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9화 (290/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여든 두 번째 과외 - The Boys 2

1부는 늘 그렇듯이 소소하게 웃음 폭탄 방구탄 급으로 몇 번 터트려 주고, 분위기 좋게 마무리 되었다. 이제 내게 닥쳐온 또다른 시련은 지금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라디오 초보, 예능 초보, 방송 자체가 초보인 생짜신인들. 내가 유느님도 아니고 그저 나 역시 생신인 DJ에 불과한데 저 게스트들을 이끌고 잘 방송할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3명의 신인, 그리고 생방송.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비유하면 딱일 듯 싶었다.

[김민식의~ 심!심!타!파!]

'…아, 2부 음악 안 바꾸나.'

나를 비롯하여 심심타파를 듣는 많은 청취자도 함께 오그라드는 즐거운 음악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손가락 발가락 오그라드는 것도 모자라,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저 음악은 정말 마성이었다. 들으면 들을 수록 쪽팔리니까 말이다. 내가 작곡가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감정이입은 확실했다.

"자, 자, 심심타파 2부 시작합니다. 2부 오프닝곡은 언제 들어도 항상 오그라드는 농약같은 음악이네요. 여기, 농약같이 풋풋한(?) 여자 연예인 두 분을 모셨습니다. 에이핑크 초롱양, 안녕하세요?"

"와, 안녕하세요~ 에이핑크 리더 초롱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 반가워여~"

최대한 밝게 웃으며 청취자에게 어필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라 FAIL. 그리고 눈매 때문에 진짜 졸려 보인다. 

"안녕하세요, 스텔라입니다. 니가 있는 곳에~ 이 노래 아시죠?"

그냥 추측해봤는데, 진짜 졸린 거 였나. 스텔라의 인사 차례가 되자 바로 눈꺼풀을 닫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아, 팔 다리 둘 다 안 닿는데 저거 어떻게 깨우냐. 무슨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서 방송사고 나게 생겼네, 아오! 운! 지!

'스텔라씨?'

'네?'

'초롱씨, 건드려서 깨워줘요.'

스텔라양이 초롱양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자 초롱양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졸려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면 계속 말을 시켜서 잠을 깨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텔라양에겐 양해를 구해야 하나.

"초롱씨?"

"…에…네!"

"전에는 공개방송으로 첫 출연하시고, 오늘은 부스 안에서 방송 하시잖아요. 기분이 어떠세요?"

"뭐, 괜찮은 것 같아요!"

지도 졸렸다는 것을 어느정도 아나보다. 말끝마다 음을 높이는 건 잠을 깨기 위한 그녀 나름대로의 방책인 것 같았다. 나는 다음 코너를 소개하면서 그것에 대한 질문도 초롱양에게 거의 몰빵할 생각이었다. 우선 잠은 깨야하니까.

"자, 2~3부는 스타들의 상식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는 그런 코너. 스타퀴즈서바이벌이 있다는 것, 스타들이 유식하다는 것. 스타퀴즈서바이벌이 없다는 것, 검색어에 오른다는 것. 으으, 작가님들이 오그라드는 멘트 치는 데 타고난 것 같아요. 순정만화 글 담당하셨나봐요. 스타퀴즈서바이벌!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초롱씨 어떻게 진행되는 지 이미 읽어보셔서 아시죠?"

"네, 스텔라씨랑 저랑 간단한 퀴즈배틀을 통해서 제가 이기면 다음주에도 또 출연권을 얻는 거, 맞죠?"

나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거렸다. 맞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초롱양이 소리없이 웃기 시작했다. 

"잘 아시네요. 스텔라씨는 자신 있으세요?"

"흠, 잘 모르겠어요. 초롱양은요?"

"자신 있어요!"

진짜로 자신 있는 지는 한 번 퀴즈를 내봐야 알겠지만, 정말 퀴즈가 주관식도 아니고 객관식인터라 문제는 괜찮은 데, 선지가 진짜…작가누나를 아무래도 종합건강검진을 해봐야 할 것 같은 약 빨은 선지였다. 이걸 어떻게 읽으라느 건 지 결국 나의 등골을 빼먹는 코너가 확실했다.

"그럼 노래 하나 듣고 본격적으로 코너를 시작해볼게요. 아, 저도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네요. 에픽하이가 부릅니다, 트로트."

선율이 들리자마자 나는 기지개를 쭉 켰다. 초롱양은 잠을 깨려고 고개를 요란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저기서 소리만 내면 바로 도날드덕 한 마리 뽑아내는데. 초롱양이 볼살이 조금 있는 터라, 좌우로 흔들면서 볼살이 귀엽게 요동친다. 

"졸린가봐요?"

"네, 아무래도 12시에 생방한다는 건 조금 피곤해서."

"그럼 깨게 해줄까요?"

이미 에셈타운 라이브 콘서트 대기실에서 써먹었던 방법 중 하나였다. 설리가 그 방법으로 피로회복한 당사자였지. 나는 초롱양의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래뵈도, 전국안마대회에서 우승한 손놀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녀들한테 손놀림이 야무지다고 칭찬받은 터였다. 훗, 그 손놀림은 소녀들의 가슴을 주무르던…음, 여기까지.

"어때요? 시원해요?"

"네! 시원해요. 소싯적에 안마 좀 하셨나봐요?"

"…!?"

본의 아니게 초롱양의 발언에 힘입어 나는 학창시절 안마 좀 한 안마셔틀로 전락해버렸다. 놀다가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 정도 위치까지는 아닌데. 초롱양이 생글생글 웃으며 반응을 하는 게 좋긴 한데, 안마가 끝나고 노래가 끝나면 다시 졸 것 같다는 촉이 불안했다.

"노래 끝나가요!"

"아, 그래요? 그럼 멈춰야지. 초롱씨 시원해요?"

"네,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아요. 잠이 다 깬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초롱양은 어느새 눈가에 졸리면 생기는 쌍꺼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 그렇게 안마를 했는데도 졸리면 뭐 어떻게 하자는 거야. 운동을 해서 깨우자는 거야!? 는 너무 심한 것 같고, 어쨌든 초롱양이 이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

"문제 낼게요, 한글을 창제한 조선의 제 4대 왕의 이름과 본명은?"

"정답!"

"선지도 안 줬는데 벌써!?"

초롱양은 어깨뼈가 나가도록 팔을 쭉 뻗었다. 스텔라양은 아무래도 선지에 훼이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기를 타면서 경청을 하고 있었는데, 선지가 안 나간 이상 초롱양이 맞추는 건 매우 힘들 것 같았다. 

"6번 세종, 이도!"

"정답일까요? 정답 확인!"

작가누나가 정답이면, 정답 브금을. 정답이 아니면, 오답 브금을 틀어준다고 하는데. 답은 맞았는데 번호가 맞았을 지 그게 문제였다. 

[딩동댕동~]

"와, 맞았따! 제가 정답인 거 맞죠? 오오, 박초롱 1점 획득!"

스텔라양과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래도 너무 벌어진 탓에 하관이 라디오 테이블에 닿을 듯 했다. 찍기의 신이 초롱양의 소울과 제대로 결합했나. 흡사, 고스트 바둑왕을 현실 버젼으로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다. 정말 놀랍도다.

와우, 판타스틱 베이비. 

+

"3부가 끝났네요. 2~3부동안 초롱양과 스텔라양이 맞춘 점수를 결합해 본 결과는 3부 엔딩과 동시에 나오는 선곡으로 아실 수 있습니다. 초롱양하고 스텔라양 1시간동안 정말 많이 고생하셨어요. 우린 모두 작가님의 마루타가 된 것입니다. 붐 샤카라카~"

부스 밖으로 보이는 작가누나가 진짜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 순사처럼 보였다. 우리 셋은 일본 순사의 고문대상이랄까. 코너 하나 끝난 느낌이 종로 경찰서에서 고문 후에 무죄판결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기분은 등에 모기 물린 것처럼 찝찝했다. 

[이러지마요~ 베이비, 그대는 몰라요~]

"어? 초롱씨가 이기셨네, 축하해요. 다음주에도 잘 하시길 빌게요. 그리고 스텔라씨도 수고하셨어요."

"네, 다음엔 제가 이길거에요. 그럼 가볼게요."

스텔라양은 나를 비롯해 초롱양과 라디오 스태프들에게 90도로 정중하게 인사한 뒤 라디오 부스 밖을 빠져나갔다. 역시 인기 많은 신인은 저렇게 예의 바를 줄 알아야 한다. 신인부터 인기 맛있게 드셔서 금방 탑스타 된 사람들 중에서 자만심에 찌들어서 개념이 증발한 이가 더러 있던데, 스텔라양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저런 유형은 금세 승승장구하더라.

"초롱씨는 안 가세요?"

"아, 저는 매니저오빠가 새벽 두 시에 온다고 해서 어차피 그 때 오니까 라디오 다 보고 내려가려구요."

위험인자가 아니면 라디오 부스에 계속 있는 것을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초롱양의 마이크의 볼륨을 소거해버리면 간단했으므로 나는 작가누나에게 싸인을 날렸고, 작가누나는 곧 초롱양의 마이크를 음소거 처리했다. 

나는 무난하게 4부도 마무리 짓고 바톤을 다음 프로그램에게 넘겼다. 부스 밖에 걸어두었던 겉옷을 입고 밖을 빠져나갔다. 이미 라디오 시작하기 전에 온 문자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터였다.

[정글피쉬 퍼브로 와. 뒷북이지만 생파 제대로 해줄게. -용화]

본의 아니게 가는 방향이 겹쳐서 초롱양과 함께 엘레베이터에 동승해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토바이 키를 꺼내들고 갈 준비를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쪽!'

아, 수연이가 자기 자가용 끌고 방송국에다 내려줬지. 고로, 오토바이는? 멘탈붕괴다. 정글피쉬 퍼브가 어디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차를 끌고 갈 거리인 게 분명했다. 내 지갑 안에 있는 머니들을 택시비에 보탤 수는 없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새벽이라서 택시가 잘 다닐 리가 만무했다. 아, 이럴수가. 그럼 어떡하지.

"용화야, 나 픽업 좀 해줘라. 아니면 권이라도."

[안 돼, 마. 우리 준비할 게 있어서 네가 알아서 찾아와.]

"젠장, 멋진 놈일세."

나는 1층을 급하게 눌렀다. 아, 기본으로 택시요금 뜬 것 이상으로 돈 쓰게 만들어주마. 각오해라, 나의 두 친구들이여. 고스트 머니 드레이너(Ghost Money Drainer, 고속으로 돈 뜯는 자, 高速强奪子[고속강탈자]) 간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꼬라지는 확실하게 멘붕한 23살 남자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 들었다. 

"왜 그렇게 있어요오?"

"네? 아, 어디 가야하는 데 딱히 방도가 없어서."

같이 고민을 안 해도 되는데, 공감이라도 하려는 지 초롱양도 얼굴을 찡그리며 같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게 있었는 지 핸드폰으로 무언가 했다.

"잠시만요."

"네. 같이 고민해주셔서 고마워요."

"어, 매니저 오빠? 한 분만 어디 데려다드리고 가면 안 돼여?"

"…!?"

"네, 알겠어요, 오빠."

빠른 일처리 보소. 하마터면 바지를 빠르게 갈아입을 뻔 했다. 뭐, 김칫국 미리 마셔두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예를 들면 초롱양의 밴을 타고 정글피쉬발 뭐시기 퍼브 뭐시기로 간다던가. 그런 꿈같은 테크트리를 상상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글달팽이라서 어쩔 수 없다. 그냥 허경영한테 축지법 배워서 가는 수 밖에. 

"감사했어요. 그럼 전 택시 타고 갈게요."

"어?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매니저 오빠가 알겠대여. 장소가 어디에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