을 왼쪽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오른쪽 방향의 숫자들에 손가락을 대고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두통이 바다를 흔들리게 하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잦아든다. 신호조정하는 텔레비전처럼 시야가 기계적으로 흐릿해질 때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끔 내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을 한다. 방송 일도 맨 처음엔 꺼려졌으나, 몇 번 겪고 나니 나름대로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고 느껴졌다. 터무니없는 외교관이나 통역관같은 직업 설정보단 지금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게 더 나았다. 부모님은 늘 내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제일 좋은 거라고, 근데 그게 조금 힘들지도 모르니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선 원하는 만큼의 노력을 해야된다' 라고 말이다. 벽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시계가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해진 생활리듬, 오늘도 같은 패턴의 시간대에 난 깨어났다.

"하암…"

아침의 정취가 창문가 사이로 새어들어왔다. 거실로 나왔다, 정확히 한 달 전. 이것과 비슷한 구조의 집에서 누군가와 정사를 나눴다. 분명히 나의 이웃이겠지, 그땐 정말 내가 자의적으로 하긴 했지만 훅 가는 줄 알았다. 메세지가 여러 개가 와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여러 통의 문자가 온 것으로 봐서는 중요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는 순간 내 예감은 맞았다.

[형, 네이버 확인해봐요 -신소월]

뜬금없는 후배의 문자를 받은 나는 언제 켜져있었는지 모를 맥북으로 인터넷을 열었다. 포털 사이트를 첫 페이지로 지정한 터라 인기검색어들이 바로 떴고, 그 속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는 '김민식' 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었다. 방송 가끔씩 나올 때 빼고는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기자들이 무슨 기사를 썼길래 1위를 장식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 심심타파의 DJ 김민식, 그가 둥지 틀 소속사는?

[복숭아뉴스 남인수 기자]

컬투쇼를 제치고 4개월 째 청취율 1위를 달리고 있는 MBC 표준FM의 김민식의 심심타파의 DJ인 김민식(23, 남)이 대형 기획사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민식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김민식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요즘 연예계의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민식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가능성이 있는 기획사들에 대해 추측해보았다.

1. SM ENTERTAINMENT.

김민식의 이적 1순위 기획사는 아마 SM으로 추측된다. 이미 여러 기사를 통해 SM 연예인과 간부들과의 친목을 과시했으며, 강심장이나 여러 토크 프로그램에서 소속 연예인들이 김민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아 충분히 갈 가능성이 있다. 또한 김민식의 비쥬얼이 SM이 지향하는 여리여리하지만 남자다운 외모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2. YG ENTERTAINMENT.

YG와 김민식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YG의 총수인 양현석과의 개인 인터뷰 뿐만 아니라, 빅뱅의 멤버들까지 김민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또한 김민식은 아이유의 , <캠프 파이어> 등을 작사, 작곡하는 등 뛰어난 작사 작곡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뮤지션의 모습을 중요시하는 YG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인재상이다.

3. CORE ENTERTAINMENT.

SM이나 YG보다 김민식에 대한 언급이 적긴 하지만 혈연(?)으론 따지고 봤을 때는 다른 기획사보다 끈끈하다. 방송에서 당당하게 효민이 자신의 사촌동생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친근함으로 스카우트를 한다면 코어가 제일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남인수 기자 [email protected]]

"네, 뭐라구요? 인터뷰요?"

[인터뷰는 아니고, 저희 소속사 사장님께서 민식씨와 미팅을 원하십니다.]

"예의상 소속사부터 말씀해주셔야죠."

소속사 관계자에서 실제로 미팅을 원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수만옹도 다른 걸그룹 소속사 사장 분들도 먼저 미팅을 하자고 하는 말은 없었는데. 더구나 내 번호는 어떻게 안 거지. 전혀 알려준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JYP입니다.]

"…JYP요? JYP에서 제 번호를 어떻게 알죠? 연관된 분이 없는ㄷ…아, 있구나."

연관된 사람이 있긴 했다. 지금 밝히긴 싫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아주 장난감 취급하는 사람이 연간되어 있어서 기분이 딱히 좋지 않다. 밝힐 때가 되면 차츰 사람들한테 밝힐 생각이었다. 

[저희도 연락할 방도가 없어서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도 그 분께서 알려주시더군요.]

"네. JYP에서 제 번호를 알아내려면 그 분밖에 없죠. 제가 강의를 오전에 듣고 라디오를 자정에 하니까 그 사이에만 스케쥴 잡아주시면 JYP에 직접 가볼게요."

[네, 그럼 미팅은 수락하신 걸로 알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전화를 끊고 곧바로 캐쥬얼하게 옷을 입고 오전 강의를 들으러 갈 준비를 했다. 교과명이 <영어음성음운론>이라니. 나는 이제 곧 나락으로 떨어질듯 싶었다. 이번 학점은 어떻게 나올까, 살짝 기대가 된다. 는 개뿔, 이제 곧 면접이나 논술이나 적성고사 본답시고, 강의실 비워서 난 시험 감독이나 보는 의미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겠지.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데 어쩜 이럴수가, 유리의 전화가 왔다.

"왜?"

[학교 같이 가자.]

"어딨는데? 내가 숙소로 가라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겠니. 너네 집 앞이야, 밴 떠나가기 전에 얼른 와.]

"나도 차 있거든?"

[승차감은 우리 차가 더 좋아, 얼른 와, 어허잇!]

내가 졌다. 위에서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급스러운 검정색의 밴이 엔진소리를 내며 정차해있었다. 밴 앞에선 한 여자가 때깔 좋은 정수리를 뽐내며 팔짱을 낀채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슬쩍 고개를 위로 들었다. 내려보고 있었던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유리였구나.

나와 시선이 마주친 유리는 원거리용 눈빛 레이저를 그 자리에서 발사했다. 타깃이 된 나는 유리의 레이저에 털리기 전에 밴으로 뛰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웬 걸,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니 문 앞에 유리가 떡하니 서 있었다.

"너, 강제 연행. 따라와, 묵비권 행사도 불가능이고 변호사 선임도 불가능 해."

"미란다가 울겠네."

힘으로는 유리에게 전혀 꿀리지 않았지만 예의상 유리에게 팔이 잡힌 채로 질질 끌려가는 것 뿐이었다. 나름대로 이게 나한테는 편하기도 하다. 다만 힘들다면 유리가 지독하게 힘들겠지. 안 움직이려고 버티는 몸을 없는 힘 써가면서 끌고 가는 거니까. 

"이것도 나름대로 편하다."

"…응? 너 이 시키!"

유리가 댐프시롤을 시전하며 내 몸통 곳곳에 잽, 훅, 어퍼컷을 꽂으려고 했지만 수 백 번의 피격 경험으로 호크아이가 생겨버린 나는 유리가 휘두르는 주먹을 모두 움켜쥐었다. 깜짝 놀란 것은 유리가 아니라 나였다.

'이걸 다 막다니, 혹시 나 영재?'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흐뭇했지만 뒷공기가 알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뻑에 빠지기 바로 직전 유리의 공격을 예측해서 피격당하지 않았다는 기쁨에 젖어서 만끽할때쯤이었다. 어둠의 공간에서 손바닥이 튀어나와 내 등짝에 인장을 찍어버렸다. 이 정도의 데미지라면 손금 라인까지 그대로 생기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빨리 타자, 민식아?"

"수영이도 있었네?"

"항상 있었거든? 유리는 대학 생활 간간히 빼먹었지만 난 하나도 안 빼먹었다, 고로 유리는 옵션. 내가 진짜지."

유리가 수영이를 노려보긴 했지만, 수영이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둘이 싸우기라도 한건가. 뭐, 어때. 나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지. 나는 밴의 앞자리에 앉기를 포기하고 차가운 윗목이 떠오르는 구석탱이로 알아서 움직였다. 

"너 뭐해?"

"한 숨 자려고. 도착하면 깨워, 오늘은 바빠서 이럴 때 눈 좀 부쳐야지."

뒷좌석 전체를 차지했다. 이런 패기가 나에게서 나오다니, 나름 기뻤다. 나는 허리의 힘을 풀고 뒤로 누웠다. 애들이 밴 안에서 수시로 잠을 자는지 목베게도 구비가 되어있었다. 멋진데? 어차피 머리 세팅은 강의 다 듣고 하면 되니까 눈 좀 부치기로 했다. 

+

"일어나, 이 잠탱아."

"…으응?"

정신이 멍해졌다. 눈을 뜨고 보니 익숙한 정경의 중앙대학교 주차장이었다. 몸이 진짜 피곤에 쩔어있나보다. 잠깐 눈 감았다 뜬 정도인데 이렇게 시간이 가다니. 딱히 꿈 꾼 것도 없이 그저 암흑 속에서 수면을 취했었는데. 

"끝나고 다시 집으로 데려다줄까?"

"응. 오늘 지갑도 안 가지고 왔어, 좀 이따 차 끌고 다닐 곳이 많아서. 오늘은 아쉽게도 너네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럼 바이."

중앙대 총장이 변하지 않는 한, 저 놈의 오래된 건물은 리모델링 할 생각을 하지 않겠지. 물론 안이 아닌 바깥 구조를 보고 하는 소리였다. 안은 이미 현대화된지 오래다. 것보다 왜 어문학과 계열의 강의를 들으려면 7층까지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인문대학에서 어문학과가 우수하니 모두 1층에, 라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싶었지만 역시 우수한 학과를 따지려면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나 금융학과를 이길 수 없다. 아, 수능 성적이 좀 더 잘 나왔어야하는건데. 

내 처지에 대해 궁시렁거리다보니 어느새 7층이었다. 물론 걸어서가 아니라, 엘레베이터를 탔기 때문에 벌써 7층이란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익숙한 강의실, 익숙한 자리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스마트패드를 만지작거렸다. 

"형, 안녕하세요."

"엉, 소월아, 안녕."

나는 옆 의자에 올려놓은 가방을 반대쪽으로 옮기고 소월이를 앉혔다. 소월이는 자신의 가방을 나와 반대편의 자리에 놓고 내게 인사를 했다.

"형, 뉴스 봤어요. 형 연예인 돼요?"

"몰라, 그럴 것 같은데. 왜?"

"제 주위에 연예인 되는 사람이 벌써 2명이나 돼서요."

"2명? 나머진 누군데."

"왜, 있잖아요. MT 갔을 때, 형 소개할 때 우우우, 날린 얘요. 걔 SM 붙었다던데."

"진짜? 대박인데."

역시 영문학과의 소식통, 신소월다웠다. 영문학과에서 생긴 일이라면 모두 이 놈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지상구였나? 그럴걸요. 형도 SM 돼요?"

"몰라, 미팅해봐야 알지. 다른 기획사일수도 있어."

거의 세 달만에 만난 소월이라서 그런지 수다꽃이 만발했다. 남들의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은 채,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난 3학년이니까. 4학년 형님과 누님들은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서 캠퍼스 올 겨를이 없다. 

"아, 그리고 연지 선배. 다시 학교 다닌데요.

"…음, 그래?"

서연지의 귀환이라니, 뭔가 꺼림찍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사귀던 여자친구인데도. 사랑이 깨지면 원래 이런건가. 그저, 서연지 세 음절의 이름에 이렇게 기분이 나빠지긴 처음이었다. 

+

"데려다줘서 땡큐."

"고마우면 한 턱 쏴야지."

"아, 진짜? 그럼 기다려봐."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뒤적거리는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유리와 수영이는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태연이한테 줘서 시시하긴 하지만, 그래도 또 줘야겠다. 나는 슬쩍 뒤로 조용히 백워킹을 하면서 주머니에서 찾은 것을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나의 선물을 보자마자, 매니저 형의 등을 두드리더니.

"오빠, 저 새끼 들이박아요."

"맞아요. 시체처리는 우리가 할게요."

나를 무지막지하게 좋아해주던 유리와 무지막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은 있어하던 수영이가 순간 2인조 범죄조직처럼 보였다. 나의 깝에 매가 약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죽음이 약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혼신의 연기 후에 혼신의 힘을 발휘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내 투아렉이 보이자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오토키를 꺼내 문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운전석에 탑승했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었다. 가을이긴 하지만, 뛰면 더웠다. 특히 죽음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었을 땐 그랬다. 밴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왜 오버액션하냐고 하겠지만, 밴이 주차장 초입까지 따라온 건 당신들은 모를거야.

"이럴 줄 알고 난 정장을 가지고 왔지. 그것도 블랙으로."

고로 난 엠블랙, 아 이게 아니지. 더워서 열어놓은 창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흰 면티와 속옷만 남겨둔 채 정장을 하나 둘 씩 입었다. 셔츠, 넥타이, 정장바지, 조끼, 마이까지 안 입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차 안에 있는 거울을 돌려 나의 시선에 맞춰둔 뒤,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왁스를 꺼내서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왁스칠도 귀찮다. 어차피 미팅을 저녁에 한다고 했으니까 그냥 검게 염색하고 커트하자."

기획사로 가려던 생각을 딴 곳으로 돌렸다. 기획사가 아닌, 기획사 앞 미용실로 가려는 생각으로 말이다. 어차피 기획사들이

강남구에 몰려있으니 머리만 바꾸고 가면 되겠지.

나의 홈 스위트 룸에서 떠나 강 건너편인 압구정동에 도착했다. 역시 홈 스위트 룸 동네와는 다른 까리한 분위기였다. 많은 미용실 중에서도 눈에 띄는 한 곳, 그 곳이 내가 가야할 곳. 

[스페셜 이벤트, 애프터스쿨과 함께 하는 고봉실헤어컷! 오늘 하루만 애프터스쿨의 손길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흠, 보나마나 애프터스쿨은 머리 감는 일일 아르바이트생이군."

차가 견인되질 않길 바라며 초조한 마음으로 길가에 주차해놓고 약 삼십 분만에 압구정동의 공기를 맡았다. 음, 약간 비싸보이는 냄새인데. 아무튼, 나는 당당한 워킹을 하며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어?"

"어?"

다만, 낯이 익은 일일 아르바이트생을 봤다는 게 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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