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5화 (30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아흔 여덟 번째 과외 - 강아지영이 괴롭혀요 7

'오늘은 지영이 빼고 우리끼리 스케줄 가니까, 오빠가 지영이랑 놀아줘. 허튼 수작 부리지마?'

나는 항의하고 싶었다. 허튼 수작을 부리는 작자는 내가 아니라 지영이라는 사실을. 하라가 부디 나를 어엿비여겨 카라 막내의 숨겨진 발칙한 매력을 하라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선 지영이 하나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카라 전체와 노는 것이 더 안전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내가 아이돌시터도 아니고, 왜 나의 스케쥴은 생각을 안 해주는거지? 방학이라고, 마냥 논다고만 생각하는 건가? 내가 얼마나 시간을 알차게 쓰는데! 밥도 먹고, 놀기도 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핫 써머~ 핫 핫 써머~ 핫 써머~ 핫 핫 너무 더워~]

분명 함순이들의 상큼발랄한 여름 노래인데, 내게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 다가오는 배경음과 흡사했다. 괜스레 어린 시절 휴게소 가기 전에 오줌 참겠다고 별 지랄을 다하다가 괄약근에 힘이 풀려 하얗게 질려버리기 전의 감정이 들어버렸다. 침을 꼴깍 삼키며 핸드폰을 유심히 살펴보며 확인했다. 

'강지영 010-XXXX-XXX'

오, 마이, 갓뜨. 아직 지영이를 혼자서 뒷담화를 해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빨리 전화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임. 머릿 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오빠, 나 허리 좀 잡아줘.'

'조까!'

는 나의 상상, 나는 지영이의 자이언트 킥의 위엄을 알기 때문에 섣불리 곡식 작물 중 하나인 조를 깔 수는 없는 법이다. 그저 지영이가 도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퀘스트였다. 

물론 힘은 월등하게 내가 셌다. 하지만 기는 지영이가 더 셌다. 고작 열 여덟살(빠른 94라서 학교에선 고3)인 주제에 수능 공부는 안 하고 나랑 놀 생각을 해? 괘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알기론 이제 D100도 안 남은 걸로 아는데, 나는 D100부터 마음 먹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능에서 뽀록이 터졌다구! EBS 연계도 되지 않았던 세대에 말이지.

[띠링, 띠링]

혼자 잡소리를 머리로 지껄이다보니, 어느새 수신자 강지영의 화면은 핸드폰에서 사라졌다. 아싸, 하는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에서 온 상큼한 서비스였다. 근데 경비실에서 무슨 용무로 날 찾은건지. 혹시,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는 날에 버린 걸 들켜버리고 만 것인가! 아..앙대,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갔다놨는데 그걸 들켜버리다니.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면서 한숨을 쉰 나는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서 내 귀에 갖다댔다.

"여보세요?"

[뭐야, 오빠 집에 있었네! 이씨, 내 전화 왜 안 받았어! 앙?!]

난 이제 작은 지영이 앞에 까마귀가 된 꼴이다. 인터폰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자 제일 먼저 느끼게 된 감정이었다. 강과 지와 영으로 가득한 지영스러운 감옥에 갇혀 강지영에 내 인격을 맡겨야 하다니, 이건 정말 슬픈 일이다. 거긴 내 생명도 감정도 따뜻함도 없고 존슨만 나뒹구는 삭막한 벌판이었으니까.

"…지영이구나."

[히힛, 응! 당연히 찌영이지~]

애교 부리지마라, 어금니 꽉 깨물게 한 다음에 어차피 빼는 게 나은 사랑니를 조사버릴테니까. 아, 갑자기 필력이 왜 이렇게 100~200을 연상케 하냐고, 그건 나도 몰라. 강지영 이야기잖아. 뭐, 그냥 넘어가자고. 뭐 좀 있다가는 진지해지겠지.

"어떻게 이런 발칙한 짓을…?"

[경비실에 전화해서 연결해달라고 했지!]

정말 대단한 여자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로 공부를 하지, 공부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사니까 이러는 건가. 슬프네. 나는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안 해줘서 부산에서 힘겹게 공부하면서 중경외시 중 하나인 중앙대로 왔는데. 

"…그, 그래?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왜 전화 안 받았어!]

동문서답을 제대로 하는 지영이였다. 내가 무슨 용무로 전화했냐고 물었지, 다시 내가 추궁받을 이유는 없는데. 통화가 전개되는 과정이 기승전병처럼 느껴져서 찝찝하긴 하지만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나는 차칸 남자니까.

"전화기가 이불 속에 있어서 못 받은 것 같은데."

[…우움…고뤠?]

재미없다. 김준현 성대모사를 참 작살나게 하는구나. 비웃음 가득한 피식, 소리를 내주고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나는 끈기가 있는 긍지의 남자니깐.

"왜 전화했는데?"

[밥 해달라고! 밥 해줘엉~ 밥 해줘어어어~ 밥 주세요오! 밥 쭈떼여~]

"…닥쳐!"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 지영이 애교가 너무 과하면 내 오장육부가 모두 찬물에 담군 존슨처럼 쪼그라드므로 지영이가 더 애교를 부리기 전에 마지못해 카라의 숙소를 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자. 어차피 이 꼴이 되는데 뭣하러 그랬는지, 참 슬퍼지는 구나. 어쩌다 아이돌 전용 식모 꼴이 되었는지. 머리를 뒤로 묶고 옷을 간단하게 걸쳐입고 숙소로 올라갔다. 나를 제외하면 금남(禁男)의 숙소가 되는 그 곳으로 내가 간다. 이야! 신난다!

[딩동~ 딩동~]

"문 열어, 강지영."

밥셔틀이 될 준비는 이미 마쳤다. 내 모습이 불투명하게 비춰지는 숙소의 문에 어린 내 실루엣이 굳은 의지의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었다. 문 안으로 바닥을 쓰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지영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보였다. 

문이 열리네요, 지영이가 보이죠. 헐?

"…왔써?"

'왔어' OR 'What's up?'이란 중의적 표현을 가진 그녀의 인사보다 더 놀란 건 그녀의 복장이였다. 나는 평범하게 나시에 반바지나 입어서 나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을 빗나갔다. 정갈한 정장은 훼이크고, 마치 막 태어난 아기를 보는 마냥 이불인지 포대기인지 모를 것을 두른 채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나에게 안부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줘야 되니까 뺀 한쪽 팔의 어깨에 끈이 안 보였다. 누드브라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영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냐, 그 모습은."

"웅? 아…또 자다가 나와서…지금은 알몸이라서어…히잇, 부끄러웡!"

지영이의 봉긋한 두 가슴으로 싸대기를 맞은 느낌이었다. 진짜로 맞았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충격적이란 것이지. 그러고보니 이불이 겨울이불이 아니라 여름이불이라 얇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막 튀어나온 것만 안 보일 뿐이지. 

"옷 입어."

"네에."

지영이는 이불로 자기 몸을 꽁꽁 싸맨 채로 자신의 방으로 러쉬했다. 밤새 땀 흘리면서 자는지 엉덩이에 이불이 착 달라붙었다. 엉덩이 골이 이불에 가려진 채 흔들거렸다. 아, 미치겠네. 마치 성고문을 간접적으로 당하는 느낌이었다. 눈물난다, 또 존슨이 협상하려고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렇게 남들에게 안 보이는 눈물을 마음 속으로 닦고 있는데, 내 엉덩이를 노린 매서운 손맛이 느껴졌다.

"…아, 뭐야!"

"힛…찰지다. 탄탄하다~"

교권이 추락할 때, 내 인권도 추락했다. 예전 같았으면 다섯 살 차이나는 오빠한테는 깍듯이 대할텐데. 나를 이렇게 만만하게 보다니. 벌써 몇 명의 노리개인지. 예전에 검사를 초빙해서 세미나를 들었을 때, 강간은 남자가 당했을 때 성립이 안 된다고 하던데. 이건 정말 성차별이다. 여성가족부에게 신고해야겠어. 

"이게 오빠한테!"

"…힛, 뭐가 어때서?"

감정이 실리지 않는 나의 터치를 약올리듯이 가뿐히 피해버리는 지영이였다. 움직이면서 흔들리는 가슴의 무브먼트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지영이의 복장의 예시로 나시와 짧은 츄리닝 반바지를 들었었는데, 진짜 그걸 입고 나왔다. 그녀의 짧은 츄리닝은 별이 박혀서 반짝반짝 보였다. 제레미 스캇이 선물해줬나. 근데, 가슴만 흔들리면 버틸만 했다. 하지만 별명인 강아지영처럼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며 움직이는 지영이를 보자니 미칠 따름이었다. 설리와 수정이에 이어…아, 그만하자. 무슨 짓이냐, 이게.

지영이는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티비를 보러 거실로 향했고, 나는 차오르는 음심을 애국가로 증발시키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건강을 생각해서 라면을 끓이려다가 말았다. 아침부터 얼굴 뜨거워지라고 떡볶이나 준비중이었다. 가래떡을 비스듬하게 썰고 고추장을 고춧고춧하면서 물에 넣었다. 

지영이의 존재 자체를 잊고 떡볶이 퀄리티는 저퀄에서 고퀄로 높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찰나에, 나의 POW집중력ER을 방해하는 인기척에 사플(사운드 플레이)를 하고 있던 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쓸데없는 짓거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쪽."

"응?"

당했다. 아니, 당황스러워하는 지영이 표정을 보니 또 그건 아닌듯 싶고.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매한가지. 지영이가 놀리기만 더럽게 많이 했지, 그녀의 새초롬한 입술의 촉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근데 입술을 너무 세게 박치기 했나보다. 내가 너무 빨리 뒤돌아서 그런지 몰라도, 당황스러운 뽀뽀 다음에 이어지는 건 입술에서 느껴지는 아린 고통이었다.

"…아오, 아파."

"읍…아퍼엉…"

그녀도 아프긴 매한가지. 서로 입술을 잡고 고통을 공유하는 꼴이 우스웠다. 하지만 우습다고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우씽, 오빠 왜 뒤돌아보는데!"

"그러니까 내가 허튼 수작 부리지 말랬잖아!"

늘 그렇듯이, 나는 지영이와 투닥투닥 싸웠다.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을 물리고 있었다. 지영이는 내가 뒤돌아본 것을 원망하고 있고, 나는 지영이가 다가와서 헛수작을 부리려는 것에 대해서 원망을 하고 있었다. 지영이는 칭얼거리며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입술을 삐죽 내미며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씨, 내 첫키스…."

지영이의 말에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가 열 여덟 소녀의 첫 입맞춤을 빼앗아버렸다니. 괜히 미안해졌다. 여태껏 나를 갖고 놀기에 남자 좀 부려먹을 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키스 자체가 처음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싶었지만, 계속해서 억울해하는 지영이를 보니 진짜인가? 라면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첫 키스가 이러다니…억울해!"

"괜찮아, 부딪힌 거니까. 키스는 아니야, 아마 그럴거야."

그래도 지영이의 억울한 눈빛은 지워지지 않았다. 첫 키스는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오빠 때문에 망했다. 라는 표정이랄까. 수년간 여자를 상대했던 감이라면 그 정도는 눈치껏 파악할 수 있었다.

"히잉, 나는 제대로 하고 싶다고오오!"

지영이는 자신의 몸을 흔들면서 앙탈을 부려댔다. 하라가 앙탈을 부렸으면 꼴린 느낌을 받지 않았을텐데, 과연 지영이는 달랐다. 여자가 앙탈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건 참 오랜만이다. 

"그럼 하던지."

"진짜?"

지영이는 반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빵긋 웃으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그녀였다. 모든 남자들을 녹일 그 미소에 나는 녹지 않았다. 왠지 딴 곳이 녹을 것 같은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지영이는 혀를 낼름거리며 입술에 침을 번지르르 바르더니 립글로즈도 안 바른 입술을 촉촉하게 만들고는 입술을 내밀고 눈을 감았다.

"…뭐하냐?"

"하라며?"

"…나 말고 네가 좋아하는 얘."

"나 오빠 좋은데?…그러니까 키스, 뽀뽀 쪽! 빨리 해줘."

지영이는 나를 안을 준비라도 되었다는 듯이 양 팔을 벌린 채 내 입술을 환대할 준비를 마쳤다. 여태껏 지영이가 했던 행동을 봐서 이것도 나를 놀려먹는 수작이라고 생각한 나는 지영이의 수작에 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진지가 가득한 표정으로 지영이에게 말했다.

"…장난치지마라?"

"…칫."

나의 진지한 표정에 지영이는 앙큼한 표정이 싹 굳더니 소파로 갔다. 장난으로 삐진 줄 알았더니, 진짜로 토라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알 바인가. 근데 지영이가 토라진 것보다 더 두려운건,

'시발, 진짜로 키스 할 뻔 했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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