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1화 (302/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아흔 네 번째 과외 - Mr. Taeny 完

매니저 형의 정보에 따르면 미개통도로의 길이가 약 3Km 정도 된다고 했다. 도로의 너비도 좁은 것이 아니라, 무려 6차선 도로라고 하니 유턴을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미개통도로니까 역주행해도 사고날 염려는 없고 말이다. 용기를 내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서서히 움직이던 밴의 타이어에 가속이 붙었다. 규칙적인 거리를 두고 세워진 가로등도 점점 빨리 지나갔다. 태연이는 앞 대신 옆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꼭, 가족여행 나왔을 때 신나하는 첫째 딸의 모습 같았다.

"기분이 왜 이렇게 신나지? 맨날 타던 밴인데."

"맨날 오토바이 운전하다가 이런 차 운전하니까 신기하긴 하다."

"아, 기분이 신나는 이유를 알아냈다."

"뭔데?"

태연이는 미소를 지었다. 내 주관에는 태연이가 웃으며 기분 좋은 말을 할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태연이는 자기가 웃을 때, 어느 모습보다 가장 사랑스러운지 알까. 태연이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창문을 열었다. 밴이 가르는 공기의 장막이 바람으로 변해 태연의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어댔다. 태연이는 방실방실 웃음을 지었다.

"니가 있어서?"

"…뭐? 오그라든다."

때마침 미개통도로의 끄트머리까지 다가간터라 핸들을 돌려서 유턴을 시도했다. 역시 비싼만큼 값을 하는 차라서 그런지 타이어가 돌아가는 느낌이 제법 부드러웠다. 급하게 유턴을 시도한 것도 아닌데, 태연이가 운전석 쪽으로 힘없이 기울어졌다. 의도한 티가 너무 났다. 내가 피식, 웃어버리자 태연이는 뻘줌한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제 자리로 돌아왔다. 

"치, 안 받아주긴."

"운전연습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그거까지 신경 쓰다간 정신도 못 차리고 고속도로 진입하겠다."

승용차 이상의 크기의 차를 운전하는데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선무당이 사람 해친다고, 오토바이와는 다른 운전의 재미에 불이 붙어 차의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대개 한 바퀴를 도는데 3~4분 정도 걸렸는데,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기록되는 랩타임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2분 선에서 난달까.

긴장감이 사라진 채 부드럽게 유턴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잘 먹혔다. 

"…쿠우울…아악!"

유턴은 부드럽게 했으나, 조는 자세가 어정쩡했던 미영이가 미영이 머리로 옆창문 부수기를 시도하다가 보기좋게 실패했다. 부딪힌 부위를 감싸쥔 채로 아파하는 미영이를 차 안에 있는 거울로 보니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 충격으로 미영이는 잠에서 깼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뜨며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자랑했다. 그리고 창문을 쳐다보았다. 조수석도 쳐다보았다.

"때때! 거기 내 자린데 왜 니가!"

"무슨 네 자리? 원래 내 자리, 미영이 너는 그 자리."

"…히잉, 어서 비켜어어어어어어!"

태연이는 메롱이다, 하면서 미영이에게 혀를 내밀었다. 미영이는 울먹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태연의 티파니 괴롭히기인가. 저런 표정을 지으면 괴롭힐 맛도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미개통도로에서 벗어나버렸다.

"…어."

"…왜?…어."

"자리 비켜!…어?"

POW도로진입ER. 매니저 형은 자고 있는데, 우리가 도로진입한 것을 꿈도 꾸지 못했겠지. 나도 꿈도 안 꿨는데, 왜 진입한거지. 자리다툼이 치열한 태연이와 미영이도 예상을 벗어난 새로운 모험의 시작에 잠깐 벙쪄있었다. 나는 면허도 없는 무면허운전자, 미개통도로에서 조용하게 운전하려고 했는데 우린 왜 이 곳을 벗어났을까. 미영이와 태연이의 싸움을 구경하느라 한 눈이 팔려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도로로 다시 돌아오기 힘들텐데."

"…그러게."

"저 표지판 보니까, 이 길로 가면 강원도로 쭉 가겠다! 가다가 만남의 광장 들릴래애?"

나 대신 태연이가 미영이를 째려보았다. 태연이의 패시브 스킬에 미영이는 움츠러들었다! 미영이는 자신감이 감소했다! 아, 이게 아닌데. 설마, 했는데 감히 방향을 틀 용기가 나지 않았다. 태연이도 이젠 포기했다. 그렇게 네비게이션은 말했다.

[어서오세요, 양평군입니다.]

그렇다. 하남시까진 차가 너무 많아서 돌릴 용기를 못냈다. 양평군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차의 수가 줄어들어서 차를 돌릴 수가 있었다. 근데, 무면허인주제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기름도 오링나기 직전이었다. 

"…주유소부터 가야겠다. 니네들 일단 선글라스 끼고 있어. 들키면 큰 일 나."

양평군 내에 있는 주유소로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태연이와 미영이는 황급하게 가방 안에 있는 선글라스를 끼고 반대편 창문을 쳐다보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선글라스를 꼈다. 미영이가 선물해준 그 썬구리, 미영이는 그 와중에도,

"내 썬구리다!"

라고 말하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뿌듯하긴 했지만 일단 별 세 개의 난이도인 주유소를 통과해야했다. 오, 신이시여 이럴수가. 어찌하여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이 전부다 고등학생이란 말입니까. 나이 드신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이미 저들이 밴의 위엄에 동요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 녀석들이 뒷주머니에 꺼내는 저것은 담배가 아닌 스마트폰 아닌가요. 오, S2네요. 800만 화소의 위엄을 자랑하는 S2! 이야, 신난다!

"혹시 연예인 타고 있어요?"

"타고 있어도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5만원 어치만 넣어주세ㅇ…"

"어, 소녀시대 태연이다!"

운 to the 지. 태연이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려서 방긋 웃었다. 그나마 미영이가 들키지 않았다. 미영이만 안 들키면 괜찮은데.

"티파니 아니에요?"

"…어…음…"

"싸인 해주시면 안 돼요?"

"…히힛, 들켜버렸네. 종이 주세요. 나가서 싸인 해드릴게요."

하는 수 없이 밴의 문을 여는 버튼을 눌렀다. 미영이가 있는 쪽에서 문이 스르륵 열렸다. 미영이가 나타나자마자 고등학생 알바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이어리나 종이들을 가져왔다. 물론 사진은 이미 찍히고 있었다. 미영이 주위를 고등학생들이 둘러쌌다. 미영이는 싸인하느라 힘겨워 하고 있었다.

"태연아, 너도 나가야겠다."

"…칫, 귀찮은데. 넌 안 나가? 혹시 모르잖아, 저 고등학생 애들이 무슨 짓을 할지."

"하긴 그렇네, 같이 나가자."

태연과 함께 나가자 태연을 향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미니 팬싸인회도 아니고 미영이에게 싸인을 받자마자 태연에게 이동하는 고등학생들이었다. 

"언니, 사진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사진은 안 돼."

마음 약한 미영이를 공략하는 잔망스러운 여고딩을 겨우 막았다. '…왜, 찍어주면 안 돼?' 라는 표정의 미영이었지만 사진까지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공식적인 석상에서 본 것도 아니고, 그리고 쟤네들이 막 사진 퍼뜨리면 그때부터 의심받는 것이니까.

"근데, 5만원 어치 넣어달라고 했는데 안 넣어줘?"

"아, 맞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싸인 할 만큼 했으니까, 태연이하고 티파니는 다시 밴 안으로 들어가."

조금 명령하듯 말하긴 했지만, 매니저처럼 보이려면 어쩔 수 없는 연기였다. 태연이와 미영이도 센스있게 다시 밴 안으로 들어갔다. 고등학생들이 아쉬워하긴 했지만 싸인 받을 건 다 받은 그들이었다. 그래서 그 고등학생들의 표정은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5만원 어치의 기름 공급도 끝난 듯 싶고, 이제 계산하는 일만 남았다.

"5만원이지?"

"3만원만 주세요. 2만원은 싸인해주신 보답으로 저희 여섯 명이서 5000원씩 보탤게요."

"에이, 싸인은 싸인이고 5만원 받고, 6만원 더 줄테니까 니네들 용돈해라."

"어, 안 이러셔도…"

"야, 이럴 때 받는거야, 감사합니다!"

그래도 개념은 가득 찬 고등학생을 만나서 뿌듯했다. 고등학생 때 놀았어도 저렇게 성실하게 놀면 참 괜찮을텐데. 요즘 노는 애들은 급우를 왕따 시키는 건 기본이라서 씁쓸했다. 나이도 어린 것이, 아무리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만 이건 도를 넘어선 것을 아닌가 싶다. 뭔 개소리 하는 건지, 것보다 갑자기 6만원 더 보탠 게 후회스러웠다.

"아, 가뜩이나 돈 없는데 왜 줬지…"

"…으이구, 바보."

"민시가, 때때…나 배고파."

미영이는 배를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완전 징징대는 게 타고났네, 타고났어. 태연이와 나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려다가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 미영이의 앙탈에 한숨을 쉬며 태연이와 함께 양평군을 돌아다니며 식당을 찾았다. 어차피 평일의 낮이고 거의 시골에 가까운 곳이라서 인적은 뜸하겠지만 말이다.

[화우유수]

짱깨집 하나 발견, 나는 저쪽을 가리켰으나 태연과 미영이는 고개를 강하게 도리질했다. 그래, 딴 데 가자. 라며 나는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했다. 근데, 운전하다보니 점점 운전이 쉬어졌다. 역시 난 운전에 능력 있나봐.

[제비바람]

한식집 하나 발견, 나는 이쪽을 가리키자 태연과 미영이는 웃는 표정이었다. 아, 인테리어 보소 딱 봐도 한우 A등급 같은 것을 팔아서 비싸보였다. 태연과 미영이의 노림수가 나의 지갑에 크리티컬을 입혔다. 아, 신난다! 그리고 태연이와 미영이는 은근히 젠장녀다!

태연이와 미영이는 한식집 안으로 들어가서 정식코스 A를 시켰다. 눈물이 나왔다. 다행히 3인 기준이란다. 여러가지 반찬들이 나오고 국이 나오고 탕이 나오고 고기가 나오고, 그것들이 아깝다고 생각한 나는 태연이와 미영이가 남긴 것들도 모조리 쓸어먹었다. 

"…으이구, 돼지."

김태연한테 이런 소리를 듣다니,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정식코스 시키면서 왜 이렇게 많이 남기는건데. 이럴 거면 정식 코스 왜 시켰니. 이 망할 것두라…흑흑. 여차저차해서 정식코스를 모조리 쓸어먹고 배를 채웠다. 그리고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가는 데 왤케 운전하기가 힘든지. 

"아, 바로 운전 못 하겠다. 배 터지겠네."

"…바보같이 먹어대니까 그렇지…이 볼록한 배 좀 봐."

"약국 갔다와야겠네. 때때야, 약국 갔다오자."

"…하아, 그러자."

그래도 나를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약국을 향해 걸어가는 아담한 자태의 두 소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소화가 안 되서 미치겠다. 이러다가 체하는 거 아닌가. 

+

"…걱정했잖아, 이 녀석아! 사고라도 나면 어쩔 뻔 했어. 태연이하고 파니도 그렇지만, 너도 큰일 나면 우리도 곤란해."

"…죄송합니다."

밤이 되서야 겨우 서울에 올 수 있었다. 태연과 미영이를 대신해 내가 혼났다. 결정적인 원인은 운전을 한 나에 있으니까 말이다. 태연과 미영이는 본의 아니게 양평을 갔다와서 피곤한지 조수석이 아닌 원래 앉던 자리에서 사이좋게 서로에게 기대며 잠을 자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운전학원에 다시 갔다. 당연히 학원 내에서 실시되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다. 약간은 긴장한 모습으로 시험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감독관도 조수석에 탔다. 저번 필기시험 봤을 때, 그 쭉빵녀이긴 했지만 신경 조차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고자란 것은 아니었다.

양평까지의 운전 경험이 제대로 먹혀든 것일까, 주차까지 합해서 도합 100점으로 만점을 받고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한 도로주행은 그야말로 껌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려서 양평까지 갔는데 뭐가 그리 어려울까. 이것도 깎인 점수 없이 만점으로 통과했다. 알고보니, 내 필기 시험 점수도 100점이란다. 모두 만점으로 통과하다니, 이것도 능력일까. 

"여기 면허증이에요."

"…핫, 감사합니다."

최근에 찍은 내 증명사진이 있는 블링블링한 운전면허증, 바로 지갑에 넣어서 보관했다. 주민등록증과 방송국출입증과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 MR. TAENY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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