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여든 일곱 번째 과외 - Mr. Taeny 3
"…서현이는?"
"…마주스 만들다말고 배 아파서 화장실 들어갔어."
나는 성기에서 턱끝까지 차오르는 뜨거운 것을 억눌렀다. 여긴 단둘이 있는 공간도 아니었다. 나와 뜨겁게 몸을 휘저은 여자가 무려 세 명씩이나 있는 곳이었다. 미영이는 더 진전을 나가지 못한 게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미영이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너저리하게 기분 나쁜 어색한 기류가 그녀와 나 사이를 농간하듯 지나갔다. 불현듯 방금까지만 해도 열심히 보고 있었던 필기시험 교재의 표지가 허공에서 희미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지독하게 괴상스러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서현이의 등장이 필요했다.
"으아…시원하다!"
"…칫. 서현이 나왔네."
"…잉? 오빠, 무슨 일 있었어요?"
서현이는 기분이 상쾌하다는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말도 안되는 정체불명의 위기상황에서 나타난 그녀는 태초의 어둠에서 피어난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첫인상은 그야말로 순진무구했던 작은 미영이가 아주 꽃되는 모습으로 날 유혹하려고 했다. 이런 변화는 미영이의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서 시작된 것 같았다. 태연이는 이미 막걸리의 취기에 진 패배자가 된 채 식탁과 융합한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서현아."
"네, 언니?"
"얼른 와. 한 잔 하자."
"…에? 아침부터요?"
숙소에 커텐이 쳐져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아침이었지, 참. 서현이가 아니었으면 미영이와 나는 밤이라고 생각했을게 불보듯 뻔했다. 근데 아침부터 막걸리판이라니. 태연이는 의상을 보아하니, 우리 집에 올 준비를 하다가 미영이에게 블록당해서 슬픈 마음에 미영이와 술판을 벌였고, 술을 이길 수 없는 몸을 가진 태연이는 그것마저 미영이에게 지고 말았다. 요즘따라, 여러모로 미영이는 참 쎈 캐릭터다. 이러다가 퀸쏘를 이기고 퀸묭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운동도 한다던데.
'비위 맞춰줘라. 미영이도 금방 뻗을 것 같은데.'
"뭐, 언니 각오하세요!"
미영이가 듣지 못하게 입모양만 뻥끗거렸는데 그걸 또 해석해서 듣는 서현이가 참 신기했다. 사실 소녀시대는 띨띨한 집합체가 아니라 0과 1로 만들어진 스마트한 감옥에 갇힌 집합체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미영이도 열심히 쳐마셨으니, 내 경험상 이제 한 두 사발만 더 들이키면 미영이도 끝장이었다. 서현이는 미영이의 건너편에 앉아 막걸리를 사발에 쏟아부었다.
"성실한 고구마 서현이…건배!"
"건배!"
홍조를 띤 미영이는 열심히 눈웃음을 빵끗 날리며 막걸리 한 사발을 깔끔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크으…라는 효과음도 없이 그저 묵묵히 다음 사발을 따랐다. 서현이의 표정은 주량의 한계치를 손바닥으로 치고 지나가는 미영이한테 질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오른다더니, 언니 두 명을 술로 눕히고 나를 혼자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니,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나는 태연, 미영, 서현 중 한 소녀와 무조건적으로 얽힌다는 것이었다.
"막내 서혀언…"
"…후르릅…왜요, 언니?"
"넌 너무 예뻐, 여자가 봐도 반하겠어."
"히히, 언니이. 언니 정말 예쁘고, 그리고 영어 잘하고 (예)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해요. 그게 바로 퍼펙트,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예압)"
쌍으로 시베리아 벌판에서 반팔만 입고 윗몸일으키기 하는 소리하고 자빠졌다. 애초에, 오늘 아침부터 여기에 와서 공부하자고 마음 먹었던 그 마음가짐이 잘못된게 분명했다. 세 여자가 헛소리로 아오지탄광 견학할 기세였으면 오지 않는게 더 좋았을텐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 쓰나미같은 후회가 몰려왔다.
"민식이는 더 안 마셔?"
"미쳤냐. 아침부터 술판 벌이게. 오늘 자정에 방송해야하는데, 소녀시대가 음주방송 유도하게 만드네."
"괜찮아, 마셔어. 다 방법이 있어, 술 깨는 방법이."
미영이는 내게 막걸리를 권했다. 키도 작은게 까치발을 들어서 강제로 내 뒷목을 팔로 감고 막걸리를 입술에다 퍼부었다. 신 쌀맛이 나는 걸쭉한 액체가 입 안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넘치면 옷을 버리니, 하는 수 없이 강제로 넘기는 수 밖에 없었다. 미영이는 좋다고 퍼부었다. 그녀의 홍조는 스펀지에 빨간 물감을 묻히고 찍은 것처럼 연했다.
"우쭈쭈, 잘 마신다. 궁디팡팡!"
"서현아, 니네 그룹 넷째 언니 그로기 상태다. 방으로 끌고 가."
"…네? 서효니눈…몸이 허약해서 그런 거 못해여…"
"…헐?"
그녀는 이미 막걸리와 스스로를 동화시켰다. 저 정도면 태연하고 미영이보다 술에 더 약한 체질이었다. 저번에 서현이의 막무가내 애교를 보고 코피가 한 번 터졌었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안 터졌다. 술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는 서현이를 냅두고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미영이를 들쳐 안았다. 미영이는 내가 안자마자 바로 목을 감고 나에게 찰싹 달라 붙었다. 맨질맨질한 그녀의 살결이 옷 위로 느껴졌다.
"민식이, 막 내 허벅지 더듬네?"
"뭘 더듬어. 니가 다리 움직이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지."
난 변태가 아니다. 술에 취한 미영이의 다리를 더듬는 변태가 아니었다. 미영이가 다리를 튕겨서 그 반동에 더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미영이는 안긴 채 자신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방문을 발끝으로 툭 밀어서 닫았다. 그리고 뒷목을 감았던 팔을 풀더니 자신의 다리를 받치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부드럽게 자신의 허벅지를 쓸어내리며 더 깊숙한 쪽으로 나의 손을 인도했다.
"…여기도 받칠 수 있지? 사실 허벅지보단 엉덩이가 더 움켜쥐기 좋잖아?"
"이게 뭐야. 자세 어정쩡해졌잖아."
됐다. 말을 말아야지. 나는 들쳐 안았던 미영이를 침대 위로 살포시 놓았다. 난 손을 놓았지만, 미영이는 놓지 않았다. 덕분에, 난 미영이의 침대로 엎어졌다. 미영이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날 끌어당겼다. 미영이의 부드러운 감촉이 나에게 전율이 일어나게끔 만들었다. 옷을 입어서 그렇지, 서로가 나체의 상태였다면 정상위 자세였다. 미영이는 다리를 들어서 내 허리를 감고, 풀었던 팔을 다시 뒷목으로 감았다. 그리고 당겼다. 미영이의 옅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흥분이 되었다.
"민식아, 그러지 말고…응?"
미영이는 치명적이면서도 끈적한 애교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의 부드러운 봉우리는 제법 농염하게 익었다는 촉감을 나에게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내가 미영이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니면 집중호우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공사부실의 민둥산처럼 와르르 모든 것을 쏟아내게 될까.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의 입술을 덮치고 싶어졌다. 네 개, 두 쌍의 눈이 있는 지켜보는 긴장된 상황에서.
"네가 자꾸 유혹하니까 하고 싶지만, 때를 가려야지. 너 혼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냥 한 숨 자라."
"…칫. 아쉽네, 거의 다 꼬셨는데. 그래도 오늘 안엔 할 수 있을 걸?…힛."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미영이는 나가는 나를 향해 유혹의 윙크와 손키스를 순차적으로 날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서현이는 여전히 막걸리를 홀짝거리느라 정신이 팔려있고, 그 다음은 엎어져있는 태연이를 옮길 차례였다. 서현이는 날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히힛, 오빠 고생하시네요?"
"누구 놀리냐. 공부하러 왔는 데 이게 뭐야…"
"더 고생하세요. 좀 있다가 공부할 때 조용해서 더 잘 될 거니까…"
저건 무엇을 예고하는 말일까. 괜히 이상한 고민을 해서 멘탈 붕괴하는 일이 없도록 아예 생각조차 말기로 했다. 태연이는 미영이와 달리 깨어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들쳐안자마자 중력으로 인해 허리를 젖힌 채 빨랫감마냥 널부러졌다. 좋은 꺾기 자세였다. 꼭 오징어 말린 것 같다.
미영이와 태연이는 같은 방을 썼나. 아, 순규랑 같은 방을 쓴 게 태연이었지. 하면서 나는 미영이가 있는 방에서 다시 방향을 바꿔 순규와 태연, 단신듀오가 쓰는 방의 문을 힘겹게 열었다. 태연이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 꼭 아기같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술냄새 풍기면서 잘 자고 있었다. 침대로 태연이를 내려놓으려던 그때, 태연이가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조그맣게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나와 아이컨택.
잠결에 깨어난 태연이가 나에게 안긴 채 제일 먼저 한 것은 자신의 엄지로 내 입술을 매만지는 것이었다. 키스라도 하려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입술을 함부로 주는 키스팔이가 아니었다. 태연이는 정신이 빠진 아이처럼 실실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히히, 민식이 입술 참 곱다!"
태연이는 술에 취해서 얼굴에 홍조를 띠고 무거운 눈꺼풀의 중압갑을 간신히 버텨내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나의 얼굴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말했다. 알싸한 알코올의 기운이 내 얼굴을 감싸고 돌았다. 그녀의 청색 멜빵끈은 팔 아래로 흘러내린 지 오래였다. 그 덕분에, 본의 아니게 나는 멜빵끈과 같이 흘러내린 카라 덕분에 깊게 파인 그녀의 쇄골과 그 옆에 자리잡은 야한 모양새의 검은 브래지어 끈을 보게 되었다.
내 검은 동공이 순간 붉게 동요했다. 붉은 심장이 검게 심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시멘트 벽을 치는 만큼이나 소란스러운 소리였다. 태연이는 들었을까. 라는 생각보다, 태연이는 느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 생각한 건 두 경우를 모두 다 생각했다.
"칠칠맞게 옷이나 흘리고…"
"…히? 봤네."
"침대에서 편하게 자. 식탁 위에서 불편하게 자지 말고. 그리고 바깥에선 그렇게까지 술 마시지 마. 누가 데리고 숙소로 갈 건데."
"너 있잖아."
태연이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다시 웃었다. 나도 요즘 많이 약해졌다. 저런 말에 쓸데없이 깜짝 놀라기나 하고. 것보다, 페로몬이 사람 가려서 퍼지나. 미영이와는 다르게 태연이는 적극적인 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원래 야한 유혹은 미영이보단 태연이가 더 많이 했었으니까.
"나 피곤해, 잘래. 괜히 분위기 타서 미영이랑 엄청 마셨네."
"그래, 자라."
"어? 그냥 가기야?"
"그럼 뭐 어쩌라고."
"입술로 재워줘야지, 히힛."
태연이는 눈을 감은 채 앵두같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었다. 그런 모습에 또 동요했지만, 나는 심호흡을 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갔지?"
"뭐가?"
그리고 시작되는 혼신의 연기. 태연이는 나의 혼신의 연기에 보기좋게 휘말리고 있었다. 좋았어, 찬란한 연기의 끝을 보여주자.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연기를 보고 있는 태연이는 어느새 쭉 내민 입술을 원상태로 복구시켰다. 타이밍은 바로 이때였다.
"찾았다! 뻐큐 머겅."
"…너 이씨!"
태연이는 자기가 베고 있던 베개를 나를 향해 투척했다. 자가탄도측정기로 완벽하게 베개의 예상투척경로를 분석한 태연이의 두콩이는 정확히 내 뒷통수를 후려쳤다. 하지만 베개로 맞는 건 내용물로 솜 대신 돌이나 딱딱한 것을 넣지 않은 이상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특히 던져진 것은 더구나, 면상과 중요부위만 안 맞으면 쓰러질 일도 절대로 없었다. 태연이는 분노를 삭이고 있겠지. 이런 건 미영이에게 썼어야 했는데. 아쉽다.
태연이의 방을 나와서 미영이의 열린 문틈을 슬쩍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자고 있었다. 태연이도 곧 자겠지. 똑딱거리는 시계를 쳐다보니 꼭대기에서 시침과 분침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딱 정오였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서현이가 정오가 되어 있었다. 또 한숨이 쉬어졌다. 서현이마저도 이 꼴이라니. 태티서(태니현)은 술에는 답이 없다. 걸그룹 중에서는 술은 티아라랑 마셔야겠다. 그나마 오래 버티는 사람들이니까.
"…끙차."
"…흠냐."
서현이는 자신의 드림월드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그룹 아이들을 안아보면서 느낀건데, 무거운 소녀들이 한 명도 없다. 진짜, 관리 하나는 열심히들 해. 그래서 내가 소녀들이랑은 죽기 전까지 쳐마시면서 나의 소울프렌드 아이들과는 적게 마시는 건가. 소녀들은 내가 업거나 안아서 뭐 원상태로 복구시킬 수 있었지만, 소년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 서현이를 안은 채 서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서현이의 책상에는 내가 방금 전까지 공부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서현이를 침대 위로 눕히고 저 책상에 앉아서 그냥 책정리하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있으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랄까.
"흐으…어?"
서현이의 방을 빠져나가자, 누군가 다시 내 어깨를 손으로 잡으며 그녀의 품으로 당겼다. 서현이였다. 서현이는 자고 있었던게 아니었다. 교묘하게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서현이는 자신의 품으로 나를 안고, 자신을 나의 품에 기대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빠, 제가 운전면허 필기 가르쳐 드릴게요. 제 방으로 다시 가요."
서현이는 태연하게 나를 자신의 방으로 다시 이끌었다. 뭐랄까, 이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