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여든 여섯 번째 과외 - Mr.Taeny 2
미영의 얼굴에는 희열이 묻어났다. 나의 얼굴에는 어둠의 다크니스가 묻어나왔다. 태연이는 얼굴을 볼 새도 없이 이미 바닥과 완벽하게 융합을 했다. 태연이의 얼굴에 묻어나온 껌딱지같은 감정들을 보려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전을 뒤집듯 그녀를 뒤집어야 할 참이었다. 근데 중요한 건 내가 귀찮았다. 어둠의 다크니스를 빛의 라이트로 전환시키고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마루바닥으로 올라오면서 무의식적으로 바짓섬을 쳐다보았다.
"뭐야, 이거. 이 끈적끈적한 건."
"따아아아악푸우우울!"
1000원 짜리 딱풀이 어느새 미영이의 손아귀로 되돌아갔다. 미영이를 보니 어렸을 때 내 볼기짝을 찰지게 때리며 황소 뿔만한 주사바늘을 엉덩이살에 꽂아넣은 젊은 간호사누나가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아마도 눈가에 주름 가득한 아줌마로 변해있을 터였다. 어쨌든, 과거의 주사바늘은 1000원짜리 딱풀로 바뀌었고 젊은 간호사 누나는 젊은 미영이로 바뀌어있었다.
"에이, 이거 어떻게 없애. 니네들 있는데서 휴지로 닦으면 이상해보이잖아."
"뭐, 어때. 볼장 다 봤자나!"
아메리카 마인드를 가진 미영이는 차원이 달랐다. 가끔씩 미영이는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설마, 성지식에 대해 개념이 아직 차지 못한 미영이가 멘사를 들락날락거리는 최고 아이큐의 소유자겠어.
그 때였다. 마루바닥과 동화 작용을 한 태연이가 얼굴이 벌개진 채로 바닥에서 얼굴을 떼며 일어났다. 뽐새가 발연기하는 좀비같은 느낌이었다. 딱총이 없으니 딱풀로 해치워야 하나.
"…꺄악! 민식아, 바지 그거 뭐야! 뭔 짓을 한 거야!"
"미영이가 딱풀이래. 니가 닦아줄ㄹ…아니다, 이건 내가 닦고. 미영아?"
태연이도 역시나 일어나자마자 바로 내 바지 앞섬에 자랑스럽게 묻은 딱풀자국을 보고 경악을 했다. 손으로 눈 가릴 거면 다 가리지, 구시대적 발상으로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틈을 주는 잔망스러운 손짓은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태연이니까 이해해줘야지. 아직 정신의 발달 수준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뒤쳐지고 있잖아? 이유는 미확인이지만.
"응?"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리며 샴푸 커머셜필름(CF)을 연상하게 만드는 행동을 오그라드는 표정 하나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미영이였다. 진짜, 내가 이렇게 비속어를 쓰려고 하지는 않았는 데 도저히 안 되겠다. 저 년 미친건가. 왜 저래.
"오해하지 말고 들어. 오늘 뭐 잘못 먹었어? 곰팡이 핀 빵이라거나 유통기한 한 여덟 달 넘겨서 비린 요거트가 되버린 우유라거나."
"안 먹었어. 아침은 숙소 아줌마가 만들어주신거 먹었어. 맛있기만 하던데."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면 약간 광녀처럼 보이는 미영이의 잠재적 요인이 드디어 겉으로 표출됬나 싶었다. 지금도 놀이터 앞에 있는 꽃밭에서 꽃 하나 뽑아가지고 머리카락 사이에 끼어버리면 적절할 듯 싶은데. 지금이라도 꺾어서 올까.
"것보다, 민식아. 숙소 왜 왔어? 오늘 과외하는 날도 아니잖아."
"어차피 너네들 우리 집 올거였잖아. 니네들 귀찮아질거 내가 선심 베풀어서 여기로 온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태연과 미영이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의 정경이 가관이였다. 한쪽은 완두콩인형과 앵무새인형으로 성벽을 쌓은 침대가 있지 않나, 한쪽은 그냥 핑크덕후다.
"근데 그건 뭐야?"
"아, 이거? 운전면허 필기 시험 보는 데, 불합격 안 되니까 그냥 공부하려고 문제집 싼 거 하나 사서 풀고 있어."
몇 년 사이에 필기 시험 난이도가 많이 증가했다. 예전에는 쉽게 통과했는데, 요즘은 필기부터 마음껏 돈 쓰라고 작정을 하고 문제를 내는 듯 싶었다. 그것보다 미영이의 호기심은 1년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정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엄청났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공부와 손을 뗀 지 오래인 태연과 미영이를 뒤로 하고, 열심히 자고 있을 서현이의 방으로 갔다. 다른 룸메이트는 어디 갔는 지 서현이만 침대에서 이마를 훤히 드러낸 채, 이불을 덮고 잘 자고 있었다.
[1. 자동차에 승차하기 전에 운전자가 확인해야 하는 사항으로 옳은 것은 무엇인가. 1번, 자동차 전후의 장애물과 타이어의 상태. 2번, 자동차 주변의 어린이와 운전석 조절 상태. 3번, 타이어의 상태와 계기판의 상태.]
시작부터 생각을 요하게 만드는 문제는 오랜만에 접하긴 개뿔. 중간고사 때도 신나게 접했다. 요즘은 영문학과가 질려서 전과하려고 생각 중인데, 막상 그 해당하는 과에서 재학 중인 두 여자가 안 보인다. 뀨잉뀨잉. 이 문제의 답은 간단하게 1번이다. 시동을 걸기 전에 확인해야할 것이라면 운전할 때 방해되는 물체가 있는 지, 타이어는 멀쩡한 지가 답인게 당연했다. 타이어가 멀쩡하지 않으면 자동차는 굴러가지 않으니까.
[2. 도로교통법상 '차'에 해당되는 것은? 1번, 자전거. 2번, 기차. 3번, 유모차. 4번, 케이블카]
좀 괴상한 문제긴 했으나, 이것도 답은 1번이었다. 도로교통법 제2조(정의) 17항 '가'를 보았을 때, 차라는 것은 자동차나 건설기계 혹은 원동기장치자전거이거나 말 그대로 자전거 또는 사람 또는 가축의 힘이나 그 밖의 동력으로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 으로 정의 된다. 기차나 유모차나 케이블카는 도로가 아닌 철길이나 가설된 선을 이용하고 행정안전부령으로 인해 정해지는 보행보조용 의자차는 제외한다고 취급한다. 라고 답지에 나와있는데 이건 무슨 비글이 소파 안 물어뜯고 얌전해지는 소리와 얼추 비슷한 이상한 소리였다.
이렇게 거지같은 문제를 풀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하고 신명나게 펜을 돌리고 있을 찰나에 뒤에서 자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름대로 조용히 공부한다고 한숨소리도 자제하고 집중하면서 튀어나오는 비속어도 아예 언급조차 안 했는데 어째서 부스럭거리면서 깨려는 건가.
"…오빠 제 책상에서 뭐하세요오…"
역시나 서현이는 부스럭거리다가 잠에서 깨고야 말았다. 나는 서현이를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눈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지만, 걸그룹 30명 이상이면 눈치를 읊고 뒷상황을 추리한다. 내가 공부한다고 하면, '어? 그럼 저도 공부할래요.'라는 식의 말투로 내 옆에 앉아서 한 책상을 둘이 나눠쓰겠지.
"아, 좀 있으면 필기시험이라서 공부 중이야."
"…필기요? 운전면허?"
"어, 서현이가 용화랑 딴 운전면허."
좀 고전적인 수법이긴 했지만, 귀엽게 툴툴거리며 발끈하는 서현이를 볼 수 있어서 재미지다. 용화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서현이의 표정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먹던 고구마를 뺏었을 때에 짓는 표정과 흡사했다.
"에이, 진짜!"
"어? 서현이 드디어 반말하는 건가! 감개무량하다!"
"아니에요!"
멤버들한테도 안 하는 반말을 이제 나를 처음으로 시작하나 싶었는데 헛된 꿈이었다. 그래도 몇 번 더 발끈하게 만들면 서현이의 찰진 욕이라거나 반말 둘 중 하나는 들을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다. 참으로 쓸데없는 자신감이었다.
"오빠, 언니들은 다 어디 갔어요?"
"…그걸 내가 아냐. 니네들이 알지. 근데 궁금한 게 있는 데, 오늘 미영이 왜 저래? 막 딱풀도 던지고 장난도 엄청 많이 쳐."
"아, 그건 말이죠…"
서현이는 귓속말을 통해서 알려줄 것처럼 자기 입을 내 귀 근처에 갖다대었다. 나는 서현이가 하는 말을 더욱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듣기 위해서 서현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데 말하기는 커녕 오히려 내 볼따구에 말랑한 감촉만 잠깐 느껴졌다. 아, 잔망스러운 서주현.
"…히힛, 저도 몰라요. 아, 마주스나 먹어야겠다. 오빠도 드실래요?"
"…안 먹어. 너나 먹어. 두 번 먹어. 계속 먹어."
서현이는 그럼 말구요, 라고 말하면서 도도하게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다시 책을 폈다. 그리고 펜을 집으려는 그 순간 서현이의 방으로 누가 습격을 감행했다. 나는 곧바로 방어포즈를 취했고 등짝어택을 날리려고 했던 뇨자는 약 빨은 미영이였다. 잠깐 이건 무슨 스멜이야.
"…너?"
"히히."
이 냄새는 학창시절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오면 아버지가 소주 한 잔 걸칠 때 나오는 냄새가 아니라 난 이모부구나. 여튼, 이모부가 소주 한 잔 걸칠 때 나는 흔하디 흔하고 정겨운 스멜이었다. 근데 그게 미영이한테, 그것도 대낮이 아니고 아침부터라니. 공부하고 있을 동안에 소주병을 깠구나.
"술 마셨어?"
"태연이도 마시고 있어. 같이 마시자."
정말 가지가지 한다. 이건 요정 소녀시대가 아니라 주정 소녀시대다. 누가 소녀시대를 이렇게 주당으로 만들었는가. 빡센 스케쥴? 아니면 자고있던 권유리? 아니면 지나가는 이순규? 아마도 자고있던 권유리가 제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순수한 소녀시대에게 상업용 성교육 영상을 전파한 당사자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권!유!리! 아, 것보다 유리 만나서 할 말 있었는데, 진짜 수영이랑 같이 어디간거야.
"오, 민시기!"
"쯧쯧, 벌써부터 취해있네. 안주 뭐 먹고 있었는데?"
"히히히히."
동시에 날 쳐다보는 태연과 미영이였다. 순간 불안한 전운이 내가 있는 주방을 감싸고 돌았다. 내 옆에 앉아있던 미영이가 내 어깨부터 등줄기를 손으로 부드럽게 훑었다. 아, 망할. 설마. 하면서 나는 예전 군바리 시절 긴장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미영이가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더니 입바람을 끈적하게 불어댔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만,
"아, 술냄새."
라면서 미영이의 뜨겁지만 알콜냄새 풀풀나는 입김을 피했다. 미영이는 충격을 먹었는지 '어?' 라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았다. 잠깐, 술냄새 나는 건 맞는데 내가 왜 미안해지지.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 같은 것이 조그맣게 뭉쳐진다. 곧 흘러넘칠 것처럼.
"연기하지마."
"쳇, 들켰네."
미영이는 눈가에 맺힌 악어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다. 소녀시대 멘탈이 쿠크다스는 아니니까 이 정도 말가지고 상처받을 아해들이 아니었다. 미영이는 싱크대 위 수납장에서 소주잔을 꺼냈다. 그리고 막걸리를 따랐다. 음? 뭔가 이상한데.
"소주잔에 막걸리?"
"취한다아…!"
태연이는 이미 취해있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을 보니 술에 너무 약한 듯 싶었다. 쟤는 이미 이 숙소가 360도로 끊임없이 뱅글뱅글 돌고 있겠지. 팬비트 대신 젓가락비트를 요란스럽게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 추측이 가능했다.
"히히, 들이켜."
소주잔에 막걸리라. 참 기분 아리까리하다. 나는 소주잔에 담긴 막걸리를 입안에 털어놓았다. 젠장, 공부하려고 오는 데 결론이 술파티라니.
"…으, 덥다."
"…!?"
미영이가 막걸리를 마시다가 열이 올랐는지 입고있던 분홍색 가디건을 벗어서 의자에 걸었다. 흰 면티에 하늘하늘한 분홍색 츄리닝 핫팬츠라니. 밑바지는 또 언제 갈아입은건가. 괜히 침이 넘어가고 미영이는 괜히 손부채질을 했다. 태연이는 혼자 혼잣말을 하다가 제 풀에 지쳤는지 식탁 위에 엎어졌다. 것보다 서현이는 또 어디갔나.
"민식아."
"응?"
미영이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키스하고 싶은 붉은빛의 번들거리는 입술이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