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0화 (301/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아흔 세 번째 과외 - Mr. Taeny 9

제1시험장에 들어갔다. 수험번호가 0001이니 제1시험장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 태연과 미영이는 이러다 셀프카메라 페이크도 들키겠다고 진짜 셀프카메라 찍으러 카페로 가있을테니 거기로 오라고 말하고 훽하니 사라졌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험지 대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장면은 볼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 했었는데.

앞문이 열리는 소리를 제일 크게 들을 수 있는 곳에 앉아서 나 역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다. 하지만 남은 배터리 용량이 똥이라는게 문제였다. 진작에 충전하고 올 걸, 이라고 생각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앙대!'

아름다운 별들의 움직임과 별들을 묻어버리는 3D 글자의 위엄에 나의 핸드폰님은 배터리 충전을 다시 할 때까지 깊은 수면의 시간에 들었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난 아이패드를 가지고 왔다. 그것도 천 원짜리 아이패ㄷ…가 아니라, 규리누나가 사준 아이패드2'

를 안 가져왔다. 시발. 분명히 챙긴 줄 알았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져온 건 아이패드가 아니라 아이패드를 감쌌던 케이스였다. 제기랄. 칠판에 써져있는 남은 시간은 약 30분 가량, 젠장. 어떻게 버티라고. 어떻게 버티긴, 잠을 자면 된다. 간단했다. 등을 앞으로 굽힌 뒤 팔로 내 얼굴을 감쌌다. 

허리가 아파서 바로 일어났다.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러다 너무 쉬운 필기시험마저 탈락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 내 가방이 디지털 범벅이긴 하지만 아날로그 티나는 책 한 권쯤은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아싸, 책의 느낌이 손에 잡혔다.

꺼내보았다. 책이 아니라 종이 앨범이었다. 요즘 소녀시대가 자주 내는 그런 종이 앨범. 젠장. 훗 앨범이잖아. 내가 이걸 왜 여기다 두고 왔지. 하는 수 없이 할 것도 없으니 훗 앨범사진이나 뒤적거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소녀시대 애들은 컨셉소화력이 왤케 돋는지. 나중에 통아저씨 컨셉도 시켜봐야겠다. 

"모두 휴대하고 계시는 전자기기 꺼주세요.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퇴실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때였다. 앞문의 미닫이 문이 옆으로 밀리면서 젊고 몸매가 죽이는 여감독이 나타났다. 하지만 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 일반인 여자가 아니더라도 내 주위엔 그런 여자애들이 널렸으니까. 나름대로 현대식 의자왕의 자신감이랄까. 낄낄. 

다행히도 칠판에 써져있는 잘못된 시간은 불명의 응시자의 심심한 장난이었다. 고작 한 장짜리 시험지였다. 나는 내 시험지만 제외하고 나머지 시험지를 뒤로 돌렸다. 뒤에는 나이가 든 아저씨였다. 보나마나, 운전면허 처음으로 따는 게 아니라 면허취소에 걸려서 다시 보는 거겠지. 중앙대의 자부심으로 수석으로 통과해주겠어.

1. 다음 중 교통법규를 지킨 사람은?

ㄱ. 상구는 빨간 불이지만 새벽에 차가 없어서 무단횡단을 했다.

ㄴ. 진호는 요구르트 두 줄을 먹고 취한 채 반대쪽 차선으로 역주행했다.

ㄷ. 해원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처럼 차를 360도로 스핀을 돌리면서 운전한다.

ㄹ. 준부는 초록불이 되자 여순경에게 윙크를 날리며 정해진 길을 주행했다.

쉬운 문제였다. 누가 봐도 답은 'ㄹ' 이었다. 이건 틀리면 언어 해석 능력에 장애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ㄹ을 체크하고 나서 나는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2. 다음 중 교통법 내에서 차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 것은?

ㄱ. 8톤 트럭

ㄴ. 16톤 트럭

ㄷ. 32톤 트럭

ㄹ. 플랑크톤 트림

출제자가 무슨 약을 빨았길래, 이런 저질 난이도의 문제를 내는 건지. 이건 대놓고 맞추라고 낸 문제가 아닌가. 아, 백점이 만점인데 그 점수를 받을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틀린 사람이 있을까, 하면서 차근차근 나머지 문제들도 풀었다.

나머지 문제들도 만만치 않게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의외로 헷갈리는 문제도 더러있었다. 그랬다, 1~2번 문제는 모의고사 수리 1~4번 문제랑 비슷했다. '맞추라고 낸 문제, 틀리면 너 뇌병신'이란 생각이 들게하는 문제들이었다. 그 뒤로는 약간의 응용력과 추리력이 필요한 문제가 더러 있었다. 아, 수학여행 문제 퀄리티가 계속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기출문제를 안 봤지만 나름대로 풀만했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평이한 문제들로 구성된 첫 필기시험이 끝났다. 예상은 당연히 합격이었다. 신나는 마음으로 실기인 주행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태니님들의 카톡이 핸드폰을 켜기가 무섭게 쏟아졌다.

[탱-시험 잘 봤어?]

[묭-시험 끝났어?]

[탱-언능와 ㅠㅠ 파니랑 둘이서 심심행]

[묭-빨리 와 ㅠㅅㅠ 자기야]

[탱-아ㅡㅡ 왤케 안 끝나 -_-+]

[묭-ㅠㅠㅠㅠ]

답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운전학원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니까. 카톡에서 자기 메세지에 1이 사라지자, 핸드폰이 다시 켜졌다는 것을 안 무서운 태니는 자신의 사진들을 내 핸드폰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탱-사진]

[묭-사진]

[탱-사진]

[묭-사진]

[탱-닥저 >ㅅ<♥]

[묭-셀카 어때? 귀욥지 히히]

쇼를 하세요, 라고 치고 싶지만 곧 카페 앞이라 후탈이 두려워 이것 또한 답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포플러 묘목이 단색의 화분에 소박하게 심어져 있는 작은 카페의 테라스 유리 안쪽으로 초코송이 머리의 태연과 치렁치렁한 흑발머리를 묶은 채로 아이스티를 마시는 미영이가 보였다. 둘이서 잘만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 무슨 독촉인지. 심드렁하게 문을 열자, 문에 달린 조그만 종이 은은하게 울리면서 직원과 태니의 시선을 끌었다.

"어서오세요."

청아한 목소리였다.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릴 수가. 그것도 잠시, 선구리를 낀 두 처자가 나를 보면서 희희낙낙 해맑게 웃어댔다. 태연이와 미영이였다. 가끔 보면 스물 세 살이 맞는지 의심도 갈 정도로 너무 어려보이는 두 여자였다.

"왜 이렇게 메세지를 폭풍으로 날리세요."

"그냥, 할 거 없잖아."

태연이의 대답은 미스터 심플했다. 태연이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할 말이 급격하게 없어졌다. 

"나도 마실 거나 시켜야겠다."

"시킬 필요 없어, 시켜써."

미영이의 말에 무슨 도그사운드인가 했다. 내가 앉을 자리 위 테이블에 아이스티가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아하, 메뉴 선택의 자유도 없이 그냥 먹으라는 거구나. 까라면 까야지. 흡입력을 이용해 시원한 아이스티를 식도로 넘겼다. 파도가 해변가에 재빨리 닿는 기분과 비슷했다. 미영이와 태연이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서 셀프카메라를 찍어대는 줄 알았더니 두 소녀의 가녀린 손목이 아래로 기울어지면서 아이스티를 마시는 나를 찍었다. 

"필기는 당연히 합격했겠지?"

"당연하지."

"우와…필기를? 난 두 번이나 봤는데 다 떨어져서 포기했는데엥…"

미영이가 안쓰러워졌다. 그런 눈 감고도 푸는 시험을 두 번이나 낙방하다가 포기하다니.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서 드러나는 한계였나보다. 태연이와 나는 어쩌다보니 미영이 때문에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근데 너네들은 스케쥴 없냐? 볼 때마다 니네들이야."

"왜? 싫어?"

"싫어? 민시가?"

순간 얼어붙었다. 비쥬얼부터가 돋는 두 소녀가 선구리를 벗으면서 고개를 나에게 가까이 내밀면서 싫냐고 물어보는데, 싫을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냥 하는 소리지요, 하하. 그래도 고개를 확 들이민게 부담스러워서 나도 살짝 뒤로 빠졌지만 의자의 등받이에 보기좋게 걸리고 말았다.

"히히, 민식이 반응은 언제봐도 재밌어. 그리고 요즘은 컴백 앞두고 쉬는 주간이라서 우리 말고도 다른 애들도 쉬어. 시카는 오늘도 아는 언니 만나러 갔고, 나머지는 숙소에서 링가링가거리면서 놀고 있고, 우리 둘은 이렇게 너랑 놀러 왔잖아?"

"때때, 말 잘 한다!"

태연이의 청산유수같은 말이 칭찬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미영이는 눈웃음을 방긋 지으면서 태연이를 옹호하고 있었다. 참 조흔 팀플레이야, 이러니까 소녀시대가 단합력이 최고라고 추앙받지. 난 개인 플레이가 우월하지만. 

"어쨌든 필기 합격한 것 같으니까, 우리가 실기 준비하는 거 도와줄게."

"…어떻게? 내 차는 아직 면허 없어서 못 끌고 다닐텐데."

"핏, 우릴 뭘로 보고 다 방법이 있어."

그 말과 함께 태연과 미영이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영이는 일어나면서 내 손목을 잡아 강제로 일으켰다. 덕분에 덩달아 일어나서 미영이에게 힘없이 끌려가는 중이었다. 카페에 나오니, 어느새 소녀시대의 밴이 길가에 정차해있었다. 어, 아까 왔을 땐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나타난거야.

"…뭐야!"

"신기하지? 카페 뒤에 숨겨놨었어."

"히힛."

태연과 미영이는 둘이 먼저 타지 않고 나를 밴 안으로 밀어버렸다. 한 명만 민다면 버티기로 장난 좀 칠 수 있는데, 둘이 힘을 합치면 LTE 터지는 속도로 나는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밴 안에 갇히게 되었다. 밴을 탄지 어언 5년 째이신 두 소녀는 금세 내 뒤를 따라와서 내 양팔을 봉쇄하기 일쑤였다. 봉쇄보다 좋은 표현이 있다면 팔을 베개 삼아서 기대는 거랄까. 밖을 보아하니, 매니저형이 휴일에 나와서 담배나 뻑뻑 피우고 있었다. 저 형도 참 고생 많이 해.

"야, 넌 오늘 주행연습을 왜 한다고 해서…나 오늘 휴일인데 나왔잖아, 임마."

"…아, 형. 저 그 생각은 안 했는데요…주행연습 플랜은 보니까 얘네 두 명이서 저지른건데요. 저도 피해자에요."

"뭐? 태연, 파니. 민식이 때문이라며."

"…히힛."

태연이만 겸연쩍어 하고 있었다. 미영이가 대답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 팔을 베개삼아 이미 드림월드에 입장했다. 생각해보니, 요즘 나도 잠을 덜 자서 피곤한데, 자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못했다. 잠을 자려고 하면, 전혀 졸리지 않은 태연이가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내가 어제 미영이랑…"

"미개통된 도로 다 왔다. 내려. 그리고 난 저기서 쉬고 있을 테니까, 제발 밴은 기스 내지마…"

매니저형은 처음엔 덤덤한 표정을 짓다가, 밴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간절히 바란다는 표정으로 동정을 호소했다. 아마도 밴에 기스같은 흠이 생기면 변상을 대개 매니저형이 해야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로 회사 소유의 차를 굴리는 날이었으니까. 매니저형은 그렇게 말하고 쉼터로 걸어갔다. 매니저 형이 가고 도로 위에 덩그러니 남은 사람들은 미영이와 나와 태연이었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도로라서 그런지, 차가 수도 없이 지나간 개통로와는 달리 시원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아서랄까, 차가 북적일 때 나오는 열기도 덜한 것 같았다. 주행연습하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나는 밴의 일반 좌석에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 도로 주행 출발!"

"…쿨쿨."

미영이는 자고 있고, 그 틈을 노려 태연이가 밴의 조수석을 쉽게 차지했다. 수많은 자가용과 밴을 탄 기억으로 일단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걸 수 있는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았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안전벨트를 메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엑셀레이터를 천천히 밟았다. 차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무지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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