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4화 (285/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일흔 일곱번째 과외 - 꽃보다 시카 3

자동차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우월한 풍채에 나란 남자는 현아가 선물해준 돌체 앤 가바나 청바지를 입고도 열심히 지려야했다. 

"한 번 타보시겠습니까?"

"진짜요? 수연아, 시승해보자."

"…징짜!?"

본의 아니게 때마침 온 수연이가 내 자가용에 탄 첫 여자가 되었다. 수연이도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있었다. 나는 검은 정장을 입은 SM 관계자에게 차키를 받아들고 곧바로 차문을 열었다. 시승감도 역시 편안했다. 

"수연아, 드라이브 한 바퀴 돌까?"

"그럴까?"

"…는 농담이고, 나 1종 보통은 없어."

"왜 없어?"

없으니깐 바이크 타고다닌다고 생각을 안 해봤니, 안 해봤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보아하니, 수연이는 차까지 끌고 왔으니 1종 보통 면허는 땄겠고, 결국 우리는 진짜 시승의 개념으로 걸터앉기만 하고 드라이브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차는 이제 내 소유니까 차키를 절대로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면허 따고, 교외에 차고 있는 집을 사서 혼다 오토바이랑 폭스바켄 SUV를 같이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럼 전 민식씨에게 무사히 차를 전달해드렸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시고 즐거운 생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올 때는 폭스바겐을 끌고 왔지만, 회사로 돌아갈 때는 시내버스를 타는 그대여, 가시는 길 진달래꽃 고이 뿌려드리오리다. 나는 먼 길 떠나는 남자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 뒤 수연이가 가지고 온 선물 두 개를 들었다. 무거웠다. 수연이가 차를 끌고 올 법도 한 무게였다.

"…무거운 걸 어떻게 들었대. 너 잘 보면 힘 엄청 세?"

"…아잉."

칭찬 아니야, 이 년아. 

+

- 이순규 시점.

"…뭐야, 왜 아무도 없어."

나는 하품을 마구마구 하면서 온 방을 다 둘러 보았다. 정작 이 곳에 있어야 할 수연이는 어디 가고 나 홀로 쓸쓸히 100평짜리 숙소를 지키는 개가 되있는 건가. 배가 가려워 후드티셔츠 안에 손을 집어넣고 벅벅 긁었다. 

"히히, 시원하다."

팬들은 내가 이런 내숭없는 모습을 보이는 지 상상도 못할 거다. 민식이도 마찬가지고, 나머지 애들도 마찬가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오로지 나 혼자 있을 때만이랄까. 마침 출출하던 찰나에 잘 되었다. 얘들이 양심이 눈꼽이라도 있는 년들이라면 냉장고에 반찬 몇 개 정도는 남겼겠지. 하면서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아오, 망할 년들…"

깊은 빡침이 나의 소울을 화르륵 불태우기 시작했다. 지금의 빡침이라면 충분히 사골을 끓여도 지장없을 화력이었다. 지금 이 모습으로 바깥에 나가면 내 입장이 얼마나 곤란해질지 알면서도 냉장고에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걍 너네들끼리 쳐먹었다니요. 소녀, 순규는 참 슬프다옵니다. 숨겨두었던 야구방망이가 어딨더라?

결국 허기짐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딱 하나로 귀결된다. 귀찮아도 바깥 마트에 가서 인스턴트 식품이라도 사서 먹자는 거, 전신무장하면 들킬 염려도 없고 딱 좋겠다. 그래, 결정했어!

"기다리렴, 나의 인스턴트들아!…응?"

기분 좋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오니, 네 개의 눈에서 다가오는 시선들이 내 아담한 체구를 툭툭 찔렀다. 나도 양심은 있는 여자라서 그런지 충분히 쪽팔림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비루한 옷차림과 달리 나를 쳐다보는 두 사람은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어서 아주 포스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 세상 많은 중년부부들을 보았지만, 저런 분위기는 할리우드 부부가 아니고서야 엄두도 못 낼 소름 끼치는 분위기였다. 저 부부가 낳은 자식들의 외모는 정말 장난이 아니겠지.

"저기요, 아가씨."

"…네? 저요?"

나는 셀프로 나에게 삿대질을 몇 번이나 했는 지 기억도 안 난다. 어쨌든 셀프 삿대질을 하자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하는 아줌마였다. 나한테 무슨 볼 일이 있어서 그런 포스를 뿜어내면서 내게 오시는 지, 작은 순규는 더 작아져요, 뀨잉.

"혹시 여기 사는 학생 알아요?"

여자는 우리 숙소의 건너편 집을 가리켰다. 저 집이라면, 확실히 민식이의 前집이다. 근데 그걸 왜 묻지?

"네, 알긴 아는데요오…무슨 일로?"

"아, 그게 아니라 저희가 여기 사는 학생의 부모거든요. 오랜만에 아들 생일이라서 한국에 왔더니, 아들이란 놈은 집 비우고 안 보이네요. 전화번호는 바뀌었는 지 통화도 안 되고…혹시 여기 사는 학생 전화번호 알아요, 아가씨?"

작은 나(순규)의 머리는 더 빨리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난 걔네(다른 소녀)들보다도 더 대단해. 순규야, 할 수 있어. 대충은 바로 앞에 있는 저 중년의 부부가 누구인 지 짐작은 가잖아? 아니다, 방금 아줌마, 아니 어머니가 하신 말씀에 확실해졌다. 소녀시대도 작은 소녀시대로 만들어버릴 거대한 포스를 지니고 계신 중년의 부부는 민식이의 부모님이였다. 핫! 남편의 부모님을 이런 비루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만나뵙게 되다니. 뀨잉뀨잉.

"네, 알아요. 근데 지금 여기에 안 살아요. 이사 갔어요, 강북으로요. 행당동 ○○아파트일거에요, 아마."

"…그래요? 고마워요.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될 지…"

민식이의 어머님은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 지 망설이는 듯 했다. 망설일 필요 없어요, 어머니. 제 이름이 이순규란 것과 민식이의 여자친구는 저라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된답니다. 

"잠깐 저희 집에서 차 좀 드시고 가실래요? 오랫동안 바깥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힘드셨을텐데…저희 집에서 잠시 여로를 녹이시다 가세요. 어차피 저도 그 쪽으로 갈 일이 있어서 같이 가면 되겠네요!"

좋았어, 순규야. 민식이 부모님에게 확실히 점수를 따자.

+

- 민식이 시점.

"…우와, 이게 다 선물이야?"

"응. SM 애들이 준 거 합쳐서, 이 정도? 너 왜 이렇게 인기 많아? 질투나 죽겠네."

으이구, 그랬쪄영? 이라고 하면서 수연이의 부드러운 볼살을 꼬집어보고 싶었지만 또 귀엽게 리액션 해줄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드디어 대망의 선물 리뷰 PART3이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였다. 수연이는 선물을 조금 있다가 주겠다고 했으니 그 때 받기로 하고, 일단 생년월일 순으로 일일히 따져가면서 뜯어볼까. 그렇다면 첫 타자는 치엔누나의 선물이구나. 

"…반지?"

"너, 그거 커플 반지 아니지?"

"…설마 그럴리가."

수연이가 뻔히 지켜보는 데서, 제일 먼저 뜯어본 선물의 내용물이 무려 반지라니. S&M이라니 어감이 이상하긴 했지만, 대충 무엇을 뜻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다른 반지들 같으면 왠만해서 다 흔하디 흔한 디자인의 반지들일텐데, 장난감 반지라고 해야되나? 이를테면 2NE1이 활동할 때 볼 수 있었던 장난감 악세서리같은 것들이 있지 않았나. 그것의 반지 버젼이라고 하면 좋을 듯 했다. 나중에 치엔누나 만나러 갈 때 그녀가 혹시라도 장난감 반지를 하고 있었다면 그건 커플 반지가 확실했다. 일단 내가 받은 반지에 있는 장난감은 푸른색 레고 블럭이 큐빅처럼 붙은 모양새였다. 일단 수연이가 보는 앞에서 반지를 끼면 눈치가 보여도 너무 보일 것 같으므로 한 쪽으로 치워놓고 이번에는 태연이의 선물을 뜯어보기로 했다. 

"어,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이 탔던 그 게임기네. 지금 부피가 너무 크니까, 찾고 싶을 때 찾으라고, 그러지 뭐. 근데, 이건 뭐지?"

"나도 그건 뭔지 모르겠어. 뭣하러 태연이가 우유를 자꾸 갖다주는 거지?"

우유팩이라, 불안하게도 이번엔 제품명 자체가 대관령 우유다. 아무래도 뚜껑 아래에 플라스틱 고리가 사라진 것을 보니, 이미 한 번은 뜯은 상태였다. 이번에도 모양새는 어김없이 요구르트 빛깔이었다. 아, 태연이, 망할 년. 내가 아직도 신생아인 줄 아나, 근데 우유 없어서 그거 먹을 수 밖에 없는 나도 참 안쓰럽다. 어쨌든 우유 말고 태연이가 선물로 준 게임기상품권은 나중에 태연이랑 직접 같이 가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연이 다음이 순규였나? 수연이가 더 앞이긴 했지만, 누누이 말했듯이 수연이는 조금 있다가 주겠다고 했으니까.

"…아오, 이순규."

"…이순규는 선물을 뭐 이런 걸 주냐?"

내 키가 180이 넘는다. 180이 넘어, 근데 키높이 깔창을 선물로 줘? 자기나 끼고 다닐 것이지, 라고 속으로 씨부렸다. 그렇지만 순규는 태연이와는 달리 편지를 쓴 것 같은 모양이었다. 뭐, 편지를 썼으니 도발식의 깔창 선물은 넘어가도록 하곘다. 아, 근데 이 깔창을 누구한테 주면 좋지. 순규의 선물을 한쪽으로 다시 몰고, 이번엔 그 다음 생일순인 미영이의 선물을 뜯어보았다. 

"오, 썬구리다."

"핑크색이네, 써봐! 귀여울 것 같아."

미영이도 편지와 함께 선글라스를 선물했다. 그것도 핑크색 테두리로, 일단 셋 중에선 미영이가 제일 양호하고 실용적인 선물을 해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선글라스가 한 개 밖에 없어서 스타일이 일관화될 수 밖에 없었는데, 선글라스가 하나 더 늘어난 것으로도 모자라, 디자인마저도 독특하면서도 무난했다. 수연이는 마치 자신이 선물을 받은 것처럼 표정을 지으며 내 감정을 더 극대화 시키게 만들었다. 나는 핑크색 테두리의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채 다음 생일선물을 뜯었다. 생일순으로 따진다면 효연이다. 

"…오, 김초딩. 4차원스러운 선물을 줄 것 같았는데…정상인 선물 줬ㄴ…아오 씨."

"우와, 아구몬이다! 피카츄도 있어! 파닥몬도 있다!"

수연이는 파닥몬은 내가 가질래! 하면서 벌써부터 옷 한 벌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 그나마 파닥몬이 무난했는데…물론 효연이가 선물해준 것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온 캐릭터 반팔 티셔츠였다. 작은 쪽지로, '얇은 자켓 입고 코디하면 무난할듯.' 이라고 쐐기를 찔렀다. 효연이도 은근히 나보다 한 수 위인듯 했다. 효갈공명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효연이도 별명의 보고잖아. 효성능 효피커, 효랭이, 효끔효끔, 효치미 등등. 가지고 있는 별명의 양은, 무한도전에 나오는 명수옹의 별명유전과 비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라인업이었다. 흠, 효연이의 선물도 뜯어보았으니 이번엔 그 다음 생년월일인 유리의 생일선물을 뜯어볼 차례였다. 내용물이 가벼운 것을 보니, 가벼우면서도 비싸거나 묵직한 것일텐데. 안에 있는 것은 CD 케이스였다. 그 안엔 CD가 차곡히 쌓여있었다. 수연이가 볼 일 좀 보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울 동안, 조심스레 유리의 선물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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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미 제목을 읽어내린 것만으로도 시냅스들이 달아오르는 것을 봐선, 유리가 지나가는 소리로 했던 '나 외장하드 1TB 안에 국가하고 종류 별로 폴더 나눠서 얃옹 정리해놨다'라는 말이 얼핏 생각났다. 설마했지만 이게 레알이었을 줄이야. 정말 소름 끼치네. 뀨잉뀨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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