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6화 (277/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예순 아홉 번째 과외 - 보일듯 말듯 中

강한 바닷바람에 파도가 거세게 일렁이듯, 빠르게 돌아가는 매트 위에서 힘겹게 달리는 효성이의 가슴은 나의 정신상태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패닉 상태 외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아무리 주위 사람의 시선이 없다고는 하지만 , 내 시선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건 아닌가 싶다.

"…헥헥."

효성이는 힘겹게 달리면서도 목이 타는 지, 텅텅거리는 런닝머신 위에 놓아둬서 넘어진 물병을 손으로 집어 급하게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병입구에 입술을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물 먹으면서 힘들게 뛰면 오히려 더 안 좋은데.

"야, 효성아. 너 그냥 포기해. 그러다가 쓰러지겠다."

"…헥헥, 안 쓰러져!"

'내가 쓰러진다고, 그만 좀 출렁거려…'

다리를 조여오는 스판 소재의 바지는 잔뜩 약이 오른 존슨의 몸부림을 막아내는 데 연신 힘을 쓰고 있었다. 효성이는 입술을 깨물며 다리에서 짜여나오는 고통을 참고 있는 듯 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듯 보였다.

"…하아…민식아, 물 없어?"

"아, 여기."

나는 이제야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다리가 붕괴될 것 같은 고통이 아니라 존슨이 붕괴될 것만 같은 잔혹스러운 고통에 기인해서였다. 아나, 이럴 줄 알았으면 바지를 면 소재로 된 걸 입고 올 걸. 지금 바지가 존슨을 조이는 느낌은 어느 여자의 조임보다도 더 기분 더럽고, 아프기만 했다. 땀범벅이 된 효성이는 내 물병을 받아든 채, 여전히 뛰면서 벌컥벌컥 마셔댔다. 

"…크으, 시원하다…"

효성이의 눈빛이 점점 몽롱하게 느껴졌다. 효성이의 동공에 맺힌 초점은 제 갈피를 못 잡은 채 이리저리 헤메고 있었다. 그러게, 진작에 그만라고 할 때 그만두지. 나는 하는 수 없이 효성이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가 지는 척을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런닝머신 먼저 끈 사람이 진다고 선전포고를 했으니, 나중에 끈 효성이가 위너가 되겠지.

"…어?…헤헥…히히, 민식이 너 런닝머신 껐지? 그치?"

"그래. 넌 왜 이렇게 오래 버티냐. 난 힘들어죽겠네."

효성이가 기분이 나빠지지 않도록 연기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이었다. 효성이는 땀으로 몸이 흠뻑 젖은 채로 나를 보면서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실없는 웃음이긴 했지만, 그녀가 고유적으로 뿜어내는 청순글래머스러운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게 뭔 놈의 네임드가 달린 아우라인지 딱히 구별할만한 특징은 없긴 하지만.

"땀 너무 흘렸다. 수건이야, 닦아."

"…히히, 땡큐!"

"괜찮ㅇ…으응?"

그냥 '고마워'라는 말만 하면 되지, 뭐하러 땀에 젖어서 지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을 입은 채로 날 껴안아대는 것일까. 이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이 역시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내 가슴팍에 닿는 황홀한 감촉은 천국이 확실한 듯 하고, 그 촉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내 찰진 존슨은 지옥인 듯 하고.

"…왜 이래."

"…헤헷, 이긴게 너무 기분 좋아서…하아…"

전효성 이 녀석은 왜 도대체 입으로 숨을 쉬는 소리에서 신음을 섞으면서 내는 것일까. 참으로 야리꾸리하게 들렸다. 진작에 내 몸에서 효성이를 떼버린 나는 런닝머신과 사이클 사이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잠시 운동을 쉴 텀을 스스로 주었다. 

'…큰 거 두 개 달려서 저렇게 힘들어하나.'

런닝머신에서 내려간 지 벌써 10분 채인데, 효성이의 몸에서 나는 땀은 도저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와, 내 소원을 따낼려고 무리까지 하면서 달린거야? 진짜, 의지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나머지 손가락에 꼽을 사람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단 게 흠이지만.

"…왤케…헤엑…힘들고 땀이 많이 나지?"

"…무리해서 그래."

"넌 무리 안 했어? 힘든 기색이 없네."

숨이 점점 정상적으로 내쉬고 뱉어지자, 효성이는 이제서야 정신을 잡은 듯 보였다. 내가 힘든 기색이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아차릴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힘들어했다는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소름끼치네.

"…아, 난 별로."

"아, 또 목 타…민식아, 물 좀…"

"…으이구, 여기서 앉아있어, 움직이지 말고. 내가 사올게."

땀을 말리려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효성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헬스장 내 매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점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헬스장 카운터와 같은 곳을 쓰고 있었다. 한 파티션은 헬스장 카운터, 한 파티션은 헬스장 내 매장 카운터랄까. 난 냉장고에서 개또라이와 pow에이드er를 한 병씩 사고는 효성이가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효성이는 내 손에 쥐여진 이온음료들을 보고, 딱히 내가 말을 안 해도 알아서 팔을 뻗으며 내가 어서 음료를 주길 기다렸다.

"…헤헤, 고마버."

효성이가 활짝 웃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했던 존슨이 너무나도 착한 그 웃음을 보고는 멘붕을 해버렸다. 너는 모르지, 니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난 정말 미치도록 괴롭다는 것을. 너는 모르지, 니가 병을 따려고 낑낑거릴 때 현란하게 너의 가슴살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크으, 시원해!"

"아, 난 안 마셔도 될 것 같다. 좀 있다 너 또 힘들어 할 텐데, 일단 남겨둬야지."

효성이는 사막에서 몇 주일동안 물을 한 모금도 안 먹어본 사람처럼 리퀴드를 신명나게 드레인하고 있었다. 저것이 물먹는 하마가 아니라면 물먹는 효성인가. 내게 있어서 그녀는 오늘부로 시크릿에서 [민식이의 상상브레이커] 라는 칭호를 달고 돌아다닐 듯 했다. 선화의 백치스러운 행동이 충격적이긴 했어도, 효성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점잖은 여자아이인줄 알았더니, 이렇게 앙큼하고 상큼하고 귀여울 줄이야.

"…근데 넌 언제부터 시작한거야?"

"으이구, 전효성 너 바보냐. 오늘 개업했는데, 당연히 오늘부터 시작했지."

"…히히, 맞다."

효성이가 땀을 홍수가 난 듯이 마구잡이로 흘리더니, 아마 그 땀에 융통성도 녹아서 같이 흘러내렸나보다. 횡설수설하는 것도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힘에 부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나도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한 세 달쯤 끊었다?"

"나도 오늘부터 시작해서 세 달 끊었는데, 근데 춤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안 되나봐?"

"…조금은 되긴 하는데, 베이스가 딸려서 기초 체력이라도 높여서 덜 빨리 지치려고…"

효성이는 먹던 이온음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말하는 자신이 멋쩍은 듯 보였다. 효성이가 기초 체력이 부족해 빨리 지치는 것은 아까 런닝머신에서도 볼 수 있었다. 효성이는 자기가 일부러 개인 트레이너를 달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운동해서는 기초 체력이 쌓이기는 커녕, 기본적으로 있는 기초체력마저 날아갈 지경이었다.

"…흐음."

"…음, 왜?"

효성이는 내가 턱을 괴며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효성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땀에 절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반질한 이마에 붙어있었다.

"아니, 너만 괜찮다면 운동하는 거 도와줄까?"

"…진짜?"

효성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다물고 있었던 입이 자연스레 양 옆으로 크게 벌어졌다. 내 제안에 너무나도 화사하게 반색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런 말을 하기를 기다렸는 데 예상 외로 빨리 해버려서 보이는 반응의 하나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나도 운동하고. 너도 운동하고."

그건 사실이었다. 운동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해도 효성이가 수월하게 운동을 할 수 있게 옆에서 보조하거나 조금 조언해줄 뿐 그 이상의 간섭은 안 할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살 좀 빼라' 같은, 여자에게 민감한 말은 일제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 심심하게 운동하는 것보단 낫겠네, 콜!"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재미진 포즈를 지으며 말하는 효성이었다. 나는 상큼발랄한 효성이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띠었다.

"그럼 같이 다니자."

"응!"

효성이와 같이 헬스장을 다니기로 약속했다. 효성이는 약속을 하면 이렇게 해야된다면서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새끼손가락을 꼬고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댔다. 약속을 하면서 효성이의 손바닥을 보았다. 작을 줄 알았는데, 중간 정도는 가네.

'…아 왤케 안 힘드냐. 설마…내일 일어날 때, 오늘 무리해서 운동한 거 몰아서 쑤시는 거 아냐? 그러면, 소름 끼치겠네. 진통제 하나라도 사다놓을까.'

아무래도 라디오를 끝내고 카라 숙소에 들려서 진통제 남은 게 있으면 조금 달라고 해야겠다. 카라 애들은 많이 움직여서 온 몸이 쑤실테니, 진통제 몇 개쯤은 있겠지.

"뭔 생각해?"

"…응? 아니야. 런닝머신 뛰었고, 한 10분 정도 쉬었으니까 이번엔 싸이클 할래? 나 따라한답시고 또 무리하지마. 아까처럼 그 꼴 난다?"

"…히히, 알겠어."

바보처럼 웃고있는 효성이긴 하지만, 힘들어하면서도 나를 따라할 게 분명했다. 그게 걱정이었다. 나는 효성이를 계속 쳐다보며 싸이클 운동기구에 올라탔다. 신발을 페달에 걸치고, 바로 가장 힘든 기어로 돌리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움직였다. 젠장, 이번에도 안 아프잖아. 아무리 성관계로 몸이 다졌다고 하지만, 이건 뭐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이런 체력인데도 내가 싸움을 못한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존슨은 힘드니까, 나쁜건가.'

효성이를 쳐다보지 않을 때는 나의 존슨은 원래의 크기로 돌아오고, 효성이의 돌출된 몸매를 볼 때는 원래의 크기보다 업그레이드 되고 있었다. 효성이가 눈치를 채지 못한게 다행이지. 내가 참는 꼴을 보게 된다면 설마 효성이도 은정누나처럼 그런 부탁을 하는 건 아닌 지 모르겠다. 효성이도 알겠지, 자기 몸매가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환상의 몸매라는 것을. 효성이가 전신을 긴 츄리닝으로 몸을 덮지 않는 이상, 내 존슨이 꼴려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을 듯 했다. 효성이를 위해서 열심히 참고 있긴 하지만, 이게 언제 터져서 효성이를 덮치게 될 지 정말 모르겠다.

'…참자, 지금의 여자만 해도 충분히 벅차.'

여자를 늘리는 것도 정도것해야지, 이제 나머지 애들은 다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거야. 연인처럼 지내면 그것을 관리해야하는 나만 힘들어져. 

"…헥헥."

"…응?"

또 다시 들려오는 효성이의 거친 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땀에 흠뻑 절어있었다. 나를 따라하지 말라고 그토록 당부했는데도 결국 무리해서 페달을 돌리다가 저 꼴이 나버렸다. 나는 내가 밟던 페달을 멈추고, 싸이클 운동기구에서 내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효성이에게 걸어가 기어를 낮춰주었다. 8단에서 3단 정도로 돌리니 효성이의 다리도 아까보다는 더 빠르게 쌩쌩 돌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이미 몽롱해져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무리하면 오히려 몸에 안 좋아. 네 상태에 적당하게 운동을 해야 점차 체력이 오르지."

나는 효성이에게 걱정 어린 충고를 해주고는 효성이의 싸이클에서 손을 뺐다. 그렇지만, 들어갈 때랑은 다르게 빠져나올 때, 하필이면 효성이가 고개를 숙이며 싸이클을 하는 바람에 좀 더 아래로 내려온 그녀의 몰캉한 젖가슴살을 내 손이 툭 치고 지나갔다. 잠깐동안 손등에 스친 그녀의 촉감은 워낙 땀에 쩔어있었터라, 옷에 찰싹 달라붙었던 그녀의 젖가슴의 느낌은 거의 맨가슴이나 다름 없었다.

"…미, 미안."

"…괜찮아."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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