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일흔 다섯 번째 과외 - 꽃보다 시카 1
-제시카 시점.
[…너 완전 꺼져야.]
"히히, 이 드라마 재밌다."
우리 숙소도 IPTV를 쓰는 터라, 몇 달전에 끝난 드라마인 '싸인'을 다시 돌려보기를 하고 있었다. 막상 본방송을 할 때는 볼 시간이 없었는데, 스케쥴도 느슨한 터라 이렇게 다시보기로 재미난 드라마를 찾아서 보고 있었다. 눈은 드라마를 보는 데 팔고 있었으나, 손은 선물 포장을 하느라 바빴다.
순규는 집에서 자고 있고, 다른 애들은 모두 스케쥴을 뛰느라 민식이네 집에 갈 시간이 없어서, 요즘 개인 스케쥴을 자주 쉬는 내가 대신 민식이네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SM라인 멤버들은 죄다 선물을 나한테 몰아주고는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망할 년들, 내가 우체국도 아니고 착불비는 줘야할 거 아냐. 두 당 2500원씩 받아야겠다. 그럼 14명이니까 5만원은 챙기겠다. 히히.
"…아, 김민식. 가만 안 둬."
선물이 왜 이렇게 많은거야. 이 정도 스케일이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융엔터테인먼트(에이치티티피://카페.네이버.컴/알융)에 조공샷을 올려야겠다. 다들 포장을 한 터라 내용물을 미리 확인할 방법은 딱히 없는 듯 보였다.
"…핫!"
합죽이가 됩시다, 합!은 아니고 히잉…왜 이렇게 무거워잉. 내 가녀린 팔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팔을 달달 떨며 문 밖을 나왔다. 내 의지가 아닌데 입에선 저절로 '낑낑' 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 나 강아지 아닌데.
[딩동. 딩동.]
이제는 완연한 늦봄의 날씨였다. 벌써부터 후끈한 느낌이 드는 게 얇은 가디건을 입고 나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숙소의 문은 닫아야 하니까 선물이 가득한 종이가방을 계단 위에 내려놓고 팔꿈치로 문을 밀었다.
바로 옆집에서 나이가 조금 들어보이는 부부가 민식이가 몇 달전까지만 해도 살았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며 서있었다. 어차피 눌러봤자, 안에는 쌓인 먼지들 뿐일건데. 종이가방을 다시 들자 부스럭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중년의 부부는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어차피 나를 쳐다보는 것은 곧 말을 걸겠다는 일종의 비언어적 행동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말을 걸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천에 옮겼다.
"…옆집 아가씬가?"
"네."
아저씨가 입고 있는 정장은 소재가 좋아보였다. 아, 이게 아닌데. 키도 훤칠한 게 젊었을 때 여자 몇 명쯤은 울리고 다녔을 외모랄까. 아저씨에게서 나오는 아우라는 조지 클루니(미중년)와 흡사했다. 그 옆에 있는 아줌마의 미모도 만만치 않았다. 아저씨가 여자를 울렸다면, 아줌마는 남자들을 시크하게 차고 다녔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얼핏 김혜수 선배님의 느낌이 났다.
"아가씨, 여기 살던 남학생 못 봤어요?"
"…아,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저 곳에 살'았'던 남학생을 묻는다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민식이에 대해 묻는 터. 낯선 사람들이 얼굴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찾아온 것을 보면 뭔가 민식이의 흑역사라거나, 그런 비스무리한 것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 민식이를 위해서라도 저 사람들한테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자. 그러자, 아줌마는 '그래요?'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일이 있어서 이만 갈게요."
"네, 그러세요."
아줌마는 생긋 웃었다. 진짜 웃을 때, 김혜수 선배님 닮았네. 핫! 이게 아니지. 이러다가 차 밀려서 늦게 가겠다. 라고 생각한 나는 다시 선물을 포장한 종이가방을 들고 팔을 달달 떨며 헐레벌떡 내려갔다.
"…택시, 택시!"
양 팔을 달달 떨며 도로에 나온터라, 달리고 있는 택시를 멈출 방법은 딱히 없었다. 방금 지나간 택시까지 합쳐서 벌써 세 대째 놓치고 있다. 아, 승질나네!?
"됐어! 내 차 탈 거야!"
내가 택시만 탄다고 날 무시하면 안 되요. 난 내 돈으로 벌어서 산 개인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여자거든. 씨바, 누구든 작은 수연이를 건드리면 꽃되는거에요. 아주 꽃되는거야. 나는 그 길로 숙소로 쓰는 아파트 내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내 자가용의 시동을 걸고 차도녀스럽게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민식이한테 선물로 줄 건 따로 하나 챙겨놓고, 얘들이 전해달라고 한 건 조수석에 대충 놓았다. 몇 십 분쯤 달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맛깔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었다람쥐.
+
-민식이 시점.
"…힛, 생일 잘 지내, 오빠."
"어, 잘 가…니콜아."
니콜이가 가자마자 식탁 의자에 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개년, 개떡같은 기브 앤 테이크 문화를 아힝흥헹한 행동에 그대로 적용시키다니. 미역국을 만들어주고, 그 댓가로 허리를 놀리게 했다. 누가 봐도, 내가 훨씬 더 손해다. 그 미역국에 쇠고기도 없더만. 단백질 보충도 못하고 맨날 드레인당하기만 하네.
"히히, 선물이나 뜯어볼까."
생일은 이래서 좋은 거다. 별 거 아니어도, 얘들이 주는 선물상자 열어보는 맛에 생일이 되었다는 것이 가슴까지 와닿는다. 작년에는 많은 소녀들의 번호를 생일선물로 득템하곤했지. 지금같은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말이야. 작년의 내 멘탈이 금년의 멘탈이었다면 전화번호 준다고 하면 '확 마 궁딩이를 쭉 차비까!'라고 방언이 터진 채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니콜이가 가져온 것은 카라의 선물이었다. 내가 선물을 안 가져온 니콜이보고 '넌?' 이라고 말하니까, 니콜이는 음탕한 웃음을 짓더니, '기다려봐!'라고 말하고는 미역국을 만들어 먹이고 나서 '내가 선물이야!' 라고 말하면서 날 먹기 시작했다. 뭔가, 니콜이랑 할 때마다 액티브 스킬의 숙련도를 높이는 느낌이 들곤했다.
"우선, 카라가 준 선물부터."
규리누나의 선물상자부터 뜯어서 열어보았다. 아이패드 2세대였다. '이런 아이패드가 없다는 것, 당신은 고자라는 것.' 이라는 흔한 디씨인들의 애플사 제품 광고문구 패러디가 생각났다.
"오, 이런 거 하나쯤은 필요했는데. 규리누나가 선물로 챙겨줄 줄은 생각도 못했네. 바로 카톡 보내야지."
나는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아이패드2의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핸드폰을 꺼내서 이 선물을 챙겨준 규리누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충 '누나 아이패드 감사감사, 잘 쓸게.' 라는 식으로 보낸 것 같은 데 어디 바로 칼같이 답장한 내용을 확인해볼까.
[그래, 잘 써 ^^ 내일 밤에 찾아갈게~ -규리누나]
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꼬꼬마와 뉴비들아, 잘 알아두렴. 이 세상에 공짜란 건 없다. 모든 지 다 응당한 대가를 치루는 법이다.
난 규리누나의 메세지를 받고서 소중한 인생의 교훈 하나를 깨닫고, 다음 선물 상자를 뜯어보았다. 다들 선물 제공자가 누구란 것을 기억해달라는 건 지, 베이스로 선물상자 뚜껑 위에 자신의 이름이 적인 라벨을 깔고 있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 상자만한 선물상자는 하라가 내게 선물을 준 것이었다.
"우와, 컵이네. 응? 이건 편지?"
[오빠, 선물 잘 받았지? 이거 내가 일본에서 컵 만들기 체험하는 예능 프로그램 할 때 오빠 생각나서 열심히 만들어봤어. 거기에 빨갛게 반하트 모양 그려져있잖아. 나머지 반하트는 내가 갖고 있다? 히히, 커플컵이지롱. 오빠 그걸로 물이나 음료수 마실 때마다 나 생각 해줘야돼? 아 참, 그리고 오빠 살앙해♥ From. 하라구]
물이나 음료수를 마실 때에는 아무래도 이것만 써야겠다. 나도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간 공예품 같은 것들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편이라서 하라가 정성스럽게 만든 이 컵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소재는 유리라서 잘못 다뤘다간 쉽게 깨질 것 같아서 불안하지만, 안 깨질 수 있도록 내가 조심하면 되는것이였다. 나는 하라가 만든 컵을 들고 물을 따라서 한 잔을 찔끔찔끔 입에다 대고 마셨다. 그 다음 선물은…라벨을 보아하니, 승연누나였다.
"으아니, 스쿨룩!?"
지난 번 플레이가 좋긴 좋았었나보다. 내 생일선물도 고등학생 때를 생각나게 하는 교복같은 옷으로 선물한 것을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이즈가 안 맞으면 환불을 해야하니까 상표를 떼지 않은 채 한 번 입어보기로 했다. 옷방으로 털레털레 걸어가서 교복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았다. 우와, 내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는 지 딱 내 몸에 맞는 옷이였다. 환불할 필요가 없었다. 옷을 꺼내자, 그 밑엔 작은 쪽지가 있었다.
[그거 입고 하자.]
거부한다, 네기리브. 이런 목적으로 선물을 준 것이라니, 누나의 마음 속에 있는 음심을 지워라!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은 더할나위없이 시궁창이였다. 승연누나는 코스튬 플레이를 좋아하는 여자였고, 그녀의 옷장엔 얼마나 특이한 코스프레 옷들이 있을까, 라고 가끔식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래봤자,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겠지만.
"효성이하고 현아 것도 뜯어보자."
효성이하고 현아가 준 선물은 각각 헬스장과 아카데미에서 받은 것들이었다. 우선 특이하게 포장되어있는 효성이의 선물부터 개봉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생긴 것으로 봐선 공이나 지구본(?) 정도 되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보았다.
효성이의 선물은 농구공이었다. KBL 정식 공인구인 듯 했다. 거기에는 유명 농구선수들의 싸인들이 더러 있었다. 전태풍부터 시작해서 문태영, 벤슨, 이승준 등 KBL을 이끌어나가는 인기 선수들의 싸인들이었다. 이런 걸 받으려면, 의심받지 않게 '조카가 선수분 팬이라서요…'라는 식으로 발품을 팔고 다니며 받았을텐데, 이것도 나름대로 정성이 있는 선물이었다. 친구들이랑 농구를 할 땐 이걸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현아의 선물을 열어볼까. 촉감으로 봐선 옷인데?"
마치 선물이 포장된 뽐새가 흡사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 주문하면 택배로 올 때 나오는 불투명한 은색의 봉다리 스멜이었다. 현아가 승연누나처럼 스쿨룩을 사줄 생각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으니, 다른 스타일의 옷을 선물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딱 열어봐서 내용을 확인하려는 그 찰나에,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오늘 수연이가 온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수연이가 벌써 왔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직 정오가 되려면 두 시간 정도 남은 오전 열 시 였으니까. 나는 실내용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이러면 안 되는데, 신원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이걸 보는 독자들은 절대로 누군지도 알아보지 않고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 운지를 당하니까. 여튼,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 꼬맹이의 정체는 카라에서 유일하게 선물을 안 준 소녀(니콜은 선물을 줬다고 치자)인 지영이었다. 근데, 이 녀석 스케줄 안 가나.
"…히힛, 오빠 안녕?"
"스케쥴 안 가?"
"가야지, 그 전에 오빠 선물 주려고."
지영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마터면 지영이의 해맑은 웃음에 그녀한테 능욕당할 뻔 했지만 여태껏 당한 게 있어서 쉽게 그녀의 트랩에 걸려들진 않았다. 어쨌든 선물을 준다고 하니, 내가 여태까지 그녀한테 능욕(?)당한 보람은 있는 듯 싶었다.
"고개 좀 숙여봐."
"뭔데, 자."
"쪽! 히히, 나 스케쥴 갈게. 나 분명히 선물 줬다? 내 의지로 뽀뽀한 건 오빠가 처음인 거 알지?"
씨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근데 이렇게 쿨하게 이게 선물이라고 대충 때우고 가다니, 다른 카라 멤버들에 비해서 괘씸한 강아지영같으니라고, 흑흑. 그나마 입술에 안 하고 볼에 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되나. 입술에 하면 또 아리까리한 감정에 휩싸여서 멘탈붕괴라도 될 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도 말랑말랑한 그녀의 입술이 남긴 촉감의 여운은 내 볼따구에 여전히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