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8화 (299/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아흔 한 번째 과외 - MR. TAENY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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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왕을 노땅으로 만드는데 참 여러가지 것들을 빼앗겨버렸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설명을 딱히 하지 않아도 다들 무엇인지 눈치를 챌테니. 어찌됬든 태티서가 잠든 소녀시대 숙소는 바누아투의 허허벌판 화산대지를 연상시키는 듯이 무척이나 조용했다. 마치, 내가 디아블로3를 다운 받으면서 조용히 다운바가 채워지는 것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아무도 배웅 안 해주네…나쁜 년들…"

나는 서현이의 방에 가서 편히 다리를 벌린 채로 자고 있는 그녀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집에 가려고 현관으로 걸어가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는지 너님들은 모르겠지. 생각만 해도 그저 눈물과 그 물이 나왔다. 서현이 방, 비 내리는 골목길, 샤워부스. 상상만 해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었다. 악몽에서만 나오지 않길 간절히 빌 뿐. 

야외주차장에다 주차를 해놓은 내 혼다 오토바이를 생각하며 어차피 다시 들어갈 일이 오늘은 없는 숙소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오늘 라디오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오토바이가 주차된 곳을 향해 걷고 있던 그 순간 저기 멀리서 익숙한 비쥬얼의 자가용이 내 오토바이 옆 자리에 주차했다. 어디서 봤더라, 하는 순간 운전자와 같이 동석한 여자까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어? 오빠!"

빵긋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그녀는 윤아였다. 왜 이렇게, 윤아를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한 1년만에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제로는 별로 오래 되지도 않았지만. 윤아는 날 발견하자마자 이쪽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그런지 속도가 빨랐다. 금방이라도 날 안을 기세였다.

"윤아?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우연이 요 앞에서 수연언니 만나서 같이 타고 오는 길이야."

수연이? 그러고보니, 그 하얀 차는 수연이 차였다는 것을 잊을 뻔 했다. 윤아의 뒤로 검은 머리의 인형같은 그녀가 구두소리를 또각또각내며 걸어왔다. 손에는 무엇이 담겨있는지 모를 검은 봉지를 든 채로 말이다. 수연이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선글라스를 벗으며 환하게 웃었다. 요즘에 미영이한테 눈웃음을 배웠는지 이쁘게 눈웃음을 짓는 수연이였다. 

"어, 민식아! 근데 어디 가?"

"맞아, 어디 가?"

주객이 전도가 된 느낌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라고 묻는게 아니라, 어디를 가냐고 묻는다니. 누가 들으면 내가 소녀시대 숙소에서 갇혀서 생활하는 사람인줄 알겠다. 그래도, 지네들 볼 일 다 보고 관심도 안 주는 태티서보단 이렇게 잠깐 봤는데도 관심을 주는 윤시가 몇 곱절은 더 나았다. 

"…여긴 무슨 일이야? 라고 묻는게 정상 아니야?"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그냥 트집 하나 정도 잡아보았다. 윤시가 대답하는 스타일도 특이했기에, 이런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지도 궁금해졌다. 윤아나 수연이나 거의 동시에 내게 말했다.

"아닝데에!"

"맞아, 아닌데!"

윤아가 먼저 애교를 가미해서 말하니, 수연이가 뒤따라서 윤아의 말투를 따라했다. 이럴때 보면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잘 구별이 안 갔다. 윤아가 89라고 해도 어울리고(물론 90은 당연히 어울린다), 시카가 90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달까. 윤아와 수연이는 장난스럽게 말하고선 배시시 웃었다. 두 여자에게 동시에 귀여움을 느낀건 이번이 오랜만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삘이 안 좋지?

"오빠, 집에 들어가자!"

"누구 집? 니네 집?!"

"엉, 당빠, 우리 숙소지. 빨리 고고씽!"

윤아의 파워에 하마터면 그대로 끌려갈 뻔 했다. 나는 윤아한테 왜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매너상 들어주기로 하고, 윤아의 손길을 뿌리쳤다. 윤아는 얼굴에 '헐'을 담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래애…우리가 술 사왔어, 술!"

"맞아! 들어가서 술 마시자!"

술? 들어가서 술을 마셔야한다면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술 때문에 그 꼴을 당했는데, 또 같은 꼴이 되긴 싫었다. 내 오토바이까지 앞으로 20m. 그녀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앞만 보고 달리면 안전하게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 거리였다. 침을 목 뒤로 넘기며 긴장을 느꼈다. 윤아가 다시 팔짱을 끼려고 하고, 수연이가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어깨를 움켜쥐려 할 때가 도망을 칠 수 있는 황금의 타이밍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오빠, 어디 가!"

"윤아야, 수연아, 미안! 나, 오늘 라디오 녹화방송이라서, 지금 빨리 가야되거든? 술은 나중에 마시자!"

"…칫."

윤아가 토라진 소리를 냈다. 다행이었다. 나는 또 소주병을 내 대갈통으로 던져서 적중시키는 줄 알았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에 난 안도를 하며 오토바이의 안장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수연이하고 윤아에게 라디오에 대해 거짓말을 친게 미안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피하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었다. 

앞거울을 통해 보이는 윤아와 수연이의 몸뚱아리는 오토바이가 앞으로 달릴 수록 점점 짧아진 채로 점이 되어갔다. 

나는 위기를 넘기고나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이 보통 사륜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난 한강다리 위를 오토바이로 건너면서 옆 차와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했다. 

"더워죽겠는데…바람도 열풍이네…어휴…"

이런 것을 도시 열섬화 현상이라고 했었다. 도심이 부도심이나 도시 외곽보다 기온이 더 높은 현상 말이다. 도시 열섬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가 녹지면적이 좁고, 아스팔트의 면적이 넓으며 자동차의 통행량이 혼잡해짐에 따라 생기는 많은 공해오염이 도시 열섬화 현상에 한 몫을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한강의 다리를 건너 강북의 집들은 다닥다닥 고층아파트가 잔뜩 붙어있어서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강남도 뭐 강북이랑 별 다를 바가 없지만. 

분명히 오토바이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데도, 몸은 덥다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그에 따른 행동으로 옮기는 게 마음에 안들었다. 시원한 바람이긴 했지만, 딱히 시원한 바람도 아니었다. 분명히 아까 비도 내렸는데 왤케 날씨가 엿같을까. 지구가 망하려는 조짐을 벌써부터 보이는건가.

땀을 한 바가지 정도 흘렸을까, 싶을 정도로 면티는 무척이나 축축했다. 솔직히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그거 할 때보다도 더 흘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른 면허를 따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빵빵 틀어넣고 운전을 하든가, 말든가 해야지. 이제는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 겨울이면 손이 추워 죽지, 여름이면 몸이 더워 쪄죽지. 

"설마, 집에 또 누구 있진 않겠지."

오늘만큼은 편히 쉬고 싶으니까 제발 내 예측대로는 안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겪을 시련 충분히 겪었으니까, 제발 아무 시련이 없도록. 다행히 신도 내 불쌍한 처지를 알았는지 집안에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오늘은 누구와도 연락두절이다. 어차피 핸드폰만 알람 설정 해놓으면 라디오는 갈 수 있었으니까. 근데, 무언가를 두고 온 것 같은 이 찝찝합은 뭐지. 

에라이, 모르겠다. 뭘 두고 왔든 그냥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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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왔어!"

"…어, 언니? 숙소 왜 이렇게 조용해?"

수연과 윤아가 조용한 숙소를 향해 인사를 날렸지만, 숙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저 무생물의 존재였기에 수연과 윤아의 발랄한 인사를 간단하게 씹어먹을 수 밖에 없었다. 윤아는 수연이가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어느샌가부터 자신이 든채로 신발을 벗고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뭐, 없으면 우리 둘이서 마시면 되지. 윤아야, 안주 꺼내."

"오케이."

윤아는 수연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이었다. 민식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귓등으로 야무지게 쳐내서 그의 좌절을 유도하는데 일가견이 있으면서 말이다. 윤아가 냉장고에서 꺼낸 건 오이장아찌와 오이튀김이었다. 

"…꺄아아아악!"

"오늘은 이거 먹자!"

윤아는 재밌다는듯 수연이의 오이를 향한 몸부림을 보고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수연은 저거 치워, 저거 치워라, 뒤지기 싫으면 앙?,야! 좀 치워, 제발 치워줘…흑흑…등등 다양한 감정변화를 짤막한 순간에 보여줬다. 윤아는 수연의 오이를 향한 원맨쇼 개그에 흡족해하면서 오이반찬을 다시 냉장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남긴 여분의 족발을 꺼내려고 했다.

"어? 족발이?"

"…끄응…오이 시러…응?"

수연은 아직도 오이공포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안색이 안 좋아보였다. 윤아는 오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안색이 안 좋아져버렸다. 분명히 이런 때에 먹으려고 남겨둔 족발을 보란듯이 접시만 남기고 깔끔하게 범행을 저지른 범인을 생각하면서 속에서 울분을 맛있게 끓였다.

"…내 족발!!"

윤아는 <너는 내 운명>, <9회말 2아웃>, <신데렐라 걸>등 여러 유수 드라마에서 연기한 것보다 더 애절한 톤으로 자신이 남긴 족발의 행방을 향해 부르짖었다. 그렇다고 돌아오는 족발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윤아는 분명히 소녀시대 여덟 돼지 중에서 한 돼지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저질렀다고 믿었다. 자신을 제외하고 말이다.

"…으으, 뭔데 계속 족발 찾아, 윤아야."

"태연언니!! 언니가 내 족발 먹었죠!!"

윤아는 분노게이지를 양껏 상승시키며 아무 죄 없는 꼬꼬마리다 태연에게 달려가, 안 그래도 키 작은 태연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태연은 윤아의 돌진에 식겁했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에 태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넘겼다.

'족발은 무슨 족빠는 소리하고 있네.'

라고 태연이 생각한 건 딱히 아니었다. 어쨌든, 태연은 이렇게 생각했다. 윤아는 너무 많은 걸 모르고 있다고, 태연의 기억에는 분명 윤아가 족발을 어느 정도 먹고 난뒤, 그 다음 날 거하게 술에 취하고 나서 나머지 족발까지 다 섭취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태연언니."

"어? 서현이, 일어났네. 왜?"

이번에는 차분한 어조의 '언니' 소리에 태연이는 그 주인공이 누군지 대충 짐작을 하고 바로 그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서현이었다. 서현이는 두꺼운 책 따위를 손에 쥐고 있었다. 저게, 뭐지? 

"언니 책이에요?"

"아니, 내 책 아닌데. 이거 누구 책이였더라…"

어, 음. 운전면허필기기출문제집이라, 오늘도 봤던 책인 것 같았는데. 누구의 문제집이었더라, 라며 겉으로 생각하는 척을 했다. 뭐, 언젠간 생각나겠지 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오빠 책 같은데…근데 윤아언니는 왜 저러고 있어요?"

"몰라, 지가 족발 쳐먹은 건 생각도 안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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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가 끝나고 난 뒤, 난 깨달았다. 소녀시대 숙소에 무언가 두고 왔다는 그 찝찝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다이어리를 꺼내고 일정을 확인했다. 6월 X일 라디오 방송, 6월 Y일 라디오 방송, 6월 Z일 라디오 방송, 그리고 전에 운전면허 필기 시험. 아, 내가 문제집을 두고와 버렸구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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