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5화 (276/333)

* 소녀시대와 9 대 1 과외하기 이백 예순 여덟 번째 과외 - 보일듯 말듯 上

"…패스!"

포인트 가드가 미처 나를 커버하지 못했다. 빈 틈을 파고 든 나는 볼을 드리블하고 있었던 소월이에게 오더를 했고, 내 목소리 하나는 기막히게 잘 듣는 그는 볼을 바로 내게 바운드 패스를 했다. 공을 받은 나는 나의 슛을 막으러 오는 상대편 선수를 페이크로 따돌리고 스냅을 이용해 슛을 쏘았다. 농구공은 골망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었다.

"삐이익-!"

"형, 나이스 버저비터!"

나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과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 일치했다. 심판 역할을 맡은 여학생이 호각을 불자, 내 팀원들은 모두들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구내 식당이 아닌 바깥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쏘는 것을 걸고 한 거 였는데, 정말 오늘은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우리 팀원 중 하나인 소월이가 이 쪽으로 오면서 나랑 손뼉을 부딪혔다.

"아, 선배. 우리 팀 오지 그랬어요."

"…하하, 미안. 다음 게임엔 니네 팀으로 갈게."

지호는 얼굴에 땀이 흥건한 내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나는 '고마워'라고 말하며 그 수건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마른 수건이 금세 축축해졌다.

"성진이네 팀은 어서 돈까스 집이나 가게 지갑 준비해놓고."

"…형, 스페셜세트는 참아주세요. 요즘 버는 형과 다르게 제 지갑은 눈물 그 자체입니다. 제 눈가에 고이는 이 눈물이 안 보이시나요."

"오버하지마, 임마."

성진이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들며 학생의 가난한 처지를 불쌍한 이미지로 호소했지만, 그의 시계는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였다. 그리고 그가 꺼내든 지갑은 프랑스 캐쥬얼 브랜드 중 하나인 락호슽헤였다. 말과 행동이 맞지 않은 언행불일치에 나는 성진이의 통수를 손바닥으로 찰지게 치고,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기숙사동으로 갔다. 비록 나는 기숙사를 쓰지 않았지만, 남자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밥을 먹어서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잡칠 바엔 깔끔하게 씻고 가서 먹는게 더 나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으어어어!!"

"왜, 억울해? 다음에 니네 팀에 형 스카웃해. 그럼 소월이 지갑 열게 해줄게."

성진이는 빈털털이가 된 자신의 지갑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진지하게 멘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돈까스로 채운 배를 문지르며 성진이에게 말을 했다. 성진이의 눈빛이 또렷하게 발했다. 

"형 진짜죠, 이번에 한 말 무르기 없기."

"난 내가 내뱉은 말 갖고 다른 말 안 해."

"히히, 소월아. 조만간 지갑에 돈 좀 채워야겠다."

"…아, 오바다."

소월이의 표정이 잠시 구겨졌다. 내가 다음 게임엔 성진이 팀으로 간다고 저렇게 멘붕을 하다니. 내가 어느정도 하긴 하나보다, 했다. 내가 어느 팀에 있느냐에 따라 상대팀의 승리가 좌우될 정도라니. 여자 아이돌 아이들에게 치여사느라 잠시 손뗐던 취미 중 하나인 농구를 오랜만에 하니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날씨는 어느새 초여름에 가까워질정도로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 근데. 오랜만에 농구해서 그런가 몸이 왤케 찌뿌둥하지. 너네들도 오랜만에 운동하면 그러냐?"

"저희는 별로…그냥 잠깐 쑤시고 말던데."

"내가 늙어서 그런가."

"하기야, 형이 저희보다 2살은 더 늙으셨죠."

"이 새끼가!?"

소월이가 내뱉은 짓궂은 말에 나는 그에게 손찌검을 하려다가, 불현듯 울리는 내 핸드폰의 진동소리에 소월이는 목숨을 구제했고 나는 핸드폰에 온 메세지를 확인했다. 방송국 앞에 있는 헬스장이 개업했다는 메세지였다. 아, 근데 내 번호는 어떻게 안 거지. 국회의원들이 총선 앞두고 미리 유세하려고 보내는 메세지도 아닌 데 말이다.

"…뭐에요? 유리누나 문자?"

"아니, 광고문자. 여튼 잘 먹었다. 형은 집에서 쉬다가 방송국 가야겠다."

"방송국엔 왜?"

"으이구, 바보야. 민식이 형 라디오 하잖아, 심심타파. 형 재밌게 듣고 있어요. 완전 군대 갔다오시더니 인생 피네요."

아오오, 정수연 잘 조련할 것 같이 생긴 저 놈이 왜 저리 깝치는걸까. 다음에 농구 게임 생기면 우연치 않게 농구공을 저 놈 면상에 꼽아야겠다. 그리고 실수라고 저 놈이 말을 선수치기 전에 해야지.

+

"세 달에 18만원? 싸네요."

"오픈 이벤트에요, 그리고 손님이 첫 회원분이시네요."

개업한 지 몇 시간 밖에 안 지나서 그런 지, 내가 첫 헬스장 회원이란다. 이 곳에 온 이유는조금 있다가 라디오 방송을 하니까 방송하면서 찌푸둥하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인 것이다. 사장에게 키를 받고 헬스복으로 환복해도 아직 헬스장은 수십 대의 운동기구만 있을 뿐 회원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다. 

"아, 쓸쓸해보이기는 해도 조용하니까 좋다."

헬스장의 모든 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종합회원권을 끊었으니 헬스장 안에 있는 스쿼시룸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일단은 땀을 내야했기에 런닝머신 위로 올라가 시작 버튼을 눌렀다. 런닝머신의 검은 벨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 타-. 타-. 타-. 타-.]

점점 빨라지는 벨트와 런닝화 밑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귓가에 수시로 담겨지는 유일한 소리였다. 거의 질주하다시피 뛰고 있는데도 힘든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어서오세요."

멀리서 헬스장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회원권을 끊고 난 뒤에 이윽고 누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꽤나 빠르게 움직이는 벨트 위에서 뛰다가 방심했다간 다치기 쉽상이였다. 다시 내 시선을 앞으로 두고 숨이 찰 때까지 달렸다. 근데 이상하게도 숨이 안 찼다. 씨발, 이게 뭐야. 내가 트와일라잇에 나오는 뱀파이어도 아닌데 뭐 빠지게 뛰어도 어떻게 땀이 눈에 띄게 안 흐를 수가 있지? 

"씨바, 이게 뭐야. 머리에다 분무기 뿌린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땀이 찔끔 나와."

이것 봐봐, 숨이 차야되는 데 뭐빠지게 뛰면서도 헥헥…거리는 소리는 커녕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섹스를 하면서 다져진 체력인가? 라는 헛생각을 하며 런닝머신 위를 쉼도 없이 뛰었다. 심장이 힘들다고 요동칠 때까지, 런닝머신에서 내리고 나면 다리의 힘이 풀릴 때 까지는 아니고, 그 전 정도에 다다를 때 까지.

"…두 번째 회원이시네요."

"…엥, 제가요? 첫 번째 회원은 누군데요."

"저기 운동하고 계신 분이요."

"스타 전용 헬스장이라더니, 진짜 스타가 운동하고 계셨네, 히힛. 전 트레이너 붙여주지 마세요?"

"…네."

전과 똑같은 이유로 두 번째 회원이라고 하는 여자의 목소리와 사장의 낮은 목소리가 섞이든 말든 연연할 이유없이 힘들 때까지 런닝머신 위를 달렸다. 아오, 씨발. 이제 좀 지치면 안 되나? 라고 처절하게 말하고 싶을 정도로 난 힘차게 뛰고 있었다. 오죽하면 런닝머신 한 대에서 나는 소음이 런닝머신 두 세대에서 보통 이상 빠르기로 달릴 때 나는 소음보다 더 클까. 

'…것보다 스타 전용 헬스장?'

마린이나 파이어뱃도 헬스하러 오나, 했지만 이건 터무니없는 멍멍이 사운드인듯 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스타'가 아니라, 연예인을 지칭하는 말로써의 '스타'겠지. 그럼, 회원권을 끊는 저 여자도 연예인이라는 말인데. 제발, 나한테 꼬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거나, 그러면 난 정말 곤란해질 것만 같았다. 지금도 충분히 벅차니까 말이다.

"…하아,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하아…어? 힘들어진다!"

힘든 게 이렇게 신나는 느낌일 줄 상상도 못했다. 누가 보면 완벽하게 정신 나간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쓸데 있는 걱정을 하니, 몸이 절로 피곤해져서 땀을 내보내나했다. 숨도 좀 더 불규칙적으로 쉬어지고, 심장박동도 정상보다 더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어한다는 걸 거짓없이 보여주는 생리적인 반응이였다. 

"…하아…땀 나니까 기분이 한결 낫다."

비록 이마 사이로 흘러나온 한 줄기의 땀방울이였지만, 나에겐 폭포수같이 흐르는 땀범벅인 누군가의 모습과 동일시되었다. 열심히 운동하고 땀을 수건으로 닦는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나고 찝찝하긴 했지만, 기쁘기도 했다. 열심히 운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력의 흔적이었으니까.

"…몇 분 뛰었나볼까…어…음, 한 시간!?"

한 시간을 빡세게 뛰었는 데 눈으로 보이는 결실이 겨우 땀 한 줄기란 말인가. 난 눈 앞에 닥쳐온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었으면 응급실을 실려가고도 남았을 강도였는데, 나는 겨우 깝랑의 오줌줄기같은 땀 한 줄기라니.

"…목도 안 타고, 몸도 안 힘들고, 도대체 내 몸 왜 이래."

그제서야 쌩쌩 움직이던 런닝머신의 전원을 끄고 내 몸을 확인했다. 이 정도 뛰었으면, 정말 온 몸이 땀 때문에 매끈매끈해져야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하지만 땀 한 방울 맺히지 않는 건조한 이 몸과 다리를 보라. 겨우 런닝머신 5분 뛰고, 선풍기로 달려가서 방금 모공 위로 올라온 땀들을 말리는 퀄리티의 이 마른 헬스복을 보라. 

"…으어어어."

"…어흥!"

"…?"

런닝머신 밑에서 신나게 멘붕하고 있을 때 쯤, 누가 당치도 않은 호랑이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아무래도 내 어깨를 건드리는 이 촉의 주인공은 방금 사장과 대화를 나눴던 두번째 손님 혹은 두번째 손님과 대화를 나눴던 사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성 분이 건드린 것이였으면 더도 말고 친해지려는 의도에서 그런 것이고, 사장이 그랬던 것이라면 홍석천이 심어둔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여자 혹은 게이. 과연 당신의 선택은?…아, 이게 아니라 고개를 돌리면 끝이잖아. 

"…헤헷, 혹시나 했는데 민식이네. 라디오 끝나고 못 보는 줄 알고 서운했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갑다, 안녀엉."

"효성이 니가 두번째 회원이였어?"

"응, 그럼 니가 첫번째 회원?"

나는 뭔가 이 상황이 웃겨서 실실 쪼개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효성이는 정말 나를 봐서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내게 다가온 여자가 모르는 여자는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효성이에겐 내 표정이 그냥 웃는 표정으로 읽혀지겠지만 말이다.  

"너, 언제 왔어?"

"나? 여기 한 시간 전에 와서 쭉 런닝머신 뛰었지."

"그래? 근데도 땀이 별로 안 난걸 보니까, 설렁설렁 뛰었나보네."

그렇게 말하면 섭하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뛰려고 노력했는데, 근데 아무리 강도를 높여도 몸이 힘들어하지않는 것을 나보고 어떡하란 말인가. 

"에이, 너 아까 신청하면서 헬스장 모습 봤을 거 아냐. 내가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데."

"…속도 그 때만 잠시 높인거잖아."

"아닌데, 그 속도로 계속 달렸는데. 지금 다시 보여줘?"

"그래, 보여줘. 일단 나도 뛰면서 볼래."

아직도 날 못 믿겠단 말이지. 역시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줘야 믿으려나. 나는 효성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탔던 런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런닝머신 벨트에는 내가 뜀박질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렇게 많은 흔적들을 보면 쉽게 알텐데 왜 못 믿는 지. 나는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다시 그 속도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로 누가 더 오래버티는 지 내기할래?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당연히 내가 이기지. 너는 나보다 다섯 단계 낮게 하고 뛰어. 그래도 내가 이겨."

"…히이,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

효성이는 입술을 앙다물며 런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런닝머신의 전원을 키고 효성이도 걸으며 벨트를 밟다가 점점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속도를 높이면 높일 수록 효성이의 두 가슴은 점점 더 강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시발.'

왠지 대책없는 이 레이스는 다리가 힘든 것보단, 존슨이 더 힘들 것 같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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