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2화 (293/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여든 다섯 번째 과외 - Mr. Taeny 1

"얘들아, 나 아는 언니랑 놀다 올게."

"잘 갔다와, 수연아. 대충 꾸민 걸 보니까 남자랑은 아닌 것 같네."

"…뭐!?"

이 곳은 한가하고 조금 더운 6월 초의 소녀시대 숙소의 정경. 나(태연)는 아침부터 대충 꾸미고 옷은 조금 잘 입고 한 손에는 자신의 자가용 키를 들고 한 팔에는 자신의 가방을 메고 한가로이 어딘가로 놀러가는 수연이를 바라보았다. 나도 놀 수 있는데. 나도 놀 수 있는데! 

'…면허도 없고, 차도 없다.'

이것은 현실. 이것은 시궁창. 이것은 음…잠시 생각할 시간 좀. 어쨌든, 저렇게 자신의 차키를 들고 놀러 나간 건 수연이 뿐만이 아니다. 새벽부터 유리가 어디 좀 놀러 간다고 자신의 차를 끌고 가버렸다. 

[카카오토그~]

"응?"

하라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그것도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왔다. 그냥 안부 상으로 보냈겠지. 라고 카카오톡을 여는 순간 나는 자동차 구매욕이 상승했다. 하라가, 우리 동생 하라가! 차를 샀다며 마치 레이싱걸처럼 포즈를 잡고 방긋 웃는 사진을 보낸 게 아닌가. 나는 빠르게 하라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면허는?]

[아직 안 땄지. 따야지. 근데 필기 통과했으니까 오늘 실기 보러 가서 성공하면 끝~]

수연이가 맨날 봤던 청춘불패에 하라가 트랙터 따위를 잘 모는 것을 봤으니, 농기구를 잘 다루는 만능하라는 그것보다 더 다루기 쉬운 자가용도 손쉽게 운전할 것 같았다. 부럽다. 나는 기계치라서 그런 거 잘 못하는뎁. 

[그래, 합격 빌게.]

[웅~]

핸드폰을 소파 위로 던지고 내가 그 위로 뛰어들었다. 이것이 운지 다이빙법. 그리고 북한 특수부대처럼 리모컨트롤러를 캐치. 그리고 너무나도 빨간 전원 버튼을 꾸욱 눌렀다. 프로그램이 재미없다. 다시 껐다. 그리고 소파 아래로 떨어져서 카페트 위로 운지했다. 그리고 탱구르르. 얘들은 모두 잠 혹은 놀러갔다. 나는 이렇게 바닥에서 구르기 운동을 하면서 무모하게 칼로리나 소모하고 있다.

"흠…심심할 때 만만한 인맥은 누구다? 민식이다!"

소파 위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서 1번을 꾹 눌렀다. 민식이의 벨소리는 참 현란한테 컬러링은 진부함 그 자체다. 진보한 컬러링은 살아남지만, 진부한 컬러링은 뒤쳐집니다. 히히. 나 멘탈붕괴인가보다. 거북한 컬러링이 쭉쭉 이어진다. 끝을 모르고 쭉쭉 이어진다. 

"안 받네."

아마도 자고 있나 보다. 아니면 바람 피고 있거나. 나름대로 민식이의 운명의 데스티니를 위해서 결혼 전까지는 자유연애를 허용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자꾸 늘어가다보니 민식이에게 있어서 내 비중은 작아지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그게 나타나고 있고. 첫사랑은 안 이루어진다는 불안감. 가끔씩 그것이 날 건드리기도 했다.  

[공부 중이야]

[아, 미안. 근데 뭔 공부]

민식이가 공부중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민식이는 대학을 특채 출신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순전히 실력으로 중앙대 영문학부에 들어간 우수한 인재였지. 공부 한다는 민식이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아.

[투아렉 받아놓고 묵히긴 싫어서. 면접 필기 공부.]

[나도 할래!]

[그러면 우리 집으로 오던가]

방금 민식이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참 좋은 생각이다. 답장을 보낼 필요도 없이 나는 바깥을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암 레디 포얼 아웃 투 고. 심플한 디자인의 흰 면티하고 청멜빵이나 메고 민식이의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히이…귀여운가?'

뒤로 묶은 머리를 풀었다. 머리가 단발인데다가 모발의 끝이 바닐라색으로 염색한 빼빼로 머리라서 여자인 내가 봐도 충분히 귀엽다. 자뻑이긴 하지만, 괜찮아. 난 이쁘고 귀여우니까. 때로는 순규처럼 귀엽고, 때로는 유리처럼 섹시하고, 때로는 윤아처럼 청순하고, 때로는 수연이처럼 두렵고(?), 때로는 서현이처럼 정갈하고, 때로는 수영이처럼 비율이 좋고, 때로는 파니처럼 애교가 철철 넘쳐흐르는 완벽한 조합체인 나를 보고 공부에나 집중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흐응…어, 때때, 어디 가?"

"친구 만나러."

"친구 만나는 데 뭣하러 그렇게 차리고 가. 냄새가 난다, 킁킁."

미영이의 냄새 맡기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였다. 아이큐가 우리 중에서도 제일 높아서 멘사에 갈 실력이지만 저 년의 상큼하고 띨띨한 이미지 구축 때문에 아무도 미영이가 브레인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 미영이가 우리 중에서도 한국말 제일 잘 하는데(!?). 미영이가 냄새를 맡기 전에 얼른 도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영이가 내 어깨를 잡으면서,

"때때야. 도망은 자유지만 지금은 아니란다."

"안 돼…힘이 빠지고 있어…"

핑크색 옷을 입은 미영이가 나를 다시 방으로 끌고 갔다. 분명히 도망을 쳐야 제대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데 왜 미영이의 손아귀에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난 운지? 까지는 아니고 미영이가 옷을 다 탈의하고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는 걸 지루하게 지켜봐야 했다. 눈이나 질끈 감아서 순진무구한 탱구의 모습을 보여주자!

"…꺄악…미영아!"

"때때, 오바하지마."

"네."

미영이는 맨가슴에 브래지어를 차면서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지나가던 백구 새끼처럼 깨갱거리며 미영이의 칼같은 말에 바로 과장된 행동을 멈췄다. 나란 여자, 순진무구하고 순종적인 여자. 하아…너무 매력적이야. 응?

"미영아, 핑크 덕후인건 인정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니!"

"왜?"

왜냐고? 어디서 공수했는 지 모를 핑크색 가디건과 연분홍색 면티 그리고 핫핑크 스커트를 입은 미영이의 모습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최초로 연예인으로 나와도 충분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나마 머리가 분홍색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만약 미스에이 지아처럼 머리가 분홍색이었다면…나를 비롯해 소녀시대와 민식이와 많은 사람들이 멘탈붕괴를 동시에 일으킬 것 같았다. 다만 같이 사는 우리가 먼저 멘탈붕괴될 뿐.

"난 괜찮기만 한데?"

"…응?"

지쳤다. 나중에 병적인 핑크미영이의 질주를 누가 좀 막아주면 좋을 듯 싶었다. 개인적으로 민식이가 미영이랑 '분홍색'이란 주제를 가지고 신명나게 갈등 좀 유발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미영이가 충격을 먹고 분홍색 말고 딴 옷으로 사복을 입겠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멘탈회복 좀 시키던가. 

"때때."

"응?"

"너 평소에 그런 옷 안 입잖아. 그렇게 귀엽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민식이를 만나서겠지?"

미영이의 관심법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시 소녀시대만 아는 숨겨진 브레인답다. 소녀시대와 자신의 가족을 빼고는 보이는 이미지는 죄다 내숭이 분명하다. 미영이는 그렇게 추측을 하고 다시 옷을 벗었다. 나는 순진무구한 탱구의 모습을 다시 보려주려다가 미영이에게 허를 찔릴 것 같아서 그냥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기로 했다. 

"어딜 봐, 때때야. 여기 봐야지."

"…이러지마…미영아!"

안 돼. 미영이가 이렇게 변태미영인 줄 상상도 못 했는데. 하면서 눈을 질끈 감아서 순진무구탱의 절정을 보이려던 바로 그 순간. 미영이는 이미 환복이 완료된 상태였다. 차이가 있다면 안의 티셔츠가 분홍색이 아니라 흰색인데다가 핫핑크색 하트 하나 뿐인 옷이랄까. 아, 병적인 코디는 아니지만 귀엽다. 왜, 난 미영이처럼 귀엽지 못할까…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한탄하고 싶어졌다. 

"미영아, 어떻게 하면 너처럼 귀여워질 수 있니?"

"분홍색을 사랑하면 간단해. 너도 러브핑크에 가입할래?"

"뭐야, 그…그 클럽은."

"생긴 지 얼마 안 됬어. 아직 회원은 나 하나 밖에 없어. 너도 가입하면 대외적으로 홍보도 되고 참 좋을텐데…가입할래?"

러브핑크라니. 어감 조차도 뭔가 엉덩국스러웠다. '들어오는 건 자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를 모토로 할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으아, 미영이가 이 소설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어. 얼른 순진무구탱으로 생각정화를 시켜버리자! 는 보기좋게 FAIL. 민식아, 살려줘! 라고 말하고 있지만 민식이는 아직 없다. 우리가 가야 있는 민식이 같으니라고.

"근데, 왜 옷 갈아입었어?"

"민식이가 너무 깔맞춤한 스타일은 싫어하잖아."

"아, 맞다."

전에 한 번 화이트로 깔맞춤하고 하얀 속살까지 보여주니까 경악했던 민식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쨌든 그 때도 정기를 열심히 먹긴 했지만, 그 정도의 반응을 봐서는 다시는 깔맞춤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올, 근데 때때 요즘 들어서 엉덩이 많이 탱탱해졌다."

"…잉, 그건 뭔 소리야?"

찰싹! 

"찰지구나."

"…!?"

으으으으…뭐지, 이 거지같은 기분은. 분명히 미영이가 여자인데 여자같지 않아. 자꾸만 예전에 보았던 PINK라는 만화 속의 캐릭터가 내 두개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너, 갑자기 왜 이래. 오늘 새벽에 도대체 뭘 보고 잔거야!"

"석천이 삼촌이 좋아할만한 만화?"

그래, 그 PINK가 나오는 만화가 맞구나. 그러고보니, 미영이가 유난히 왜 이리 그런 행동을 하는 지 알겠다. 지금 내가 멜빵을 메고 있구나. 음…맨살에 안 입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되나. 근데 왜 이야기가 이따구로 흘러가냐. 지금쯤이면 집 앞 카페에서 민식이를 만나서 노가리나 까고 있어야 할 스토리인데. 

"으으, 황미영. 내가 새로운 이미지로 변태연을 접고 순진무구한 시골소녀 탱구 이미지를 만드려고 했으나 너 때문에 실패하게 생겼다."

"…으응? 왜 그래, 때때야. 그런 표정 짓지마…꺄악!"

나는 도망가려는 미영이의 어깨를 잡고 재빠르게 가슴과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변태연의 본능을 일깨우다니. 감히 일개 PINK 미영이 주제에 말이야. 참으로 보드랍고 찰진 미영이의 몸이였다.

"…꺄악!"

"부드럽고 찰지구나."

미영이는 나의 공격에 반항 한 번을 해보지도 못하고 KO당했다. 누구든지 이 소녀시대 최강 리더 김태연을 건드리면 꽃되는 것을 알았어야지. 

"그럼 편히 쉬고 있어, 나 놀다 올게."

"어딜!"

미영이는 여유롭게 현관을 향하던 나에게 1000원짜리 딱풀을 던졌다. 미영이의 예리한 제구력 덕분에 나는 민감한 부분에 딱풀을 제대로 맞고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야릇한 느낌이 몸을 감싸고 돌았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때때를 쫒아가야겠다! 딱풀을 맞았으니 멀리 가진 못할거야!"

"…딱풀 때문에 힘이 빠진다."

잠시동안은 현관 바로 위의 바닥에 편히 누워서 멘탈을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르륵 감기는 눈을 내가 어찌 막을 수 있으리오. 그렇게 갸녀린 나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그저 새벽에 게이바 만화를 본 미영이에게 보기좋게 패배를 당한 오명을 잊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또 여기 오면 니네들이 귀찮아질 것 같아서 내가 왔어."

"…어, 민식이다! 우리 숙소로 온 걸 환영해!"

"뭐야, 이 상황은. 아, 여기가 소녀시대 숙소가 아니였지. 미안, 잘못 들어왔다. 그냥 나갈게."

나는 도망치려는 민식이의 바짓가랑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아주 힘겨운 목소리로 말이다. 

"…들어오는 건…자유지만…나갈 땐…아니란다…."

그 순간 1000원짜리 딱풀이 어디선가 날아와 민식이를 피격했다. 그리고 미영이의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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